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벨렝궁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벨렝 궁전은 리스본에 위치한 궁전으로, 포르투갈 대통령의 공식 관저로 사용된다. 1559년 건설이 시작되어 여러 차례 증축 및 개조를 거쳤으며, 18세기에는 주앙 5세 국왕의 여름 별궁으로 사용되었다. 1910년 혁명 이후 대통령 비서실이 입주하였고, 1928년 공화국 대통령의 공식 거주지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대통령 박물관과 함께 국립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건축 양식은 매너리즘과 바로크 양식이 혼합되어 있으며, 주요 공간은 남쪽 정면에 위치해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포르투갈의 궁전 - 에스타우스궁
    에스타우스 궁전은 14세기 후반 포르투갈 왕실 거처로 지어졌으나, 16세기 종교 재판소 본부로 사용되었고, 이후 1774년 폐지 후 국립 극장 D. 마리아 II로 재건되어 현재는 신고전주의 극장으로 포르투갈 문화 유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 포르투갈의 궁전 - 신트라궁
    신트라궁은 포르투갈 신트라에 위치한 역사적인 궁전으로 15세기부터 왕족의 거처로 사용되었으며, 마누엘 양식의 개축, 아줄레주 타일 장식, 문장실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중요한 역사적 유적지이자 관광 명소이다.
  • 리스본의 건축물 - 포르투갈 국립도서관
    포르투갈 국립도서관은 1796년 설립되어 포르투갈어 자료 및 관련 자료를 수집, 보존, 연구, 보급하며, 포르투갈의 서지 유산을 보호하고 국가 서지 기관으로서 법적 납본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 리스본의 건축물 - 벨렝탑
    벨렘탑은 포르투갈 리스본의 테주 강 하구에 세워진 요새로, 마누엘 1세 시대에 건설되어 포르투갈 해상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상징하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역사적 건축물이다.
벨렝궁 - [지명]에 관한 문서
개요
벨렘 궁전 정면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 광장에서 바라본 벨렘 궁전 정면"
위치산타마리아드벨렘
종류궁전
양식매너리즘 건축
주소(정보 없음)
역사
개장18세기
기공일(정보 없음)
완공일(정보 없음)
소유주포르투갈 왕실 (1910년까지), 포르투갈 공화국 (1910년부터)
건축가주앙 페드루 루도비체
건축 정보
높이(정보 없음)
층수(정보 없음)
면적(정보 없음)
기타 정보
공식 웹사이트벨렘 궁전 공식 웹사이트
비고포르투갈 공화국 대통령의 공식 관저

2. 역사

"귀부인 안뜰"()에 카를루스 1세 국왕이 지은 "팔라세테"(Palacete).


벨렝궁이 위치한 부지는 원래 타구스 강변의 땅이었으며, 16세기 중반 포르투갈 귀족 마누엘 데 포르투갈(Manuel de Portugal)이 매입하여 건물을 지은 것에서 시작되었다.[1] 이후 왕족과 관련을 맺고 소유주가 바뀌다가 1726년 주앙 5세 국왕이 여름 별장을 짓기 위해 매입하면서 본격적인 왕실 궁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1][2][3][4]

1755년 1755년 리스본 지진 당시 큰 피해는 없었으나 여러 차례 수리와 개조를 거쳤으며, 18세기 후반에는 건축가 마테우스 비센테 데 올리베이라(Mateus Vicente de Oliveira)의 지휘 아래 재건축이 이루어졌다.[3][4] 이 시기 궁전 내부 장식과 정비가 진행되었다.[1][2][4]

1807년 포르투갈 왕실의 브라질 이전으로 왕실이 브라질로 떠나면서 궁전은 한동안 방치되었으나,[2][4] 1839년부터 다시 왕실 행사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1840년대에는 네세시다스 궁전 개조 공사 기간 동안 왕실 가족이 벨렝궁에 거주했으며, 포르투갈의 안토니아 공주가 이곳에서 태어나기도 했다.[1][4] 이후에도 왕실 무도회나 결혼식 장소로 사용되었고, 외국 귀빈들의 숙소로도 활용되었다.[2][4] 1886년 카를루스 1세는 결혼 후 이곳을 왕실 거처로 삼기 위해 대대적인 개조를 명했으며, 그의 아들들인 루이스 필리페 왕세자와 마누엘 2세 국왕이 모두 이 궁전에서 태어났다.[2][3][4]

20세기 초에는 외국 귀빈을 맞이하기 위한 별관이 증축되었고,[1][3][4] 1908년 왕실 칙령에 따라 왕실 거처로서의 기능은 중단되고 외무부 소관으로 넘어가 국빈 방문 시 숙소로 사용하게 되었다.[1][3][4] 1910년 10월 5일 혁명으로 공화정이 수립된 후에는 대통령 비서실이 이곳으로 이전했으나, 당시 헌법 규정으로 인해 대통령은 부속 건물을 임대하여 사용했다.[2][4] 제1차 포르투갈 공화국 시기에는 주로 대통령 집무 공간 및 공식 행사 장소로 활용되었다.

1928년 법 개정으로 대통령의 공식 관저 사용이 가능해졌지만, 오스카르 카르모나 대통령은 다른 곳에 거주하며 벨렝궁을 의전용으로만 사용했다.[4] 이후 프란시스코 크라베이루 로페스 대통령 재임 시기(1951–1952)에 별관이 대통령 거주 공간으로 개조되었다.[2][4] 1967년에는 공공 관심 부동산으로 지정되었고, 1969년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일시 폐쇄되기도 했다.[4]

카네이션 혁명 이후에는 국가 구제 위원회 본부로 사용되는 등 포르투갈 현대사의 중요한 무대가 되었다.[1][2][4] 이후에도 대통령 집무실 및 관저로 사용되었으나, 마리오 소아레스, 조르제 삼파이우, 아니발 카바코 실바, 마르셀루 헤벨루 드 소자 등 일부 대통령들은 개인 사저에 거주하며 벨렝궁을 집무 공간으로만 활용했다.[4] 2004년에는 대통령 박물관(Museu da Presidência da Repúblicapt)이 개관하였고,[4] 2006년에는 궁전과 부속 건물 전체가 국립 기념물로 지정되었다.[3]

2. 1. 16-18세기: 초기 역사와 왕실 별궁

벨렝 궁전, 1763년 베르나르도 데 카울라 작.


벨렝궁이 위치한 부지는 원래 타구스 강변에 있던 "오테이루 다스 비냐스"(Outeiro das Vinhas)라는 땅의 일부였다. 1559년, 비미오주 백작의 아들이자 외교관 겸 시인이었던 마누엘 데 포르투갈(Manuel de Portugal)이 이 땅을 사들여 "킨타 드 벨렝"(Quinta de Belém)이라 이름 짓고, 세 개의 살롱과 두 개의 아트리움이 있는 건물을 지었다.[1] 17세기 중반에는 왕족의 일가와 관련이 생겼고, 이후 아베이라스 백작의 소유가 되었다가 수도원이 사용하기도 했다.[2]

이후 이 땅은 주앙 5세 국왕이 사들였고, 1726년에 재건축을 명했다.[3] 당시 부지는 "킨타 드 바이쇼"(Quinta de Baixo)와 "킨타 도 메이오"(Quinta do Meio) 두 구획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국왕은 여름 별장을 짓기 위해 아베이라스 백작 3세 주앙 다 실바 텔로로부터 이 땅들과 인접한 상 로렌수 백작의 농지를 20만 크루자두를 주고 매입했다.[1][2][3][4] 건물이 언제 완공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1754년에는 이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안나 여왕이 이 저택에서 세상을 떠났다.[4]

1755년 1755년 리스본 지진이 발생했을 때, 궁전은 표면적인 피해만 입었을 뿐 붕괴 위험은 없다고 판단되었으나, 1755년에서 1756년 사이에 여러 차례 수리가 이루어졌다.[4] 건축가 주앙 페드로 루도비체(João Pedro Ludovice)의 감독 아래,[3] "카사 레알 데 캄포 데 벨렝"(Casa Real de Campo de Belém) 또는 "팔라시오 다스 레오네이라스"(Palácio das Leoneiras)로도 불리던 이 궁전은 타일 교체, 온실 및 마구간 수리 등의 작업을 거쳤다.[4] 1770년경에는 건축가 마테우스 비센테 데 올리베이라(Mateus Vicente de Oliveira)가 전체 저택의 재건축을 맡았다.[3] 이 시기에는 "살라 다스 비카스"(Sala das Bicas)의 그림 작업, 남쪽 베란다의 아줄레주 타일 교체(1778년), 조류장 건설(1780년) 등 여러 소규모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1][2][4]

2. 2. 20세기 초: 외빈 숙소와 공화정

베르나르디누 마샤두 대통령이 1916년 빌리어드 룸에서 '성스러운 연합' 정부를 접견하고 있다.


1910년 10월 5일 혁명으로 공화정이 수립된 후, ''대통령 비서실''은 1911년 8월 24일 벨렝궁으로 이전했다. 하지만 당시 헌법 제45조는 국가 원수가 국가 소유의 부동산에 거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부는 1912년 6월 28일 칙령을 통해 궁전 옆 부속 건물을 월 100,000 레알에 임대하여 초대 대통령 마누엘 데 아리아가를 수용하도록 했다. 그러나 아리아가 대통령은 결국 자신의 사저에 거주하며 궁전에서는 업무만 보는 것을 선호했다. 이러한 공간 임대 방식은 제1차 포르투갈 공화국 시대 내내 유지되었다.[2][4]

1918년 로시우 기차역에서 시도니우 파이스 대통령이 암살되었을 때, 그의 시신은 장례식이 거행될 때까지 궁전의 ''살라 루이스 XV''(루이스 15세 홀)에 안치되었다.[2][4]

1928년 3월 24일, 공화국 대통령의 공식 거주지에 관한 법이 공포되어 대통령과 그 가족이 국립 궁전 중 한 곳에 거주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오스카르 카르모나 장군은 카스카이스 시타델에 거주하기로 결정하고, 벨렝궁은 의례 행사, 공식 회의, 리셉션 등 공식적인 용도로만 사용했다. 스페인 국왕의 방문이 예정되어 궁전은 여러 차례 개조 공사를 거쳤으나, 실제 방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936년에는 안토니오 리노가 궁전의 중앙 계단을 확장했으며, 크리스티노 다 실바가 이를 완성했다.[4]

프란시스코 크라베이루 로페스 장군이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기(1951–1952년)에는 ''아라비다'' 별관이 대통령 거주 공간으로 개조되었다.[2][4]

1967년 1월 24일, 벨렝궁은 법령 47-508에 따라 ''IIP - Imóvel de Interesse Público''(공공 관심 부동산)으로 공식 분류되었다. 이후 1969년에는 그해 발생한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궁전이 일시적으로 폐쇄되기도 했다.[4]

2. 3. 공화정 시대: 대통령 관저와 주요 행사



1910년 10월 5일 혁명으로 공화정이 수립된 후, ''대통령 비서실''은 1911년 8월 24일 벨렝궁으로 이전했다. 당시 헌법 제45조는 국가 원수가 국가 소유의 부동산에 거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률상의 빈틈을 이용해, 정부는 1912년 6월 28일 칙령을 통해 궁전 옆 부속 건물을 월 100,000 레알에 임대하여 초대 대통령 마누엘 데 아리아가가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아리아가 대통령은 결국 자신의 개인 거주지에서 생활하면서 궁전을 집무 공간으로만 사용하는 것을 선호했다. 이러한 공간 임대 방식은 제1차 포르투갈 공화국 시기 내내 유지되었다.[2][4]

1918년 로시우 기차역에서 시도니우 파이스 대통령이 암살된 후, 그의 시신은 장례식이 거행될 때까지 궁전의 ''살라 루이스 XV''(루이스 15세 홀)에 안치되었다.[2][4]

1928년 3월 24일, 대통령의 공식 거주지에 관한 법이 공포되어 대통령과 그 가족이 국립 궁전 중 한 곳에 거주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오스카르 카르모나 장군은 카스카이스 시타델에 거주하기로 결정하고, 벨렝궁은 주로 의례 행사, 공식 회의, 리셉션 등 공식적인 용도로 사용했다. 스페인 국왕의 방문을 대비하여 궁전은 여러 차례 개조되었으나, 실제 방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936년에는 안토니오 리노가 정문 계단을 확장했고, 크리스티노 다 실바가 이를 완성했다.[4]

프란시스코 크라베이루 로페스 장군(1951–1952년 재임) 시기에는 ''아라비다'' 별관이 대통령 거주 공간으로 개조되었다.[2][4]

1967년 1월 24일, 법령 47-508에 따라 벨렝궁은 ''IIP - Imóvel de Interesse Público''(공공 관심 부동산)으로 공식 분류되었다. 이후 1969년에는 그해 발생한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폐쇄되기도 했다.[4]

전 대통령 아니발 카바코 실바가 2013년 ''살라 다스 비카스''에서 브라질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를 접견하고 있다.


카네이션 혁명 이후, 벨렝궁은 ''준타 데 살바상 나시오날'' (국가 구제 위원회)의 본부로 사용되었다.[1][2][4] 이 시기 궁전은 안토니우 스피놀라와 프란시스코 다 코스타 고메스의 반혁명 시도와 같은 사건들을 겪으며 새로운 민주주의 체제가 자리 잡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목격하기도 했다.[1] 이전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대통령과 가족의 거주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아라비다'' 별관이 다시 개조되었다. 그러나 마리오 소아레스, 조르제 삼파이우, 아니발 카바코 실바 및 현 대통령 마르셀루 헤벨루 드 소자와 같은 일부 대통령들은 벨렝궁을 집무 공간으로만 사용하고, 재임 기간 동안 개인 거주지에서 생활하는 것을 선택했다.[4]

1980년부터 1985년까지 궁전의 메인 식당은 역대 대통령들이 받은 선물들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1][2] 1998년에는 대통령 비서실이 주최한 공모전에서 당선된 건축가 주앙 루이스 카릴료 다 그라사의 설계로 ''문서 및 정보 센터'' (Centro de Documentação e Informaçãopt) 건설이 시작되었다.[3][4]

조르제 삼파이우 대통령은 2002년 화가 파울라 레고에게 궁전 예배당 벽면을 장식할 그림 연작을 의뢰했다. 레고는 ''성모 마리아의 생애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Ciclo da Vida da Virgem Maria e da Paixão de Jesus Cristopt)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완성했다. 이 작품의 초기 전시와 삼파이우 대통령의 노력은 2004년 10월 5일 대통령 박물관(Museu da Presidência da Repúblicapt) 개관으로 이어졌다. 또한, 2005년에는 ''왕 D. 루이스 1세 그림 갤러리''에서 ''두 팔라시우 데 벨렝'' (Do Palácio de Belémpt, 벨렝궁으로부터)이라는 제목의 전시회가 열려 궁전의 역사, 건축, 소장 예술품 등을 소개했다.[4]

2006년 3월 10일, 문화부의 결정에 따라 벨렝궁은 정원, 대통령 박물관 및 기타 부속 건물을 포함하여 국립 기념물로 재분류되었다.[3]

3. 건축

아폰수 데 알부케르크 광장에서 바라본 벨렝 궁전의 모습.


벨렝궁은 전체적으로 "L"자 형태를 띠고 있으며, 주요 공간은 남쪽 정면에 있는 직사각형의 세 부분에 집중되어 있다.[4] 공식 정원을 향한 이 남쪽 정면은 매너리즘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중앙 부분은 아치형 층 위에 삼각 박공으로 장식된 기둥 갤러리가 특징이다.[4] 궁전은 다양한 안뜰과 정원으로 구성된 외부 공간과 여러 방으로 이루어진 내부 공간으로 나뉜다.

3. 1. 외부

벨렝궁은 "L"자 형태의 건물이며, 주요 공간은 남쪽 정면의 직사각형 3개 볼륨 공간에 있다. 공식 정원을 마주보는 이 정면은 매너리즘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5개의 몸체 공간으로 구성되며, 각 공간은 첨탑이 있는 쐐기로 둘러싸여 있다. 중앙 몸체는 아치형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위에는 삼각 박공으로 장식된 기둥 갤러리가 있다.

두 개의 외부 블록은 주요 건물보다 앞쪽에 위치하며, 난간으로 경계를 이루고 측면 계단으로 접근할 수 있는 테라스를 형성한다. 이 측면 벽의 상단은 12개의 단색 아줄레주 타일 패널로 장식되어 있다. 베란다에는 신화 속 인물을 묘사한 14개의 아줄레주 패널이 있으며, 이 중 상당수는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을 보여준다. 패널 주제는 다음과 같다.[4]

베란다 아줄레주 패널 (신화 주제)
주제설명비고
Plutão e Cérbero플루토와 케르베로스
Vénus비너스
Neptuno넵투누스
Hércules헤라클레스
Hércules e a égua de Diómedes헤라클레스와 디오메데스의 암말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
Figura masculina남성 인물
Figura masculina com arco e flechas활과 화살을 든 남성 인물
Figura feminina (2개)여성 인물
Hércules e a ave de Estinfália헤라클레스와 스팀팔리아 새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
Figura masculina com machado괭이를 든 남성 인물
Hércules e a serpente de Ládon헤라클레스와 뱀 라돈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
Hércules e o touro de Creta헤라클레스와 크레타의 황소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
Hércules e a Hidra de Lerna헤라클레스와 레르네의 히드라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



또한 기하학적 패턴과 아칸서스 잎이 있는 두 줄의 타일도 있다.[4]

대통령 경비대 검토 중인 ''Pátio dos Bichos''.


동쪽 정면은 ''Pátio das Damas''(귀부인 안뜰)을 마주보고 있으며 두 층의 창문과 문이 있다. 서쪽 별관은 ''Pátio dos Bichos''(동물 안뜰)와 연결된다. 이 안뜰에서는 문이 있는 입구와 경사로를 통해 ''Jardim da Cascata''(폭포 정원)를 내려다보는 높은 공간을 거쳐 주 계단으로 접근할 수 있다.[4] 21세기 초에 이 공간은 돌로 다시 포장되었다.[5]

궁전 바로 앞, ''Rua de Belém''을 마주보고 있는 곳에는 공식 정원이 있다. 18세기 디자인으로, 조각상으로 장식된 난간으로 둘러싸인 테라스와 세 개의 원형 연못 주변에 교차하는 울타리 패턴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지 북서쪽 모서리에 있는 ''Jardim da Cascata''에는 장식용 난간, 꽃병, 조각상이 있는 캡스톤으로 덮인 세 개의 파빌리온(온실)이 있다. 둥근 아치 안에는 헤라클레스 조각상이 있는 폭포가 있다.[4]

중앙 파빌리온에는 19세기에 완성된 6개의 아줄레주 패널이 인물 구성을 형성하고 있다. 이 패널들의 중앙 구성은 흑백이며, 트림은 다색(노란색, 녹색, 망간 식물 장식)이다. 패널 주제는 다음과 같다.[4]

중앙 파빌리온 아줄레주 패널 (19세기)
패널 주제
야외 장면
과일 바구니를 들고 공원에 있는 두 여성과 한 남성
서 있는 여성 인물이 남성에게 사과를 줌
백개먼 게임
정원에서 음악
정원에서 음악, 하프시코드와 바이올린


3. 2. 내부

대통령 집무실


주요 공간은 남쪽 외관을 따라 일렬로 배치된 방들로 구성되어 있다. 중심 공간은 대리석으로 포장된 웅장한 현관인 ''살라 다스 비카스''(''Sala das Bicas'', 분수실)이다. 이 방의 천장은 18세기 말에 완성되었으며, 조각된 과 다색 아줄레주 애슐러로 구성된 알레고리적인 장식이 특징이다. 방의 이름처럼, 한쪽 벽면에는 사자 머리 장식이 있는 두 개의 둥근 대리석 분수가 설치되어 있다. 또한, 로마 황제를 묘사한 받침대 위에 여덟 개의 벽옥 흉상이 방을 둘러싸고 있다.

''살라 도라다''(''Sala Dourada'', 황금실) 또는 ''살롱 드 바일''(''Salão de Baile'', 무도회장)로 불리는 공간의 천장은 로마 제국을 묘사한 중앙 알레고리와 함께 신고전주의 모티프의 벽화 및 왕관 몰딩 메달리온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살라 루이스 XV''(''Sala Luís XV'', 루이 15세의 방)는 패널로 장식되어 있으며, 특히 브라간사 왕가와 오를레앙 가문의 두 문장을 덮은 일련의 그림들이 눈에 띈다.[4]

좁고 직사각형 형태의 예배당은 매끄러운 벽과 나무 패널로 마감되었다. 내부에는 금박을 입힌 나무로 제작된 신고전주의 건축 양식의 제단화가 있으며, 안드레 레이노소(André Reinoso)가 그린 "''목자들의 경배''" 그림이 자리 잡고 있다.[6] 아치형 천장은 ''살라 도라다''에서 볼 수 있는 것과 유사한 "페론니에르(ferronerie)" 장식 모티프로 꾸며져 있다.[4] 벽에는 현대 예술가 파울라 레고(Paula Rego)가 그린 "''성모 마리아의 생애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연작 그림이 걸려 있다.[4]

4. 현대의 벨렝 궁전

(내용 없음)

참조

[1] 간행물 Jornal do Exército: Centenário da República http://www.exercito.[...] Estado-Maior do Exército 2010-10
[2] 간행물 Exposição do Palácio de Belém http://www.museu.pre[...] Museu da Presidência da República 1985-10-05
[3] 간행물 Palácio Nacional de Belém e todo o conjunto intramuros, nomeadamente o Palácio, os jardins e outras dependências, bem como o Jardim Botânico Tropical, ex - Jardim - Museu Agrícola Tropical http://www.igespar.p[...] IGESPAR
[4] 웹사이트 Palácio Nacional de Belém http://www.monumento[...] SIPA – Sistema de Informação para o Património Arquitectónico
[5] 서적 Pátio dos Bichos e Rampa de Honra http://mestrado-reab[...] Faculdade de Arquitectura, Technical University of Lisbon 2014-10-30
[6] 문서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