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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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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영근은 1958년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태어나 노동 운동에 참여하며 시를 쓴 시인이다. 1981년 시 '수유리에서'를 발표하며 데뷔하여, 시집 《취업공고판 앞에서》(1984), 《대열》(1987) 등을 통해 노동자의 삶을 그렸다. 안치환의 노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원작 시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1994년 신동엽창작기금을, 2003년 백석문학상을 수상했다. 2006년 뇌수막염으로 사망했으며, 2015년 박영근문학상이 제정되었다. 2024년 조혜영 시인이 성 상납 및 금품 요구 의혹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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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근 (시인) - [인물]에 관한 문서
시인 정보
이름박영근
본명박영근
출생일1958년 9월 3일
출생지전라북도 부안군
사망일2006년 5월 11일
국적대한민국
수상신동엽창작기금(1994년)
백석문학상(2003년)
학력전주고등학교 졸업
직업시인
배우자성효숙 (화가)
등단1981년반시》(反詩) 6집 시 〈수유리에서〉

2. 생애

박영근은 1980년 군 제대 후 서울로 옮겨 1981년 <말과 힘> 동인지를 발간하고, 구로 3공단 등지에서 노동자 생활을 했다. 같은 해 《반시》 6집에 시 '수유리에서' 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박노해, 백무산 등 노동자 출신 시인들의 출현을 이끌었고, 1980년대 민족민중문학 논쟁에서 노동시와 민중시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1984년 '민중문화운동협의회'와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재창립 회원으로 참여해 민중민족문화운동을 벌이다 1985년 미술동인 '두렁'의 성효숙과 인천으로 이주했다.

민중가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안치환 작곡)의 원작 시인이다.

2006년 5월 11일 결핵성 뇌수막염과 패혈증으로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민족문학작가회의는 '시인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경기도 안성가족묘지에 안장했다.[17]

연도내용
1984년민중문화운동협의회 회원
1987년~1989년민중문화운동연합 회원
1994년제12회 신동엽창작기금 수혜
1998년~2000년민족문학작가회의 인천지회 부회장
2000년~2001년인천민예총 사무국장
2003년제5회 백석문학상 수상
2002년~2005년인천민예총 부지회장
2004년~2005년민족문학작가회의 시분과위원장
2002년~2006년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2. 1. 유년 시절과 청소년기

박영근은 1958년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교육열로 인해 고향을 떠나 여러 해를 보냈으며, 익산중학교,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1] 고등학생 시절 《창작과비평》, 《사상계》 잡지를 탐독했으며, 고은, 황석영, 김지하 등의 작품을 탐구했다. 그는 학교에서 10월 유신과 민청학련 사건에 대한 발언으로 인해 학교의 감시 대상이 되었다. 억압적인 학교 생활이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판단한 박영근은 결국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이듬해 그는 고등학교 문학 서클에 가입하여 소비에트 혁명 시인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의 스타일로 열정적인 시를 발표했다. 그는 이후 집을 수색당하고 20일 동안 경찰서에 구금되는 어려움을 겪었다.[2]

2. 2. 노동 운동과 문학 활동

박영근은 1980년 군 제대 후 서울로 옮겨 1981년 <말과 힘> 동인지를 발간하고, 구로 3공단 등지에서 노동자 생활을 했다. 1981년반시》 6집에 시 '수유리에서' 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17] 박노해, 백무산 등 노동자 출신 시인들의 출현을 이끌었고, 1980년대 민족민중문학의 주체 논쟁에서 노동시와 민중시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17]

1984년 '민중문화운동협의회'와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재창립 회원으로 참여했고, 1985년 가을 미술동인 '두렁'의 성효숙과 인천으로 이주했다.[17] 1982년에는 구로공단 내 제본 공장에서 일하며 노동 운동, 학생 운동, 민중 문화 운동 등 다양한 활동가들과 교류했다. 신경림 등과 함께 민요연구회를 창립하기도 했다.[4]

1993년 세 번째 시집 《김미순 전(傳)》으로 1994년 제12회 '신동엽창작기금'을 받았다. 그는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중요하며, 앞으로는 시적 통찰력이 담긴, 예술적으로도 완성도 높은 시를 써나가고 싶다"고 말했다.[17]

이후 민족문학작가회의 인천지회 부회장, 인천민예총 사무국장 및 부지회장, 2004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시분과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사망 직전까지 (사)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였다.[17] 1990년대까지 인천 부평에서 노동자이자 운동가로 생활하며 작품에 노동자의 현실을 반영하려 노력했다. 박종철 관련 영상 제작, 출판사 기획 위원, 문예지 편집자로도 활동했다.[4]

민중가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안치환 작곡)는 그의 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백제(百濟). 6'이 원작이다.[17] 1987년에는 이 시가 안치환에 의해 "솔아 솔아 푸른 솔아"로 개작되어[5] 대학가와 노동 현장에서 애창되었다.[6]

그는 노동 현장의 체험을 서정적으로 표현하며 노동 현실을 고민했던 시인이었다.[17]

2. 3. 1990년대 이후의 활동과 죽음

1993년 세 번째 시집 《김미순 전(傳)》(실천문학사)으로 1994년 제12회 신동엽창작기금을 받았다. 그는 "노동자가 주인공이 되는 시만 쓰겠다는 생각은 없다.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는 시적 통찰력이 담긴, 예술적으로도 완성도 높은 시를 써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 뒤 시인은 민족문학작가회의 인천지회 부회장, 인천민예총 사무국장, 인천민예총 부지회장, 2004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시분과위원장 등을 맡았고,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도 (사)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를 맡고 있었다.[17]

민중가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안치환 작곡)의 원작 시인이다. (1987년 안치환에 의해 노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로 개작되었다.)[5]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6]는 대학가와 노동 현장에서 애창곡이 되었다.

2006년 5월 3일 뇌수막염으로 인천의료원에서 투병 중 상태가 악화돼 서울 백병원으로 급히 옮겼으나, 5월 11일 오후 8시 40분 결핵성 뇌수막염과 패혈증으로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민족문학작가회의는 66명 규모의 장례위원회를 구성, '시인장'으로 치르고, 경기도 안성가족묘지에 안장했다.[17] 2015년에는 박영근 문학상이 제정되었고,[7] 2016년에는 그의 10주기를 기념하여 전집이 출간되었다.[8]

연도내용
1994년제12회 신동엽창작기금 수혜
1998년~2000년민족문학작가회의 인천지회 부회장
2000년~2001년인천민예총 사무국장
2003년제5회 백석문학상 수상
2002년~2005년인천민예총 부지회장
2004년~2005년민족문학작가회의 시분과위원장
2002년~2006년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3. 작품 세계

박영근은 1984년 첫 시집 《취업공고판 앞에서》에 수록된 〈서시〉에서 "가다가 가다가/ 울다가 일어서다가/ 만나는 작은 빛들을/ 詩라고 부르고 싶다"고 했다. 또한 "때때로 스스로의 맨살을 물어뜯는/ 외로움 속에서 그러나/ 아주 겸손하게 작은 목소리로/ 부끄럽게 부르는 이름"을 詩라고 하였다.[15]

1990년대 말, 박영근은 논술학원 교사 채용시험을 보았지만, 학원에서는 시집을 4권이나 내고 신동엽창작기금을 수상한 그에게 '대학 졸업장을 가져오라', '모파상에 대해 써보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그의 친구인 시인 신현수는 '박영근'이라는 시에서 "시험보고 와서/ 술을 먹는데/ 영근이는 눈물 글썽이며/ 자존심 때문에 졸업장 없다는 말은 못하고/ 문학단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안되겠다고 했단다./ 세상이여 제발/ 내 친구 영근이에게/ 예의를 지켜라."라고 썼다.[18]

3. 1. 1980년대 시의 특징

박영근 시인의 1980년대 작품의 주요 주제는 노동자의 일상과 고투였다. 이 작품들은 노동자이자 활동가였던 박영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9] 1980년대는 박영근이 시를 쓰는 기본적인 조건이 노동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박영근의 시 역시 변화했다.[10]

1984년 출간된 《취업공고판 앞에서》는 1970, 80년대 한국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삶을 다룬다.[10] 그러나 시적 화자의 어조에서는 연대 의식이나 노동자의 투쟁 정신을 찾기 어렵다. 예를 들어, 표제시 "취업 공고판 앞에서"의 화자는 최근 군에서 제대하여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력서를 움켜쥐고 취업 공고판 앞에 서 있다. 따라서 시적 화자의 관심은 노동자의 현실을 현실적으로 묘사하거나 노동자에게 어떤 종류의 자유에 대한 전망을 제시할 수 없다. 오히려 이 시집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자신의 공간을 주장할 수 없고 도시의 주변을 방황하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실존적 슬픔이다.[11] 이러한 박영근 시의 측면은 시인이 고향을 떠나 다른 도시에서 생계를 꾸려야 했던 자신의 과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10]

이에 비해 1987년 출간된 《대열》은 노동자가 자신의 계급 정체성을 분명히 인식하게 되고, 노동자 연대와 자본주의와의 투쟁 간의 갈등을 부각한다.[9] 시인의 투쟁은 다양한 시적 형식을 실험하면서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산문시에 시적 구절을 추가하거나 공장의 낙서 벽 전체를 페이지에 베껴 쓰는 것이 포함된다. 시인이 이러한 실험을 통해 가장 중요하게 원하는 것은 시와 현실의 접점을 확립하는 것이다. 《포장 센터》의 첫 구절, "휴식 벨이 울리고 내가 화장실에 가다가 선적 구역 라운지를 흘끗 보았는데, 그 지저분한 트럭 운전사와 하역 작업자들이 도박을 시작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는 시인이 노동자와 그들의 투쟁의 현실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10] "농성장의 밤", "자본가", "아메리카", "싸움 전야" 등과 같은 작품을 통해 박영근은 제목만으로도 노동 투쟁의 주제와 테마를 포착할 수 있었다. 박영근은 1980년대 노동 현실의 거의 모든 측면을 생생한 묘사로 제시할 수 있었다.[11]

3. 2. 1990년대 이후 시의 특징

박영근의 시집 《김미순전》(1993)에서 시적 화자는 동료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표명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으로서 나타난다. 노동자 투쟁과 의지에 대한 낙관주의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과거 투쟁에 대한 희미해져 가는 기억들이 고통스러운 감정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변화는 1990년대 한국 노동 운동의 급격한 쇠퇴와 정체를 반영한다.[9] 박영근 시인이 생전에 발표한 마지막 시집은 《저 꽃이 불편하다》(2002)로, 그가 걸어온 길을 응시하고 있다. 시 「길」은 그가 걸어온 길을 황량한 겨울 풍경으로 묘사한다. 고된 여정 끝에 시인은 집에 도착하지만, 그가 애틋하게 기억하는 이들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결국 시인은 집 없이 끝없이 방황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길 위에 서 있다는 자각은 삶의 허무함의 무게를 견디고 현실 속에서 존재의 긴장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12]

4. 논란

조혜영 시인은 2024년 시집 《그 길이 불편하다》에 수록된 시 〈미투〉를 통해 박영근 시인의 생전 성 상납 및 금품 요구 의혹을 제기했다.[19] 자세한 내용은 하위 문단을 참조.

4. 1. 성 상납 및 금품 요구 의혹

조혜영 시인은 2024년에 출간된 시집 《그 길이 불편하다》에 수록된 시 〈미투〉를 통해 박영근 시인이 생전에 성 상납과 금품을 요구했다고 폭로했다.[19] 시에 따르면, 박영근은 석바위 사거리의 '수(水)다방'에서 하룻밤 잠자리를 조건으로 문단 데뷔를 제안하고, 유명 문예지에 작품을 실어주겠다며 200만을 요구했다. 조혜영 시인은 "가진 것 없는 노동 시인"이었던 자신이 "자기보다 어리고 힘없는 후배 노동 시인"에게 이러한 일을 당했다고 고발하며,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겼다.

시는 박영근 사후에도 그를 기리는 문학상 제정, 시비 건립, 기념 행사 등이 계속되는 현실을 비판한다. 많은 문인들이 그의 시비 앞에 모여 "시대의 진정한 노동자 시인"이라 칭송하고, 그의 시로 만든 노래를 부르는 동안, 젊은 대학원생들조차 그의 문학을 연구하며 추모하는 상황에 대해 조혜영 시인은 "차마 침을 뱉을 수 없어" 사후 미투를 한다고 밝히고 있다.

5. 수상 경력

6. 작품 목록

박영근 시인은 여러 권의 시집과 산문집, 시선집을 발표했다.

종류발간 연도제목출판사
산문집1984년《공장옥상에 올라》풀빛
시집1984년《취업공고판 앞에서》청사
시집1987년《대열》풀빛
시집1993년《김미순 전(傳)》실천문학사
시집1997년《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창비
시집2002년《저 꽃이 불편하다》창비
시론2004년《오늘, 나는 시의 숲길을 걷는다》실천문학사
시집2007년유고시집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창비
시선집2009년《솔아푸른솔아》


6. 1. 시집

발간 연도제목출판사
1984년《취업공고판 앞에서》청사
1987년《대열》풀빛
1993년《김미순 전(傳)》실천문학사
1997년《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창비
2002년《저 꽃이 불편하다》창비
2007년유고시집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창비
2009년첫 시선집 《솔아푸른솔아》


6. 2. 산문집


  • 1984년 산문집 《공장옥상에 올라》(풀빛)[1]

6. 3. 시선집


  • 2009년 첫 시선집 《솔아푸른솔아》(강)

6. 4. 전집

제목출판사출판년도
솔아 푸른 솔아2009년
박영근 전집 1·2실천문학사2016년


7. 기념 사업

박영근 시인 사후, 시 '미투' 발표로 사건이 알려졌다. 조성웅 시인은 상 반납 입장문을 냈다.[19] 조혜영 시인도 후배 노동 시인에게 사후 미투를 당했다.

7. 1. 박영근문학상

박영근 시인 사후, 시 '미투' 발표로 사건이 알려졌다. 조성웅 시인은 2024년 9월 24일 상 반납 입장문을 냈다.[19] 조혜영 시인도 가진 것 없는 노동 시인이었으나, 자기보다 어리고 힘없는 후배 노동 시인에게 사후 미투를 당했다. 이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졌다.

7. 2. 시비 건립

2012년 9월 1일 인천시 부평구 신트리 공원에 시비가 세워졌다. 앞면에는 자연석(보령 오석)에 시인의 시 "솔아 푸른 솔아"의 원문 두 줄이 육필로 새겨졌고, 뒷면에는 선후배 문인들로 구성된 ‘박영근 시인을 추모하는 사람들’을 주축으로 한 시비건립위원회에서 쓴 건립문이 새겨져 있다.[20]

7. 3. 기타

고 박영근 시인 사후, 시 '미투' 발표로 사건이 알려졌다. 조성웅 시인은 지난 10일 상 반납 입장문을 발표했다.[19] 조혜영 시인은 가진 것 없는 노동 시인이 자기보다 어리고 힘없는 후배 노동 시인에게 사후 미투를 당했다고 언급했다.

참조

[1] 웹사이트 Association for the Commemoration of the Movement for Democracy https://www.kdemo.or[...]
[2] 간행물 "History of Buan People 35- \"Pine Tree, Green Pine Tree\" Korean Democracy Movement and the Buan People in the 1970s and 80s, mixed emotions" Buan Independent Newspaper
[3] 웹사이트 Association for the Commemoration of the Movement for Democracy Member Information http://www.ibuan.com[...] 2018-06-15
[4] 웹사이트 Association for the Commemoration of the Movement for Democracy Member Information https://www.kdemo.or[...]
[5] 웹사이트 First known as a folk song, "Pine Tree, Green Pine Tree" was released in 1987 as a full album after a series of pro-democracy movements. Its popularity was enough to reach 7 on television music charts. http://encykorea.aks[...]
[6] 뉴스 The Birth of An Chihwan's "Pine Tree, Green Pine Tree" http://news.khan.co.[...] Gyeonghyangsinmun 2018-05-20
[7] 뉴스 Poet Gim Judae's Brush Park Young-geun Collected Works http://www.hani.co.k[...] Hankyoreh 2015-05-11
[8] 뉴스 Worker's poet Park Youngguen entire collection to be released on the 10 anniversary of his death https://www.hankooki[...] Hankook Ilbo 2016-05-04
[9] 간행물 Looking back on the life and death of a poet and critic Hwanghaemunhwa 2016-Autumn
[10] 간행물 Factory and Hometown – Reading Park Young-geun's Collection Changbi 2016-Autumn
[11] 간행물 Flower Roots Facing the Travel's Records: Park Young-geun Memorial Changbi 2016-Autumn
[12] 간행물 A Dark Song for the 'Road' between Memory and Reality – Park Young-geun, 'That Flower is Uncomfortable' Changbi, Silcheonmunhaksa 2003-02
[13] 뉴스 Shin Dongyup Prize Recipient https://newslibrary.[...] Kyunghyang Shinmun 1994-03-22
[14] 뉴스 Park Young-geun at the 5 Baeksok Literary Prize https://news.naver.c[...] Yonhap News 2003-10-21
[15] 뉴스 현실과의 타협 거부 ‘푸른 솔’처럼 살다간 시인 http://news.khan.co.[...] 경향뉴스 2010-07-05
[16] 뉴스 고 박영근 시인의 삶과 작품세계 http://www.segye.com[...] 세계일보 2010-07-05
[17] 뉴스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원작시인 박영근, 못난 세상 버리다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10-07-05
[18] 뉴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박영근 시인 타계 http://news.hankooki[...] 한국일보 2010-07-05
[19] 웹인용 박영근 작품상 반납한 조성웅 "조혜영 시인의 '미투', 외면할 수 없었다" https://www.ohmynews[...] 2024-09-24
[20] 뉴스 노동시인 故박영근 시비 건립, 그대가 남긴 올곧은 정신 후일에도 길이 기억되기를 … http://www.kyeongin.[...] 경인일보 2012-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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