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규
1. 개요
백상규는 일제강점기 동양척식주식회사 위원을 지낸 친일파 백완혁의 아들로, 대한제국 순종 때 내부비서관과 내부대신 비서관을 지냈다. 미국 브라운 대학교를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1945년 미군 사령관 존 하지에게 면담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고, 제2대 국회의원을 지내다 한국전쟁 중 납북되었다.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를 역임했으며, 이화여중에 토지를 기증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재산 소유권 분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 이름 | 백상규 |
|---|---|
| 국적 |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 |
| 출생일 | 1880년 10월 4일 |
| 출생지 | 조선 장단도호부 |
| 사망일 | 1957년 12월 26일 |
| 본관 | (정보 없음) |
| 학력 | (정보 없음) |
| 직업 | (정보 없음) |
| 경력 | (정보 없음) |
| 부모 | (정보 없음) |
| 형제 | (정보 없음) |
| 배우자 | (정보 없음) |
| 자녀 | (정보 없음) |
| 군복무 | (정보 없음) |
| 종교 | (정보 없음) |
| 의원 선수 | (정보 없음) |
| 의원 대수 | (정보 없음) |
| 정당 | (정보 없음) |
| 상훈 | (정보 없음) |
| 서명 | (정보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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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단군 출신 -
허준
허준은 조선 중기의 의관으로, 서자 출신으로 추정되지만 뛰어난 의술로 선조의 주치의를 역임하고 『동의보감』을 완성하여 동아시아 의학에 영향을 미쳤으며, 사후 정1품 보국숭록대부에 추증되었다. -
장단군 출신 -
최무룡
최무룡은 1960년대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로서 대중적 인기를 얻었으며 영화 감독과 제13대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이고 배우 최민수의 아버지이다. -
대한적십자사 관련자 -
정원식
정원식은 대한민국의 교육학자, 대학교수, 정무직공무원, 정치인으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 문교부 장관, 국무총리 서리 및 국무총리를 역임하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관련 논란과 대학생 계란 투척 사건을 겪었고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낙선하기도 했다. -
대한적십자사 관련자 -
김규식
김규식은 대한제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 교육자, 학자로서, 미국 유학 후 독립운동과 교육에 헌신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부통령을 역임하고, 해방 후 좌우합작운동과 남북협상에 참여하여 조국의 통일과 독립을 위해 노력했으나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사망했다.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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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2. 생애
백상규는 동양척식주식회사 위원을 지낸 친일파 금융인이자 기업인인 백완혁의 아들로 태어났다. 순종 때 내부비서관과 내부대신 비서관을 지냈으며, 미국 브라운 대학교를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1945년 9월 8일에는 존 하지에게 면담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이후 제2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다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
2.1.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
동양척식주식회사 위원을 지낸 친일파 금융인이자 기업인인 백완혁의 아들이다. 순종 때 내부비서관과 내부대신 비서관을 지냈다. 미국 브라운 대학교를 졸업한 후 보성전문학교 교수를 지냈다.
1945년 9월 8일 새벽, 조한용, 여운홍과 함께, 인천으로 상륙한 미 24군단 사령관 존 하지에게 면담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백상규는 유창한 영어로 자신이 브라운 대학교를 장학생으로 졸업했다는 것을 포함하여 자기 일행이 온 목적을 설명했다. 명문 브라운 대의 장학생이라는 것은 미군에게 놀라운 일이었다. 미군 장교 가운데 브라운 대학교 출신이 있어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학교의 건물 모양에서부터 교수 이름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 질문이 오고갔다. 장교는 "적어도 한때 브라운대 학생이었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보증을 섰다. 그러나 하지는 면담을 거절하였다.
제2대 국회의원으로 있다가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
2.2. 정치 활동과 납북
백상규는 동양척식주식회사 위원을 지낸 친일파 금융인이자 기업인인 백완혁의 아들이다. 순종 때 내부비서관과 내부대신 비서관을 지냈다. 미국 브라운 대학교를 졸업한 후 보성전문학교 교수를 지냈다.
1945년 9월 8일 새벽, 조한용, 여운홍과 함께 인천으로 상륙한 미 24군단 사령관 존 하지에게 면담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백상규는 유창한 영어로 자신이 브라운 대학교를 장학생으로 졸업했다는 것을 포함하여 자기 일행이 온 목적을 설명했다. 명문 브라운 대의 장학생이라는 것은 미군에게 놀라운 일이었다. 미군 장교 가운데 브라운 대학교 출신이 있어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학교의 건물 모양에서부터 교수 이름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 질문이 오고갔다. 장교는 "적어도 한때 브라운대 학생이었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보증을 섰다. 그러나 하지는 면담을 거절하였다.
제2대 국회의원으로 있다가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
3. 가족 관계
4. 논란 및 사건
장단군 출신의 대지주였던 백상규는 한국 전쟁 때 납북되었는데, 그가 소유했던 1973년 당시 시가 300 상당의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 1가 소재 앵두밭을 두고 가족과 관리인 등 사이에 17년에 걸쳐 주인이 10차례 바뀌는 '해방 이후 최장기 소유권 분쟁'이 있었다.
4.1. 이화여중 토지 기증 논란
백상규는 해방 이후 대한적십자사 활동에 열성적이었으며, 20만 평의 토지를 기부하였다. 1950년 3월 학제 변경으로 이화여중이 여고와 여중으로 분리되어 신축 교사가 필요했는데, 이때 백상규는 자신과 아들 소유의 서울 종로구 서린동 소재 100만 평대 땅을 기증했다고 한다.
4.2. 재산 소유권 분쟁
백상규는 대한적십자사에 20만 평의 토지를 기부하였다. 1950년 3월 학제 변경으로 이화여중이 여고와 여중으로 분리되어 신축 교사가 필요했을 때, 백상규는 자신과 아들 소유의 서울 종로구 서린동 소재의 100만 평대 땅을 희사했다고 한다.
장단군 출신의 대지주였던 백상규는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는데, 1973년 당시 시가 300 상당의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 1가 소재 앵두밭을 두고 가족과 관리인 등 사이에 17년에 걸쳐 주인이 10차례 바뀌는 '해방 이후 최장기 소유권 분쟁'이 있었다.
5. 역대 선거 결과
| 연도 | 선거 종류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순위 | 당락 | 비고 |
|---|---|---|---|---|---|---|
| 1950년 | 총선 | 무소속 | 4,315표 (100.00%) | 1위 | 당선 | 초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