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흠
1. 개요
목장흠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599년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 등을 거쳐 나주목사를 역임했다. 광해군 시대에 동부승지, 좌부승지를 지냈으나 영창대군을 옹호하려다 청풍군수로 좌천되기도 했다. 인조반정 이후 승지에 임명되었고, 죽산 부사, 장흥 부사, 토포사 등을 거쳐 함경도 관찰사, 경주부윤을 역임했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왕을 호종했으며, 호조참판, 도승지를 지냈다. 1641년 사망했으며, 왕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가족 관계로는 목세칭의 손자이며, 목첨의 아들이다.
-
사천 목씨 -
충정공 목서흠 묘역
충정공 목서흠 묘역은 조선시대 문신 목서흠과 부인 안동 권씨의 묘소로, 동분이실 구조와 석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조경이 비문을 짓고 이정영과 조위명이 글씨를 쓴 신도비가 있어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
사천 목씨 -
목요상
목요상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판사, 변호사, 국회의원, 주요 당직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법조인 출신 정치인이다. -
조선의 문신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572년 출생 -
존 던
존 던은 1572년 런던에서 태어나 17세기 형이상학파 시인들에게 영향을 미친 영국의 시인, 설교가이며, 옥스퍼드 대학교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다양한 경험을 거쳐 성공회 사제가 되어 종교 작품과 설교로 명성을 얻었다. -
1572년 출생 -
우키타 히데이에
우키타 히데이에(1572-1655)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에 활동한 무장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신임을 얻어 고다이로에 임명되었으나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배하여 유배된 인물이다.
2. 생애
1599년(선조 32)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봉교(奉敎)·전적(典籍)·감찰·사서(司書) ·정언(正言)·지평(持平)·이조정랑·직강(直講)·예빈시부정(禮賓寺副正)·응교(應敎)·집의(執義)·사복시정(司僕寺正) 등을 역임하였고, 1609년 나주목사로 나갔다.
1610년(광해군 2)에 내직으로 들어와 의정부 사인(議政府舍人)이 되었으며, 1611년(광해군 3년)에 집의와 사인 겸 보덕으로 임명되었고, 1612년에 통정대부의 자계로 승진하여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임명되었다.
1612년(광해군 4년) 12월 우부승지로서 황주(黃州)와 봉산(鳳山) 지역 백성들의 고통을 조사하고, 봉산현 민폐 중 노전(蘆田)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해결을 건의하였다. 노전은 본현 서북쪽 바닷가의 갈대풀이 자생하는 짜고 척박한 땅으로, 지방 사람들이 갈대풀을 베어 생계를 유지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세력 있는 부호가들이 문안(文案)을 만들어 점유하고 가포(價布)를 강제로 징수하여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다. 이에 평시대로 관가에 쌀을 바치게 하고 문안을 만들어 절수(折受)하는 폐단을 영원히 고쳐달라고 건의했으나, 이 의논은 끝내 행해지지 않았다.
1613년 좌부승지가 되었는데, 이이첨(李爾瞻) 등이 영창대군(永昌大君)을 폐하려고 하자 이를 저지하려다가 청풍군수(淸風郡守)로 좌천되었다. 1621년(광해군 13) 예조참의(禮曹參議)에 제수되었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이후 승지에 임명되었고, 1626년(인조 4년) 호조참의를 거쳐 죽산 부사가 되었다. 1627년(인조 5년) 장흥부사, 1629년(인조 7년) 장례원 판결사를 역임하였다.
1630년(인조 8년) 호남 지역에 도적이 창궐하여 남원을 소굴로 삼고 부사 박정(朴炡)에게 상해를 입히자, 정경세(鄭經世)의 추천으로 토포사를 겸하여 남원에 파견되었다. 목장흠은 부임 후 도적의 괴수 백룡(白龍)을 체포하는 등 민심을 안정시키는 데 힘썼고, 그 공으로 가선대부의 자급을 받았다.
1633년 함경도 관찰사, 1634년(인조 12년) 경주부윤을 지냈다. 1635년(인조 13년) 서반 겸 부총관이 되어 1636년(인조 14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왕을 호종하였다. 이후 호조참판, 가의대부, 비변사제조를 겸하였다.
1640년(인조 18년) 동지중추부사를 거쳐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승문원 제조를 겸임하였다. 1641년(인조 19년) 도승지에 임명되었으나, 질병으로 사은하지 못하고 같은 해 12월 28일 7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왕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장례를 지원하였다.
2.1. 관직 진출과 광해군 시대 (1599년 ~ 1623년)
1599년(선조 32)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봉교(奉敎)·전적(典籍)·감찰·사서(司書) ·정언(正言)·지평(持平)·이조정랑·직강(直講)·예빈시부정(禮賓寺副正)·응교(應敎)·집의(執義)·사복시정(司僕寺正) 등을 역임하였고, 1609년 나주목사로 나갔다.
1610년(광해군 2)에 내직으로 들어와 의정부 사인(議政府舍人)이 되었으며, 1611년(광해군 3년)에 집의와 사인 겸 보덕으로 임명되었고, 1612년에 통정대부의 자계로 승진하여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임명되었다.
1612년(광해군 4년) 12월 우부승지로서 황주(黃州)와 봉산(鳳山) 지역 백성들의 고통을 조사하고, 봉산현 민폐 중 노전(蘆田)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해결을 건의하였다. 노전은 본현 서북쪽 바닷가의 갈대풀이 자생하는 짜고 척박한 땅으로, 지방 사람들이 갈대풀을 베어 생계를 유지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세력 있는 부호가들이 문안(文案)을 만들어 점유하고 가포(價布)를 강제로 징수하여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다. 이에 평시대로 관가에 쌀을 바치게 하고 문안을 만들어 절수(折受)하는 폐단을 영원히 고쳐달라고 건의했으나, 이 의논은 끝내 행해지지 않았다.
1613년 좌부승지가 되었는데, 이이첨(李爾瞻) 등이 영창대군(永昌大君)을 폐하려고 하자 이를 저지하려다가 청풍군수(淸風郡守)로 좌천되었다. 1621년(광해군 13) 예조참의(禮曹參議)에 제수되었다.
2.2. 인조반정 이후 활동 (1623년 ~ 1641년)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이후 승지에 임명되었고, 1626년(인조 4년) 호조참의를 거쳐 죽산 부사가 되었다. 1627년(인조 5년) 장흥부사, 1629년(인조 7년) 장례원 판결사를 역임하였다.
1630년(인조 8년) 호남 지역에 도적이 창궐하여 남원을 소굴로 삼고 부사 박정(朴炡)에게 상해를 입히자, 정경세(鄭經世)의 추천으로 토포사를 겸하여 남원에 파견되었다. 목장흠은 부임 후 도적의 괴수 백룡(白龍)을 체포하는 등 민심을 안정시키는 데 힘썼고, 그 공으로 가선대부의 자급을 받았다.
1633년 함경도 관찰사, 1634년(인조 12년) 경주부윤을 지냈다. 1635년(인조 13년) 서반 겸 부총관이 되어 1636년(인조 14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왕을 호종하였다. 이후 호조참판, 가의대부, 비변사제조를 겸하였다.
1640년(인조 18년) 동지중추부사를 거쳐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승문원 제조를 겸임하였다. 1641년(인조 19년) 도승지에 임명되었으나, 질병으로 사은하지 못하고 같은 해 12월 28일 7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왕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장례를 지원하였다.
3. 가족 관계
목세칭(睦世稱)의 손자이자 조철(趙澈)의 외손자이다. 아버지는 이조참판(吏曹參判) 목첨(睦詹)이고, 외할아버지는 증 병조참판 정건(鄭謇)이며, 어머니는 동래 정씨(東萊鄭氏)이다. 형제로는 형 목서흠(睦敍欽)과 동생 공조참판 목대흠(睦大欽)이 있다.
처부(妻父)는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 남위(南瑋)이며, 전 부인(前夫人)은 의령 남씨(宜寧南氏)이다. 전 부인 의령 남씨(宜寧南氏)에게서는 아들 목성선(睦性善)과 목행선(睦行善)을 낳았다. 목행선(睦行善)의 며느리들은 각각 광주 이씨(廣州李氏) 이여황(李如璜)의 딸과 파평 윤씨(坡平尹氏) 윤효영(尹孝永)의 딸이다. 목성선(睦性善)의 아들, 즉 손자는 병조판서 목창명(睦昌明)이다. 장녀는 승문원 저작 이적에게, 차녀는 예조판서 조형(趙珩)에게 출가하였고, 외손녀는 여주목사 심추(沈樞)에게 출가하였다. 후 부인(後夫人)은 배씨(裵氏)로, 목이선(睦履善), 목순선(睦順善), 목존선(睦存善)을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