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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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몽오는 진나라의 장군으로, 진 소양왕 시대부터 활약하여 진나라의 영토 확장에 기여했다. 그는 장양왕 시대에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를 공격하여 여러 성을 점령했으며, 진시황 시대에는 진양의 반란을 진압하고 위나라를 공격하여 동군을 설치하는 등 여러 군사적 업적을 세웠다. 몽오는 기원전 240년에 사망했으며, 그의 아들 몽무, 손자 몽염과 몽의 역시 진나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몽오의 가문은 진나라 통일에 기여했으나, 진 이세황제 때 조고의 모함으로 몰락했다.

몽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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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몽오는 진왕 정 때 활약한 장수로, 여러 나라를 공격하여 영토를 확장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 기원전 249년(장양왕 원년), 몽오는 한나라를 공격하여 성고와 싱양을 점령했다.
* 기원전 248년(장양왕 2년), 위나라의 고도와 급을 공격하고, 조나라의 유차, 신성, 랑멍을 공격하여 37개 성을 얻었다.
* 기원전 247년(장양왕 3년), 위나라 신릉군이 이끄는 5국 연합군에 왕허가 패배했다.
* 기원전 246년(진왕 정 원년), 진양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했다.
* 기원전 244년(진왕 정 3년), 한나라를 공격하여 13개 성을 빼앗았다.
* 기원전 242년(진왕 정 5년), 위나라를 공격하여 산자오 등 20개 성을 빼앗고 동군을 설치했다.
* 기원전 241년(진왕 정 6년), 초, 조, 위, 한, 연의 5국 합종군이 진나라를 공격해 왔으나, 한구관에서 격퇴했다(한곡관 전투)
* 기원전 240년(진왕 정 7년)에 사망했다.

2.1. 소양왕 시대

몽오는 제나라 사람의 후손이며 진 소양왕 때부터 벼슬을 지냈다.

어느 날 소양왕의 측근이었던 진나라의 재상 범수한나라의 공격으로 봉지였던 여남(汝南) 땅을 잃었다. 소양왕이 범수를 불러 이 일에 대해 묻자, 범수는 봉지를 잃고도 걱정할 것이 없다며 태연한 척하였다. 그러나 소양왕은 범수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의심하고는 몽오와 이 일을 상의하였다. 몽오는 자신이 직접 범수의 속내를 알아보겠다고 청하였다.

몽오는 범수를 찾아가 "이 몽오는 죽고 싶을 따름입니다."라 하였다. 범수가 무슨 일인지 묻자, 몽오는 "진나라 왕께서 군을 스승으로 삼은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입니다. 지금 제가 진나라에서 득세하여 왕의 장수가 되어 군대를 거느리며 한나라를 업신여겼더니 한나라가 도리어 군의 봉지를 앗아갔습니다. 제가 어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죽고 싶을 따름입니다."라 하였다. 그 말을 들은 범수는 몽오에게 절을 하며 "원컨데 (빼앗긴 여남 땅을 되찾는 일을) 경에게 맡기겠소."라 하였다. 몽오가 돌아가서 이 사실을 보고하자 소양왕은 범수가 아직도 여남 땅에 미련을 지니고 있음을 알고는 이후 한나라에 대하여 의논할 때에 범수의 말을 듣지 않게 되었다.

2.2. 장양왕 시대

기원전 249년(장양왕 1), 몽오는 한나라를 공격하여 성고와 공 땅을 점령하고 삼천군을 설치하였다.

기원전 248년(장양왕 2), 몽오는 조나라를 공격하여 태원을 평정하고, 유차, 신성, 낭맹 등 37개 성을 빼앗았다.

기원전 247년(장양왕 3), 위나라 신릉군이 이끄는 5국 합종군에 패하여 철수하였다. 신릉군은 황하 이남에서 패하여 달아나는 몽오를 추격하여 함곡관까지 이르렀다.

2.3. 진시황 시대

기원전 246년(진시황 1), 몽오는 진양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였다.

기원전 244년(진시황 3), 한나라를 공격하여 13개 성을 빼앗았다.

기원전 242년(진시황 5), 위나라를 공격하여 산조, 연, 허, 장평, 옹구, 산양성을 모두 함락시켰으며 20개 성을 빼앗고 동군을 설치하였다.

기원전 240년(진시황 7), 몽오는 상경(上卿)의 벼슬에 이르렀으며, 그 해에 사망하였다.

3.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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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설명
몽무몽오의 아들. 훗날 장군이 되어 왕전과 함께 초나라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몽염몽오의 손자. 형법을 배워 형옥 관련 문서 작성. 장군이 되어 30만 군사로 북방의 흉노를 토벌.
몽의몽오의 손자. 진 시황제의 측근으로 활동.

4. 평가

몽오의 가문은 진나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들 몽무왕전과 함께 초나라를 멸망시켰다. 손자 몽염은 30만 군사를 이끌고 북방의 흉노를 토벌하는 등 군사적 업적을 세웠다.

진 시황제는 몽씨 가문을 총애하여 몽염몽의를 측근으로 삼았다. 그러나 진 이세황제 즉위 후 조고의 모함으로 몽염과 몽의가 죽음을 당하면서 몽오의 가문은 몰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