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계 (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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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반계는 전한 시대의 인물로, 우내사, 하동태수를 거쳐 어사대부를 역임했다. 그는 하동태수 재임 중 무제에게 하천을 개통하여 농지를 늘릴 것을 제안했고, 무제가 이를 받아들여 대규모 공사를 진행했으나, 황하의 물길 변화로 인해 실패했다. 이후 조정은 이주해 온 월인들에게 땅을 나누어주고 소부로 하여금 세금을 걷게 했다. 반계의 행적은 《사기》와 《한서》에 기록되어 있다.

반계 (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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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행적

반계는 전한 무제 때 활동한 관리이다. 우내사와 하동태수, 어사대부 등의 주요 관직을 거쳤다. 특히 하동태수 재임 시절에는 황하 유역의 관개 사업을 추진하였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2.1. 초기 관직 생활

반계는 전한 무제 때 활동한 관리이다. 원광 5년(기원전 130년)에 수도의 행정을 담당하는 우내사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하동태수를 거쳐 원삭 5년(기원전 124년)에는 공손홍의 뒤를 이어 어사대부로 승진하였다.

2.1.1. 우내사 임명

원광 5년(기원전 130년), 우내사에 임명되었다.

2.1.2. 어사대부 승진

원광 5년(기원전 130년)에 우내사로 임명되었다. 이후 하동태수를 지냈다. 하동태수로 재임하던 중 무제에게 하천을 뚫어 농지를 넓힐 것을 건의하였다. 무제는 이를 받아들여 수만 명의 인력을 동원해 하천을 파고 농지를 개간하였다. 그러나 몇 년 뒤 하수의 물길이 바뀌면서 하천은 제 기능을 상실했고, 개간지에 정착한 농민들은 종자조차 거두지 못할 정도로 땅이 척박해져 오랫동안 버려졌다. 나중에 조정에서는 이 땅을 이주해 온 월인(越人)들에게 나누어 주고 소부를 통해 약간의 세금을 징수하도록 하였다. 원삭 5년(기원전 124년), 반계는 하동태수에서 어사대부로 승진하였다.

2.2. 하동태수 시절의 관개 사업

반계는 하동태수로 재임하던 중 무제에게 하천을 뚫어 농지를 늘릴 것을 제안하였고, 무제는 이를 받아들여 수만 명의 인부를 동원하여 대규모 관개 사업을 시작하였다. 이 사업의 구체적인 진행 과정과 결과는 하위 문단에서 자세히 다룬다.

2.2.1. 관개 사업의 실패

반계는 하동태수로 재임하던 중 무제에게 하천을 뚫어 농지를 늘릴 것을 제안하였다. 무제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수만 명의 인부를 동원해 하천을 파고 농지를 개간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하수의 물길이 바뀌면서 새로 만든 하천은 제 기능을 잃게 되었다. 이로 인해 개간지에 정착한 농민들은 종자조차 거두지 못할 정도로 농사를 망쳤고, 결국 땅은 오랫동안 버려지게 되었다. 이후 조정에서는 이주해 온 월인(越人)들에게 이 땅을 나누어 주고, 소부를 통해 약간의 세금을 거두도록 조치하였다.

2.2.2. 실패 이후의 조치

반계가 하동태수로 재임하던 중 무제에게 하천을 파서 농경지를 넓히자고 건의하였다. 무제는 이를 받아들여 수만 명의 인력을 동원해 공사를 진행했으나, 몇 년 지나지 않아 하수의 물길이 변하면서 새로 만든 하천은 쓸모없게 되었다. 개간지에 정착한 농민들은 종자조차 수확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결국 해당 토지는 오랫동안 버려진 땅이 되었다. 이후 조정에서는 이주해 온 월인(越人)들에게 이 땅을 나누어 주고, 소부가 약간의 세금을 징수하도록 조치하였다.

3. 출전

* 사마천, 《사기》 권29 하거서
* 반고, 《한서》 권19하 백관공경표 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