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수 (후한)
1. 개요
만수는 후한 시대의 인물로, 경시제 때 신도현령을 지냈다. 광무제를 지지하여 편장군과 조의후에 봉해졌으며, 왕랑 격파에 기여하여 우장군으로 임명되어 하북 평정에 공을 세웠다. 건무 원년에는 오한과 함께 낙양을 포위했고, 건무 2년에는 괴리후에 봉해졌으나, 남양 평정 중 병으로 사망했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원군으로 조선에 파병된 만세덕이 만수의 자손이라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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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사망 -
유양 (진정왕)
전한 시대 진정왕였다가 신나라 건국 후 작위를 잃고 후한 건국 후 복위된 유양은 왕랑에게 협력 후 광무제에게 귀순했으나, 말년에 모반 혐의로 주살되었지만 광무제가 그의 아들을 다시 진정왕으로 복위시켰다. -
후한의 열후 -
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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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의 열후 -
조식 (조위)
조식은 삼국시대 위나라의 시인이자 정치가로, 조조의 아들이며 조비와의 후계 다툼에서 밀려 정치적으로 불우했지만 뛰어난 문학적 재능으로 건안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경시제 때 신도령이었는데, 신도태수 임광·신도도위 이충과 함께 성을 지키고 광무제를 맞이하여 편장군이 되고 조의후(造義侯)에 봉해졌다. 한단을 공략하여 우장군으로 승진하였고, 하북 평정에 종군하였다.
경시 2년(24년), 유수가 계현에서 도망쳐 오자, 신도태수 임광, 도위 이충과 함께 유수를 맞이했다. 편장군에 임명되고 조의후에 봉해졌다. 왕랑의 본거지 감단을 격파하자 우장군에 임명되었고, 하북 평정에 공을 세웠다.
건무 원년(25년), 대사마 오한이 이끄는 11장 중 한 명으로서, 경시제 휘하의 주위가 지키는 낙양을 포위했다.
건무 2년(26년), 괴리후(槐里侯)로 이봉되었다. 양화장군(揚化將軍) 견담과 함께 남양을 치던 중 병들어, 완에서 주변으로부터 고립되어 진영에서 죽었다. 아들 만보가 작위를 이었다.
임진왜란 때 명의 원군으로 조선에 파병되었으며, 조선의 씨족인 강화 만씨의 시조가 된 만세덕은 만수의 자손이라고 전해진다.
2.1. 초기 활동
경시제 때 신도령이었는데, 신도태수 임광·신도도위 이충과 함께 성을 지키고 광무제를 맞이하여 편장군이 되고 조의후(造義侯)에 봉해졌다. 한단을 공략하여 우장군으로 승진하였고, 하북 평정에 종군하였다.
건무 원년(25년), 대사마오한이 이끄는 11장 중 한 명으로서, 경시제 휘하의 주위가 지키는 낙양을 포위했다.
2.2. 하북 평정과 활약
경시제 때 신도령이었는데, 신도태수 임광·신도도위 이충과 함께 성을 지키고 광무제를 맞이하여 편장군이 되고 조의후(造義侯)에 봉해졌다. 한단을 공략하여 우장군으로 승진하였고, 하북 평정에 종군하였다.
경시 2년(24년), 유수가 계현에서 도망쳐 오자, 신도태수 임광, 도위 이충과 함께 유수를 맞이했다. 편장군에 임명되고 조의후에 봉해졌다. 왕랑의 본거지 감단을 격파하자 우장군에 임명되었고, 하북 평정에 공을 세웠다.
건무 원년(25년), 대사마 오한이 이끄는 11장 중 한 명으로서, 경시제 휘하의 주위가 지키는 낙양을 포위했다.
건무 2년(26년), 괴리후(槐里侯)로 이봉되었다. 양화장군(揚化將軍) 견담과 함께 남양을 치던 중 병들어, 진영에서 죽었다.
2.3. 남양 평정과 죽음
경시제 때 신도 령(信都令)이었는데, 신도태수 임광·신도도위 이충과 함께 성을 지키고 광무제를 맞이하여 편장군이 되고 조의후(造義侯)에 봉해졌다. 한단을 공략하여 우장군으로 승진하였고, 하북 평정에 종군하였다.
건무 2년(26년), 괴리후(槐里侯)로 이봉되었다. 양화장군(揚化將軍) 견담과 함께 남양을 치던 중 병들어, 진영에서 죽었다. 아들 만보가 작위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