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구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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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벨구테이는 칭기즈 칸의 동생으로, 예수게이와 호엘룬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벡테르, 하사르, 하치운, 테무게, 칭기즈 칸과 형제 관계이며, 몽골 제국 건국에 기여했다. 벨구테이는 칭기즈 칸을 따라 메르키트족과 나이만족 토벌에 참여했고, 1206년 칭기즈 칸의 즉위 후에는 자르구치에 임명되어 종족을 감독했다. 오논 강과 케를렌 강 유역을 유목지로 삼아 3,000명의 부민을 영유했으며, 요동에 울루스를 분봉받아 광녕왕을 칭했다. 벨구테이는 다른 형제들보다 장수하여 몽케의 즉위식에도 참석했으며, 그의 후손들은 북원 시대에 이르러 아바가부와 아바가나르부라는 부족을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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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구테이 | |
---|---|
인물 정보 | |
몽골어 (로마자 표기) | Belgüdej |
한국어 음역 | 벨구데이 |
다른 이름 | 벨리구테이 |
출생 | 년 |
사망 | 년 |
직업 | 장군 |
가족 관계 | 칭기즈 칸의 이복 형제 |
2. 가계
예수게이와 호엘룬의 아들이며, 칭기즈 칸의 이복 동생이다. 벡테르와는 이복 형제이고, 하사르, 하치운, 테무게와는 동복 형제이다.[1]
벨구테이의 후손으로는 예스 부카, 광녕왕 자우두, 쿠운 부카, 칼투크 등이 있다.[1]
2. 1. 가계도
- '''벨구테이'''(Belgütei, 別里古台)
- '''예스 부카 대왕'''(Yesü buqa, 也速不花大王)
- '''광녕왕 자우두'''(J̌au'du, 広寧王爪都)
테무르 대왕(Temür, 帖木児大王)
* 토크 테무르 대왕(Toq temür, 脱鉄木児大王)
나야 대왕(Naya, 乃顔大王)
- '''쿠운 부카 대왕'''(Ku'un buqa, 口温不花大王)
- ** 메르기데이 대왕(Mergidei, 滅里吉歹大王)
- ** 옹기라다이 대왕(Onggiradai, 甕吉剌歹大王)
광녕왕 체리크 테무르(Čerik temür, 広寧王徹里帖木児)
* 광녕왕 알쿤차(Alqunča, 広寧王按渾察)
- '''칼투크 대왕'''(Qaltuqu, 罕禿忽大王)
- ** 콜기 대왕(Qorgi, 霍歴極大王)
3. 생애
벨구테이는 형 벡테르와 함께 체격이 크고 완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3] 아버지 사후, 동복 형인 벡테르가 후계자 경쟁에서 이복 형인 테무진(칭기즈 칸)에게 살해되자 테무진을 따랐다. 메르키트 토벌, 나이만 토벌에 종군했으며, 1206년 칭기스 칸의 제2차 즉위에서 자르구치에 임명되어 종족을 감독했다.[6] 오논 강, 케를렌 강 유역을 유목지로 삼아 3,000명의 부민을 영유했고, 조치 카사르, 카치운의 아들 일치다이, 테무게 옷치긴 등 칭기스의 동복 동생과 그 자손과 마찬가지로 요동에 분령을 받았다. 광녕로와 은주 두 성을 영유하고 광녕왕을 칭했다.
다른 형제들보다 장수하여 1251년 몽케의 즉위식에도 참석했다.[3] 『원사』에는 카르투크(罕禿忽), 예스 부카(也速不花), 쿠운 부카 (口温不花)의 세 아들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집사』에는 자우두 (Jāūtū جاوتو)라는 아들이 뒤를 이었다고 한다. 1460년대의 북원의 유력자 모리하이 (毛里孩)는 벨구테이의 후손이며, 모리하이의 자손은 아바가부·아바가나르부라는 부족을 형성했다.[7]
3. 1. 초기 생애
벨구테이는 형 벡테르와 함께 체격이 크고 완력이 뛰어난 인물로 전해진다.[3] 아버지 사후, 동복 형인 벡테르가 후계자 경쟁에서 이복 형인 테무진(칭기즈 칸)에게 살해되자 이후 테무진을 따랐다.3. 2. 몽골 제국 건국 기여
벨구테이는 체격이 크고 완력이 뛰어난 인물로 전해진다.[3] 아버지 사후, 이복 형인 테무진(칭기즈 칸)을 따라 메르키트족 토벌, 나이만족 토벌에 종군했다. 1206년 칭기즈 칸의 제2차 즉위에서는 자르구치에 임명되어 종족을 감독했다.[6] 오논 강, 케를렌 강 유역을 유목지로 삼아 3,000명의 부민을 영유했다.[6] 이후 조치 카사르, 카치운의 아들 일치다이, 테무게 옷치긴 등 칭기스의 동복 동생과 그 자손과 마찬가지로 요동에 분령을 받았다.3. 3. 울루스 분봉과 통치
1206년 칭기즈 칸의 두 번째 즉위에서 자르구치에 임명되어 종족을 감독했다.[6] 오논 강, 케를렌 강 유역을 유목지로 삼아 3,000명의 부민을 영유했다.[6] 이후 조치 카사르, 카치운의 아들 일치다이, 테무게 옷치긴 등 칭기스의 동복 동생과 그 자손과 마찬가지로 요동에 울루스(분령)를 받았다. 벨구테이는 광녕로와 은주 두 성을 영유하고 광녕왕을 칭했다.3. 4. 후기 생애
벨구테이는 다른 형제들보다 장수하여 1251년 몽케의 즉위식에도 참석했다고 한다.[3]『원사』에는 카르투크(罕禿忽), 예스 부카(也速不花), 쿠운 부카 (口温不花)의 세 아들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집사』에는 자우두 (Jāūtū جاوتو)라는 아들이 뒤를 이었다고 한다. 1460년대의 북원의 유력자 모리하이 (毛里孩)는 벨구테이의 후손이며, 모리하이의 자손은 아바가부·아바가나르부라는 부족을 형성했다.[7]
4. 후손
『원사』에는 칼투크(罕禿忽), 예스 부카, 쿠운 부카 세 아들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집사』에는 자우두라는 아들이 뒤를 이었다고 한다. 1460년대 북원의 유력자 모리하이는 벨구테이의 후손이며, 모리하이의 자손은 아바가부, 아바가나르부를 형성했다.[7]
4. 1. 벨구테이 왕가
- '''벨구테이'''(Belgütei)
- * 예스 부카 대왕
- ** '''광녕왕 자우두'''
테무르 대왕
* 토크 테무르 대왕
나야 대왕
- * 쿠운 부카 대왕
- ** 메르기데이 대왕
- ** 옹기라다이 대왕
광녕왕 체리크 테무르
* 광녕왕 알쿤차
- * 칼투크 대왕
- ** 콜기 대왕
4. 2. 북원 시대의 후손
罕禿忽중국어, 也速不花중국어, 口温不花중국어 세 아들이 『원사』에 기록되었지만, 『집사』에는 자우두 (Jāūtū جاوتو)라는 아들이 뒤를 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460년대 북원의 유력자 모리하이 (毛里孩)는 벨구테이의 후손이며, 모리하이의 자손들은 아바가부, 아바가나르부를 형성했다.[7]참조
[1]
서적
Genghis Khan: Conqueror of the World
https://books.google[...]
Tauris Parke Paperbacks
[2]
서적
Genghis Khan and the Making of the Modern World
[3]
서적
モンゴル秘史 1 チンギス・カン物語
[4]
서적
アルタン・トプチ
http://www.asuult.ne[...]
[5]
서적
元朝秘史(上)
岩波文庫
[6]
서적
アジア歴史事典
[7]
서적
モンゴル帝国から大清帝国へ
藤原書店
2010-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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