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테스타 4세 발리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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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말라테스타 4세 발리오니는 페루자의 통치자 잔 파올로 발리오니와 이폴리타 콘티의 아들로, 15세에 베토나 백작이 되었다. 이탈리아 전쟁 동안 베네치아 공화국 측에서 복무하며 로디와 크레모나를 점령했으며, 1527년에는 형제와 숙부를 제거하고 페루자의 종주권을 획득했다. 코냐크 동맹 전쟁 중 피렌체 공화국 방어를 위해 페루자를 필리베르 드 샬롱에게 맡겼으나, 교황 클레멘스 7세와 황제군 측의 비밀 협정으로 배신 행위를 했다. 1530년 가비아나 전투에서 그의 배신이 드러났고, 페루치에 의해 "이 배신자 말라테스타!"라고 비난받았다. 발리오니는 페루자로 돌아왔으나 이듬해 베토나에서 사망했다.

말라테스타 4세 발리오니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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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migianino 015
직함페루자의 영주
이름말라테스타 4세 발리오니
통치 기간
시작1527년
종료1531년
이전젠틸레 1세 발리오니
개인 정보
출생1491년, 페루자, 교황령
사망1531년 12월 24일, 베토나, 교황령
가문발리오니 가문
작위
작위스펠로와 베토나 백작
임기 시작1527년
종료1531년
이전잠파올로 발리오니
이후로돌포 발리오니
군사 정보
전투가비나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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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말라테스타 4세 발리오니는 잔 파올로 발리오니와 이폴리타 콘티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사업에 동행했다. 15세에 베토나 백작이 되었고, 이탈리아 전쟁 기간에는 베네치아 공화국을 위해 로디와 크레모나를 점령했다. 1527년 형제와 숙부를 제거하고 페루자의 종주권을 얻었다.

코냐크 동맹 전쟁 동안 말라테스타는 페루자필리베르 드 샬롱에게 맡기고 피렌체 공화국 방어를 맡았으나, 교황 클레멘스 7세와 황제군과의 비밀 협정에 따라 피렌체에서의 콘도티에로(용병) 계약을 끝내면 페루자를 돌려받기로 되어 있었다. 그의 배신은 1530년 8월 3일 가비아나 전투에서 프란체스코 페루치가 이끄는 피렌체 군대가 궤멸되면서 드러났고, "이 배신자 말라테스타!"라는 페루치의 외침은 유명해졌다. 발리오니는 9월 20일 페루자로 돌아왔고, 다음 해 베토나에서 사망했다.

2.1. 초기 생애

말라테스타 4세 발리오니는 페루자의 통치자 잔 파올로 발리오니와 이폴리타 콘티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아버지의 사업에 동행했으며, 15세에 베토나의 백작이 되었다. 이후 이탈리아 전쟁 기간에 베네치아 공화국 측에서 복무하며, 로디와 크레모나를 점령했다. 1527년에 그는 형제와 숙부를 제거한 이후에 페루자의 종주권을 얻을 수 있었다.

2.2. 군사 경력

페루자의 통치자 잔 파올로 발리오니와 이폴리타 콘티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나이부터 아버지의 사업에 동행했으며, 15세에는 베토나 백작이었다. 이후 이탈리아 전쟁 기간에 그는 베네치아 공화국 측에서 복무하며, 로디와 크레모나를 점령했다. 1527년에 그는 형제와 숙부를 제거한 이후에 페루자의 종주권을 얻을 수 있었다.

코냐크 동맹 전쟁 동안, 말라테스타는 피렌체 공화국의 방어를 맡기 위해 페루자를 이탈리아 주둔 황제군 총사령관이던 필리베르 드 샬롱에게 맡겼다. 교황 클레멘스 7세와 황제군 측의 비밀 협정에서 피렌체의 콘도티에로 행위를 끝내면 페루자를 받게 될 것이라 했다.

그의 반역 행위는 가비아나 전투에서 프란체스코 페루치 휘하의 피렌체 군대가 황제군에게 궤멸당한 1530년 8월 3일에 밝혀졌다. "이 배신자 말라테스타!"라는 페루치의 외침은 유명하게 되었다. 발리오니는 이렇게 9월 20일 페루자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다음 해 베토나에서 사망했다.

2.3. 코냐크 동맹 전쟁과 배신

코냐크 동맹 전쟁 동안, 말라테스타는 페루자를 이탈리아 주둔 제국군 사령관인 필리베르 드 샬롱에게 맡기고 피렌체 공화국 방어를 맡았다. 교황 클레멘스 7세와 황제군 측의 비밀 협정에 따라 피렌체에서 콘도티에로(용병) 행위를 끝내면 페루자를 받기로 되어 있었다.

그의 배신은 1530년 8월 3일 가비아나 전투에서 밝혀졌는데, 이 전투에서 프란체스코 페루치 휘하의 피렌체 군대는 제국군에 의해 궤멸되었다. "이 배신자 말라테스타!"라는 페루치의 외침은 유명하게 되었다. 발리오니는 9월 20일에 페루자로 돌아올 수 있었다.

2.4. 페루자 귀환과 죽음

코냐크 동맹 전쟁 동안, 말라테스타는 페루자를 이탈리아 주둔 제국군 사령관인 필리베르 드 샬롱에게 맡기고 피렌체 공화국의 방어를 맡았다. 교황 클레멘스 7세와 황제군 측의 비밀 협정에서 피렌체의 콘도티에로 행위를 끝내면 페루자를 받게 될 것이라 했다.

그의 배신 행위는 프란체스코 페루치가 황제군에게 궤멸당한 가비아나 전투가 일어난 1530년 8월 3일에 밝혀졌다. "이 배신자 말라테스타!"라는 페루치의 외침은 유명하게 되었다. 발리오니는 이렇게 9월 20일 페루자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다음 해 베토나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