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영로 (군산 전주)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번영로(군산-전주)는 전라북도 군산시와 전주시를 연결하는 도로이다. 1908년 일제 통감부가 전주와 군산을 잇는 도로로 건설한 전군가도에서 시작되었으며, 당시 조선 최초의 시멘트 콘크리트 도로였다. 이 도로는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의 수송로로 활용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수탈의 통로로 이용되었다. 주요 경유지로는 군산시, 익산시, 김제시, 전주시가 있으며, 다양한 국도 및 지방도와 교차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전주시의 도로 - 호남고속도로
호남고속도로는 전라남도 순천에서 충청남도 천안까지 이어지는 고속도로로, 1973년 전 구간 개통 후 확장 및 개선 공사를 거쳐 논산천안고속도로와 통합되었으며, 다차로 하이패스 시스템 도입 등 이용객 편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전주시의 도로 - 모악로
모악로는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전주시 완산구를 잇는 도로로, 순창군, 임실군, 완주군을 거쳐 연결되며 일부 구간은 자동차 전용도로로 지정되어 국도, 국가지원지방도, 지방도 등과 연결된다. - 국도 제26호선 - 동군산 나들목
동군산 나들목은 전라북도 군산시 대야면에 위치한 서해안고속도로의 나들목으로, 국도 제21호선, 국도 제26호선, 국도 제29호선과 연결되며, 1998년 개통 이후 일일 평균 통행량이 변화를 겪었다. - 국도 제26호선 - 전주 나들목
전주 나들목은 호남고속도로에 위치하며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조촌동에 있는 나들목으로, 1970년 12월 30일 개통되었고 2002년 5월 11일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 - 군산시의 도로 - 서해안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는 전라남도 무안군에서 시작하여 서울특별시 금천구까지 연결되며, 1991년에 건설을 시작하여 2001년에 전 구간이 개통되었고 총 연장 340.81km이다. - 군산시의 도로 - 해망로
해망로는 전라북도 군산시를 통과하는 도로이며, 팔마광장 교차로에서 시작하여 군산시외버스터미널, 군산고속버스터미널 등을 지나 여러 지역과 교차한다.
2. 역사
이 도로는 일제강점기인 1908년 통감부가 호남평야의 쌀을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수탈하기 위해 건설한 전주와 군산을 잇는 '전군가도'에서 유래했다.[1] 당시 건설된 전군가도는 한국 최초의 시멘트 콘크리트 도로였다. 이후 2009년 7월 10일, 2개 이상 시·군에 걸쳐 있는 도로로 '''번영로'''라는 현재의 명칭이 고시되었다.[2]
2. 1. 일제강점기 전군가도
1908년 10월 일제강점기 통감부가 치도국을 세우고 가장 먼저 건설한 도로로, 전주와 군산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전군가도'''(全群街道)라고 불렸다. 당시 총 연장은 46km였으며, 한국에서 최초로 건설된 시멘트 콘크리트 도로였다.이 도로를 건설하는 과정에는 많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토지를 측량할 당시 지역 농민들의 반발이 심해 측량사들은 일본 헌병을 동반해야 했으며, 도로 건설에는 항일운동으로 붙잡힌 의병들이 강제로 동원되었다고 한다.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에는 일제가 도로변에 벚나무를 강제로 심게 한 과정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 그 나무는 흔히 보는 소나무도 참나무도 아니었다. 일본말로 '사쿠라'라고 했고, 그 꽃은 일본 사람들이 받드는 나라꽃이라는 것이었다. 헌병들이 그 나무를 받드는 정성은 실로 대단했다. 처음에 나무심기를 나선 사람들은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알 리가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 두 자 남짓한 길이의 묘목은 별로 보잘 것도 없고 대수로울 것도 없는 어린 나무일 뿐이었다. 그래서 예사로 나뭇단을 내던지거나 넘어다녔다. 그런데 그때마다 헌병들의 욕설과 함께 개머리판이 날아들었다. 살기등등한 헌병들에게 아무 영문도 모르고 얻어맞고 걷어차인 다음에야 그들은 통변(通辯)을 통해 그 나무에 얽힌 사연을 듣게 되었다. 의병 출신인 그들은 비감하고 참담한 심정으로 '사쿠라'를 심어나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 —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 중에서
전군가도는 건설 이후 매년 추수철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군산항으로 운반하는 주요 경로로 이용되었다. 이로 인해 1909년 한 해에만 조선 전체 쌀 반출량의 32.4%가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빠져나갔다. 일제는 전군가도 건설을 시작으로 1911년까지 조선 전역에 총 741km에 달하는 신작로를 건설했다. 이러한 도로 건설은 결과적으로 농민들의 토지를 빼앗고 수탈을 용이하게 하여 농민들의 생활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당시 남원 지역에서 불리던 민요인 길쌈노래에는 "치마 끈 졸라매고 논 사노니 신작로 복판에 다 들어가네"라는 가사가 포함될 정도였다.[1]
2. 2. 해방 이후 ~ 현재
2009년 7월 10일, 2개 이상 시·군에 걸쳐 있는 도로로 '''번영로'''라는 명칭이 고시되었다.[2]3. 주요 경유지
'''전북특별자치도'''
4. 노선
wikitext
5. 주요 건물 및 시설
wikitext
참조
[1]
서적
한국 근대사 산책 4 - 러일전쟁에서 한국군 해산까지
http://book.naver.co[...]
인물과사상사
2007-11-19
[2]
간행물
전라북도고시 제2009-223호
http://www.jeonbuk.g[...]
2009-07-10
[3]
문서
교차로와 나들목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의 건물 및 시설 등도 포함
[4]
통계
2015년 도로교량 및 터널현황
https://stat.kosis.k[...]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