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욱
1. 개요
백성욱은 1897년 서울에서 태어나 1981년에 입적한 승려이자 교육자, 정치인이다. 1930년대에 출가하여 불교 승려가 되었으며, 이승만 전 대통령과 사적으로 교류하기도 했다. 1925년 한국 최초로 독일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동국대학교 교수, 내무부 장관, 동국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말년에는 경기도 부천에서 농장을 경영하며 후학을 지도했고, 미륵존여래불 염불과 금강경 독송을 수행법으로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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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 총장 -
허영호 (정치인)
허영호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신간회 활동을 했으나, 중일전쟁 이후 친일로 전향하여 해방 후 혜화전문학교 교장과 동국대학교 학장을 역임했으며, 제헌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지만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사후 친일 행적이 드러나 건국훈장이 취소되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다. -
동국대학교 총장 -
김희옥
김희옥은 검사 출신 법조인으로서 법무부 차관과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역임하고 동국대학교 총장,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 KBL 프로농구연맹 총재, 한국프로스포츠협회 회장 등을 지낸 대한민국의 교육자, 스포츠인, 정치인이다. -
일제강점기의 불교학자 -
한용운
한용운은 충청남도 홍성 출신의 승려이자 시인, 독립운동가로, 3.1 운동에 참여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불교 혁신과 민족 독립을 위해 헌신했으며, 시집 《님의 침묵》을 통해 저항 문학을 대표했다. -
일제강점기의 불교학자 -
만공 (승려)
만공은 송도암이라는 본명과 월면이라는 법명을 가진 조선 말기 및 일제강점기의 승려로, 경허의 제자로서 한국 선불교 중흥에 기여하고 불교 교육 근대화와 선승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노력했으며 일제강점기 조선 불교를 지키기 위해 투쟁했다. -
나혜석 -
김명순 (1896년)
김명순은 개화기 여성 작가이자 신여성으로, 시, 소설, 희곡 등 다양한 장르에서 여성의 삶과 자유 연애를 주제로 활동했으나, 사회적 편견과 어려움 속에서 고독한 말년을 보낸 소설 『김연실전』의 실존 모델이며 최근 재평가되고 있다. -
나혜석 -
박인덕
박인덕은 1896년에 태어나 1980년에 사망한 교육자이자 사회운동가로, 이화학당 졸업 후 교사로 활동하며 3.1 운동에 참여하고 미국 유학 후 여성 계몽 운동과 실업 교육에 힘썼으며 인덕실업학교를 설립했다.
2. 생애
백성욱은 1930년대에 출가하여 불교 승려가 되었으며, 처남을 통해 귀국한 이승만 내외에게 이화장 부지를 제공하기도 했고, 사적으로 이승만과 잘 지냈다. 1928년에는 잠시 김일엽의 연인이었으나, 백성욱이 떠난 후 김일엽도 출가하게 된다. 1948년부터 1949년까지 동국대학교 교수를, 1950년에는 내무부 장관을 역임하였으며, 1953년부터 1961년까지 제2대 동국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2.1. 초년과 출가 (1897년 ~ 1928년)
백성욱은 1897년 백윤기의 장남으로 서울 연지동에서 태어났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1910년 정릉 봉국사에서 최하옹 대선사를 은사로 출가해 경성중앙학림을 졸업했다. 상해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했으며, 파리 보베 고등학교, 남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1925년 〈불교순전철학〉으로 한국 최초의 독일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2. 불교 수행과 교육 (1928년 ~ 1945년)
1928년, 백성욱은 모든 세상일을 내려놓고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100일 기도를 올렸다. 기도를 마친 후 깨달음을 얻은 그는 손혜정 여사와 함께 금강산에 들어가 장안사 소속 안양암에서 조국 독립을 기원하며 대방광불화엄경을 제창했다. 이후 지장암에서 500명의 제자를 가르쳤으나, 1938년 일본 경찰의 압력으로 하산하였다.
2.3. 정계 활동과 동국대학교 총장 재직 (1945년 ~ 1961년)
1948년부터 1949년까지 동국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고, 1950년 내무부 장관에 취임하였다. 6.25 전쟁 당시 치안을 담당하였으며, 전쟁 중 이승만이 탈 세단을 백방으로 구하기도 하였다.
1950년 7월, 전쟁 발발 후 부산에서 광업진흥공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953년 동국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하여 우수한 인재 배출을 위한 세계적인 종합대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였다. 1954년에는 국유림이어서 건축할 수 없었던 부지에 동국대학교를 대표하는 석조 건물인 '명진관'을 건립하였다.
2.4. 은퇴와 말년 (1961년 ~ 1981년)
5·16 군사 정변이 일어나기 전, 백성욱은 경기도 소사(현 부천시 소사 지역)로 내려간다. 1950년 백성욱이 내무부 장관이었을 당시, 한국 전쟁에서 대전에서부터 피난 정부와 함께한 대한국민당 최고위원 윤치영은 쿠데타 성공을 2개월가량 전부터 계획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백성욱은 세상 일을 놓고 경기도 부천시 소사의 야트막한 산을 개간, 백성농장을 경영하며 인연 있는 중생 및 후학들을 지도한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1961년 6월 15일 농업은행과 농협의 통합을 의결하는데, 백성욱은 1961년 7월에 대학총장직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1981년 자신이 출생한 바로 그날에 입적했다.
3. 수행법
백성욱은 수행법으로 '미륵존여래불(彌勒尊如來佛)'을 마음으로 읽고 귀로 들으며, 자신의 모든 생각을 부처님께 바치는 연습을 강조했다. 그는 이것을 '항복기심(降伏其心)'이라 불렀다.
아침저녁으로 《금강경》을 읽되, 부처님 앞에서 마음 닦는 법을 강의 듣는 마음으로 믿고 실행하여 습관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육체는 규칙적으로 일하고, 정신은 가만두지 않는 방식으로 100일을 한 주기로 하여 10회 가량 반복하면, 몸으로 인한 근심걱정이 사라지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문제가 해결된다고 했다. 이는 '아상(我相)'이 없어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또한, 공부에 대한 탐심(貪心), 공부가 안 되는 것에 대한 진심(瞋心), 공부가 잘 된다는 치심(癡心)의 삼독(三毒)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꾸준히 수행하되, 이 세 가지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 수도라고 말했다.
4. 제자
* 포항 청우불교원 김재웅
* 부천 금강경 독송회 김동규
* 고양 바른법 연구원 김원수
* 대학교수 정천구
5. 백성욱이 등장한 작품
KBS TV 문학관에서 방영된 〈백로선생〉은 백성욱을 다룬 작품이다.
6. 연표
* 1897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 1910년 정릉 봉국사 최하옹 대선사를 은사로 출가하였다.
* 상해 임시정부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 프랑스 파리 보배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 독일 율리우스 막시밀리안 우니베르지테트 뷔르츠부르크 대학교(독일어: Julius-Maximilians-Universität Würzburg)에서 수학하였다.
* 1925년 한국인 최초로 독일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 1928년 금강산에 입산, 10년 수도로 견성오도하였다.
* 1945년 광복 후 건국운동에 참여하였다.
* 내무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 한국광업진흥주식회사 사장을 역임하였다.
* 동국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 1962년 경기도 부천시 소사동에 금강경 수행도량을 개설하여 후학을 지도하였다.
* 1981년 출생한 바로 그날, 아무 말 없이 열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