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일본성
1. 개요
마산일본성은 임진왜란 시기 일본군이 경상남도 마산 지역에 축조한 왜성이다. 1594년 일본군은 부산·경남 지역에 왜성을 축조하여 전투 장기화에 대비했으며, 마산일본성은 20여 개 왜성 중 하나로 건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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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형 | 사적 |
|---|---|
| 번호 | 36 |
| 지정 | 1963년 1월 21일 |
| 해지 | 1969년 8월 1일 |
| 주소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용마산길 142 (산호동) |
| 시대 | 조선 |
| 소유 | 창원시 |
| 참고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
| 문화재청 | 13,00360000,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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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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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에 있는 조선시대 성곽이자 산성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들이 경상남도 해안 지대에 쌓은 20여 개 왜성 중 하나로, 지금은 대부분 허물어져 석축 일부만 남아 공원화되었다.
일본 사서에는 이 성을 창원성(昌原城)으로 기록하고, 성 외곽에 함선이 직접 닿았다고 하였으나 그러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일제강점기 이전 합포 해안선이 용마산 바로 밑까지 들어왔다는 기록은 구일본군의 측량 기록으로 남아있다.
2.2. 다테 마사무네와 나베시마 부자
1592년 4월 부산에 상륙한 왜장 다테 마사무네가 부산 김해 죽도왜성을 함락한 뒤 창원을 거쳐 마산으로 들어와 용마산을 군사기지로 사용하기 위해 축성공사를 시작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왜장 나베시마 나오시게와 가쓰시게 부자가 본격적인 축성공사에 착수하여 12월에 완공하였다.
3. 명칭과 기록
마산일본성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곽이자 산성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들이 경상남도 해안지대에 쌓은 20여개 왜성 중 하나로, 지금은 대부분 허물어져 석축의 일부분만 남아 공원화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상륙한 일본군은 1594년 봄에 부산·경남 지역에서 대대적인 축성에 착수하여 전투 장기화에 대비하였다. 마산일본성은 1592년 4월 부산에 상륙한 왜장 다테 마사무네가 부산의 김해 죽도왜성을 함락한 뒤 창원을 거쳐 마산으로 들어와 용마산을 군사기지로 사용하기 위해 축성공사를 시작하였으며, 그 뒤 1597년 10월 정유재란 때 왜장 나베시마 나오시게와 가쓰시게가 본격적인 축성공사에 착수하여 12월에 완공하였다.
이 성은 한때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가 왜성이라는 이유로 해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