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고르돈
1. 개요
발터 고르돈은 독일 출신의 유대인 물리학자이다.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막스 플랑크 아래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막스 폰 라우에, 윌리엄 로렌스 브래그의 조교를 거쳐 함부르크 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나치 정권의 반유대주의를 피해 스웨덴으로 이주하여 스톡홀름 대학교에서 연구를 이어갔으며, 1939년 스톡홀름에서 사망했다. 오스카 클라인과 함께 클라인-고든 방정식을 제안했으며, 디랙 방정식 이론에 기여하여 고든 분해를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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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동문 -
막스 베버
막스 베버는 독일 출신의 사회학자, 경제학자, 역사학자, 법학자로서, 종교사회학, 정치 체제 등을 연구하고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자본주의 발전에 미친 프로테스탄티즘의 영향을 분석했으며, 권위의 유형을 구분하고 사회과학 연구의 객관성과 가치 중립성을 강조했다. -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동문 -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은 브라운관과 브라운관 오실로스코프를 개발하고 무선 전신 기술 발전에 기여했으며, 1909년 무선 전신 개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
1939년 사망 -
알폰스 무하
알폰스 무하는 체코 출신의 화가이자 장식 예술가로, 아르누보 스타일의 포스터와 장식 패널, 특히 사라 베르나르의 연극 포스터, 상업 광고 포스터, '사계', '꽃', '예술' 등의 작품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파리 만국 박람회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관 벽화 제작, 보석 및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에서도 활동했고, 프라하 귀환 후에는 슬라브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대작 '슬라브 서사시' 제작에 몰두했다. -
1939년 사망 -
하워드 카터
영국의 고고학자이자 이집트학 학자인 하워드 카터는 1922년 투탕카멘의 무덤 발굴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발굴 과정에서 여러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과학적인 고고학 연구를 강조했다. -
함부르크 대학교 동문 -
헬무트 슈미트
헬무트 슈미트는 1974년부터 1982년까지 서독의 연방총리를 지낸 독일 정치인으로, 동서독 화해 정책을 계승하면서 서방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유럽 통합에 기여했으며, 경제 위기와 테러에 단호하게 대처하여 서독의 안정을 유지했으나 연정 파트너와의 갈등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독일 정치사에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
함부르크 대학교 동문 -
하랄트 추어 하우젠
하랄트 추어 하우젠은 인유두종바이러스가 자궁경부암의 주요 원인임을 밝혀내 2008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한 독일의 바이러스학자로서, HPV 16과 18이 전 세계 자궁경부암 환자의 약 70%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규명하여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 개발에 기여했다.
2. 생애
발터 고르돈은 독일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아르놀트 고르돈(Arnold Gordon독일어)은 기업인이었고, 어머니는 비앙카 브란(Bianca Brann독일어)이었다. 어렸을 때 가족은 스위스 장크트갈렌으로 이주하였다. 1921년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막스 플랑크에게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22년 막스 폰 라우에의 조교가 되었고, 1925년에는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윌리엄 로런스 브래그의 조교로 잠시 일했다. 1926년 함부르크 대학교로 옮겨 1929년에 하빌리타치온을 취득하였고, 1930년에 정교수가 되었다. 1932년 게르트루트 로벤베르크(Gertrud Lobbenberg독일어)와 결혼하였다. 나치 정권의 반유대주의를 피해 1933년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이주하여 스톡홀름 대학교에서 역학과 수리물리학을 연구했다. 1939년 스톡홀름에서 사망하였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발터 고르돈은 독일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아르놀트 고르돈(Arnold Gordon독일어)은 기업인이었고, 어머니는 비앙카 브란(Bianca Brann독일어)이었다. 고르돈이 어렸을 때 가족은 스위스 장크트갈렌으로 이주하였다. 1900년 장크트갈렌에서 학교를 다녔고, 1915년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921년 막스 플랑크에게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2. 학문적 경력
고르돈은 1922년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막스 폰 라우에의 조교가 되었다. 1925년에는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윌리엄 로런스 브래그의 조교로 잠시 일한 후, 베를린의 카이저 빌헬름 섬유 화학 연구소에서 근무하였다. 1926년 함부르크 대학교로 옮겨 1929년에 하빌리타치온(교수 자격)을 취득하였고, 1930년에 정교수가 되었다.
2.3. 스웨덴 이주와 죽음
1932년에 게르트루트 로벤베르크(Gertrud Lobbenberg독일어)와 결혼하였다. 유대인이었던 고르돈은 나치 정권의 반유대주의를 피해 1933년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이주하였고, 스톡홀름 대학교에서 역학과 수리물리학을 연구했다. 1939년 스톡홀름에서 사망하였다.
3. 주요 업적
오스카 클라인과 발터 고르돈은 클라인-고든 방정식을 제안하여 양자역학의 틀 내에서 상대성이론의 소립자를 설명하고자 했다. 고르돈은 디랙 방정식 이론에서 전류를 질량 중심과 스핀 기여도로 분해하는 고든 분해를 도입하여 전자의 자기 회전비에서 g-인자 값을 설명하는 데 기여하였다.
3.1. 클라인-고든 방정식
오스카 클라인과 발터 고르돈은 양자역학의 틀 내에서 상대성이론의 소립자를 설명하고자 클라인-고든 방정식을 제안하였다.
3.2. 고든 분해
오스카 클라인과 발터 고르돈은 양자역학의 틀 내에서 상대성이론의 소립자를 설명하고자 클라인-고든 방정식을 제안하였다. 고르돈은 디랙 방정식 이론에서 전류를 질량 중심과 스핀 기여도로 분해하는 고든 분해를 도입하여 전자의 자기 회전비에서 g-인자 값을 설명하는 데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