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겔 데 안드레스
1. 개요
미겔 데 안드레스는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로,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1975년 아틀레틱 빌바오 유소년 팀에 입단하여 1979년 라 리가에 데뷔했으며, 267경기 출전 12골을 기록하고 1987년 은퇴했다. 아틀레틱 빌바오 소속으로 라 리가 2회, 코파 델 레이 1회,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회 우승을 차지했다.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1980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했고, A매치 2경기에 출전했다.
| 전체 이름 | 미겔 데 안드레스 바라세 |
|---|---|
| 출생일 | 1957년 10월 8일 |
| 출생지 | 오차가비아 |
| 키 | 1.78m |
| 포지션 | 미드필더 |
| 유소년 클럽 연도 1 | 베르빈사나 |
|---|---|
| 유소년 클럽 연도 2 | 1974-1975 |
| 유소년 클럽 2 | 팜플로나 |
| 유소년 클럽 연도 3 | 1975-1976 |
| 유소년 클럽 3 | 아틀레틱 빌바오 |
| 클럽 연도 1 | 1976-1979 |
|---|---|
| 클럽 1 | 빌바오 아틀레틱 |
| 클럽 출장 1 | 59 |
| 클럽 득점 1 | 3 |
| 클럽 연도 2 | 1978-1979 |
| 클럽 2 | → 카스테욘 (임대) |
| 클럽 출장 2 | 29 |
| 클럽 득점 2 | 1 |
| 클럽 연도 3 | 1979-1988 |
| 클럽 3 | 아틀레틱 빌바오 |
| 클럽 출장 3 | 200 |
| 클럽 득점 3 | 9 |
| 통산 출장 | 288 |
| 통산 득점 | 13 |
| 국가대표 연도 1 | 1975 |
|---|---|
| 국가대표 1 | 스페인 U-18 |
| 국가대표 출장 1 | 4 |
| 국가대표 득점 1 | 0 |
| 국가대표 연도 2 | 1980 |
| 국가대표 2 | 스페인 U-23 |
| 국가대표 출장 2 | 1 |
| 국가대표 득점 2 | 0 |
| 국가대표 연도 3 | 1979-1983 |
| 국가대표 3 | 스페인 아마추어 |
| 국가대표 출장 3 | 7 |
| 국가대표 득점 3 | 0 |
| 국가대표 연도 4 | 1980-1981 |
| 국가대표 4 | 스페인 B |
| 국가대표 출장 4 | 3 |
| 국가대표 득점 4 | 0 |
| 국가대표 연도 5 | 1984 |
| 국가대표 5 | 스페인 |
| 국가대표 출장 5 | 2 |
| 국가대표 득점 5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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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레틱 빌바오의 비선수진 -
안도니 수비사레타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출장 기록을 보유했던 골키퍼 안도니 수비사레타는 아틀레틱 빌바오와 FC 바르셀로나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다수의 우승을 경험했고, 은퇴 후에는 여러 클럽에서 단장직을 역임했다. -
아틀레틱 빌바오의 비선수진 -
훌렌 게레로
훌렌 게레로는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지도자로, 아틀레틱 빌바오에서만 430경기 116골을 기록한 원 클럽 맨이며, 스페인 국가대표로도 활약한 1990년대를 대표하는 공격형 미드필더이다. -
CD 카스테욘의 축구 선수 -
미겔 앙헬 곤살레스 수아레스
미겔 앙헬 곤살레스 수아레스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골키퍼로 18년간 활약하며 여러 우승을 경험하고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월드컵에 출전했으며, 2024년에 사망했다. -
CD 카스테욘의 축구 선수 -
비센테 델 보스케
비센테 델 보스케는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레알 마드리드와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서 선수 및 감독으로 활약하며 다수의 우승을 차지했고, 2011년 델 보스케 후작 작위를 받았다. -
1957년 출생 -
노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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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출생 -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는 2007년부터 2022년까지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을 역임했으며, 재임 기간 동안 인권 탄압 등의 비판을 받았고, 퇴임 후 인민평의회 의장직을 수행했다.
2. 클럽 경력
1980-81 시즌 초반, 헬무트 제네코비치 감독이 레알 마드리드전 1-7 대패로 경질되었지만, 데 안드레스는 주전 자리를 지켰다. 그는 아틀레틱 빌바오 소속으로 리그 전 경기에 출전했지만,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하비에르 클레멘테 감독 부임 후에는 55경기에 출전해 4골을 기록하며 팀의 2년 연속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1983년 2월 9일, 에스파뇰과의 산 마메스 홈 경기에서 장거리 2골을 기록하며 5-2 대승을 이끌었다. 이듬해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도 선발 출전하여 더블 달성에 공헌했지만, 경기 후 패싸움에 연루되어 파코 클로스, 디에고 마라도나, 미겔리, 안도니 고이코에체아, 마누엘 사라비아 등과 함께 징계를 받기도 했다.
2.1. 레사마 훈련장 입단과 초기 경력
나바라 주 오차가비아 출신인 데 안드레스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주목을 동시에 받았지만, 1975년 아틀레틱 빌바오의 유소년 시스템인 레사마에 입단했다. 바스크 연고 구단은 전 소속 구단에게 400000스페인 페세타의 이적료를 지불했고, 1군 신고식을 치르게 되면서 추가로 5를 지불했다.
하부 리그의 2군 소속으로 2년을 보내고 세군다 디비시온의 카스테욘에 1년 임대되었던 20세의 데 안드레스는 전 오스트리아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헬무트 제네코비치 감독의 부름을 받아 친정으로 복귀했다. 그는 1979년 9월 9일에 1-2로 패한 살라망카와의 원정 경기에서 라 리가 신고식을 치렀다.
2.2. 아틀레틱 빌바오의 전성기
데 안드레스는 나바라 주 오차가비아 출신으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주목을 동시에 받았지만 1975년 아틀레틱 빌바오의 유소년 시스템인 레사마에 입단했다. 바스크 연고 구단은 전 소속 구단에게 400,000 Ptas의 이적료를 지불했고, 1군 신고식을 치르게 되면서 추가로 5M Ptas를 추가로 지불했다.
하부 리그의 2군 소속으로 2년을 보내고 세군다 디비시온의 카스테욘에 1년 임대되었던 20세의 데 안드레스는 전 오스트리아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헬무트 제네코비치 감독의 부름을 받아 친정으로 복귀해 1979년 9월 9일에 1-2로 패한 살라망카와의 원정 경기에서 라 리가 신고식을 치렀다.
1980-81 시즌 초반, 오스트리아인 감독이 레알 마드리드전 1-7 대패로 경질된 와중에도 데 안드레스는 주전 지위를 굳건히 지켰다. 결국 그는 아틀레틱 소속으로 전 경기 출전했지만, 본래 자리인 최후방 수비수로 활약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하비에르 클레멘테 감독의 임기에는 55경기 출전해 4골을 기록해 소속 구단의 2년 연속 리그 제패에 일조했다.
1983년 2월 9일, 빌바오는 2연패 중 첫 리그 우승을 거두었는데, 데 안드레스는 양발로 강하게 공을 찰 수 있었는데, 5-2로 이긴 에스파뇰과의 산 마메스 안방 경기에서는 장거리에서 2골을 기록해 폭설의 난전에 5-2 대승을 견인했다. 이듬해, 그는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 선발로 출전해 마드리드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1-0 승리를 거두어 소속 구단의 2관왕을 완성했지만, 경기 후 파코 클로스, 디에고 마라도나, 미겔리, 안도니 고이코에체아, 그리고 마누엘 사라비아를 포함한 5명의 다른 선수들과 함께 징계를 받았다가 철회되기도 했는데, 이들은 경기 종료 후 패싸움을 벌였기 때문이었다.
1986-87 시즌은 클레멘테의 후임으로 전설적인 선수 호세 앙헬 이리바르가 감독으로 취임한 시기로 데 안드레스는 끔찍한 한 해를 보냈다. 그는 스포르팅 히혼과의 1차전 경기에서 부상으로 빠진 것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 부상이 재발했고, 로그로녜스와의 컵 경기에 출전을 거부하여 구단이 징계를 내리기도 했다. 데 안드레스는 레알 마드리드와의 31번째 경기에 복귀했는데, 빌바오는 강등조에 떨어지지 않기 위한 사투를 벌였으나,(이 시즌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정규 시즌 후 3개 조로 나뉘어 시즌을 마무리했다) 그의 무릎은 리카르도 가예고가 착지하면서 깨져 부상당했고, 이 경기는 데 안드레스의 사자 군단으로 출전한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하워드 켄덜이 1987년에 아틀레틱 빌바오에 취임했으나, 데 안드레스는 1년 동안 벤치만을 지키다가 불과 31세의 나이로 아틀레틱 소속 267 경기 출전 12골 기록으로 은퇴했다. 이후, 그는 구단의 스카우트로 근무했다.
; 아틀레틱 빌바오
| 항목 | 내용 |
|---|---|
| 프리메라 디비시온 | 2회 (1982-83, 1983-84) |
| 코파 델 레이 | 1회 (1983-84) |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 1회 (1984) |
2.3. 부상과 은퇴
데 안드레스는 1986-87 시즌에 여러 차례 끔찍한 부상을 겪었다. 스포르팅 히혼과의 리그 첫 경기에서 부상을 당해 결장했고, 로그로녜스와의 컵 경기 출전을 거부하여 구단으로부터 징계를 받기도 했다. 팀이 강등권 탈출을 위해 사투를 벌이던 중, 레알 마드리드와의 31라운드 경기에 복귀했으나, 리카르도 가예고가 그의 무릎에 착지하면서 무릎이 부서지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이 경기가 그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하워드 켄달 감독이 1987년에 아틀레틱에 부임했지만, 데 안드레스는 1년 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하다가 31세의 나이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아틀레틱 소속으로 총 267경기에 출전하여 12골을 기록했다. 은퇴 후에는 구단의 스카우트로 활동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데 안드레스는 1980년 하계 올림픽에 스페인 대표로 참가하여 모든 경기를 소화했으나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이후 1982년 FIFA 월드컵 예비 명단에는 포함되었지만 최종 명단에는 들지 못했다. 1984년 헝가리와의 친선경기를 통해 성인 국가대표팀에 데뷔하였고, 덴마크와의 경기에도 출전하였으나, 유로 1984 최종 명단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 대회 | 연도 | 결과 |
|---|---|---|
| 모스크바 올림픽 | 1980년 | 조별 리그 탈락 |
| A매치 | 2경기 0득점 | |
3.1.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데 안드레스는 스페인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모스크바에서 열린 1980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했고, 스페인이 참가한 세 경기를 모두 빠짐없이 소화했지만 3무로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호세 산타마리아 감독은 그를 레알 소시에다드의 아구스틴 가하테와 함께 수비수로 기용했다.
3.2. 성인 국가대표팀
데 안드레스는 스페인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모스크바에서 열린 1980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스페인이 참가한 세 경기에 모두 출전해 풀타임을 소화했지만 3무로 조별 리그 탈락을 막지 못했다. 호세 산타마리아 감독은 그를 레알 소시에다드의 아구스틴 가하테와 함께 수비수로 기용했다.
그는 안방에서 열린 1982년 월드컵에 참가할 예비 40인 명단에는 포함되었으나, 산타마리아 감독은 최종 명단에 그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미겔 무뇨스 감독 체제에서 스페인이 UEFA 유로 1984 본선에 진출한 후, 데 안드레스는 1984년 1월 18일에 카디스에서 열린 헝가리와의 친선경기에서 0-1로 패하며 성인 국가대표팀 첫 경기를 치렀다. 3달 후, 그는 발렌시아에서 열린 덴마크와의 경기에서 2-1로 승리할 때 10분간 출전했지만, 프랑스에서 열린 유로 1984에서 준우승을 거둔 스페인 국가대표팀의 최종 명단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출장 경기
* A매치 2경기 0득점 (1984년)
| 연도 | 출장 | 득점 |
|---|---|---|
| 1984 | 2 | 0 |
| | 2 ||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