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다이라 다다타카 (1682년)
1. 개요
마쓰다이라 다다타카(1682년)는 에도 시대 중기의 다이묘로, 아마가사키 번주였다. 마쓰다이라 다다쓰구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형의 요절과 조부의 사망으로 15세에 번주가 되었다. 도토미 가케가와 번과 셋쓰 아마가사키 번을 거치며, 에도에서 장군을 수행하고 조선 통신사를 접대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1751년 은거 후 1756년 아마가사키에서 74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차남 마쓰다이라 다다나가 가문을 이었다.
| 씨명 | 사쿠라이 마쓰다이라 가문 |
|---|---|
| 이름 | 마쓰다이라 다다타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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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 | 에도 시대 전기 - 중기 |
|---|---|
| 출생 | 덴와 3년 1월 9일 (1683년2월 5일) |
| 사망 | 호레키 6년 2월 5일 (1756년3월 5일) |
| 초명 | 구부 |
| 다른 이름 | 가쓰치요 (어린 시절 이름), 요시치로 |
| 신호 | 하나쿠와시사쿠라노미코토 |
| 계명 | 레이다이인덴진요코도쿠도융다이코지 |
| 묘소 | 효고현아마가사키시의 신쇼인 |
| 관위 | 종5위 하, 종4위 하, 도토미노카미, 이와미노카미 |
| 막부 | 에도 막부 |
| 주군 | 도쿠가와 쓰나요시→이에노부→이에쓰구→요시무네→이에시게 |
| 번 | 시나노이야마 번 번주→도토미가케가와 번 번주→셋쓰아마가사키 번 번주 |
| 씨족 | 사쿠라이 마쓰다이라 가문 |
| 부모 | 아버지: 마쓰다이라 다다쓰구, 어머니: 혼다 야스마사의 딸 |
|---|---|
| 형제 | 마쓰다이라 다다토시, 다다타카, 나가이 나오마루 정실, 스가누마 사다야스 정실 |
| 배우자 | 정실: 도다 다다자네의 딸 측실: 이와사키 씨, 쓰치야 씨 |
| 자녀 | 마쓰다이라 다다나, 마쓰다이라 다다요시, 기쓰레가와 시게우지 정실, 운쿄인, 마쓰다이라 지카즈미 정실, 슈코인, 아베 노부히라 정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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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가사키번주 -
도다 우지카네
도다 우지카네는 에도 시대 초기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긴 무장, 다이묘로서 세키가하라 전투, 오사카 전투, 시마바라의 난 등 주요 전투에 공을 세웠으며, 오미 제제번, 셋쓰 아마가사키번을 거쳐 미노 오가키번의 초대 번주를 지내며 번정 개혁을 통해 번의 경제 발전과 민생 안정에 기여하여 사후 공적을 기려 동상 건립 및 신사에 제신으로 모셔졌다. -
아마가사키번주 -
사쿠라이 다다오키
마쓰다이라 다다히데의 아들로 아마가사키 번의 마지막 번주였던 사쿠라이 다다오키는 보신 전쟁 이후 성을 바꾸고 아마가사키 번지사를 지냈으며 박애사 설립에 기여한 일본의 자작이다. -
이야마번주 -
마쓰다이라 다다토모 (1634년)
마쓰다이라 다다토모는 에도 시대 이이야마 번을 다스린 다이묘로, 치수 사업, 관개 시설 정비, 신전 개발 등을 통해 번의 기반을 다지고 노다 기자에몬을 등용하여 번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오사카 가반 등 요직을 역임한 명군으로 평가받는다. -
이야마번주 -
미나가와 히로테루
미나가와 히로테루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으로, 호조 씨,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연계하며 혼란스러운 시대를 헤쳐나갔고, 도쿠가와 가문의 중신으로 활약하며 다이묘의 지위를 회복했으며, 야마가미 소지와 교류하며 다도에도 조예가 깊었다. -
사쿠라이 마쓰다이라씨 -
마쓰다이라 다다토모 (1634년)
마쓰다이라 다다토모는 에도 시대 이이야마 번을 다스린 다이묘로, 치수 사업, 관개 시설 정비, 신전 개발 등을 통해 번의 기반을 다지고 노다 기자에몬을 등용하여 번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오사카 가반 등 요직을 역임한 명군으로 평가받는다. -
사쿠라이 마쓰다이라씨 -
하마마쓰번
하마마쓰번은 에도 시대 도토미국 하마마쓰에 있던 번으로, 여러 후다이 다이묘 가문이 번주를 역임하며 '출세성'이라는 별칭을 얻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거점이기도 했으며, 폐번치현 이후 시즈오카현에 편입되었다.
2. 생애
마쓰다이라 다다타카는 겐로쿠 13년(1700년)에 처음으로 자신의 영지인 반산에 들어갔다. 그 전까지는 대부분 에도에서 지내며 쇼군의 외출에 동행하거나, 여러 토목 공사, 니시노마루 오테 어문반 등의 역할을 수행했다. 막부의 명에 따라 조선 통신사 접대역, 닛코 도쇼구 경호역 등도 맡았다.
호에이 3년(1706년) 가케가와 번으로, 호에이 8년(1711년)에는 아마가사키 번으로 영지가 변경되었다. 쇼토쿠 원년(1711년) 아마가사키에 신쇼인을 건립했는데, 이는 사쿠라이 마쓰다이라 가문의 보리사가 되었고, 절 이름은 조부 다다토모의 법명에서 따왔다.
교호 2년(1717년) 에도 대화재(고이시카와 바바 화재) 때는 방화 임무를 맡아 가신을 지휘했고, 이후 노고를 치하받았다. 간엔 3년(1750년)에는 종4위하로 승진했는데, 이는 가문 내 유일한 사례이다. 간엔 4년/호레키 원년(1751년) 은거 후 이와미노카미로 옮겨졌다.
가독은 차남 다다나가 이었다. 호레키 6년(1756년) 아마가사키에서 74세("공식 나이" 75세)로 사망, 신쇼인에 묻혔다.
2.1. 출생과 가독 상속
마쓰다이라 다다토모의 아들 마쓰다이라 다다쓰구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간세이 정수 제씨보』에는 덴와 2년(1682년)에 태어났다고 되어 있으나, 가신 집안에 전해지는 자료에는 덴와 3년(1683년) 1월 9일에 태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막부에는 실제 나이보다 많게 보고된 것으로 보인다. (관년 참조)
겐로쿠 7년(1694년) 12월, 아버지 다다쓰구는 병 때문에 폐적되었다. 다다타카의 형 다다토시가 반산 번의 세자가 되었고, 겐로쿠 8년(1695년) 2월에는 조부를 이을 '적손'으로 막부에 인정받았으나, 같은 해 12월에 24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이 때문에 다다타카가 세자가 되었지만, 겐로쿠 9년(1696년) 5월 26일에 오사카 가반을 맡고 있던 조부가 임지 오사카에서 사망했고, 같은 해 7월 25일에 다다타카가 15세(공식 나이)로 번주 자리를 이었다. 그러나 쇼군에게 어전을 받거나 세자 임명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7월 28일에 쓰나요시에게 어전하고 가독 상속을 사죄했다. 이때 쓰나요시에게 아버지의 유품인 엣추 노리시게의 칼, 어전에 이치조 후유요시의 『고킨와카슈』, 게이쇼인에게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와칸 료에이슈』를 각각 바쳤다. 12월 22일, 종5위하 도오토미노카미에 임명되었다.
2.2. 번주 시절
마쓰다이라 다다쓰구(마쓰다이라 다다토모의 아들)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겐로쿠 7년(1694년) 12월, 아버지 다다쓰구는 병을 이유로 폐적되었다. 다다타카의 형 다다토시가 반산 번의 세자가 되었고, 겐로쿠 8년(1695년) 2월에는 조부를 이을 '적손'으로 막부에 인정받았지만, 같은 해 12월에 24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이 때문에 다다타카에게 세자의 자리가 돌아왔지만, 겐로쿠 9년(1696년) 5월 26일에 오사카 가반을 맡고 있던 조부가 임지 오사카에서 사망했고, 7월 25일에 다다타카가 15세(공식 나이)로 번주를 잇게 되었다.
그러나 장군에게 어전을 받거나 세자로서의 임명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7월 28일에 쓰나요시에게 어전하고 가독 상속을 사죄했다. 이때 쓰나요시에게 아버지의 유품인 엣추 노리시게의 칼, 어전에 이치조 후유요시 필의 『고킨와카슈』, 게이쇼인에게 아시카가 요시마사 필의 『와칸 로에이슈』를 각각 헌상했다. 12월 22일, 종5위하 도토미노카미에 임명되었다.
다이묘가 된 마쓰다이라 다다타카는 대부분을 에도에서 보냈으며, 첫 영지(반산) 입성은 겐로쿠 13년(1700년)의 일이었다. 에도 체류 중에는 장군의 외출에 수행하거나 각종 토목 공사, 니시노마루 오테 어문반 등의 역할을 맡았다. 또한 막부의 명령에 따라 조선 통신사의 접대역, 닛코 도쇼구의 경호역 등을 맡았다.
호에이 3년(1706년) 1월 28일, 도오토미 가케가와 번으로 이봉되었다. 호에이 8년(1711년) 2월 11일에 셋쓰 아마가사키 번으로 이봉되었다. 아마가사키 번주가 된 사쿠라이 마쓰다이라 가문의 보리사가 될 신쇼인 (아마가사키시 오모노초)은 쇼토쿠 원년(1711년)에 다다타카가 아마가사키에 건립했다고 전해지며, 절의 이름은 오사카에서 사망한 조부 다다토모의 법명인 원호를 따서 지었다.
교호 2년(1717년) 1월 22일의 대화재 (고이시카와 바바 화재) 때에는 방화 임무를 부여받았기 때문에 직접 가신을 지휘했고, 후에 가신이 노중에 불려가 노고를 치하받았다. 간엔 3년(1750년) 12월 18일, 종4위하로 승진했다.(사쿠라이 마쓰다이라 가문에서 유일한 사례) 간엔 4년/호레키 원년(1751년) 3월 20일에 은거했다. 같은 날 21일에 이와미노카미로 옮겨졌다.
2.3. 은거와 사망
호레키 원년(1751년) 3월 20일에 은거하여, 같은 달 21일에 이와미노카미로 옮겨졌다. 가독은 차남 다다나가 이었다. 호레키 6년(1756년) 2월 5일, 아마가사키에서 74세로 사망했으며("공식 나이"로 75세), 신쇼인(아마가사키시 오모노초)에 묻혔다.
3. 계보
* 아버지: 마쓰다이라 다다쓰구
* 어머니: 혼다 야스마사의 딸
* 정실: 도다 다다자네의 딸
* 차녀(2): 모리 히로토요의 처
* 삼녀(3): 마쓰다이라 지카즈미의 처
* 차남(6): 마쓰다이라 다다나 - 실은 측실 소생으로 여겨진다(후술).
* 칠녀(9)
* 생모 불명의 자녀
* 장녀(1): 기레가와 시게우지의 처
* 팔녀(10)
* 측실 모 씨
* 장남(4): 쇼치요 - 요절
* 사녀(5)
* 측실 모 씨
* 오녀(7): 미야케 야스타카의 처
* 육녀(8): 아베 노부히라의 약혼자, 요절
* 측실: 이와사키 씨
* 구녀(11): 아베 노부히라의 처, 이혼 후 마쓰다이라 마사노부의 처
* 십녀(12)
* 십일녀(13): 아스카이 마사시게의 처
* 측실: 쓰치야 씨
* 삼남(14): 마쓰다이라 타다요시
후계자가 된 마쓰다이라 다다나는 『간세이 중수 제보』에서는 정실 도다 씨 소생(「어머니는 차녀와 같다」)으로 되어 있지만, 『도설 아마가사키의 역사』에서는 측실 소생으로 되어 있다 . 이와키 다쿠지는, 다카요시의 「정실의 자식이라고 알 수 있는 것은 여자 3명입니다」라고 하고, 「측실의 자식이 당주가 되는 것은 결코 드문 일은 아니었지만, 막부에 제출하는 공식 기록 등에서는 측실이 아닌 정실의 자식으로 기록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라고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