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오르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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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베오르니체는 5세기부터 7세기까지 존재했던 앵글로색슨 왕국으로, 현재의 잉글랜드 북동부 지역에 위치했다. 이 왕국은 고대 웨일스어 시에서 'Bryneich' 또는 'Byrneich'로 언급되며, 어원은 논쟁의 대상이지만 "산길의 땅" 또는 "틈새의 땅"을 의미할 수 있다. 베오르니체는 브리튼족의 땅에 세워졌으며, 6세기 초 앵글족이 이주하여 건국되었다. 547년경 이다(Ida)가 왕위에 오르면서 기록상 첫 번째 왕국으로 등장했으며, 이후 데이라 왕국과 통합되어 노섬브리아 왕국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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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르니체 - [옛 나라]에 관한 문서 | |
---|---|
개요 | |
이름 | 베오르니체 |
로마자 표기 | Beornice |
웨일스어 | 브러네이흐 |
라틴어 | 베르니키아 |
유형 | 초기 중세 왕국 |
존속 기간 | 6세기 - 654년 |
역사 | |
시작 | 6세기 |
주요 사건 | 데렌과 동군연합 (604년) |
종료 | 데렌과 합병 (654년) |
이전 | 후로마 브리튼 |
계승 | 노섬브리아 |
지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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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
수도 | 뱀버러 |
정치 체제 | 군주제 |
언어 및 문화 | |
공용어 | 고대 영어 |
소수 언어 | 컴브리아어 |
종교 | 앵글로색슨족 이교 |
2. 어원
베오르니체라는 이름은 켈트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앵글로색슨족이 이 이름을 차용하여 고대 영어 ''Bernice'' (노섬브리아 방언) 또는 ''Beornice'' (웨스트색슨 방언)로 불렀다.[1]
2. 1. 어원 연구
베오르니체는 고대 웨일스어 시에서 ''Bryneich'' 또는 ''Byrneich''로 나타나며, 9세기의 브리튼인의 역사(§ 61)에서는 ''Berneich'', ''Birneich'', ''Bernech'' 및 ''Birnech''로 나타난다. 학자들은 이 이름이 원래 켈트어라고 동의한다. 이 이름은 앵글로색슨 정착민들에 의해 채택되어 고대 영어로 ''Bernice''(노섬브리아 방언) 또는 ''Beornice''(웨스트색슨 방언)로 표현되었다.[1] 이러한 이름이 초기 영어 형태를 브리튼어로 적응한 것이라는 반대 가설은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여겨진다.현지 언어학적 증거는 로마가 브리튼에서 철수한 시기부터 앵글족이 도착하기 전까지 이 지역에서 지속적인 정치적 활동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베오르니체의 주요 앵글로색슨 중심지들은 브리튼 기원의 이름을 가지고 있거나 다른 곳에서 브리튼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뱀버러는 ''브리튼인의 역사''에서 ''Din Guaire''로 불리며, 던바 (성 윌프리드가 한때 투옥되었던 곳)는 ''Dinbaer''를 나타내며, 콜딩엄의 이름은 베다에 의해 ''Coludi urbs'' ("콜루드의 도시")로 주어지는데, 여기서 ''Colud''는 브리튼 형태, 아마도 세인트 애브스 헤드의 언덕 요새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1]
잠재적인 어원 분석은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가장 일반적으로 인용되는 어원은 "산길의 땅" 또는 "틈새의 땅"을 의미한다(케네스 H. 잭슨이 잠정적으로 제안).[2] 브리간테스 부족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이전의 추론은 언어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기각되었다.[3] 1997년 존 T. 코흐는 7세기 동안 그 지역에서 앵글로색슨족의 확장의 결과로, 초기 형태인 *''Bernech''가 고유 형태인 *''Brïγent''와 옛 ''civitas Brigantum''이 혼합되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4]
2. 2. 주요 지명의 브리튼어 기원
고대 웨일스어 시에서 브라이니치(Brynaich) 또는 브라이나이히(Brynaich)로, 9세기 브리튼인의 역사에서 베르네이크(Berneich) 또는 빌나이히(Birnaich)로 등장한다. 이는 아마도 현지 브리튼 왕국의 이름이었으며, 그 이름은 이후 이를 차용한 앵글인의 정착민에 의해 베오르니시아(Beornicia) 또는 베오르니스(Beornice)로 고대 영어에 정착되었다.[1]3. 역사
베오르니체는 한때 보타디니족의 땅에 건국되었다. 420년경에는 이 지역을 웨일스인이 'Yr HenOgledd' (고대 북부)라고 불렀다. 앵글인이 이 지역 전체를 정복한 시기는 불분명하지만, 604년 전후일 가능성이 있다.
베오르니체의 앵글인은 로마 시대 후기에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따라 용병으로 고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6세기 초에 데이레에서 북쪽으로 이동했다고 생각된다.[12] 기록상 첫 번째 왕은 547년경 왕위와 왕국을 얻었다고 하는 이다이다. 그의 아들들은 주변 브리튼 왕국과 오랫동안 싸웠다.
이다의 손자인 에델프리드는 604년경 데이라를 베오르니체와 통합했다. 그는 이스트 앵글리아 왕국의 레드왈드에게 패배하여 살해될 때까지 두 왕국을 통치했다. 이후 634년에 오스왈드가 군대를 조직하고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오스왈드는 베오르니체인과 데이라인 모두에게 왕으로 인정받았다.
3. 1. 브리튼계 브르네이치 왕국 (Bryneich)
이 지역의 브리튼계 왕국은 한때 보타디니의 남쪽 영토에서 형성되었으며, 아마도 서기 420년경 코엘 헨의 '거대한 북부 왕국' 분할의 일부였을 것이다. 이 북부 왕국은 웨일스 학자들이 ''Yr Hen Ogledd'', 즉 "옛 북부"라고 불렀다. 이 왕국은 나중에 잉글랜드의 뱀버러가 된 곳에서 통치되었을 수 있으며, 이는 확실히 웨일스 자료에서 ''딘 가르디''로 나타난다. 이 고위 거주지 근처에는 린디스판 섬(이전에는 웨일스어로 ''Ynys Medcaut''로 알려짐)이 있었으며, 이곳은 버니시아 주교의 교구가 되었다. 앵글족이 언제 이 지역 전체를 마침내 정복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604년경일 가능성이 높다.[5]고대 웨일스어에는 "북방의 사람들(Gwŷr y Gogledd)"의 왕족 계보가 여러 개 있는데, 이는 브리튼계 왕국의 왕들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당 지역은 "브르네이치"(Bryneich)라고 불렸을 수 있다. 존 모리스는 모르칸트 불크의 계보가 이 군주들을 지칭한다고 추측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이 인물을 당시 린디스판을 포위하고 있던 우리엔 레게드를 살해한 자로 보았기 때문이다.[5]
3. 2. 앵글로색슨 베오르니체 왕국 (Beornice)
베오르니체(Beorniceang)의 앵글족 일부는 후기 로마 시대에 하드리아누스 장벽에서 용병으로 고용되었을 수 있다. 다른 이들은 6세기 초에 데이레(Derenriceang 또는 ''Dere'')에서 (바다를 통해) 북쪽으로 이주한 것으로 여겨진다.[6] 역사 기록상 첫 번째 앵글 왕은 이다로, 그는 547년경에 왕위와 왕국을 얻었다고 한다. 그의 아들들은 주변 브리튼계 왕국들의 연합 세력과 수년간 싸웠고, 결국 동맹은 내전으로 붕괴되었다.
이다의 손자, 에델프리드는 604년경 자신의 왕국과 데이라를 무력으로 통일했다. 그는 두 왕국(노섬브리아로 통일)을 통치하다가 616년경 래드월드에게 패배하여 죽임을 당했다. (래드월드는 에드윈, 엘레, 데이라 왕의 아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었다). 에드윈은 이후 왕이 되었다.
633년 10월 12일, 에드윈이 기네드의 카드왈론 압 카드판과 머시아의 펜다에게 패배하여 죽임을 당한 비극적인 해트필드 체이스 전투 이후, 노섬브리아는 다시 베르니시아와 데이라로 분열되었다. 베르니시아는 에델프리드의 아들 이안프리드가 잠시 통치했지만, 약 1년 후 카드왈론에게 평화를 구하러 갔다가 살해당했다. 이안프리드의 형제인 오스왈드는 군대를 일으켜 634년 헤븐필드 전투에서 마침내 카드왈론을 물리쳤다.
이 승리 이후, 오스왈드는 베르니시아와 데이라 양쪽 모두에게 진정한 통일 노섬브리아의 왕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베르니시아의 왕들은 그 왕국에서 최고 권력을 행사했으며, 오스위와 그의 아들 에그프리드의 통치 기간 동안 데이라에는 자체적인 부왕들이 존재했다.
3. 3. 베오르니체 군주 목록
- 이다, 에오파의 아들 (547년-559년)
- 글라파, 이다의 형제일 가능성 있음 (559년-560년)
- 아다, 이다의 아들 (560년-568년)
- 애설릭, 이다의 아들 (568년-572년)
- 테오드릭, 이다의 아들 (572년-579년)
- 프리투왈드, 아다의 아들일 가능성 있음 (579년-585년)
- 후사, 아다의 아들일 가능성 있음 (585년-593년)
- 애설프리드, 애설릭의 아들 (593년-616년)
데이라의 통치 하 (616년-633년)
- 앤프리드, 애설프리드의 아들 (633년-634년)
애설프리드의 아들 오스왈드의 통치 하에서, 베오르니체는 데이라와 통합되어 634년부터 9세기의 바이킹 침략까지 노섬브리아를 형성했다.
참조
[1]
서적
Northumbria 500–1100
[2]
서적
Language and History in Early Britain
[3]
서적
Language and History in Early Britain
[4]
서적
The Gododdin of Aneirin: text and context from Dark-Age North Britain
https://books.google[...]
University of Wales Press
2011-10-18
[5]
문서
John Morris
[6]
서적
The History of England – From the Earliest Times to the Norman Conquest
READ BOOKS
[7]
서적
Celtic Culture: a historical encyclopedia
https://books.google[...]
ABC-CLIO
[8]
웹사이트
Upper Wharfedale : Being a complete account of the history, antiquities and scenery of the picturesque valley of the Wharfe, from Otley to Langstrothdale
https://archive.org/[...]
[9]
서적
Ælfred's Britain: war and peace in the Viking age
Head of Zeus
2017
[10]
서적
Domesday England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6-08-07
[11]
서적
The Formation of the English Kingdom in the Tenth Century
OUP Oxford
2017
[12]
서적
The History of England – From the Earliest Times to the Norman Conquest
READ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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