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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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면복은 왕과 황제가 의례 때 입던 예복으로, 구장복과 십이장복으로 구분된다. 구장복은 국왕이, 십이장복은 황제가 착용하며, 한국 국왕은 십이장을 사용할 수 없었다. 고려 시대에 구장복을 착용하기 시작하여 조선 시대에 명나라로부터 사여받아 역대 왕들이 착용했다. 대한제국 고종은 황제 즉위 후 12장 문양의 면복을 사용했다. 종묘 제례와 사직 제례에서 면복을 착용하며, 황제를 대신하여 황세손이 12장 문양의 면복을 착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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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복 | |
---|---|
개요 | |
![]() | |
종류 | 예복 |
착용 시기 | 동지 정월 초하루 조칙 발표 왕세자 책봉 |
구성 | 면류관 곤복 중단 패옥 규 혁대 말 석 |
세부 정보 | |
면류관 | 재료: 칠한 오사모 특징: 겉면에 금박 선을 두르고, 서각을 연결하여 제작 |
면류관 - 류 | 왕: 9류 왕세자: 8류 |
곤복 | 색상: 검은색 특징: 곤룡 무늬 자수 |
곤복 - 수 | 왕: 곤룡 9장 왕세자: 곤룡 8장 |
중단 | 특징: 깃, 소매, 옷단에 보 부착 |
패옥 | 특징: 흰색 옥으로 제작, 술 장식 |
규 | 재료: 옥 색상: 흰색 |
혁대 | 재료: 소가죽 색상: 붉은색 장식: 옥 장식 |
말 | 색상: 붉은색 재료: 사슴 가죽 |
석 | 종류: 제례용 신발 색상: 붉은색 바탕에 검은색 테두리 장식: 구름 문양 자수 |
2. 면복의 종류
면복은 크게 구장복과 십이장복으로 나뉜다.[1] 구장복(구장 면복)[4]은 국왕이, 십이장복(십이장 면복)은 황제가 착용한다.[5] 한국 국왕은 십이장을 사용할 수 없었으며, 오직 황제(일반적으로 중국 황제)만이 십이장을 착용할 수 있었다.[4]
명나라에서는 황제는 십이류면 십이장복, 황태자와 친왕은 구류면 구장복, 세자는 팔류면 칠장복, 군왕은 칠류면 오장복을 입었다. 한국 국왕은 1043년 요나라 황제가 한국 국왕에게 구장 의복(九章衣|구장복중국어)을 하사한 이후인 1065년부터 아홉 개의 문양을 사용했다.[6]
면복은 의례용 신발인 석(seok)과 함께 착용하며, 석 또한 중국에서 기원하여 한국 고유의 양식으로 발전했다.[2]
2. 1. 구장복
구장복(九章服)은 왕이 면복을 입을 때 가장 겉에 입는 곤의(袞衣)이다. 왕이 종묘사직에 제사를 지내거나 왕비를 맞이할 때, 조회, 정조, 동지, 수책 등의 의식에서 면류관을 쓰고 곤복을 함께 착용했다.구장복은 크게 면류관과 곤복으로 나뉘며, 신분의 차이는 주로 면류관의 면류수와 곤복에 표현된 장문의 수로 구분되었다. 명나라에서는 황제, 황태자, 친왕, 세자, 군왕만이 구장복을 입을 수 있었는데, 황제는 십이류면 십이장복, 황태자와 친왕은 구류면 구장복, 세자는 팔류면 칠장복, 군왕은 칠류면 오장복을 입었다. 한국에서는 문헌상 고려시대부터 구장복이 들어온 것으로 보이나, 삼국시대에 면류관의 존재가 확인되므로 고려 이전에도 착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명나라로부터 사여받은 이후 역대 왕들이 착용했다.
구장복의 곤복은 아청사(鴉靑紗)로 만든 홑옷이며, 앞단, 밑단, 소매단에 흑사(黑紗)로 선을 둘렀다. 중단(中單)은 청색 사(紗)로 만든 홑옷으로 길이가 겉옷보다 1단 정도 길며, 옷깃에는 불문(黼文) 11개가 금박되어 있다. 곤복의 양 어깨에는 금색 비늘과 홍색 테두리로 장식된 용문(龍文)이 있고, 등 위에는 비취색 바탕에 금색 외곽선을 가진 산문(山文)이 있다. 양쪽 소매 뒤쪽에는 홍색 화문(火文) 3개, 청, 홍, 남색으로 채색된 화충문(華蟲文) 3개, 청색 종이문(宗彝文) 3개가 있다. 또한 흰 동정과 긴 옷고름이 있어 조선 말기의 것으로 보인다. 황제 즉위 이전의 고종 혹은 황태자가 착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9장복은 유일하게 남은 진품으로, 기록과 사진으로만 볼 수 있었던 면복의 모습을 실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며 보존 가치가 높다.
면복은 '구장복'과 '십이장복'으로 나뉜다.[1] 구장복(구장 면복)[4]은 국왕이, 십이장복(십이장 면복)은 황제가 착용한다.[5] 한국 국왕은 십이장을 사용할 수 없었으며, 오직 황제(일반적으로 중국 황제)만이 십이장을 착용할 수 있었다.[4] 한국 국왕은 요나라 황제가 1043년에 한국 국왕에게 구장 의복(九章衣|구장복중국어)을 하사한 이후인 1065년부터 아홉 개의 문양을 사용했다.[6]
면복은 의례용 신발인 석(seok)과 함께 착용하며, 석 또한 중국에서 기원하여 한국 고유의 양식으로 발전했다.[2]
2. 2. 십이장복
면복은 ''구장복''과 ''십이장복''으로 나뉜다.[1] 구장복(''구장 면복'')[4]은 국왕이, 십이장복(십이장 면복)은 황제가 착용한다.[5] 한국 국왕은 십이장을 사용할 수 없으며, 오직 황제(일반적으로 중국 황제)만이 십이장을 착용할 수 있었다.[4] 한국 국왕은 1043년 요나라 황제가 한국 국왕에게 구장 의복(九章衣|구장복중국어)을 하사한 이후인 1065년부터 아홉 개의 문양을 사용했다.[6]3. 역사
면복은 구장복(구장 면복)과 십이장복(십이장 면복)으로 나뉜다.[1][4] 구장복은 국왕이, 십이장복은 황제가 착용한다.[5] 한국 국왕은 십이장을 사용할 수 없었으며, 오직 황제(일반적으로 중국 황제)만이 십이장을 착용할 수 있었다.[4] 한국 국왕은 요나라 황제가 1043년에 한국 국왕에게 구장 의복(九章衣|구장복중국어)을 하사한 이후인 1065년부터 아홉 개의 문양을 사용했다.[6]
면복은 의례용 신발인 석(seok)과 함께 착용하며, 석 또한 중국에서 기원하여 한국 고유의 양식으로 발전했다.[2]
3. 1. 고려 시대
구장복(九章服)은 왕이 면복을 입을 때 가장 겉에 입는 곤의(袞衣)이다. 왕이 종묘사직에 제사를 지내거나 왕비를 맞이할 때, 조회, 정조, 동지, 수책 등의 의식에서 머리에 면류관을 쓰고 곤복을 함께 착용했다.[1]구장복은 크게 면류관과 곤복으로 나뉘며, 신분에 따라 면류관의 면류수와 곤복에 표현된 장문의 수가 달랐다. 명나라에서는 황제, 황태자, 친왕, 세자, 군왕만이 입을 수 있었는데, 황제는 십이류면 십이장복, 황태자와 친왕은 구류면 구장복, 세자는 팔류면 칠장복, 군왕은 칠류면 오장복을 입었다. 한국에는 문헌상 고려시대에 들어온 것으로 보이나, 삼국시대에 면류관이 확인되므로 고려 이전에도 착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명나라로부터 사여받은 후 역대 왕들이 착용했다.[1]
구장복의 곤복은 아청색 비단으로 만든 홑옷이며, 앞단, 밑단, 소매단에 검은색 비단으로 선을 둘렀다. 중단(中單)은 청색 비단으로 만든 홑옷으로 길이가 겉옷보다 1단 정도 길다. 중단 옷깃에는 불문(黻文) 11개가 금박되어 있다. 곤복에는 용문(龍文)이 양 어깨에 있고 금색 비늘로 장식되어 있으며 붉은색으로 가장자리를 둘렀다. 등 위에는 산문(山文)이 비취색이고 금색으로 외곽선을 그렸다. 양쪽 소매 뒤쪽에는 붉은색 화문(火文) 3개, 청색, 붉은색, 남색으로 채색한 화충문(華蟲文) 3개, 청색 종이문(宗彝文) 3개가 있다. 또한 흰 동정과 긴 옷고름이 있어 조선 말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황제 즉위 이전의 고종이나 황태자가 착용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9장복은 유일하게 남은 진품으로, 기록과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면복의 모습을 실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며 보존 가치가 높다.[1]
3. 2. 조선 시대
조선 초기 태종은 중국 명나라와 긍정적인 관계를 발전시키려 노력했다. 명나라에 대한 이러한 긍정적인 정치적 방향성은 조선의 공식적인 인정을 이끌었고, 태종을 조선 국왕으로 즉위시키고, 면복을 하사받는 결과로 이어졌다.[7]고종은 1897년 대한제국 황제가 되었을 때 고대 중국의 복제 시스템을 따라 즉위 복장(즉, ''면복'', 冕服)에 12장 문양을 사용했다.[8][5]
구장복(九章服)은 왕이 면복을 입을 때 가장 겉에 입는 곤의(袞衣)이다. 왕은 종묘사직에 제사 지낼 때, 왕비를 맞이할 때, 조회, 정조, 동지, 수책 등의 의식에서 머리에 면류관을 쓰고 곤복을 갖춰 입었다. 구장복은 크게 면류관과 곤복으로 나뉘며, 신분에 따라 면류관의 면류수와 곤복에 표현된 장문의 수가 달랐다. 명나라에서는 황제, 황태자, 친왕, 세자, 군왕만이 입을 수 있었으며, 황제는 십이류면 십이장복, 황태자와 친왕은 구류면 구장복, 세자는 팔류면 칠장복, 군왕은 칠류면 오장복을 입었다. 한국에서는 고려시대부터 면복을 입었으나, 삼국시대에도 면류관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착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시대에는 명나라로부터 면복을 하사받아 역대 왕들이 착용했다.
구장복의 곤복은 아청사(鴉靑紗)로 만든 홑옷이며, 앞단, 밑단, 소매단에 흑사(黑紗)로 선을 둘렀다. 중단(中單)은 청색사로 만든 홑옷으로 길이가 겉옷보다 1단 정도 길며, 옷깃에는 불문(黻文) 11개가 금박되어 있다. 곤복에는 양 어깨에 금색 비늘과 홍색 테두리를 두른 용문(龍文)이 있고, 등에는 비취색 바탕에 금색 외곽선을 그린 산문(山文)이 있다. 양쪽 소매 뒤쪽에는 홍색 화문(火文) 3개, 청, 홍, 남색으로 채색한 화충문(華蟲文) 3개, 청색 종이문(宗彝文) 3개가 있다. 흰 동정과 긴 옷고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말기의 것으로 추정되며, 황제 즉위 이전의 고종이나 황태자가 착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9장복은 유일하게 남은 진품으로, 기록과 사진으로만 볼 수 있었던 면복의 모습을 실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며 보존 가치가 높다.
면복을 착용하는 행사 중 종묘에서의 종묘 제례와 사직단에서의 사직 제례는 21세기에도 이어지고 있으며, 황제를 대신하여 황세손이 12장 문양의 면복을 착용하고 주재한다.
3. 3. 대한제국 시대
고종은 1897년 대한제국 황제가 되었을 때 고대 중국의 복제 시스템을 따라 즉위 복장(冕服, 면복)에 12장 문양을 사용했다.[8][5]종묘에서 지내는 종묘 제례와 사직단에서 지내는 사직 제례는 21세기에도 이어지고 있으며, 황제를 대신하여 황세손이 12장 문양의 면복을 착용하고 주재한다.
4. 구장복의 구성
구장복은 면류관과 곤복으로 구성된다. 신분의 차이는 주로 면류관의 면류수와 곤복에 표현된 장문의 수로 규정되었다. 명나라에서는 황제, 황태자, 친왕, 세자, 군왕만이 구장복을 입을 수 있었으며, 황제는 십이류면 십이장복, 황태자와 친왕은 구류면 구장복, 세자는 팔류면 칠장복, 군왕은 칠류면 오장복을 입었다.
한국에 구장복이 들어온 것은 문헌상으로는 고려시대이지만, 삼국시대에 면류관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도 입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명나라로부터 구장복을 하사받아 역대 왕들이 착용했다.
구장복의 곤복은 아청색 비단으로 만든 홑옷이며, 앞단, 밑단, 소매단에 검은색 비단으로 선을 둘렀다. 속옷인 중단은 청색 비단으로 만든 홑옷으로 겉옷보다 약간 길며, 옷깃에는 금박으로 불문 11개가 장식되어 있다.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진품 구장복은 고종이 황제 즉위 이전에 착용했거나 황태자가 착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구장복은 기록과 사진으로만 전해지던 면복의 실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면복은 의례용 신발인 석(seok)과 함께 착용하며, 석 또한 중국에서 기원하여 한국 고유의 양식으로 발전했다.[2]
4. 1. 곤복
곤복은 왕이 면복을 입을 때 겉에 입는 옷으로, 종묘사직에 제사를 지내거나 왕비를 맞이할 때, 조회, 정조, 동지, 수책 등의 의식에서 착용했다. 곤복은 아청색 비단으로 만든 홑옷이며, 앞단, 밑단, 소매단에는 검은색 비단으로 선을 둘렀다. 속옷에 해당하는 중단은 청색 비단으로 만든 홑옷으로, 겉옷보다 약간 길며 옷깃에는 금박으로 불문 11개가 장식되어 있다.곤복은 면류관과 함께 구장복을 구성하며, 신분에 따라 면류관의 면류수와 곤복에 표현된 장문의 수가 달랐다. 명나라에서는 황제, 황태자, 친왕, 세자, 군왕만이 곤복을 입을 수 있었으며, 각각 십이류면 십이장복, 구류면 구장복, 팔류면 칠장복, 칠류면 오장복을 착용했다. 한국에서는 고려시대 문헌에서 곤복이 확인되지만, 삼국시대에도 면류관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착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명나라로부터 곤복을 하사받아 역대 왕들이 착용했다.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진품 곤복은 고종이 황제 즉위 이전에 착용했거나 황태자가 착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곤복은 기록과 사진으로만 전해지던 면복의 실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4. 1. 1. 문양
구장복(九章服)의 곤복에는 여러 문양이 표현되어 있다. 양 어깨에는 금색 비늘과 홍색 테두리를 가진 용문(龍文)이 있다. 등에는 금색 외곽선을 가진 비취색 산문(山文)이 있다. 양쪽 소매 뒤쪽에는 홍색 화문(火文) 3개, 청ㆍ홍ㆍ남색으로 채색된 화충문(華蟲文) 3개, 청색 종이문(宗彛文) 3개가 있다.[1]면복은 크게 구장복과 십이장복으로 나뉜다.[1] 구장복은 국왕이, 십이장복은 황제가 착용한다.[5] 한국 국왕은 십이장을 사용할 수 없었으며, 오직 황제만이 십이장을 착용할 수 있었다.[4] 한국 국왕은 1065년부터 아홉 개의 문양을 사용했는데, 이는 1043년에 요나라 황제가 한국 국왕에게 구장 의복(九章衣|구장복중국어)을 하사한 이후이다.[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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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The king's Myeonbok
http://www.jongmyo.n[...]
2010-05-18
[2]
논문
A Study on the Form of Seok(舃) in the Period of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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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웹사이트
Myeonbok Gangs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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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서적
The King at the Palace Joseon Royal Court Culture at the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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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
[5]
웹사이트
Emperor Gojong's coronation reenacted to mark 120th anniversary of Daehan Empire : Korea.net : The official website of the Republic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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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Efficacious underworld : the evolution of Ten Kings paintings in medieval China and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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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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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A Study on the Settlement of Official Uniform under the Reign of King Taejong in the Early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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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8]
서적
Fashion, identity, and power in modern Asia
https://www.worldcat[...]
2018
[9]
뉴스
조선왕의 면류관 구슬끈은 9개… 대한제국 ‘황제’는 12개로 격상
https://news.naver.c[...]
문화일보
2012-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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