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뷔궁
1. 개요
벨뷔궁은 1786년 건축가 미하엘 필리프 바우만이 프로이센의 아우구스투스 페르디난트 공의 거주지로 설계한 독일 최초의 신고전주의 건축물이다. 프로이센 왕족의 거주지로 사용되다, 1918년 독일 혁명 이후 프로이센 자유국의 소유가 되었다. 이후 나치 독일 정부의 게스트 하우스로 사용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 중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재건축 후 서독 대통령의 제2 관저로 사용되었으며, 1994년 독일 재통일 이후에는 대통령의 주요 관저가 되었다. 현재는 대통령의 공식 관저로 사용되지만, 대통령은 베를린 다렘의 빌라에 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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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관저 -
연방 총리실 (베를린)
연방 총리실은 독일 연방 총리의 집무실이며, 1871년 제국 총리실로 시작하여 베를린에 위치하고 2001년에 완공되었으며, 행정부와 입법부의 협력을 상징한다. -
베를린의 궁전 -
포츠담과 베를린의 궁전과 공원
포츠담과 베를린의 궁전과 공원은 프로이센 왕국의 역사를 담고 있는 독일 브란덴부르크주의 광대한 문화 유산으로, 다양한 궁전, 정원, 건축물, 경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지만, 관광객 증가로 인한 환경 문제와 보존 정책에 대한 비판 등 과제도 안고 있다. -
베를린의 궁전 -
공화국궁
공화국궁은 동독 시기 베를린에 건설되어 Volkskammer, 문화 궁전, 인민의 집으로 사용되었으며, 석면 문제와 베를린 성 복원 계획으로 인해 철거되고 훔볼트 포럼이 건설되었다. -
미테구의 건축물 -
브란덴부르크 문
브란덴부르크 문은 베를린에 있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개선문으로, 독일 최초의 그리스 부흥 양식 건축물 중 하나이며, 도리스식 기둥과 사륜전차상으로 장식되어 프로이센의 번영과 독일 통일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
미테구의 건축물 -
베벨 광장
베를린에 있는 베벨 광장은 과거 오페라하우스 광장으로 불렸으나, 독일 사회민주당 창립 멤버의 이름을 따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되었고, 나치의 책 사르기 사건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설치되어 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후 복구된 건물들과 함께 광장 활용 방안에 대한 논쟁이 있는 장소이다.
2. 역사
1786년, 프로이센의 아우구스투스 페르디난트 공의 여름 별궁으로 미하엘 필리프 바우만(Michael Philipp Boumann)이 벨뷔궁을 설계했다. 이 부지에는 1743년 왕실 수석 건축가 게오르크 벤체슬라우스 폰 크노벨스도르프가 지은 저택이 있었다. 벨뷔궁은 독일 최초의 신고전주의 건축 건물이다.
1843년,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벨뷔궁을 매입했고, 1865년에는 그의 조카 프로이센의 알렉산드린 공녀(1842-1906)의 거주지가 되었다. 호엔촐레른 왕조의 왕족과 황족은 1918~19년 독일 혁명까지 이 궁전을 사용했다.
독일 혁명 이후 프로이센 자유국(1918–1933)은 1928년 벨뷔궁을 인수하여 1930년대에 민족학 박물관으로 사용하였다. 1938년에는 나치 독일 정부의 게스트 하우스로 개조되었으나, 1939년부터는 독일 대통령실 실장 오토 마이스너가 점유했다. 1940년 11월 소련 외무장관 뱌체슬라프 몰로토프가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 수행원과 함께 이곳에 머물렀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궁전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전략 폭격과 1945년 베를린 전투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1950년대에 대대적인 개보수 작업을 거쳐 복원되었고, 1959년 테오도어 호이스 대통령에 의해 서독 대통령의 제2관저(피에드아테르)로 지정되었다. 당시 서독 대통령의 본(제1관저)은 함머슈미트 빌라였다.
1986년부터 1987년까지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연방 대통령은 벨뷔궁의 내부를 건축가 오토 마이팅거에게 의뢰하여 외부의 역사적 외관에 맞게 완전히 재설계하도록 했다. 1994년 독일 재통일 이후 바이츠제커는 벨뷔궁을 자신의 주요 거주지로 삼았다.
1998년 궁전 근처 공원 구역에 연방 정부 기관인 연방 대통령실(Bundespräsidialamt)의 사무실을 수용하기 위해 현대적인 타원형 사무실 건물이 건설되었다.
1994년부터 1999년까지 대통령을 역임한 로만 헤르초크는 재임 중 벨뷔궁에 거주한 유일한 인물이다. 2004년과 2005년에 쇠약해진 기반 시설 교체를 위해 궁전이 다시 재건되었다. 이 기간 동안 호르스트 쾰러 대통령은 대표 목적으로 인근 샤를로텐부르크 궁전을 사용했다. 벨뷔궁은 2006년 1월 다시 대통령의 주요 공식 관저가 되었지만, 이후 주거 시설은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연방 대통령은 현재 베를린 남서부 교외 지역인 다렘의 정부 소유 빌라에 거주하고 있다.
2.1. 초기 역사 (18세기 - 1918년)
1786년, 프로이센의 아우구스투스 페르디난트 공의 여름 별궁으로 건축가 미하엘 필리프 바우만(Michael Philipp Boumann)이 벨뷔궁을 설계했다. 이 부지에는 1743년 왕실 수석 건축가 게오르크 벤체슬라우스 폰 크노벨스도르프가 지은 저택이 있었다. 벨뷔궁은 독일 최초의 신고전주의 건축 건물이다.
1843년,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벨뷔궁을 매입했고, 1865년에는 그의 조카 프로이센의 알렉산드린 공녀(1842-1906)의 거주지가 되었다. 호엔촐레른 왕조의 왕족과 황족은 1918~19년 독일 혁명까지 이 궁전을 사용했다. 마지막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이 궁전을 게스트 하우스 및 자녀들을 위한 사립 학교로 사용했다.
2.2.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 시대 (1918년 - 1945년)
독일 혁명 이후 프로이센 자유국(1918–1933)은 1928년 벨뷔궁을 인수하여 1930년대에 민족학 박물관으로 사용하였다. 1938년에는 나치 독일 정부의 게스트 하우스로 개조되었으나, 1939년부터는 독일 대통령실 실장 오토 마이스너가 점유했다. 1940년 11월 소련 외무장관 뱌체슬라프 몰로토프가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 수행원과 함께 이곳에 머물렀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궁전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전략 폭격과 1945년 베를린 전투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2.3. 전후 복구와 서독 시대 (1945년 - 1990년)
제2차 세계 대전 중, 벨뷔궁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전략 폭격과 1945년 베를린 전투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1950년대에 대대적인 개보수 작업을 거쳐 복원되었고, 1959년 테오도어 호이스 대통령에 의해 서독 대통령의 제2관저(피에드아테르)로 지정되었다. 당시 서독 대통령의 본(제1관저)은 함머슈미트 빌라였다.
1986년부터 1987년까지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연방 대통령은 벨뷔궁의 내부를 건축가 오토 마이팅거에게 의뢰하여 외부의 역사적 외관에 맞게 완전히 재설계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파괴 이전의 계획에 따라 방의 순서도 복원되었다. 바이츠제커는 카셀의 빌헬름스회헤 궁전에서 가져온 귀중한 제국 양식 가구 컬렉션의 일부를 영구 대여 형식으로 궁전에 비치하고, 독일 박물관과의 회화를 교환하여 방문객에게 고전적이고 현대적인 독일 예술을 선보였다. 다만, 두 개의 방은 전후 모더니즘 스타일의 가구와 함께 보존되었다. 1994년 독일 재통일 이후 바이츠제커는 벨뷔궁을 자신의 주요 거주지로 삼았다.
2.4. 독일 통일 이후 (1990년 - 현재)
1986년부터 1987년까지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연방 대통령은 건축가 오토 마이팅거에게 궁전 내부를 외부의 역사적 외관에 맞춰 완전히 재설계하도록 했으며, 이에 따라 파괴 이전의 계획대로 방의 순서가 복원되었다. 바이츠제커는 카셀의 빌헬름스회헤 궁전에서 가져온 귀중한 제국 양식 가구 컬렉션 일부를 영구 대여 형식으로 궁전에 비치하고, 독일 박물관과 회화를 교환하여 방문객에게 고전적이고 현대적인 독일 예술을 선보였다. 다만, 두 개의 방은 전후 모더니즘 스타일의 가구와 함께 보존되었다. 1994년 독일 재통일 이후 바이츠제커는 이곳을 자신의 주요 거주지로 삼았다.
1998년 궁전 근처 공원 구역에 연방 정부 기관인 연방 대통령실(Bundespräsidialamt)의 사무실을 수용하기 위해 현대적인 타원형 사무실 건물이 건설되었다.
1994년부터 1999년까지 대통령을 역임한 로만 헤르초크는 재임 중 벨뷔궁에 거주한 유일한 인물이다. 2004년과 2005년에 쇠약해진 기반 시설 교체를 위해 궁전이 다시 재건되었다. 이 기간 동안 호르스트 쾰러 대통령은 대표 목적으로 인근 샤를로텐부르크 궁전을 사용했다. 벨뷔궁은 2006년 1월 다시 대통령의 주요 공식 관저가 되었지만, 이후 주거 시설은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연방 대통령은 현재 베를린 남서부 교외 지역인 다렘의 정부 소유 빌라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 빌라는 1962년부터 독일 총리의 베를린 숙소로 사용되어 왔다.
3. 주요 특징
벨뷔궁은 1786년 건축가 미하엘 필리프 바우만(Michael Philipp Boumann)의 설계로 세워졌다. 프로이센의 아우구스투스 페르디난트 공의 거주지로 사용되었으며, 프로이센 국왕 프레데릭 2세의 막내 동생이 살았던 곳이다. 벨뷔궁 부지에는 1743년 프레데릭 왕의 건축가 게오르크 벤체슬라우스 폰 크노벨스도르프가 자신을 위해 지었던 저택이 있었으나 철거되었고, 슈프레 강변의 가죽 공장을 개조하여 오른쪽 날개로 사용하는 등 기존 구조물이 활용되었다. 1880년대 베를린 슈타트반 고가교 건설 이전에는 샤를로텐부르크 궁전 탑까지 전망이 닿아 '벨뷔(Bellevue)'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궁전은 약 20헥타르의 공원으로 둘러싸여 있다. 1994년 독일 재통일 이후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는 벨뷔궁을 자신의 주요 거주지로 삼았다. 1994년부터 1999년까지 대통령을 역임한 로만 헤르초크는 재임 중 벨뷔궁에 거주한 유일한 인물이다. 2004년과 2005년에 벨뷔궁은 재건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호르스트 쾰러 대통령은 샤를로텐부르크 궁전을 대표 목적으로 사용했다. 2006년 1월 벨뷔궁은 다시 대통령의 주요 공식 관저가 되었지만, 주거 시설은 포함되지 않았다. 현재 연방 대통령은 베를린 남서부 교외 다렘의 정부 소유 빌라에 거주하고 있다.
3.1. 건축 양식
미하엘 필리프 바우만(Michael Philipp Boumann)이 설계한 벨뷔궁은 독일 최초의 신고전주의 건축 건물로, 코린트식 기둥과 양쪽 날개(여성 날개와 슈프레 강 날개)가 특징이다. 브란덴부르크 문의 건축가인 카를 고트하르트 랑한스가 설계한 상층부의 무도회장은 원래 장식을 유지한 유일한 방이다.
3.2. 내부 시설
카를 고트하르트 랑한스가 설계한 상층부의 무도회장은 원래 장식을 유지한 유일한 방이다.
1986년부터 1987년까지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연방 대통령은 궁전 내부를 건축가 오토 마이팅거가 외부의 역사적 외관의 특성에 맞게 완전히 재설계하도록 하였고, 파괴 이전의 계획에 따라 방의 순서도 복원하였다. 바이츠제커는 카셀의 빌헬름스회헤 궁전에서 가져온 귀중한 제국 양식 가구 컬렉션의 일부를 영구 대여 형식으로 궁전에 비치하고, 독일 박물관과 회화를 교환하여 방문객에게 고전적이고 현대적인 독일 예술을 선보였다. 하지만 두 개의 방은 전후 모더니즘 스타일의 가구와 함께 보존되었다.
3.3. 대통령실
1939년부터 오토 마이스너가 독일 대통령실 실장으로 벨뷔궁을 점유했다. 1940년 11월 베를린을 방문한 소련 외무장관 뱌체슬라프 몰로토프와 수행원들이 이곳에 머물렀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궁전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전략 폭격과 1945년 베를린 전투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1950년대에 대대적으로 개조되었다. 1959년 테오도어 호이스 대통령이 개관하였으며, 서독 대통령의 부관저이자 본의 함머슈미트 빌라를 보완하는 서베를린의 임시 거처로 사용되었다.
1998년 궁전 근처 공원 구역에 연방 정부 기관인 연방 대통령실(Bundespräsidialamt)의 사무실을 수용하기 위해 현대적인 타원형 사무실 건물이 건설되었다.
4. 대통령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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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깃발은 대통령이 베를린에 없을 때에도 벨뷰 궁에 게양된다. 대통령이 국빈 방문 등으로 해외 임시 거주지에 머물거나, 함머슈미트 빌라에 있을 때와 같이 다른 곳에서 공식적으로 거주할 때만 깃발이 내려진다. 대통령이 휴가를 가더라도 벨뷰 궁은 공식 거주지로 남아 깃발이 계속 게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