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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돌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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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만돌 칸은 15세기 몽골의 칸으로, 1471년 오이라트부의 베그 아르슬란의 추대로 몽골 제국의 카안으로 즉위했다. 그는 동부 몽골을 통일하고 칸의 권력을 강화하려 했으나, 후계자 문제와 귀족 세력과의 갈등으로 인해 불안정한 통치를 겪었다. 만돌 칸은 아들이 없어 두 딸을 정략 결혼시켰으며, 1479년 사망 후 만두카이 세첸 카툰이 칭기즈 칸의 후손인 바투 몽케를 후계자로 추대했다.

2. 생애

몰론 칸 사후, 몽골 부족들은 지배권을 놓고 다투었고, 칸의 자리는 거의 10년 동안 비어 있었다. 만둘 칸은 1463년에서 1465년 사이 투르판의 군벌 베그-아르슬란의 딸 예케 카바르-투와 결혼했으나[2], 둘은 서로 싫어했으며 자녀를 낳지 못했다.[2] 1464년, 그는 16세였던 만두카이와 결혼했다.[2] 1475년에 만둘 칸이 새로운 칸으로 즉위했다. 만둘은 차하르 몽골의 수장이었던 초기 몽골 지도자이다.[3]

만두울 칸은 짧은 통치 기간 동안 칸의 권력을 강화하고 귀족들의 권력을 약화시켰으며, 양아들이자 증손자인 다얀 칸(바투 몽케)을 위한 길을 열었다. 만두울 칸에게는 직계 남자 후계자가 없었고, 자녀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1466년 모란 칸이 살해된 후 9년 동안 칸이 없는 공위 시대가 이어졌으며, 모리하이, 제왕 볼나이, 오로추 소사 같은 여러 부족장이 실권을 잡았다. 1471년 이들이 쇠퇴하고 만두울룬이 오르도스에 들어가 칸을 칭했으며, 오이라트의 베구 아르슬란이 타이시(태사)가 되었다.[12]

1473년, 만두울룬 등은 보르후(패라홀) 진왕(바얀 몽케)과 함께 위주를 침입했다. 의 왕월은 적이 노인과 자녀들을 홍염지에 모으고 있다는 것을 알고, 허녕 및 유격 주옥과 함께 병사를 이끌고 주야로 달려가 막영을 앞뒤에서 협격하여 대파했다. 위주에서도 만두울룬을 맞아 대파하여, 다시는 하타오에 침입하지 않았다.[7]

1475년,[13] 만두울룬은 38세에 즉위, 마르콜기스 우케크트 칸의 원수를 갚기 위해 출진하여 카치운 일족인 도란 타이시를 죽이고, 7 투메트의 국인을 정복했다. 만두울룬 칸과 보르후 진왕의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할류친의 홍호라가 없는 말을 퍼뜨렸으나, 이때는 홍호라의 말을 믿지 않고 처형했다. 그러나 나중에 용시에브의 이스마일 타이시[14]가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며 다시 둘 사이를 갈라놓기 시작했다. 만두울룬 칸은 이스마일 타이시에게 명하여 보르후 진왕을 공격했으나, 그를 놓치고 국인과 가축을 빼앗아 보르후 진왕의 아내 시킬 태후를 이스마일 타이시에게 주었다.[15]

만두울룬 칸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만두후이 세첸 하툰과의 사이에 보로크친과 에시게라는 두 딸이 있었다. 만두울룬은 보로크친 공주를 위구트의 베구 아르슬란 타이시에게, 에시게 공주를 몽골진 투멘의 체구트부 호사이 타브난에게 주었다. 1479년,[16] 만두울룬 칸은 42세로 사망했다.[17]

2. 1. 어린 시절

1438년 혹은 1426년 만두울은 하르구추크 두렌 테무르 태자의 손자이자, 아자이 태자와 오이라트부 출신 여성 사이에서 태어났다. 톡토아부카 타이순 칸, 아그바르진 오헤크트 칸의 이복 동생이다. 몽골 황금사에 의하면 만두울은 타이순 칸, 아그바르진 지농과 어머니가 다르다고 한다. 일설에는 타이순 칸의 사촌 동생이라는 설도 있다. 몽골원류에 의하면 1426년생이라 한다. 생일은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8][9]

만두울의 가계는 다소 불확실한데, 하르구추크 두렌 테무르 태자는 엘베크 니굴세크치 칸의 아들이나 동생, 혹은 토구스테무르 우스칼 칸의 아들이나 손자라는 설이 있다. 일찍 고아가 된 그의 아버지는 오이라트부 내에서 성장하였다.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그는 형제 타이순, 아크바르지 등과 함께 떠돌다가 오이라트로 가 토곤 타이시를 만났고, 그의 보호 아래 생활했다. 타이순 칸이 즉위하자 그는 타이순 칸의 좌익군을 맡았다. 1452년 만두울은 타이슨 칸, 아투바르지 지농 등과 함께 도린 구하라에 진을 치고 오이라트 4부를 향해 출진했다. 전쟁은 그의 형 아크바르지 지농이 이복 형 타이슨 칸을 배반했기 때문에 오이라트 4부가 승리하였다. 타이순 칸이 체브덴에게 아그바르진 칸이 오이라트에게 실각당할 때, 만두울은 조소타이 부중에 유목하러 나갔다 한다.[10]

1452년 톡토아부카 타이슨 칸이 패주하고 살해되자, 만두울은 칭기즈 칸의 형제 카치운 후손의 영지로 도주했다. 카치운의 후손으로 절름발이 타이지라는 별명이 있던 제남왕 토토간(脱脱罕)에게 받아들여졌다.

2. 2. 차하르부의 지도자

그는 차하르부의 수령이었고, 문헌상에 차하르부를 다스린 것이 문헌에 나타난 최초의 인물이었다.[18] 1464년에는 만두카이를 제2 카툰으로 맞이하였다.

타이슨 칸이 에센 칸에게 살해된 후, 1465년마르코르기스 오헤크트 칸, 1466년에 멀런 칸이 칭기즈 칸의 이복 동생이었던 벨구테이 가문의 자손 무리카이에게 살해되었다. 일설에는 멀런 칸과 무리카이의 대립 때 만두울이 무리카이의 편에 섰다는 설이 있다. 1466년 멀런 카안의 사후 이후 1471년 혹은 1475년까지 몽골은 카안이 없는 공석기가 이어졌다.

1471년 만두울은 조르골링 케르한 산(Зорголхайрхан)에서 몽골의 대칸임을 선언했다. 1473년 만두울은 바얀뭉케 볼후 지농과 명나라를 공격, 위주(韋州)를 공략했다가 명나라 장군 왕월(王越)에게 패배하고 퇴각하였다.

1475년 오이라트부 베그 아르슬란타이시와 오르도스로 공격, 카치운의 후손 투메드 7개부의 돌란 타이지를 격파했다. 1475년 베그 아르슬란은 그의 종손 바얀뭉케를 다시 대칸으로 추대하려 했으나 바얀뭉케는 이를 사양했다. 만두울은 그의 형제 아그바르진의 손자 바얀뭉케에게 지농의 지위를 주고 몽골 제국의 서부를 통치하게 했다. 그러나 만둘 칸은 반란자 혹은 바얀뭉케를 참소하는 자들의 말을 믿고 바얀문케를 공격하여 몽골의 정국은 불안정해졌다. 1479년에 몽골의 실권은 이스마일에게 넘어갔다고 여겨진다.

15세 때 (1452년), 만두울룬은 형 타이순 칸 (토크토아 부하), 악바르지 진왕 등과 함께 도리누 하라에 진을 친 4 오이라트를 향해 출진했다. 싸움은 차남인 악바르지 진왕이 맏형 타이순 칸을 배신했기 때문에 4 오이라트 측의 승리로 끝났다.[10]

1466년, 칸인 모란 칸이 살해당하고 9년 동안 칸이 없는 공위 시대가 이어졌으며, 그동안 모리하이 (모리해), 제왕 볼나이 (패로내), 오로추 소사 (알라출)와 같은 여러 부족장이 실권을 잡았다. 1471년, 모리하이, 볼나이, 오로추는 차츰 쇠퇴하고, 만두울룬이 하타오에 들어가 칸(가한)을 칭했으며, 오이라트의 베구 아르슬란 (백가사란)[11]이 타이시(태사)가 되었다.[12]

1473년, 만두울룬 등은 보르후(패라홀) 진왕(바얀 몽케)과 함께 위주에 침입했다. 의 왕월은 적이 노인과 자녀들을 홍염지에 모으고 있다는 것을 알고, 허녕 및 유격의 주옥과 함께, 경기를 이끌고 주야로 달려가 병사를 나누어 그 막영을 앞뒤에서 협격하여 대파했다. 또한, 위주에서도 만두울룬을 맞아 대파하여, 두 번 다시 하타오에 침입하지 않았다.[7]

1475년,[13] 만두울룬은 38세에 제위에 오르고, 마르콜기스 우케크트 칸의 원수를 갚기 위해 출진하여 하치운의 일족인 도란 타이시를 죽이고, 7 투메트의 국인을 정복했다. 어떤 때, 형제 사이가 된 만두울룬 칸과 보르후 진왕의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할류친의 홍호라라는 자가, 양자에게 없는 말들을 퍼뜨렸다. 이 때는 홍호라의 말을 믿지 않고 홍호라를 처형했지만, 나중에 용시에브의 이스마일 타이시[14]가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며, 다시 양자의 사이를 갈라놓기 시작했다. 마침내 이것을 믿은 만두울룬 칸은 이스마일 타이시에게 명하여 보르후 진왕을 공격했으나, 그를 놓치고 그의 국인과 가축을 빼앗아, 보르후 진왕의 아내였던 시킬 태후를 이스마일 타이시에게 주었다.[15]

2. 3. 대칸 즉위와 통치

1466년, 모란 칸이 살해된 후 9년 동안 칸이 없는 공위 시대가 이어졌다. 그동안 모리하이, 제왕 볼나이, 오로추 소사와 같은 여러 부족장이 실권을 잡았다.[12] 1471년, 모리하이, 볼나이, 오로추는 차츰 쇠퇴하고, 만두울룬이 오르도스에 들어가 칸(가한)을 칭했으며, 오이라트의 베구 아르슬란이 타이시(태사)가 되었다.[11][12]

1475년 만두울룬은 38세에 몽골 제국의 카안으로 즉위하였다.[13] 그해 만두울은 마르코르기스 오헤크트 칸의 원수를 갚기 위해 투메드부를 향해 출진, 카치운 일족의 도런 타이지를 죽이고 투메드 7부락을 정벌했다. 만둘 칸은 돌란 타이지의 부하 투르겐을 투메드의 새 군주로 임명하고, 돌란 타이지의 딸을 투르겐의 아들 호사이와 결혼시켰다. 이후 카치운 가문의 지배에서 벗어난 투메드부는 투르겐 가문을 새로운 지도자로 받아들였다. (후일 다얀 카안이 자신의 아들 울루스볼라드, 바르수볼라트 지농을 보낼 때까지)

만두울 칸은 칸의 권력을 강화하고 귀족의 권력을 줄이려 시도하였다. 그는 조카이자 후계자로 내정한 볼후 지농을 의심하여 그를 죽이려 했으나, 볼후 지농과의 전쟁 중 전사하였다. 일설에는 바얀뭉케 볼후 지농은 1470년에 이미 죽었다는 설도 있다.

1478년 바얀뭉케 볼후 지농과 교전했다가 패배하고, 부하들과 함께 도망쳤다. 같은 해 볼후 지농과의 전쟁 도중 전사했다. 일설에는 만돌 칸이 볼후 지농을 살해했다는 설도 있다.

만두울 칸은 오이라트부 출신 베이게르첸 타이시의 딸 정궁 카툰 네베크파림 카툰은 질병이 있어 그에게서는 자녀가 없었고, 만두카이 세첸 카툰에게서 2명의 딸 보르쿠친과 에시게를 두었다. 만돌 칸은 보로크친 공주를 위그트의 베그 알스란 타이시에게, 에시게 공주를 몽골진 투멘의 체그트부의 호사이 타부난에게 시집보냈다.

몰론 칸의 사후, 몽골 부족들이 서로 지배권을 놓고 다투면서 그의 자리는 거의 10년 동안 비어 있었다. 만둘 칸은 1463년에서 1465년 사이 투르판의 군벌 베그-아르슬란의 딸인 예케 카바르-투와 결혼했다.[2] 둘은 서로 싫어했으며, 그들의 결혼은 자녀를 낳지 못했다.[2] 1464년, 그는 또한 당시 16세였던 만두카이와 결혼했다.[2] 만둘 칸은 차하르 몽골의 수장이었던 가장 초기의 몽골 지도자이다.[3] 만두울 칸은 짧은 통치 기간 동안 칸의 권력을 성공적으로 강화하고 귀족들의 권력을 약화시켰으며, 후계자인 양아들이자 증손자인 다얀 칸(바투 몽케)을 위한 길을 열었다.

만두울에게는 남자 후계자가 없어서 만두하이 카툰은 칭기즈 칸의 후손 중 황실과 가까운, 살해당한 볼후 지농의 아들 바투 몽케를 찾아 차기 칸으로 추대하게 된다. 일설에는 1479년 사망설, 1467년 사망설도 있다.

2. 4. 가족 관계와 죽음

만돌 칸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만두후이 세첸 하툰과의 사이에 보로크친과 에시게라는 두 딸이 있었다. 만두울룬은 보로크친 공주를 위구트의 베구 아르슬란 타이시에게 주고, 에시게 공주를 몽골진 투멘의 체구트부의 호사이 타브난에게 주었다.[17] 오이라트부 출신 베이게르첸 타이시의 딸 정궁 카툰 네베크파림 카툰은 질병이 있어 자녀가 없었다.

만두울 칸은 칸의 권력을 강화하고 귀족의 권력을 줄이려 시도하였다. 그는 조카이자 후계자로 내정한 볼후 지농을 의심하여 그를 죽이려 했으나, 1478년 볼후 지농과의 전쟁 도중 전사했다.[3] 일설에는 만돌 칸이 볼후 지농을 살해했다는 설도 있다. 다른 설로는 1479년 사망설, 1467년 사망설도 있다. 만두울에게는 남자 후계자가 없어서 만두하이 카툰은 칭기즈 칸의 후손 중 황실과 가까운, 살해당한 볼후 지농의 아들 바투 몽케를 찾아 차기 칸으로 추대하게 된다.

2. 5. 사후

사망 일자는 알려진 것이 없으며, 몽골어식 존호 여부 역시 알려진 것이 없다. 몽골 황금사에 의하면 그의 시신은 마고 운두루라는 곳에 묻혔다고 한다.

3. 대중 문화

스타 Z. 데이비스의 역사 소설 ''프랙쳐드 엠파이어 사가'' 4부작 시리즈(''황룡의 딸'', ''흑기 군주'', ''푸른 늑대의 어머니'', ''옥계의 여제'') 1권과 2권에서 만돌 칸의 말년이 허구화되었다.[4]

2014년에는 독일 작가 탄자 킨켈의 역사 소설 "만두차이"에도 등장한다.

참조

[1] 웹사이트 Мандуул хаан https://mongoltoli.m[...]
[2] 서적 The secret history of the Mongol queens : how the daughters of Genghis Khan rescued his empire Crown Publishers 2010
[3] 간행물 Nationalism and hybridity in Mongolia
[4] 서적 Fractured Empire Saga 2021-2022
[5] 서적 The Secret History of the Mongol Queens: How the Daughters of Genghis Khan Rescued His Empire 2010
[6] 서적 2004
[7] 서적 1973
[8] 문서 蒙古源流 1426
[9] 서적 2004
[10] 서적 2004
[11] 문서 蒙古源流
[12] 서적 1973
[13] 문서 蒙古源流 1463
[14] 문서 蒙古源流
[15] 서적 2004
[16] 문서 蒙古源流 1467
[17] 서적 2004
[18] 간행물 Nationalism and hybridity in Mongo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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