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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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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본도인은 일본 통치 시기 대만의 한족계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대만은 다양한 민족이 거주하는 다문화 사회로, 네덜란드 통치 시대부터 한족 이주가 시작되었고, 일본 통치 시대에는 일본인 통치하에 한족계 주민을 '본도인'으로 불렀다. 1921년 대만문화협회 설립을 통해 '대만인' 정체성이 등장했으며, 1945년 일본 항복 후 중화민국에 편입되면서 '본도인'은 '본성인'으로 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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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도인

2. 배경

대만은 다문화 사회이다.[2] 원래 대만 섬에는 인구가 적지만 문화적으로 다양한 말레이-폴리네시아 계통의 선주 민족이 거주하고 있었다.[2] 네덜란드인 통치기(본섬의 남부)에는 맞은편 중국 대륙에서 한족(백월)이 노동자로 건너왔다.[2] 구체적으로는 푸젠성 남부 출신으로 각자의 모어(호로어 및 민남어)를 사용하는 호로인(민남인이라고도 함) 및 광둥성 북부 출신으로 객가어를 사용하는 객가인이었다.[3][4] 이들 한족 계열의 한화 물결은 19세기 초까지 이어져 청나라 통치 시대의 한화 정책이 진행되어 대만의 한족계 인구는 195만 명으로 증가했고, 선주 민족은 열세의 소수자 지위에 놓였다.[2] 일본 통치 시대에는 일본인이 통치자로서 이주하여 최종적으로 40만 명에 달했다.[2] 한족계 주민은 일본어(당시 "국어"라고 불렸다) 교육 등을 통해 일본인에게 종속적인 "동화"를 강요받았다.[1]

3. '대만인' 정체성의 등장

대만 주민들은 종속적인 국민화를 강요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1] 1921년에는 새로운 민족 의식을 가진 대만인 지식인들의 민족 운동 단체인 대만문화협회가 설립되어 문화 운동을 통해, "본도인"이라는 억압된 정체성을 뒤집은 "대만인" 정체성이 등장했다.[1] 또한 같은 해에 대만 독자적인 의회 설치를 요구하는 대만 의회 설치 청원 운동이라는 자치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운동의 지도자 중 한 명인 장웨이수이의 발언 "대만 의회 청원이 출현함과 동시에 대만인의 인격이 태어났다"라는 발언은 대만인 정체성의 탄생을 여실히 보여준다.[5]

4. '본도인'에서 '본성인'으로

1945년 8월 포츠담 선언 수락으로 일본이 항복하면서, 대만은 연합국의 일원이었던 중화민국에 "대만 성"으로 편입되었다. 같은 해 10월 25일에는 중국 전구 최고 사령관 장제스의 대리인 천이가 마지막 대만 총독 안도 리키치로부터 항복을 받았다.[6] 1946년 1월 중화민국 행정원 훈령에 의해 당시 대만의 주민은 "1945년 10월 25일부터 중화민국의 국적을 회복했다"고 간주되었다.[7] 이 훈령으로 중화민국 국적을 회복한 남성과 그 자손이 본성인이 되었고, 이 훈령에 따르지 않고 중화민국 국적을 소유하고 그 후 대만에 거주하게 된 남성과 그 자손을 "외성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7][8] 이로써 일본 통치 하의 "본도인"은 중화민국 통치 하의 "본성인"이 되었다.[7]

5. 한국과의 비교 (가칭)

"본도인"이라는 용어는 일제강점기 한국의 상황과 비교해 볼 때, 몇 가지 유사점과 차이점을 보인다.
유사점:


  • 식민 통치 하의 차별적 용어: "본도인"은 일본이 대만인을 지칭하며 일본인과 구별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였다. 이는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조선인을 지칭하던 '조센징'과 유사하게,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고 차별을 내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 민족 정체성 형성 촉진: "본도인"이라는 차별적 용어는 역설적으로 대만인들의 민족 정체성 형성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만문화협회와 같은 민족 운동 단체들은 "본도인"이라는 억압된 정체성을 "대만인"이라는 자긍심 있는 정체성으로 전환시키려 노력했다. 이는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3.1 운동 이후 민족의식이 고취되고, 독립운동이 활발해진 것과 유사하다.

차이점:

  • 다민족 사회: 대만은 선주 민족, 호로인, 객가인, 일본인 등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사회였다. "본도인"은 주로 한족 계통의 대만인을 지칭하는 용어였으며, 선주 민족은 "번인"으로 불렸다. 반면, 조선은 단일 민족 국가에 가까웠기 때문에, "조센징"이라는 용어는 조선인 전체를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정체성 변화: 일본 패망 후, 대만은 중화민국에 편입되면서 "본도인"은 "본성인"으로 바뀌었다. 반면, 한국은 분단으로 인해 남북한 주민 모두 "조선인"이라는 용어 대신 "한국인"과 "조선인"(북한)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이처럼 "본도인"이라는 용어는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한국의 상황과 유사점과 차이점을 동시에 보여준다.

5. 1. 일제강점기 민족 정체성

대만은 다문화 사회였다.[2] 원래 대만 섬에는 인구가 적지만 다양한 문화를 가진 말레이-폴리네시아 계통의 선주 민족이 살고 있었다.[2] 네덜란드 통치 시기에는 중국 대륙에서 한족이 노동자로 건너왔다.[2] 이들은 푸젠성 남부 출신의 호로인(민남인)과 광둥성 북부 출신의 객가인이었다.[3][4] 청나라 통치 시대에는 한화 정책으로 대만의 한족계 인구가 195만 명으로 늘었고, 선주 민족은 소수 민족이 되었다.[2] 일본 통치 시대에는 일본인이 이주해 와 40만 명에 달했다.[2] 한족계 주민은 일본어 교육 등을 통해 일본인에게 종속되는 "동화"를 강요받았다.[1] "내지인"(일본인)을 정점으로, "본도인", "번인"(선주 민족) 순의 계층 질서가 생겨났다.[1] "본도인"은 "대일본 제국"의 "2등 신민"을 의미했다.[1]

그러나, 대만 주민들은 종속적인 국민화만 강요당한 것은 아니었다.[1] 1921년에는 민족 운동 단체인 대만문화협회가 설립되어, "본도인"이라는 억압된 정체성을 뒤집은 "대만인" 정체성이 나타났다.[1] 같은 해에 대만 의회 설치 청원 운동이라는 자치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운동의 지도자인 장웨이수이는 "대만 의회 청원이 출현함과 동시에 대만인의 인격이 태어났다"라고 말해, 대만인 정체성의 탄생을 보여주었다.[5]

5. 2. 전후 정체성 변화

1945년 8월 포츠담 선언 수락으로 일본이 항복하면서, 대만은 "대만 성"으로서 연합국의 일원이었던 중화민국에 편입되었다. 1945년 10월 25일에는 중국 전구 최고 사령관 장제스의 대리인 천이가 마지막 대만 총독 안도 리키치로부터 항복을 받았다.[6] 1946년 1월 중화민국 행정원 훈령에 의해 당시 대만의 주민은 "1945년 10월 25일부터 중화민국의 국적을 회복했다"고 간주되었다.[7] 이 훈령으로 중화민국 국적을 회복한 남성과 그 자손이 본성인이 되었고, 이 훈령에 따르지 않고 중화민국 국적을 소유하고 그 후 대만에 거주하게 된 남성과 그 자손을 "외성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7][8] 이로써 일본 통치 하의 "본도인"은 중화민국 통치 하의 "본성인"이 되었다.[7]

참조

[1] 서적
[2] 서적
[3] 서적
[4] 서적
[5] 서적
[6] 서적
[7] 서적
[8]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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