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일국민회의
1. 개요
민주통일국민회의는 1984년 10월 16일 창립된 재야 민주 통일 운동 단체이다. 문익환, 윤반웅, 계훈제 등 12명이 모여 범국민적 민주 통일 운동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민주·민권 확립을 위한 단체 결성에 합의하여 설립되었다. 주요 활동으로 국가보안법 철폐, 토지공개념 도입, 민주정의당 해체 등의 반파쇼 민주화 운동을 전개했으며, 민중해방과 자유 평등 사회의 실현을 목표로 했다. 문익환이 의장을, 계훈제와 신현봉이 부의장을 맡았으며,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에 위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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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칭 | 국민회의 |
|---|---|
| 설립일 | 1972년 12월 27일 |
| 해산일 | 1980년 10월 27일 |
| 유형 |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출을 위한 기관 |
| 역할 | 대통령 선거, 통일정책 자문 및 심의 |
| 후신 | 전두환의 국가보위입법회의 |
| 배경 | 박정희의 유신헌법 제정 |
|---|---|
| 구성 | 대통령이 추천한 대의원으로 구성 |
| 기능 | 대통령 선출, 통일정책 심의 |
| 주요 사건 | 박정희 대통령 간선 (1972년, 1978년), 최규하 대통령 간선 (1979년) |
| 해체 | 전두환의 12·12 군사 반란 이후 해체 |
| 의장 | 대한민국 대통령 |
|---|---|
| 부의장 | 5인 |
| 사무총장 | 1인 |
| 운영위원회 | 의장, 부의장, 상임위원으로 구성 |
| 대의원 | 2,000명 ~ 5,000명 (임기 3년) |
| 대통령 선출 | 간선제에 의한 대통령 선출 |
|---|---|
| 통일정책 심의 | 대통령의 통일정책에 대한 자문 및 심의 |
| 기타 기능 | 국가원로자문회의 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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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
사상계
사상계는 아시아재단의 지원으로 창간되어 한국 문학 작품과 사회 비평을 게재했으나, 김지하 시인의 저항시 게재 후 폐간되며 유신 체제 언론 탄압의 상징이자 한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매체였다. -
함석헌 -
류영모
류영모는 일제강점기 한국의 종교 사상가이자 교육자로, 유불도 기독교 사상을 융합한 '얼나' 사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오산학교 교장을 지내고 은퇴 후 농사를 지으며 제자들을 가르치고 《노자》를 번역하기도 했다. -
문익환 -
함석헌
함석헌은 평안북도 출신의 인권운동가, 언론인, 재야운동가, 문필가로서, 일제강점기와 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펼치며 '씨알의 소리'를 통해 '씨알사상'을 알렸고, 비폭력·민주·평화 사상으로 '한국 간디'라 불리며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
문익환 -
박용길
박용길은 '봄길'이라는 호를 사용한 대한민국의 여성운동가이자 통일운동가로, 목사이자 통일운동가인 문익환의 배우자로서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에 헌신하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공동의장, 통일맞이 칠천만겨레모임 이사장 등을 역임했고, 김일성 주석 1주기 추모 방북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
1985년 폐지 -
삼성동 (강남구)
삼성동은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속하는 법정동으로, 봉은사, 선정릉, 코엑스 등의 주요 시설과 여러 지하철 노선 및 교육 시설을 갖추고 있다. -
1985년 폐지 -
역곡동
역곡동은 부천시에 있는 행정동으로, 조선시대부터 시작된 역사를 가지며 역곡역 신설과 함께 발전하여 현재는 3개의 동으로 나뉘었고, 교육기관이 많으며 역원 또는 벌판 끝자락 마을에서 유래한 지명을 가지고 있다.
2. 추진 과정
1984년 8월 30일 문익환, 윤반웅, 계훈제, 성내운, 유인호, 김병걸, 백기완, 유운필, 이창복, 김승균, 임채정, 장기표는 서울 아현동에서 모여 민주주의 실현과 민족 통일을 위해 범국민적 민주 통일 운동이 필요하며, 재야 민주 통일 운동단체가 필요하다는 데 합의했다. 이후 10월 5일, 발기인 96명의 명단을 확정했다. 10월 16일에는 장충동 분도회관에서 발기인 52명이 참석한 가운데 계훈제를 임시 의장으로 창립 대회를 열고, 창립선언서를 채택하며 정관 및 강령을 확정했다.
2.1. 창립 준비
1984년 8월 30일 문익환, 윤반웅, 계훈제, 성내운, 유인호, 김병걸, 백기완, 유운필, 이창복, 김승균, 임채정, 장기표가 서울 아현동에서 모여 민주주의 실현과 민족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범국민적 민주 통일 운동이 전개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민주 민권 운동에 앞장서 왔던 사람들로 재야 민주 통일 운동단체가 필요하다는데 합의했다. 1984년 10월 5일 발기인 96명 명단을 확정했다.
2.2. 창립 대회
1984년 10월 16일 12시 장충동 분도회관 내 피정의 집 강당에서 발기인 96명 중 52명이 참석하여 계훈제를 임시 의장으로 창립 대회를 개최하고, “민주 통일의 깃발을 드높이자”는 제목으로 창립선언서를 채택하고 정관 확정 및 강령을 채택하였다.
민주통일국민회의는 민족해방과 민주·민권의 확립을 위해 싸워온 선열들의 고귀한 전통과 정신을 이어받고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열망하는 모든 인사, 모든 운동단체들의 활동을 지지하고 지원하면서 이들과의 강력한 연대를 토대로 민주화의 길을 통한 민족해방운동의 차원에서 범국민적인 민주·통일운동을 전개하고자 한다.한국어
이 운동이 반민주·반민족적인 세력 속에서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은 극히 자명하며 개별 분산적인 어떠한 사회운동도 민주화와 민족통일의 대업을 이룩하는 데 제한된 역할을 수행할 뿐임을 그 동안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분명히 깨달았기에 우리는 격동하는 주변정세를 주체적으로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민족·민중 주체세력을 체계적으로 형성하여야 함을 깊이 인식한다.한국어
그리하여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민주통일국민 회의는 민중의 창의력과 민중에 대한 신뢰에 기초하여 참다운 인간해방의 이념과 실천방법을 창출해 내어 민족통일에서 비롯되는 인류번영 및 세계평화를 구현할 민주역량을 폭넓게 계발, 조직해 나갈 것이다. 분단의 극복과 민족통일 없이는 민족의 해방과 민족의 자주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민주화의 길을 통하지 않고는 분단의 극복과 민족통일이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확신이다.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소망하는 모든 민중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우리 민주통일국민회의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민족분열의 거대한 장벽을 허물 때까지 불퇴전의 용기로 맞서 싸워 나아갈 것임을 엄숙히 천명한다.한국어
3. 조직
4.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1가 56-12 분도빌딩 407호
5. 활동
국가보안법 철폐, 토지공개념 도입, 민주정의당 해체 등 반파쇼 민주화운동을 전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