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계 (전한)
1. 개요
반계는 전한 시대의 인물로, 우내사, 하동태수를 거쳐 어사대부를 역임했다. 그는 하동태수 재임 중 무제에게 하천을 개통하여 농지를 늘릴 것을 제안했고, 무제가 이를 받아들여 대규모 공사를 진행했으나, 황하의 물길 변화로 인해 실패했다. 이후 조정은 이주해 온 월인들에게 땅을 나누어주고 소부로 하여금 세금을 걷게 했다. 반계의 행적은 《사기》와 《한서》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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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역사에 관한 -
2013년
2013년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교황 사임, 북한 핵실험, 용산 개발 사업 부도, 윤창중 사건, 스노든 폭로, 김연아 우승, 방탄소년단 데뷔, 넬슨 만델라 사망 등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
한나라의 정치인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한나라의 정치인 -
석편
석편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기원전 138년에 내사에 임명되어 석경의 뒤를 이어 내사를 지냈으며, 정당시가 그의 후임자이다.
2. 행적
반계는 전한 무제 때 활동한 관리이다. 우내사와 하동태수, 어사대부 등의 주요 관직을 거쳤다. 특히 하동태수 재임 시절에는 황하 유역의 관개 사업을 추진하였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2.1. 초기 관직 생활
반계는 전한 무제 때 활동한 관리이다. 원광 5년(기원전 130년)에 수도의 행정을 담당하는 우내사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하동태수를 거쳐 원삭 5년(기원전 124년)에는 공손홍의 뒤를 이어 어사대부로 승진하였다.
2.1.2. 어사대부 승진
원광 5년(기원전 130년)에 우내사로 임명되었다. 이후 하동태수를 지냈다. 하동태수로 재임하던 중 무제에게 하천을 뚫어 농지를 넓힐 것을 건의하였다. 무제는 이를 받아들여 수만 명의 인력을 동원해 하천을 파고 농지를 개간하였다. 그러나 몇 년 뒤 하수의 물길이 바뀌면서 하천은 제 기능을 상실했고, 개간지에 정착한 농민들은 종자조차 거두지 못할 정도로 땅이 척박해져 오랫동안 버려졌다. 나중에 조정에서는 이 땅을 이주해 온 월인(越人)들에게 나누어 주고 소부를 통해 약간의 세금을 징수하도록 하였다. 원삭 5년(기원전 124년), 반계는 하동태수에서 어사대부로 승진하였다.
2.2. 하동태수 시절의 관개 사업
반계는 하동태수로 재임하던 중 무제에게 하천을 뚫어 농지를 늘릴 것을 제안하였고, 무제는 이를 받아들여 수만 명의 인부를 동원하여 대규모 관개 사업을 시작하였다. 이 사업의 구체적인 진행 과정과 결과는 하위 문단에서 자세히 다룬다.
2.2.1. 관개 사업의 실패
반계는 하동태수로 재임하던 중 무제에게 하천을 뚫어 농지를 늘릴 것을 제안하였다. 무제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수만 명의 인부를 동원해 하천을 파고 농지를 개간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하수의 물길이 바뀌면서 새로 만든 하천은 제 기능을 잃게 되었다. 이로 인해 개간지에 정착한 농민들은 종자조차 거두지 못할 정도로 농사를 망쳤고, 결국 땅은 오랫동안 버려지게 되었다. 이후 조정에서는 이주해 온 월인(越人)들에게 이 땅을 나누어 주고, 소부를 통해 약간의 세금을 거두도록 조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