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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딘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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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막딘찌는 리 왕조 시기의 인물로, 1304년 과거에 장원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다. 1308년 원나라 사신으로 파견되어 재능을 인정받았으며, 특히 부채에 쓴 시인 《선자명》으로 유명하다. 막딘찌의 7세손 막당중은 막 왕조를 건국한 후 막딘찌를 건시흠명문황제로 추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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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딘찌
기본 정보
휘호묵매도
본관곡성 막씨
절부
시호문헌
출생1276년
사망1350년 (74세)
관력
주요 활동고려 후기의 문신, 학자, 외교관
소속고려
최종 관직찬성사
업적원나라에 대한 외교 활동, 성리학 수용
가계
아버지막우선
형제자매막윤충
배우자전주 이씨
자녀막사온, 막사의, 막사량, 막씨 부인

2. 생애

막딘찌는 찌린현(至靈縣) 롱동랑(隴洞廊, 현재의 하이즈엉성 남삭현 남떤사) 사람으로, 리 왕조 시기 막히엔띡의 5세손이다.[3] 용모는 추했지만 지혜가 많았다.

막당중은 막딘찌의 7세손이다. 1527년, 막당중이 막 왕조를 세운 뒤 그의 시호를 '''건시흠명문황제'''(Kiến Thủy Khâm Ninh Văn Hoàng Đế|건시흠명문황제vi)라고 하였다.

2. 1. 과거 급제와 관직 생활

흥롱 12년(1304년) 3월, 막딘찌는 전시(殿試)에 합격하여 장원이 되었고, 태학생(太學生) 중 1등으로 내서가(內書家)에 임명되었다.[3] 이후 좌복야(左僕射)가 되었다.

1308년, 원나라에서 원 무종이 즉위한 뒤 상서(尙書) 안로위래(安魯威來)를 쩐 왕조에 파견해 즉위 사실을 알렸다. 쩐 영종은 막딘찌를 원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막딘찌의 용모가 왜소하고 누추하였으므로 원나라인들은 그를 업신여겼다. 하루는 원나라의 재상이 그를 불러 부(府)로 들어오도록 하였는데, 막딘찌가 문장(蚊帳) 위에 황작(黃雀)이 대나무 가지 위에 수놓아진 것을 보고 앞으로 나아가 그것을 찢어버렸다. 사람들이 이를 기괴하게 여겨 그 이유를 물으니, 막딘찌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나는 옛 사람은 매작서(梅雀書)를 가졌다는 말은 들었지만 죽작서(竹雀書)를 가진 자에 대해 듣지 못했습니다. 지금 재상의 장(帳) 안에는 대나무와 황작이 수놓아져 있는데, 대나무는 군자를 뜻하고, 황작은 소인을 뜻합니다. 재상이 이것들을 장에 수놓는 것은 곧 소인으로써 군자에 더하는 것이니, 소인의 도가 성하고 군자의 도가 쇠할 것이 두렵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성조(聖朝)를 위하여 그것을 없애버렸습니다.[4]" 사람들은 모두 그의 재능에 감복하였다.

막딘찌가 무종을 알현할 때, 마침 외국에서 부채를 진상하자 무종은 막딘찌에게 부채에 글을 지으라고 명하였다. 막딘찌는 붓을 잡고 다음과 같이 적었다. '흐르는 금과 조약돌이여, 천지를 화로로 삼았네. 이 시대에 있음이여, 이윤과 주공이 큰 선비라네. 북풍의 서늘함이여, 비와 눈이 길을 질척거리게 하네. 이 시대에 있음이여, 백이와 숙제는 굶주리는 사내구나. 아! 등용하면 세상에 나아가고, 버려두면 숨는구나. 오직 나와 그대만이, 이러한 사내와 같도다.[5]' 원나라인들은 그를 매우 칭찬하였다.[6] 이것을 《선자명(扇子銘)》이라고 한다.

2. 2. 원나라 사신 파견

1308년, 원나라에서 원 무종이 즉위하자 상서(尙書) 안로위래(安魯威來)를 쩐 왕조에 파견해 즉위 사실을 알렸다. 쩐 영종은 막딘찌를 원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는데, 그는 뛰어난 재치와 지혜로 여러 일화를 남기며 원나라 사람들을 감탄시켰다.

2. 2. 1. 일화 1: 죽작서(竹雀書) 논쟁

1308년, 원나라에서 원 무종이 즉위한 뒤 상서(尙書) 안로위래(安魯威來)를 쩐 왕조에 파견해 즉위 사실을 알렸다. 쩐 영종은 막딘찌를 원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막딘찌의 용모가 왜소하고 누추하였으므로 원나라인들은 그를 업신여겼다. 하루는 원나라의 재상이 그를 불러 부(府)로 들어오도록 하였는데, 막딘찌가 문장(蚊帳) 위에 황작(黃雀)이 대나무 가지 위에 수놓아진 것을 보고 앞으로 나아가 그것을 찢어버렸다. 사람들이 이를 기괴하게 여겨 그 이유를 물으니, 막딘찌는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나는 옛 사람은 매작서(梅雀書)를 가졌다는 말은 들었지만 죽작서(竹雀書)를 가진 자에 대해 듣지 못했습니다. 지금 재상의 장(帳) 안에는 대나무와 황작이 수놓아져 있는데, 대나무는 군자를 뜻하고, 황작은 소인을 뜻합니다. 재상이 이것들을 장에 수놓는 것은 곧 소인으로써 군자에 더하는 것이니, 소인의 도가 성하고 군자의 도가 쇠할 것이 두렵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성조(聖朝)를 위하여 그것을 없애버렸습니다."[4] 사람들은 모두 그의 재능에 감복하였다.

2. 2. 2. 일화 2: 선자명(扇子銘)

1308년, 원나라에서 원 무종이 즉위한 뒤 상서(尙書) 안로위래(安魯威來)를 쩐 왕조에 파견해 즉위 사실을 알렸다. 쩐 영종은 막딘찌를 원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막딘찌의 용모가 왜소하고 누추하였으므로 원나라인들은 그를 업신여겼다. 막딘찌가 무종을 알현할 때, 마침 외국에서 부채를 진상하자 무종은 막딘찌에게 부채에 글을 지으라고 명하였다. 막딘찌는 붓을 잡고 다음과 같이 적었다. '흐르는 금과 조약돌이여, 천지를 화로로 삼았네. 이 시대에 있음이여, 이윤과 주공이 큰 선비라네. 북풍의 서늘함이여, 비와 눈이 길을 질척거리게 하네. 이 시대에 있음이여, 백이와 숙제는 굶주리는 사내구나. 아! 등용하면 세상에 나아가고, 버려두면 은둔하는구나. 오직 나와 그대만이, 이러한 사내와 같도다.[5]' 원나라인들은 그를 매우 칭찬하였다.[6] 이것을 《선자명(扇子銘)》이라고 한다.

3. 가족

참조

[1] 서적 Phan Châu Trinh and his political writings 2009
[2] 서적 A brief chronology of Vietnam's history 2000
[3] 서적 大越史記全書 東京大學東洋文化硏究所附屬東洋學文獻センター 1984-1986
[4] 문서
[5] 문서
[6] 서적 大越史記全書 東京大學東洋文化硏究所附屬東洋學文獻センター 1984-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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