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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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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백조는 1922년 1월에 창간된 문예 잡지이다. 홍사용이 편집하고 헨리 아펜젤러가 발행했으며, 박종화, 이상화, 현진건 등 낭만주의 성향의 시인과 소설가들이 동인으로 참여했다. 3·1 운동 이후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낭만주의, 퇴폐주의, 상징주의, 유미주의를 추구하며, 한국 초기 순수문학 잡지로서 1920년대 한국 문학의 낭만주의적 경향을 대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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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 (잡지)
백조
한글백조
한자白潮
가타카나ペクチョ
히라가나はくちょう
참고 문헌
저자박승희
제목1920년대 데카당스와 동인지 시의 재발견
저널한민족어문학
47
연도2005
325

2. 창간 배경 및 과정

《백조》는 3·1 운동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인한 민족적 비관과 절망 속에서 탄생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백조》 동인들이 낭만주의적 경향을 띠게 된 주요 원인이었다. 동인들은 대부분 서정적인 애상(哀傷)을 노래하는 시인, 작가들이었으며, 《폐허》 동인들과 흡사하게 퇴폐, 염세, 감상, 낭만적인 경향의 작품들을 발표했다.

《백조》파는 이념적으로는 낭만주의, 정서적으로는 퇴폐주의, 문학적 태도는 상징주의, 예술관은 유미주의적인 경향을 보였다. 대표적인 동인으로는 홍사용, 나빈, 이상화, 박종화, 박영희, 현진건 등이 있다.


  • 홍사용은 〈봄은 가더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등 감상적인 낭만시를 발표했다.
  • 나빈은 소설 〈젊은이의 시절〉, 〈별을 안거든 울지나 말걸〉 등을 통해 감상과 이상의 세계를 그렸다. 특히 19세에 장편 〈환희〉를 발표하여 주목받았고, 〈물레방아〉, 〈벙어리 삼룡〉, 〈〉 등 낭만적 색채가 짙은 작품을 발표했으나 25세에 요절했다.
  • 이상화는 〈말세의 희탄〉, 〈나의 침실로〉 등을 통해 상징적인 수법으로 미지의 신비와 꿈의 세계를 동경하는 낭만시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 박종화는 초기에는 〈흑방비곡〉, 〈밀실로 돌아가다〉 등 낭만적인 시를 썼으나, 후기에는 〈석굴암 대불〉, 〈청자부〉 등 역사소설 창작에 주력했다.
  • 박영희는 〈미소의 허영시〉, 〈어둠 너머로〉 등 비애와 감상의 낭만시를 발표했으나, 이후 평론가로 활동했다.
  • 현진건은 〈빈처〉, 〈술 권하는 사회〉, 〈타락자〉 등 현실적인 소재를 다루며 한국 소설의 리얼리즘을 구현했다.

2. 1. 창간 준비

1922년 당시 동인은 홍사용, 박종화, 박영희, 나인향, 현진건, 노자영, 정백, 최승일이었다. 표지 그림은 안석주가 담당했다. 정백, 최승일은 동인이었으나 『백조』에 실린 작품은 없었다. 제2호에 이광수, 제3호에 김기진, 방정환이 참여했다. 박종화, 홍사용은 휘문의숙 학생이었고, 박영희, 나인향 등은 배재학당 학생이었으며, 다른 동인들도 20대 전후의 젊은 청년들이었다. 자금 운영은 어려워 후원자인 김덕기, 홍사중의 협력을 얻어 구상부터 4년에 걸쳐 출판에 이르렀다. 당초 『백조』를 문예잡지로 하면서 동시에 사상잡지로 『'''흑조'''』를 출판할 계획이었으나,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

2. 2. 발간 과정

1922년 1월 9일에 창간호가 발행되었다. 편집자는 홍사용, 발행인은 미국 국민인 헨리 아펜젤러(Henry Dodge Appenzeller, 아편설라), 발행처는 문화사였다. 1922년 5월 25일에는 제2호가 발행되었는데, 편집자와 발행처는 창간호와 같았고 발행인은 미국인 보이스 부인이었다. 1923년 9월 6일에 발행된 제3호의 편집자는 박종화, 발행인은 러시아인 페르헤로, 발행처는 백조사였다.

창간 당시 동인은 홍사용, 박종화, 박영희, 나인향, 현진건, 노자영, 정백, 최승일이었으며, 표지 그림은 안석주가 담당했다. 제2호에는 이광수, 제3호에는 김기진, 방정환이 참여했다. 동인들은 대부분 휘문의숙이나 배재학당 출신의 20대 전후 젊은 청년들이었다. 자금 운영은 어려워 후원자인 김덕기, 홍사중의 협력을 얻어 구상부터 4년에 걸쳐 출판에 이르렀다.

발행인을 외국인으로 한 것은 조선인이 발행인이 되면 일제 당국의 사전 검열을 받지만, 외국인이 발행인인 경우에는 그것을 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3. 주요 동인 및 성향

《백조》는 홍사용, 현진건, 이상화, 나빈, 박종화, 박영희, 노자영 등이 참여한 문예지로, 한국 낭만주의 문학의 전성기를 이끌었다.[1] 이들은 낭만주의, 퇴폐주의, 상징주의, 유미주의적 경향을 공유했다.[1]

창간 동인은 홍사용, 박종화, 박영희, 나인향, 현진건, 노자영, 정백, 최승일이었고, 안석주가 표지 그림을 담당했다.[1] 정백과 최승일은 동인이었으나 《백조》에 작품을 싣지는 않았다.[1] 제2호에는 이광수, 제3호에는 김기진, 방정환이 참여했다.[1]

3. 1. 주요 동인


  • '''홍사용''': 감상적인 낭만시를 주로 발표했다.[1]
  • '''현진건''': 초기에는 낭만주의적 경향을 보였으나, 이후 사실주의 소설을 개척했다.[1]
  • '''이상화''': 상징적인 수법으로 꿈과 신비의 세계를 동경하는 낭만시를 발표했다. 대표작으로 '나의 침실로'가 있다.[1]
  • '''나빈'''[1]
  • '''박종화''': 초기에는 낭만적인 시를 썼으나, 후기에는 역사소설에 주력했다.[1]
  • '''박영희''': 비애와 감상의 낭만시를 발표했으며, 후에 평론가로 활동했다.[1]
  • '''노자영'''[1]
  • '''나혜석''': 제2호부터 참여했으며, 조숙한 필치로 낭만적 색채가 짙은 소설을 발표했다.
  • '''이광수''': 제2호에 참여했다.
  • '''김기진''': 제3호에 참여했다.
  • '''방정환''': 제3호에 참여했다.

3. 2. 문학적 경향

3·1 운동 이후의 민족적 비관과 절망을 바탕으로, 퇴폐, 비애, 동경 등을 주제로 한 감상주의적 낭만주의가 주를 이루었다.[1] 동인들은 모두 서정적인 애상(哀傷)의 시인·작가들로 폐허의 동인들과 흡사한 퇴폐·염세·감상·낭만적 경향의 작품들을 발표했다.[1] 특히 《백조》파의 성격은 시인들로 대표되는데, 그들은 이념에서는 낭만주의, 기분은 퇴폐주의, 문학 태도에서는 상징주의, 예술관에서는 유미적(唯美的)인 것을 내세웠다.[1] 따라서 《백조》파의 문학은 감상·낭만·퇴폐·유미적인 것을 공통된 문학 경향으로 수용하고 있으며, 근대 문예사조 면에서 볼 때 후기 낭만주의(後期浪漫主義)의 영향이 지배적이었다.[1]

홍사용은 〈봄은 가더이다〉(《백조》 2호), 〈나는 왕이로소이다〉(《백조》 3호) 등의 감상적인 낭만시를 발표했고,[1] 나빈은 소설 〈젊은이의 시절〉(《백조》 창간호), 〈별을 안거든 울지나 말걸〉(《백조》 2호), 〈옛날의 꿈은 창백하여이다〉 등을 통해 감상과 이상의 세계를 그렸다.[1] 이상화는 《백조》 창간호에 〈말세(末世)의 희탄〉을 비롯하여, 명편 〈나의 침실로〉를 발표, 상징적인 수법으로 미지의 신비와 꿈의 세계를 동경하는 낭만시의 극치를 보여주었다.[1] 박종화는 초기 작품으로 〈흑방비곡(黑房秘曲)〉, 〈밀실(密室)로 돌아가다〉, 〈정밀(靜謐)〉 등의 시를 통해 낭만적 꿈의 세계를 펼쳤다.[1] 박영희는 《백조》 창간호에 〈미소의 허영시(虛榮市)〉를 비롯하여 〈어둠 너머로〉, 〈월광(月光)으로 짠 병실(病室)〉, 〈꿈의 나라로〉 등의 비애와 감상의 낭만시를 발표했다.[1] 현진건은 초기에 〈빈처(貧妻)〉, 〈술 권하는 사회〉, 〈타락자(墮落者)〉 등 현실에 육박하는 제재(題材)를 다루어, 완벽한 구성, 치밀한 묘사로 한국 소설의 새로운 리얼리즘을 구현했다.[1]

4. 주요 작품

《백조》에는 시, 소설, 희곡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수록되었으며, 낭만주의 문학이 주를 이루었다. 창간호에는 박종화의 「밀실로 가는 길」, 이상화의 「말세의 한숨」, 나인향의 「젊은이의 시대」 등이 실렸다. 제2호에는 나혜석의 「별을 안으면 울지 않는다」, 현진건의 「유린」, 박영희의 「꿈의 나라로」, 홍사용의 「봄은 갔습니다」, 박종화의 「흑방 비곡」 등이, 제3호에는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 홍사용의 「흐르는 물을 잡고」, 「나는 왕이다」, 「그것은 모두 꿈이었지만」, 나혜석의 「여자 이발사」, 박종화의 「목을 매는 여자」, 「죽음보다 아픈」 등이 실렸다.[1]

4. 1. 창간호 (1922.1)

초판은 1922년 1월 9일에 발행되었다. 편집자는 홍사용, 발행인은 미국 국민인 헨리 아펜젤러(Henry Dodge Appenzeller, 아편설라), 발행처는 문화사, 정가는 1권 60전, 142쪽이었다. 창간 당시 동인은 홍사용, 박종화, 박영희, 나인향, 현진건, 노자영, 정백, 최승일이었다. 표지 그림은 안석주가 담당했다. 정백, 최승일은 동인이었으나 『백조』에 실린 작품은 없었다. 동인 결성 당시, 박종화, 홍사용은 휘문의숙 학생이었고, 박영희, 나인향 등은 배재학당 학생이었으며, 다른 동인들도 20대 전후의 젊은 청년들이었다. 자금 운영은 어려워 후원자인 김덕기, 홍사중의 협력을 얻어 구상부터 4년에 걸쳐 출판에 이르렀다. 당초 『백조』를 문예잡지로 하면서 동시에 사상잡지로 『'''흑조'''』를 출판할 계획이었으나,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 발행인을 외국인으로 한 것은 조선인이 발행인이 되면 일제 당국의 사전 검열을 받지만, 외국인이 발행인인 경우에는 그것을 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창간호에는 다음과 같은 작품들이 수록되었다.

4. 2. 제2호 (1922.5)

나혜석의 소설 「별을 안으면 울지 않는다」, 현진건의 소설 「유린」, 박영희의 시 「꿈의 나라로」, 홍사용의 시 「봄은 갔습니다」, 박종화의 시 「흑방 비곡」이 실렸다.

4. 3. 제3호 (1923.9)


  • 이상화: 「나의 침실로」 (시)[1]
  • 홍사용: 「흐르는 물을 잡고」, 「나는 왕이다」, 「그것은 모두 꿈이었지만」 (시)[1]
  • 나혜석: 「여자 이발사」 (소설)[1]
  • 박종화: 「목을 매는 여자」 (소설), 「죽음보다 아픈」 (희곡)[1]

5. 문학사적 의의 및 영향

《백조》는 《창조》, 《폐허》 등과 함께 한국 초기 순수문학 잡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20년대 한국 문학의 낭만주의적 경향을 대표하며, 당대 청년 문인들의 섬세한 감수성과 예술적 지향점을 보여주었다. 3·1 운동 이후의 민족적 비관과 절망으로 말미암아 실망, 퇴폐, 비애, 동경 등이 주조를 이룬 감상주의와 비슷한 낭만주의였다. 동인의 한 사람이었던 박영희는 《백조》 동인들은 모두 서정적인 애상(哀傷)의 시인, 작가들로 《폐허》의 동인들과 흡사한 퇴폐, 염세, 감상, 낭만적 경향의 작품들을 발표했다고 회고했다.[1]

《백조》파의 성격은 시인들로 대표되는데, 이들은 이념에서는 낭만주의, 기분은 퇴폐주의, 문학 태도에서는 상징주의, 예술관에서는 유미적(唯美的)인 것을 내세웠다. 따라서 《백조》파의 문학은 감상, 낭만, 퇴폐, 유미적인 것을 공통된 문학 경향으로 수용하고 있으며, 근대 문예사조 면에서 볼 때 후기 낭만주의의 영향이 지배적이었다.[1]

이상화나의 침실로는 상징적인 수법으로 미지의 신비와 꿈의 세계를 동경하는 낭만시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진건은 《백조》를 통해 초기 낭만주의에서 벗어나 〈빈처〉, 〈술 권하는 사회〉, 〈타락자(墮落者)〉 등 현실에 육박하는 제재(題材)를 다루어, 완벽한 구성, 치밀한 묘사로 한국 소설의 새로운 리얼리즘을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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