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지일
1. 개요
방지일은 평안북도 선천 출신의 목사로, 평양 숭실대학교와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를 졸업했다. 1937년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중국 산둥성에서 21년간 선교사로 활동했으며, 중국 공산당에 의해 추방된 후 귀국하여 영등포장로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했다. 그는 독립군, 학도병 및 징용자 등 교포 귀국을 지원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훈받았으며, 손양원, 한경직, 박윤선과 함께 한국교회에서 존경받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 이름 | 방지일 |
|---|---|
| 접미어 | 목사 |
| 당교회 | 영등포교회 |
| 노회 |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영등포노회 |
| 직책 | 前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장 |
| 목회 |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현 장로회신학대학교) 목사 안수 |
|---|
| 출생 이름 | 방지일 |
|---|---|
| 출생일 | 1911년 5월 21일 |
| 출생지 |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선천군 |
| 타계일 | 2014년 10월 10일 |
| 타계장소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
| 종교 | 장로교(통합) |
| 학력 | 장로회신학교 신학 학사 |
| 각주 | 방지일 목사, 103세로 오늘 별세 방지일 목사 "믿음이란 자기 자신을 없애가는 과정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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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
주문모
청나라 출신 가톨릭 신부 주문모는 1794년 조선에 잠입하여 선교 활동을 하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하였으며, 초기 조선 천주교회 성장에 기여하여 2014년 시복되었다. -
선교사 -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1506년 나바라 왕국에서 태어나 파리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예수회 창립에 참여하여 인도, 일본 등지에서 선교 활동을 펼치다 중국에서 사망한 가톨릭 사제이자 예수회 선교사이며, 사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
선천군 출신 -
전칠홍
전칠홍은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전쟁 이후 대구 서문교회와 서울 중앙교회 등에서 목회했으며, 숭신교회 설립, 칼빈 고등성경학교 교장, 충현교회 당회장 역임, 한국 개혁주의 신학 확장 기여, 미국 필라델피아 개혁교회 개척, 스펄전의 저서 번역 등의 활동을 한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목회자이다. -
선천군 출신 -
박성범 (정치인)
박성범은 언론인 출신 정치인으로, KBS 기자, 앵커, 방송총본부장을 역임하고 제15대와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
대한민국의 목회자 -
전영택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자 개신교 목사인 전영택은 1919년 한국 최초의 문학 동인지 《창조》를 창간하고, 단편소설 〈화수분〉, 〈소〉 등의 대표작을 남겼으며, 개신교 관련 간행물 발행, 중앙신학교 및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 한국문인협회 초대 회장 등을 역임했다. -
대한민국의 목회자 -
인명진
인명진은 대한민국의 목사, 시민운동가, 정치인으로,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고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새누리당 및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 생애
방지일 목사는 방효원의 아들이자 방만준의 손자로, 평안북도 선천에서 태어나 1937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파송선교사로 임명되어 중국 산둥성에서 21년간 선교사로 일하다가 1957년 귀국하여 영등포장로교회에 부임하였다. 1979년 영등포교회 원로목사로 추대되었고, 1982년 대한성서공회 재단이사장, 1983년 기독공보사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1998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였으며, 손양원, 한경직, 박윤선과 더불어 한국교회에서 존경받는 목회자로 인정받는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방지일은 방효원의 아들이자 방만준의 손자로, 평안북도 선천에서 태어났다. 선천 신성중학교와 평양 숭실대학교에서 수학한 후, 평양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여 1937년 졸업과 함께 목사 안수를 받았다. 숭실대학교 재학 중이던 1931년 6월, 김진홍, 윤병식과 함께 월간 신앙잡지 〈게자씨〉를 창간하였다. 신학교 재학 시절에는 평양대부흥운동의 중심지였던 장대현교회에서 전도사로 시무하며 당시 원로목사였던 길선주 목사와 함께 사역하였다.
2.2. 중국 선교 (1937-1957)
1937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파송선교사로 임명되어 중국 산둥성에서 21년간 선교사로 일했다. 당시 일본은 대동아선교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가입할 것을 강요하였는데, 그는 이 제안을 거절하였다. 일본인 목사들은 방지일 목사를 비롯한 한국인 선교사를 비방하고 고발하였다. 1957년 중국 공산당이 그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추방하려고 하였으나, 서방 언론에 그가 중국에 남은 마지막 기독교 선교사라고 알려져 대한민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홍콩을 경유하여 귀국하였으며, 중국 선교사로 활동 당시 중국 내 독립군, 학도병 및 징용자 등 교포를 수십 차례 귀국시킨 공로 등을 인정받아 1998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였다.
2.3. 귀국 후 목회 활동 (1957-2014)
1957년 중국 공산당의 추방으로 홍콩을 경유하여 귀국, 그 해 영등포장로교회에 부임하였다. 1979년 영등포교회 원로목사로 추대되었다. 1982년 대한성서공회 재단이사장, 1983년 기독공보사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중국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독립군, 학도병, 징용자 등 교포를 수십 차례 귀국시킨 공로로 1998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손양원, 한경직, 박윤선과 함께 한국교회에서 존경받는 목회자로 꼽힌다.
3. 주요 활동 및 업적
방지일 목사는 선교사로서 다양한 활동을 펼쳤으며, 한국 개신교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31년 월간 신앙잡지 게자씨를 창간했다. 1998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훈받았는데, 이는 중국에서 독립군, 학도병 및 징용자 등 교포들의 귀국을 지원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4. 저서
| 제목 | 출판사 | 출판 연도 |
|---|---|---|
| 《나의 나 됨》 | 홍성사 | 2013년 |
| 《중국 선교를 회고하며: 방지일 목사 산동 선교 사진집》 | 홍성사 | 2011년 |
|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 두란노 | 2010년 |
| 《성경66권연구전집》 | 도서출판갈릴리 | |
| 《성도의 생활》 | 북커뮤니케이션 | 2007년 |
| 《피의 복음》 | 선교문화사 | 2001년 |
| 《야사도 정사로》 | 선교문화사 | 2001년 |
| 《메시아》 | 선교문화사 | 1992년 |
| 《부스러기(1,2)》 | 선교문화사 | 1992년 |
| 《본 대로 들은대로》(전 27권) | 선교문화사 | |
| 《간단한 말씀》(전 5권) | 선교문화사 | |
| 《목회자의 생활》 | 기독교문사 | 1986년 |
| 《허락의 원칙》 |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 종교교육부 | 1962년 |
5. 관련 서적
| 저자 | 서명 | 출판사 | 출판연도 |
|---|---|---|---|
| 박영언(글), 박창근(사진) | 게자씨 목사님과 함께 거산에 오르다 | 도서출판 갈릴리 | 2014년 |
| 사단법인 방지일목사기념사업회 | 게자씨 (영인본) | 홍성사 | 2011년 |
| 조대현 | 복음 할아버지 방지일 목사 | 루디아어린이선교회 | 2011년 |
6.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
|---|---|
| 조부 | 방만준 |
| 부친 | 방효원 |
| 아들 | 방선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