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순 (기업인)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박기순은 대한제국 시기 중추원 의관과 시종원을 잠시 지냈으며, 전북 지역의 대지주이자 실업가로 활동했다. 그는 전북농공은행 은행장, 전주금융조합 조합장,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등을 역임했고, 일제강점기에는 친일 행적으로 비판받았다. 2002년 친일파 708인 명단,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 2008년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박기순 (기업인)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충주 박씨 - 박선규
    박선규는 KBS 기자 출신으로 탈북자 관련 보도로 주목받고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과 문체부 차관을 역임하며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에 기여했으며, 윤석열 정부에서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과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언론인 출신 정치인이자 공무원이다.
  • 충주 박씨 - 박찬호
    박찬호는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여 아시아 출신 투수 최다승 기록을 세운 전직 야구 선수로, 메이저 리그와 KBO 리그에서 활약했으며 국가대표로도 금메달을 획득했다.
  • 일제강점기의 관료 - 최남선
    최남선은 1890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역사학자이며, 《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현대 한국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3·1 운동 독립선언서 기초, 친일 행적, 단군 연구, 《단군론》, 《불함문화론》 저술 등의 활동을 했다.
  • 일제강점기의 관료 - 김창영 (1890년)
    김창영은 일제강점기 경찰 및 관료, 만주국 관리로서 항일 무장 세력 탄압과 귀순 공작에 참여하고 금산군수와 전라남도 참여관을 지냈으며, 광복 후 경성부부윤을 역임했으나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처벌받고 친일파 명단에 포함되었다.
  • 1857년 출생 - 루제로 레온카발로
    루제로 레온카발로는 《팔리아치》로 유명한 이탈리아 작곡가이자 극작가로, 자신의 오페라 대본을 직접 집필하고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 대본에도 참여했으며, 다양한 작품을 남겼으나 현재는 《팔리아치》 외 작품은 저평가되어 재평가가 필요하다.
  • 1857년 출생 - 헨리크 폰토피단
    덴마크 소설가이자 1917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헨리크 폰토피단은 사회 비판적 작품으로 농민과 농촌 프롤레타리아의 삶을 묘사했으며, 이후 심리적, 자연주의적 주제에 관심을 기울여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덴마크 사회의 변화상을 다룬 《약속의 땅》, 《행복한 페르》, 《죽은 자들의 왕국》 등의 대표작을 남겨 덴마크 문학에서 사회 묘사 소설을 확립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2. 생애

박기순은 1919년 3·1 운동을 저지하기 위해 조직된 전주자성회 발기인 및 전주지부장으로 활동하며, 시국강연회를 개최하고 독립 요구와 반일 운동을 제어하는 데 앞장섰다. 전주자성회는 3·1 운동 참가자들을 “불온행위를 감히 하는 자”로 비난하고, 지주들의 머슴과 소작인까지 동원하여 운동을 억압했다.

이후 전북축산 이사, 전주은행 은행장 등을 역임했으며, 1924년부터 1927년까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1926년 당시 전주, 익산군, 옥구군, 임실군, 남원군, 장수군, 금산군 등지에 986ha의 토지를 소유한 대지주였다. 1930년에는 전라북도 농회 부회장, 1931년에는 조선농회 통상위원을 역임했다.

2.1. 초기 생애와 경제 활동

1901년대한제국 중추원 의관을 잠시 지냈고, 1906년에는 시종원에서 근무했다. 그러나 전북 지역의 대지주이자 근대화 흐름에 잘 적응한 실업가로서의 약력이 더 두드러진다. 1906년 전북농공은행 설립위원을 맡았고, 1907년에는 전주금융조합 설립위원이 되었다. 1908년 전북농공은행 은행장에 취임하여 한일 병합 조약 체결 때까지 재직했다.

1909년 일본적십자사 전주지부 위원에 위촉되었고, 한일 병합과 동시에 여산군(현 익산시) 군수에 임명되어 조선총독부 소속 관리로도 근무했다. 이후 전북 지역 유지로서 1916년 전북경평철도 이사, 1918년 조선식산은행 상담역, 1918년 전주금융조합 조합장, 1919년 주식회사 조선잠업 이사 등을 역임하며 활발히 활동했다. 1913년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전주를 방문했을 때 박기순이 송덕시를 지어 바치기도 했다.

2.2. 일제 강점기 활동

1901년대한제국 중추원 의관을 잠시 지냈고, 1906년에는 시종원에서 근무했으나, 전북 지역의 대지주이자 근대화 흐름에도 잘 적응한 실업가로서의 약력이 더 두드러진다. 1906년 전북농공은행 설립위원을 맡았고, 1907년 전주금융조합 설립위원이 되었다. 1908년 전북농공은행 은행장에 취임하여 한일 병합 조약 체결 때까지 재직했다.

1909년 일본적십자사 전주지부 위원에 위촉되었고, 한일 병합과 동시에 여산군(현 익산시) 군수에 임명되어 조선총독부 소속 관리로도 근무했다. 이후 전북 지역 유지로서 1916년 전북경평철도 이사, 1918년 조선식산은행 상담역 및 전주금융조합 조합장, 1919년 주식회사 조선잠업 이사를 역임하는 등 여러 직책을 맡아 활발히 활동했다. 1913년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전주를 방문했을 때 박기순이 송덕시를 지어 바친 일도 있다.

1919년 3·1 운동이 발생하여 전국적으로 시위가 확대되면서, 각 지역 유지들을 중심으로 이 운동을 저지하기 위한 기구도 조직되었다. 4월 21일 전주에서 도장관의 지원 아래 전주자성회가 결성되었다. 박기순은 이 단체의 발기인으로 참여한 데 이어 전주지부장에 선출되었고, 시국강연회 개최를 주도했다. 전주자성회는 3·1 운동에 호응하는 사람을 “불온행위를 감히 하는 자”로 지칭하면서, 회원인 지주들 수하의 머슴과 소작인까지 동원해 확산되는 독립 요구와 반일 운동을 제어했다.

이후 전북축산 이사, 전주은행 은행장 등을 지냈고, 1924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발탁되어 1927년까지 3년 동안 재직했다. 1926년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박기순은 전북의 전주, 익산군, 옥구군, 임실군, 남원군, 장수군, 금산군 지역에 986ha의 토지를 소유한 대지주였다. 1930년 전라북도 농회 부회장, 1931년 조선농회 통상위원을 역임했다.

1912년 한국병합기념장을 시작으로, 1915년 다이쇼대례기념장, 1928년 쇼와대례기념장을 받는 등 일본 정부로부터 여러 차례 상을 받았고, 조선총독부로부터도 여러 차례 표창을 받았다. 1926년 정7위에 서위되었다.

2.3. 일제로부터 받은 서훈

1912년 한국병합기념장을 시작으로, 1915년 다이쇼대례기념장, 1928년 쇼와대례기념장을 받았고, 조선총독부로부터 여러 차례 표창을 받았다. 1926년에는 정7위에 서위되었다.

3. 사후

박기순은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 모두 포함되었다.

3.1. 논란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포함되었다.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도 선정되었다.

전북대학교 학생회관 앞에는 1934년 일본인 전주읍장이 세운 덕진공원지비(德津公園之碑)가 남아 있다. 이 비석에는 전주읍장과 박기순의 공적이 적혀 있다. 전주의 덕진공원에도 박기순이 자신의 회갑을 기념해 건립한 정자 취향정이 보존되어 있다. 논란 끝에 2005년에 박기순의 친일 행적을 적은 안내판이 취향정 앞에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