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수 (1900년)
1. 개요
박병수는 1900년 출생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하고 일본 군주를 비판하는 투서를 뿌려 1920년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 비밀결사 용진단을 조직하여 군자금 수합 및 선전활동을 펼치다 체포되어 1922년 징역 1년형을 또 선고받았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하고, 한국독립당 대표전임위원을 역임했으며, 경상남도 도지사 직무대행을 지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 이름 | 박병수 |
|---|---|
| 원래 이름 | 朴秉壽 |
| 출생일 | 1900년 5월 21일 |
| 출생지 | 대한제국 경상남도 마산 원정 54번지 |
| 사망일 | 1962년 11월 8일 |
| 사망지 | 대한민국 경상남도 창원 사저에서 병사 |
| 본관 | 밀양(密陽) |
| 배우자 | 유 |
| 종교 | 유교(성리학) |
| 별명 | 호(號)는 창산(昌山) |
| 자녀 | 슬하 3남 6녀 |
| 거주지 | 대한민국 경상남도 마산 원정 54번지 |
| 학력 | 경상남도 동래고등보통학교(1919년) |
| 직책 | 대한민국 관선기 경상남도 도지사 직무대행 서리 (大韓民國 官選期 慶尙南道 道知事 職務代行 署理) |
|---|---|
| 임기 | 1953년 10월 7일 ~ 1953년 10월 21일 |
| 대통령 | 이승만 (대한민국 대통령) |
| 부통령 | 함태영 (대한민국 부통령) |
| 총리 | 백두진 (대한민국 국무총리) |
| 장관 | 백한성 (내무부 장관) |
| 차관 | 한희석 (내무부 차관) |
| 서훈 |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2005년 8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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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 | 한국독립당 대표전임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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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사이트 | 대한민국 국립 서울현충원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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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초등학교 (경주시) 동문 -
김동리
김동리는 1934년 등단하여 전통적 소재의 현대적 재해석, 운명과 인간 존재 탐구를 통해 한국 문학사에 족적을 남긴 소설가이자 시인, 평론가이지만, 친일 및 반공주의적 행적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
옥산초등학교 (경주시) 동문 -
구상본
구상본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다양한 가명을 사용하며 3.1 운동에 참여하여 독립을 위해 헌신했지만, 후에 한국독립당에서 탈당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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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은 일제강점기의 사실주의 소설가로, 대표작으로는 「빈처」,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등이 있으며, 일제강점기 언론 탄압을 받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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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언론인)
김성수는 인촌이라는 호를 사용한 언론인이자 기업인, 정치인으로, 경성방직 설립, 동아일보 창간, 보성전문학교 인수 및 발전에 기여했으며 제2대 부통령을 역임했으나 친일 논란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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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대한민국의 미학자이자 작가, 평론가, 대학교수인 진중권은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철학 박사 과정을 밟았으며, 여러 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하며 미학, 예술, 정치, 사회에 대한 저술 및 번역 활동과 진보 정당 활동을 해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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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중
윤석중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로서, 아동문학 운동을 이끌고 수많은 동요와 동시집을 발표하며 한국 아동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2. 생애
2.1. 대한 독립 운동에 몸을 바친 청년 시절
1919년 경상남도 동래 지방에서 3·1 대한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고 그 후 대한제국 민본주의 조선 황조 전주 이씨 황실 체제의 회복을 촉구하며 일본 군주를 통박하는 투서를 뿌려 결국 1920년 4월 소위 제령7호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1921년에 만기출감하였다. 만기 출옥 후 그는 차라리 보다 구체적으로 대한 독립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1921년 12월 경상남도 마산(慶尙南道 馬山)에서 향리 동지 전재완(全在完)·이정문(李廷文)·김응윤(金應允) 등과 함께 비밀결사 용진단(勇進團)을 조직하고 회계를 맡았다. 용진단은 단장(전재완)·총무국장(이정문)·서기국장(김응윤)·회계국장(박병수)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군자금 수합 및 선전활동을 통해 해외독립운동 기관을 지원하려던 단체인데 결국 이들은 1921년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이 국민정부 중화민국 대륙 본토 둥베이 지방 청산리(靑山里)에서 일본군을 궤멸시켰다는 사건들을 등사한 전단을 경상남도 창원군(昌原郡) 구산면사무소(龜山面事務所)에 배포하였다가 체포되어 1922년 3월에 징역 1년형을 또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1923년에 만기출감하였다.
2.2. 1945년 광복 이후
1945년 경상남도 양산에서 8·15 조선 광복을 목도하였다. 1948년 1월 25일부터 1948년 8월 26일까지 한국독립당 대표전임위원 직위를 지냈으며, 같은 해 8월 26일을 기하여 한국독립당을 탈당하였다. 1953년 10월 7일부터 1953년 10월 21일까지 경상남도 도지사 직무대행 서리 직책을 잠시 지냈다.
3. 사후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고자 2005년 8월 15일을 기하여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