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현 (1911년)
1. 개요
박희현(1911년 ~ 1999년)은 일제강점기, 미군정 시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다양한 공직과 기업인,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신의주고등보통학교 졸업 후 평안북도 지사실 고원, 조선총독부 내무국 지방과 등을 거쳐 미군정청에서 행정관, 재무부 회계국장 등을 역임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재무부 차관, 장관을 지냈으며, 상업은행 대주주, 조선일보 취체역 임원, 풍한산업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5.16 군사 정변 이후 정치 활동이 금지되었으나, 이후 민정당 창당에 참여했고, 평안북도 행정자문위원을 지냈다. 재무부 장관 재임 당시 경제 정책 실패로 불신임을 받았고, 부정부패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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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관료 -
최남선
최남선은 1890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역사학자이며, 《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현대 한국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3·1 운동 독립선언서 기초, 친일 행적, 단군 연구, 《단군론》, 《불함문화론》 저술 등의 활동을 했다. -
일제강점기의 관료 -
김창영 (1890년)
김창영은 일제강점기 경찰 및 관료, 만주국 관리로서 항일 무장 세력 탄압과 귀순 공작에 참여하고 금산군수와 전라남도 참여관을 지냈으며, 광복 후 경성부부윤을 역임했으나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처벌받고 친일파 명단에 포함되었다. -
대한민국의 정치인 -
강명도
강명도는 평양 출신으로 북한 요직을 거쳐 1994년 탈북하여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김일성 외척 출신의 북한 전문가로, 대학교수와 방송 활동, 저술 등을 통해 북한 사회의 실상과 내부 비밀을 알리고 있다. -
대한민국의 정치인 -
김학규 (19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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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기업인 -
서형원
서형원은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거쳐 과천시의회 의원 및 의장을 역임하고 녹색당 풀뿌리정치지원단장으로 활동한 환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
대한민국의 기업인 -
문재인
2. 약력
박희현의 약력은 다음과 같다.
| 기간 | 직책 |
|---|---|
| 1930년 4월 ~ 1933년 5월 | 평안북도지사실 고원 |
| 1930년 ~ 1932년 | 제5회 지방행정강습소 수학 |
| 1933년 5월 ~ 7월 | 평안북도 초산군 속 |
| 1936년 7월 ~ 1941년 3월 | 평안북도청 내무국 지방과 촉탁직원 |
| 1941년 3월 ~ 1945년 8월 | 조선총독부 내무국 지방과 속 |
| 1945년 | 조선총독부 내무국 지방과장 |
| 1945년 9월 | 미군정청 지방행정과 행정관 |
| 1945년 ~ 1946년 | 미군정청 내무국 지방과장 겸 미군정장관 영어통역 |
| 1946년 5월 ~ 1947년 9월 | 미군정청 재무부 사계국 행정관 |
| 1947년 9월 | 남조선과도정부 재무부 회계국장 |
| 1949년 6월 10일 | 대한민국 재무부 회계국장 |
| 1949년 11월 15일 | 미군정 식량공사 청산위원회 위원 |
| 1950년 1월 25일 | 한미재정경제협의회 한국측 대표 |
| 1950년 2월 | 기획예산처 예산국장 |
| 1951년 9월 ~ 1953년 | 제3대 재무부 차관 |
| 1952년 | 기획예산처 차장 겸임 |
| ~ 1953년 10월 1일 | 정부 특별징계위원회 위원 |
| 1953년 11월 18일 | 대한증권업협회 창립 |
| 1953년 9월 9일 ~ 1954년 7월 1일 | 제4대 재무부 장관 |
| 1954년 | 상업은행 대주주 |
| 1954년 7월 1일 ~ 7월 6일 | 제7대 상공부 장관 |
| 1954년 7월 6일 | 국회 불신임안 통과로 사직 |
| 1954년 | 조선일보사 주주 |
| 1956년 | 풍한산업, 풍한주조 대표이사 사장 겸 마닐라지점장 |
| 1957년 ~ 1960년 | 조선일보 취체역 임원 |
| 1957년 | 풍한산업 취체역 회장 |
| 1957년 | 한국주정협회 회장 |
| 1959년 5월 9일 | 재무부 재정금융위원회 자문위원 |
| - | 협동생명보험주식회사 대표이사 |
| 1960년 | 신민당 입당 |
| 1961년 | 5.16 군사 정변 후 정치활동금지대상자 지정 |
| 1963년 2월 1일 | 정치정화법 해제로 정치활동 허용 |
| 1963년 3월 14일 | 민정당 창당 참여 |
| - | 동원예식장(東苑禮式場) 대표이사 |
| - | 삼필무역주식회사 회장 |
| 1974년 5월 3일 ~ 1976년 5월 2일 | 평안북도 행정자문위원(박천군 지역구) |
| 1978년 5월 3일 | 평안북도 행정자문위원 |
| 1999년 4월 21일 | 서울 연희동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사망 |
2.1. 일제강점기 및 미군정 시기
박희현은 신의주공립보통학교와 1930년 신의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30년 4월부터 1933년 5월까지 평안북도지사실 고원으로 근무했고, 1930년부터 1932년까지 제5회 지방행정강습소를 수료했다. 1933년 5월부터 7월까지는 평안북도 초산군에서 근무했다.
1936년 7월부터 1941년 3월까지 평안북도청 내무국 지방과 촉탁직원으로, 1941년 3월부터 1945년 8월까지는 조선총독부 내무국 지방과에서 근무했다. 1945년에는 조선총독부 내무국 지방과장을 역임했다.
1945년 9월부터 미군정청 지방행정과 행정관으로 활동했으며, 1945년부터 1946년까지 미군정청 내무국 지방과장 겸 미군정장관 영어통역을 담당했다. 1946년 5월부터 1947년 9월까지는 미군정청 재무부 사계국 행정관, 1947년 9월에는 남조선과도정부 재무부 회계국장을 역임했다.
2.2.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49년 6월 10일 대한민국 재무부 회계국장에 임명되었다. 1949년 11월 15일 미군정 식량공사 청산위원회 위원으로 추가 위촉되었다. 1950년 1월 25일 한미재정경제협의회가 설치되자 김훈, 이병호 등과 함께 한국 측 대표단의 한 명으로 참여했다. 1950년 2월 기획예산처 예산국장을 거쳐 1951년 9월부터 1953년까지 제3대 재무부 차관을 지냈다. 1952년에는 기획예산처 차장을 겸임했다. 1953년 10월 1일 정부 특별징계위원회 위원에서 해촉되었다.
1953년 11월 18일 대한증권업협회 창립에 참여했다. 1953년 9월 9일부터 1954년 7월 1일까지 제4대 재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1954년 상업은행 대주주가 되었으며, 1954년 7월 1일부터 7월 6일까지 제7대 상공부 장관을 지냈다.
1954년 7월 6일 국회에서 경제정책 실패를 이유로 민주당 등 야당의 공세를 받았고, 일부 자유당 의원들까지 동조하면서 불신임안이 통과되어 사직했다.
2.3. 기업인 및 정치 활동
1954년 상업은행 대주주가 되었다. 조선일보사 주주도 겸하였다. 1956년 풍한산업, 풍한주조 대표이사 사장 겸 마닐라지점장이었다. 1957년부터 1960년까지 조선일보 취체역 임원을 역임했다. 1957년 풍한산업 취체역 회장이 되었다.
1957년 한국주정협회 회장이었다. 1957년 7월 세관에서 주정 원료 반입을 금지하자 김재무부장관에게 항의전화했다. 그러나 당밀 술 주정의 원료 당밀 수입 후, 관세액 5700 중 1000만 납부하고 나머지는 납부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문제가 됐다. 1959년 5월 9일 재무부 재정금융위원회 자문위원이었다. 협동생명보험주식회사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1960년 신민당에 입당하여 정치활동을 시작하였다. 1961년 5.16 군사 정변 후 군사정권에 의해 정치정화법에 따른 정치활동금지대상자로 지정되었다. 1963년 2월 1일 정치정화법 해제로 정치활동이 허용되었다. 1963년 3월 14일 민정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동원예식장(東苑禮式場) 대표이사와 삼필무역주식회사 회장을 역임하였다. 1974년 5월 3일부터 1976년 5월 2일까지 평안북도 행정자문위원(박천군 지역구)을 역임했고, 1978년 5월 3일 다시 평안북도 행정자문위원이 되었다.
3. 논란 및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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