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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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인근은 1960년대 사회복지사업에 참여하여 형제보육원을 운영하고 한국노숙인복지시설협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1995년 호주에 대규모 골프장을 소유하기도 했다. 1980년대 형제복지원 사건으로 불법 감금, 강제 노역, 사망, 암매장 등의 인권 유린 혐의를 받았고, 2016년 사망 후 2018년 서훈이 취소되었다.

박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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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박인근은 경남 울주군 강동면 정자리(현재는 울산광역시 북구 강동동)의 빈농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하고 입대 후 헌병 하사관 특무 상사로 지냈다. 31세였던 1960년 7월에 장인이 세운 부산광역시 남구 감만동에 있는 형제복지원 사회 복지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권투 체육관 관장일때는 부산 아마추어복싱 연맹에서 전무 이사를 하기도 하였다.

1965년 7월, 부산시로부터 아동복지시설 인가를 받아 국고 지원으로 보육원을 운영했으며 1975년 7월에는 다시 부산시와 부랑인 일시 보호 위탁 계약을 맺고 사회 복지 사업을 시작하였다. 이후 한국노숙인복지시설협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1995년에는 호주에서 축구장 크기에 골프장을 소유하였는데, 호주 최대 규모의 골프장이었다고 한다. 당시 하루 손님이 100명 가량인데 골프장 직원은 한국인 2명뿐으로, 박인근은 직원이 마음에 안들면 골프채로 때렸다고 한다.

그러다가 2016년 6월 27일, 향년 87세로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018년 7월 10일 행정안전부는 '부적절한 서훈 취소(안)'을 심의·의결해 서훈을 취소했다.

2.1. 초기 생애와 사회복지사업 시작

박인근은 울산광역시 북구 강동동의 빈농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하고 입대 후 헌병 하사관 특무 상사로 지냈다. 31세였던 1960년 7월에 장인이 세운 부산광역시 남구 감만동에 있는 형제보육원 사회 복지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권투 체육관 관장일때는 부산 아마추어복싱 연맹에서 전무 이사를 하기도 하였다.

1965년 7월, 부산시로부터 아동복지시설 인가를 받아 국고 지원으로 보육원을 운영했으며 1975년 7월에는 다시 부산시와 부랑인 일시 보호 위탁 계약을 맺고 사회 복지 사업을 시작하였다. 이후 한국노숙인복지시설협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1995년에는 호주에서 축구장 크기에 골프장을 소유하였는데, 호주 최대 규모의 골프장이었다고 한다. 당시 하루 손님이 100명 가량인데 골프장 직원은 한국인 2명뿐으로, 박인근은 직원이 마음에 안들면 골프채로 때렸다고 한다.

그러다가 2016년 6월 27일, 향년 87세로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018년 7월 10일 행정안전부는 '부적절한 서훈 취소(안)'을 심의·의결해 서훈을 취소했다.

2.2. 형제복지원 운영과 해외 사업

박인근은 경남 울주군 강동면 정자리(현재는 울산광역시 북구 강동동)의 빈농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입대, 헌병 하사관 특무 상사로 근무했다. 31세였던 1960년 7월 장인이 세운 부산광역시 남구 감만동의 형제보육원의 사회 복지사업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권투 체육관 관장 시절에는 부산 아마추어복싱 연맹에서 전무 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1965년 7월, 부산시로부터 아동복지시설 인가를 받아 국고 지원으로 보육원을 운영했으며, 1975년 7월에는 부산시와 부랑인 일시 보호 위탁 계약을 맺고 사회 복지 사업을 본격화했다. 이후 한국노숙인복지시설협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1995년에는 호주에서 축구장 크기의 골프장을 소유했는데, 이는 호주 최대 규모였다고 한다. 당시 하루 손님이 100명 가량이었으나 골프장 직원은 한국인 2명뿐이었고, 박인근은 직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골프채로 때렸다고 한다.

2016년 6월 27일,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018년 7월 10일 행정안전부는 '부적절한 서훈 취소(안)'을 심의·의결하여 그의 서훈을 취소했다.

2.3. 사망과 서훈 취소

박인근은 울산광역시 북구 강동동의 빈농에서 태어나 헌병 하사관 특무 상사로 근무했다. 1960년 7월부터 부산광역시 남구 감만동에 있는 형제보육원 사회 복지사업을 시작하였다. 아마추어복싱 연맹에서 전무 이사를 하기도 하였다.

1965년 7월 아동복지시설 인가를 받아 보육원을 운영했고, 1975년 7월 부랑인 일시 보호 위탁 계약을 맺었다. 한국노숙인복지시설협회 초대 회장을 지냈으며, 1995년 호주에서 큰 규모의 골프장을 소유하기도 했다.

2016년 6월 27일 향년 87세로 사망했으며, 2018년 7월 10일 행정안전부는 '부적절한 서훈 취소(안)'을 심의·의결해 서훈을 취소했다.

3. 형제복지원 사건

그는 부랑인 선도를 명목으로 역이나 길거리에서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 뿐만 아니라 멀쩡한 학생, 심지어 일본인까지도 두명이나 끌고 가서 불법 감금시키고 강제노역을 시켰으며, 저항하면 굶기고 구타하거나 심지어는 죽이고 암매장까지 했다. 이런식으로 12년동안 무려 500명 이상이 사망하고, 일부 시신은 300~500만원에 의과대학의 해부학 실습용으로 팔려갔다. 심지어는 자신의 땅에 운전교습소를 만들기 위해 원생들을 축사에 감금했고, 하루 10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시켰다. 1987년 3월 22일 사건 당일에는 구타로 1명을 죽였으며, 35명이 탈출했다. 그는 형제복지원의 직원 주영은 (당시 48세)등 4명과 함께 구속되었고, 1989년 9월 14일에 징역 2년 6월형이 확정되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예전의 일이라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그가 세운 신영중고등학교에서 2012년에 무인도 체험 학생 2명이 익사 하고 복지재단 대출 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다시금 사회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형제복지원은 없어지지 않고 형제복지지원재단으로 이름만 바뀌어 새로운 시설을 계속 운영하였다.

3.1. 부랑인 강제 감금 및 인권 유린

박인근은 부랑인 선도를 명목으로 역이나 길거리에서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뿐만 아니라 멀쩡한 학생, 심지어 일본인까지도 두 명이나 끌고 가서 불법 감금시키고 강제노역을 시켰다. 저항하면 굶기고 구타하거나 심지어는 죽이고 암매장까지 했다. 12년 동안 무려 500명 이상이 사망하고, 일부 시신은 300~500만원에 의과대학의 해부학 실습용으로 팔려갔다. 자신의 땅에 운전교습소를 만들기 위해 원생들을 축사에 감금했고, 하루 10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시켰다. 1987년 3월 22일 사건 당일에는 구타로 1명을 죽였으며, 35명이 탈출했다. 그는 형제복지원의 직원 주영은 (당시 48세)등 4명과 함께 구속되었고, 1989년 9월 14일에 징역 2년 6월형이 확정되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예전의 일이라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그가 세운 신영중고등학교에서 2012년에 무인도 체험 학생 2명이 익사하고 복지재단 대출 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다시금 사회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형제복지원은 없어지지 않고 형제복지지원재단으로 이름만 바뀌어 새로운 시설을 계속 운영하였다.

3.2. 강제 노역, 폭행, 사망 및 암매장

그는 부랑인 선도를 명목으로 역이나 길거리에서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뿐만 아니라 멀쩡한 학생, 심지어 일본인까지도 두 명이나 끌고 가서 불법 감금시키고 강제 노역을 시켰으며, 저항하면 굶기고 구타하거나 심지어는 죽이고 암매장까지 했다. 이런 식으로 12년 동안 무려 500명 이상이 사망하고, 일부 시신은 300~500만원에 의과대학의 해부학 실습용으로 팔려갔다. 자신의 땅에 운전교습소를 만들기 위해 원생들을 축사에 감금했고, 하루 10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시켰다. 1987년 3월 22일 사건 당일에는 구타로 1명을 죽였으며, 35명이 탈출했다. 그는 형제복지원의 직원 주영은 (당시 48세) 등 4명과 함께 구속되었고, 1989년 9월 14일에 징역 2년 6월형이 확정되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예전의 일이라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그가 세운 신영중고등학교에서 2012년에 무인도 체험 학생 2명이 익사하고 복지재단 대출 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다시금 사회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형제복지원은 없어지지 않고 형제복지지원재단으로 이름만 바뀌어 새로운 시설을 계속 운영하였다.

3.3. 사건 은폐 시도와 1987년 탈출 사건

박인근은 부랑인 선도를 명목으로 역이나 길거리에서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뿐만 아니라 학생, 심지어 일본인까지도 불법 감금하고 강제 노역을 시켰다. 저항하면 굶기고 구타하거나 죽이고 암매장까지 하였으며, 12년 동안 5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일부 시신은 의과대학에 해부학 실습용으로 팔려나갔다. 그는 자신의 땅에 운전교습소를 만들기 위해 원생들을 축사에 감금하고 하루 10시간 이상 중노동을 시켰다.

1987년 3월 22일, 구타로 1명이 사망하고 35명이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박인근은 형제복지원 직원 4명과 함께 구속되었고, 1989년 9월 14일 징역 2년 6월형이 확정되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2012년 그가 세운 신영중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사건과 복지재단 대출 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다시 사회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형제복지원은 형제복지지원재단으로 이름만 바뀌어 새로운 시설을 계속 운영하였다.

3.4. 사건의 재조명과 진상 규명 노력

박인근은 부랑인 선도를 명목으로 역이나 길거리에서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뿐만 아니라 학생, 심지어 일본인까지도 불법 감금하고 강제 노역을 시켰다. 저항하면 굶기고 구타하거나 심지어는 죽이고 암매장까지 했으며, 12년 동안 5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일부 시신은 의과대학의 해부학 실습용으로 팔려나갔다. 그는 자신의 땅에 운전교습소를 만들기 위해 원생들을 축사에 감금하고 하루 10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시켰으며, 1987년 3월 22일에는 구타로 1명을 죽이고 35명이 탈출했다. 그는 형제복지원 직원 4명과 함께 구속되었고, 1989년 9월 14일에 징역 2년 6월형이 확정되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신영중고등학교에서 2012년에 발생한 무인도 체험 학생 익사 사고와 복지재단 대출 비리 사건으로 다시 사회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형제복지원은 형제복지지원재단으로 이름만 바뀌어 새로운 시설을 계속 운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