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사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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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미정은 조덕린이 수양을 위해 1727년 조선 영조 때 지은 정자이다. 계곡을 낀 경사진 곳에 위치하며,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마루와 온돌방을 갖추고 있다. 현판 '사미정'과 내현판 '마암'은 채제공이 썼으며, 사미정기는 건축사적으로 가치가 있다.

봉화 사미정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지도
문화재 정보
이름봉화 사미정
봉화 사미정
봉화 사미정
국가대한민국, 경상북도
유형유형문화재
번호477
지정일2013년 4월 8일
해지일해당 없음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 소천리 554
시대해당 없음
소유자해당 없음
참고해당 없음
면적해당 없음
수량1동
전승지해당 없음
전승자해당 없음
웹사이트해당 없음
문화재청 ID21,04770000,37
문화재 정보 (과거)
이름사미정
국가대한민국, 경상북도
유형문화재자료
번호276
지정일1993년 2월 25일
해지일2013년 4월 8일
문화재청 ID31,027600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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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건립 배경 및 역사

(내용 없음)

2.1. 건립 배경

사미정은 조덕린(1658년~1737년) 선생이 말년에 수양하고자 영조 3년(1727년)에 건립한 정자이다. 경치 좋기로 이름난 계곡을 낀 경사진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에 5량가 구조로 지어졌다. 건물 내부는 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을 둔 형태이다. 정자 건립의 동기를 적은 사미정기는 건축사적으로 좋은 자료로 평가받는다.

현판 ‘사미정’과 내현판 ‘마암’은 정조(재위 1776년~1800년) 때 정승을 지낸 채제공이 직접 썼다고 전해진다.

2.2. 역사

사미정은 조덕린(1658년~1737년)이 말년에 수양하기 위해 조선 영조 3년(1727년)에 경치가 좋은 곳을 찾아 지은 정자이다. 계곡을 낀 경사진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다. 건물 내부는 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을 두었으며, 가구는 5량가 구조이다. 정자 건립의 동기를 적은 사미정기는 건축사적으로 좋은 자료로 평가받는다.

정자에 걸린 현판 '사미정'과 내부 현판 '마암'은 조선 정조(재위 1776년~1800년) 때의 명정승 채제공이 직접 썼다고 전해진다.

3. 건축 양식

조덕린(1658년~1737년)이 말년에 수양하기 위해 영조 3년(1727년) 경치 좋은 곳을 찾아 지은 정자이다. 계곡을 낀 경사진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다. 가구는 5량가 구조이며, 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한 형태이다. 정자 건립의 동기를 적은 사미정기는 건축사적으로 좋은 자료로 평가받는다.

3.1. 현판

정자 외부의 현판 '사미정'과 정자 내부의 현판 '마암'은 정조(재위 1776년~1800년) 때 이름난 정승이었던 채제공이 직접 썼다고 전해진다.

4. 사미정기

정자 건립의 동기를 적어둔 사미정기의 내용은 건축사적 측면에서 좋은 자료이다.

5.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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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의 문화재자료 제122호로 지정되었다.

6. 관련 인물

영조 3년(1727년)에 조덕린(1658년~1737년)이 말년에 수양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정자의 현판 '사미정'과 내현판 '마암'은 정조 때의 명재상 채제공이 직접 쓴 것으로 전해진다.

6.1. 조덕린

조덕린(1658년~1737년)은 말년에 수양할 목적으로 경치가 좋은 곳을 찾아 영조 3년(1727년)에 사미정을 건립하였다. 정자는 계곡 옆 경사진 터에 자리하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다. 건물 내부는 마루를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을 배치한 구조이며, 가구는 5량가 형식이다.

정자에 걸린 현판 '사미정(四未亭)'과 내부 현판 '마암(磨巖)'은 정조 시대의 명재상이었던 채제공이 직접 쓴 글씨로 전해진다. 정자 건립의 배경과 과정을 기록한 사미정기(四未亭記)는 건축사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6.2. 채제공

정조(재위 1776년~1800년) 시대의 명망 높은 정승이었던 채제공은 사미정의 현판 ‘사미정’과 내부 현판 ‘마암’을 직접 쓴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