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간나
1. 개요
목간나는 백제의 인물로, 490년 북위의 침공 당시 동성왕의 명을 받아 북위군을 격퇴하는 데 기여했다. 495년에는 남제 황제로부터 광위장군 면중후의 관작을 수여받았으며, 면중후의 면중은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지역으로 비정된다. 북위의 백제 공격 위치에 대한 논쟁이 있으며, 일부에서는 백제 본국이 아닌 요서에 위치한 서백제에 대한 공격으로 보기도 하지만, 서백제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 이름 | 목간나 |
|---|---|
| 한글 | 목간나 |
| 한자 | 木干那 |
| 일본어 (히라가나) | もくかんな |
| 로마자 표기 | Mok Ganna |
| 작위 | 백제 광위장군 |
|---|---|
| 휘 | 목간나 (木干那) |
| 작호 | 면중후 (面中侯) |
| 군주 | 백제 동성왕 |
| 국적 | 백제 |
| 성별 | 남성 |
| 가문 | 목씨 |
| 소속 | 백제군 |
|---|---|
| 주군 | 동성왕 |
| 지휘 | 백제군 |
| 참전 | 백제-북위 전쟁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링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목간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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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씨 (백제) -
목만치
목만치는 백제 인물로, 《삼국사기》에는 목협만치로 기록되었으며, 《일본서기》에는 목라근자의 아들로 임나 관련 업무를 수행했고, 소가노 마치와 동일 인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 -
백제의 장군 -
흑치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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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장군 -
곤지
곤지는 백제 개로왕의 아들이자 문주왕의 동생으로, 일본에 파견되어 가와치 지역 개척에 기여했으며 귀국 후 내신좌평에 임명되었고 무령왕 탄생 설화와 관련되어 일본에서 숭배받는 인물이다. -
백제의 귀족 -
대부인 (백제)
대부인은 백제 무령왕의 부인으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유물과 은팔찌의 명문을 통해 존재가 확인되었으며, 사후 태비 또는 왕태비로 추존되어 529년 무령왕릉에 합장되었다. -
백제의 귀족 -
순타태자
순타태자는 백제 무령왕의 아들로, 일본 역사서에 등장하며 왜에 인질로 보내진 후 그의 후손이 왜국에 귀화하여 화씨와 고야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전해지지만, 한국 역사 기록에는 그의 존재가 명확하지 않아 실존 여부에 대한 논쟁이 있다.
2. 생애 및 활동
목간나는 백제의 장수로 활동한 인물이다. 『남제서』 기록에 따르면 490년 북위의 침공을 격퇴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이 공적으로 495년 남제로부터 '광위장군 면중후'라는 관작을 받았다. 그가 봉해진 '면중'은 오늘날의 광주광역시 일대로 비정된다.
2.1. 북위 격퇴 및 남제의 관작 수여
『남제서』에 따르면, 490년 북위 군대가 백제를 침공하자 동성왕은 해례곤, 사법명, 찬수류, 목간나에게 명하여 이들을 격퇴하도록 하였다. 이 공적으로 목간나는 495년 남제 황제로부터 '광위장군 면중후(廣威將軍 沔中侯)'라는 관작을 받았다.
2.1.1. 면중후와 광주광역시 비정
『남제서』 기록에 따르면, 490년 북위 군대가 백제를 침공했을 때, 동성왕은 해례곤, 사법명, 찬수류, 목간나 등에게 명하여 이들을 성공적으로 격퇴하였다. 495년, 목간나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당시 중국 남조의 남제 황제로부터 '광위장군 면중후(廣威將軍 沔中侯)'라는 관작을 받았다. 여기서 목간나가 제후로 봉해진 '면중(沔中)'은 오늘날의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일대로 비정되고 있어, 백제사 연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