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하이
1. 개요
모리하이는 명나라 사서에 다양한 이름으로 기록된 인물로, 15세기 몽골 고원에서 활동했다. 그는 1454년 오이라트부의 에센 타이시 칸 암살에 가담하고, 보라이와 함께 몽골 고원의 권력을 장악했다. 마르코르기스 칸을 옹립했으나 그를 암살하고 멀런 칸을 옹립한 후 실권을 장악했으며, 명나라의 대동을 침입했다. 멀런 칸 사후 칸을 세우지 않고 실권을 유지했으며, 명나라의 토벌 시도에도 불구하고 통공을 시도했다. 결국 카르틴부의 우네바라트에게 패배하여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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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 -
에센 타이시
에센 타이시는 15세기 오이라트의 지도자로, 토목의 변을 일으켜 명나라 황제를 포로로 잡았으나 칸 즉위 후 내부 반란으로 피살되어 오이라트부 분열을 초래했다. -
태사 -
무칼리
무칼리는 12세기 말부터 13세기 초 몽골 제국에서 활약한 장군으로, 자무카 휘하에서 칭기즈 칸에게 귀순하여 그의 사준 중 한 명으로 꼽히며 금나라 공략에 큰 공을 세워 '국왕' 칭호를 받았고 그의 후손들은 원나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
1468년 사망 -
세조 (조선)
세조는 조선의 제7대 왕으로서,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올라 왕권 강화를 위해 노력했으며, 육조직계제를 실시하고 경국대전 편찬을 시작하는 등 강력한 중앙집권 정책을 추진했다. -
1468년 사망 -
시지스몬도 판돌포 말라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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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지긴 -
알탄 칸
알탄 칸은 16세기 몽골의 지배자로서 투메트부를 다스리고 명나라와 교역을 시도하다 베이징을 공격하고 화의를 맺었으며, 티베트 불교를 몽골에 부흥시키고 후허하오터를 건설하는 등 몽골의 종교적, 사회적 통합에 기여했다. -
보르지긴 -
귀위크 칸
귀위크 칸은 몽골 제국의 3대 대칸으로, 쿠릴타이를 통해 즉위하여 유럽 원정에 참여하고 교황에게 서신을 보냈지만, 과음으로 급사하여 몽골 제국의 유럽 진출을 늦추었다.
2.1. 초기 활동
명나라 사서에는 난나하이(卯那孩), 난리하이(卯里孩), 모리하이왕(毛里孩王), 목리왕(木里王), 마리카이 왕(摩裏海王), 무차라이 왕(毛禮海王), 황령왕(黃苓王) 등으로 나타난다. 벨구테이의 후손에게 증여되었던 광령왕(廣寧王)의 오번역이며, 이 작위는 원나라 멸망 이후에도 유지되었다.
1454년 오이라트부 출신 에센 타이시 칸을 살해하는데 가담하고, 카라친부의 보라이와 함께 몽골고원에 대한 권력을 획득했다. 그는 보라이와 함께 마르코르기스 칸을 칸으로 추대했다. 1465년 모리하이와 보라이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갈등하여 싸우던 중 마르코르기스 칸을 암살하고, 그의 형제 혹은 이복 형제인 멀런 칸을 옹립했다. 부하들이 그를 칸으로 추대했지만 그는 거절했고, 멀런 칸을 추대했다. 그는 바로 반대파인 나라출(斡羅出)을 추방하고 몽골 내의 실권을 단독으로 장악하고, 명나라의 대동에 침입했다.
2.2. 권력 장악과 몰락
1466년 멀런 칸이 살해된 후, 모리하이는 새로운 칸을 세우지 않고 몽골의 통치자로서 실권을 장악했다. 그는 명나라의 대동에 침입하는 등 군사적 활동을 전개했다. 1467년 명나라 황제 성화제는 무령후 주영 등에게 모리하이 토벌을 명했으나, 모리하이가 통공을 원했기 때문에 원정은 멈추었다. 이듬해 1468년 명나라 급사중 정만리(程万里)는 모리하이 토벌을 상주했지만, 그의 건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모리하이는 조치 카사르의 후예인 카르틴부의 우네바라트에게 패해 몰락했고, 쿠니 자브한의 숙영지에서 6명의 아들과 함께 살해당했다.
2.3. 명나라와의 관계
모리하이는 명나라 사서에 난나하이(卯那孩), 난리하이(卯里孩), 모리하이왕(毛里孩王), 목리왕(木里王), 마리카이 왕(摩裏海王), 무차라이 왕(毛禮海王), 황령왕(黃苓王)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는 벨구테이의 후손에게 주어졌던 광령왕(廣寧王)을 잘못 번역한 것이다. 광령왕 작위는 원나라 멸망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1466년 멀런 칸을 살해하고 만돌 칸을 옹립한 후, 모리하이는 몽골 내 실권을 장악하고 명나라의 대동을 공격했다.
1467년 명나라 성화제는 주영 등에게 모리하이를 토벌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모리하이가 명나라와의 무역(통공)을 원했기 때문에 원정은 중단되었다. 이듬해 1468년 명나라 급사중 정만리(程万里)가 모리하이 토벌을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