루키우스 다수미우스 툴리우스 투스쿠스
1. 개요
루키우스 다수미우스 툴리우스 투스쿠스는 고대 로마 시대의 인물로, 그의 생애는 타르퀴니아에서 발견된 금석문을 통해 알려져 있다. 그는 10대 시절 비긴티비리의 최고 요직인 '트레비스 모네탈리스'를 거쳐, 군사 트리부누스, 재무관, 아프리카 속주의 레가투스를 역임했다. 이후 '아이라리움 사투르니' 부서장, 보좌 집정관, 게르마니아 수페리오르 총독, 판노니아 수페리오르 총독을 차례로 역임했다. 또한, '소달레스 하드리아날레스'와 '소달리 안토니니아니'의 구성원이었으며, 아우구르를 지냈다. 그의 생부는 푸블리우스 툴리우스 바로로 추정되며, 마르쿠스 다수미우스 툴리우스 바로의 아버지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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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서기 120년경 |
|---|---|
| 사망 | 서기 152년 이후 |
| 로마자 표기 | Lūcius Dāsumius Tūllius Tūscus |
| 원로원 의원 | 로마 원로원 |
|---|---|
| 보좌관 |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 |
| 집정관 | 서기 15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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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의 양자 -
가이우스 라이카니우스 바수스 카이키나 파이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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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기 로마인 -
아풀레이우스
아풀레이우스는 로마 제국 시대 북아프리카 출신의 작가이자 철학자, 웅변가로, 『황금 당나귀』라는 소설과 뛰어난 변론 능력으로 유명하며, 플라톤 철학 연구와 신플라톤주의 사상에 영향을 미쳤다. -
2세기 로마인 -
폼페이아 플로티나
폼페이아 플로티나는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의 아내이자 하드리아누스 즉위에 영향을 미쳤으며, 에피쿠로스 학파를 후원하고 황제 숭배 대상이 된 로마 황후이다.
2. 가족
투스쿠스는 에트루리아 도시 타르퀴니아 출신으로 추정된다. 그의 생부는 푸블리우스 툴리우스 바로로, 양부는 푸블리우스 다수미우스 루스티쿠스로 추정된다. 아들로는 마르쿠스 다수미우스 툴리우스 바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아내나 다른 자녀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2.1. 가문의 기원과 혈통
올리 살로미스는 이름의 공통점, 동일한 부족인 스텔라티나 구성원, 그리고 두 사람 모두를 기리는 비문이 같은 사람인 P. 툴리우스 칼리스티오에 의해 헌정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127년에 집정관을 지낸 푸블리우스 툴리우스 바로가 투스쿠스의 생부라고 주장했다. 그의 이름에 나오는 "루키우스 다수미우스"는 그의 양아버지를 가리키며, 살로미스는 그가 119년의 동명 집정관인 푸블리우스 다수미우스 루스티쿠스와 "분명히 관련이 있다"고 믿고 있다. 그와 그의 아버지의 기원은 에트루리아 도시인 타르퀴니아로 여겨지며, 이곳은 스텔라티나 부족에 속한 지역이었다.
투스쿠스는 마르쿠스 다수미우스 툴리우스 바로의 아버지로 여겨진다. 그의 아내의 이름과 다른 가능한 자녀는 기록되지 않았다.
2.2. 양부와의 관계
올리 살로미스는 이름의 공통점, 동일한 부족인 '스텔라티나' 구성원, 그리고 두 사람 모두를 기리는 비문이 같은 사람인 P. 툴리우스 칼리스티오에 의해 헌정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127년에 집정관을 지낸 푸블리우스 툴리우스 바로가 투스쿠스의 생부라고 주장했다. 그의 이름에 나오는 "루키우스 다수미우스"는 그의 양아버지를 가리키며, 살로미스는 그가 119년의 동명 집정관인 푸블리우스 다수미우스 루스티쿠스와 "분명한 관계"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3. 생애
투스쿠스는 10대 시절부터 황제의 총애를 받으며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트레비스 모네탈리스' 출신으로, 이는 당시 젊은이들에게 가장 선호되는 관직 중 하나였다. 이후 플라비아 펠릭스 제4군단에서 트리부누스 밀리툼을 지내는 등 여러 관직을 거치며 경력을 쌓았다.
3.1. 초기 경력
투스쿠스의 생애는 타르퀴니아에서 발견된 금석문을 통해 알려져 있다. 10대 시절, 그는 비긴티비리를 구성하는 정무관 중 최고 요직이라 여겨진 '트레비스 모네탈리스' 출신이었다. 트리베스 모네탈리스는 보통 파트리키 출신이나 황제의 총애를 받는 젊은이들이 맡았다. 이 직위를 지녔던 플레브스는 보통 성공적인 경력을 누렸다. 그는 싱기두눔에 주둔한 플라비아 펠릭스 제4군단에서 트리부누스 밀리툼을 지낸 뒤,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의 재무관으로 복무했고, 그 뒤에 아프리카 속주 프로콘술의 대리 및 레가투스로 있었다. 법무관 및 레가투스 경력은 그에게 영향력 있는 인사들에게 주목받고 소개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3.2. 주요 관직
투스쿠스는 평민 호민관과 재무관을 거쳐 '아이라리움 사투르니' 부서장을 역임했다(147년경-150년경). 보좌 집정관을 역임했다. 게르마니아 수페리오르 총독을 역임했다(152년경-158년경). '쿠라토르 오페룸 푸블리코룸'을 역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르쿠스 노니우스 마크리누스의 후임이자 마르쿠스 얄리우스 바수스의 전임자로서 판노니아 수페리오르 총독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