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주 정제
1. 개요
북주 정제는 북주의 마지막 황제이다. 573년에 태어나 579년 7세의 나이로 즉위하였으나, 실질적인 권력은 양견에게 있었고, 이혜와 우문주 등의 반란으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581년 양견에게 선위하고 개국공에 봉해졌지만, 그 해 5월에 양견에게 처형당했다.
| 이름 | 북주 정제 |
|---|---|
| 휘 | 우문 천(宇文 闡) (초기에는 우문 연(宇文 衍)) |
| 묘호 | 없음 |
| 시호 | 정황제(靜皇帝) (수나라 문제에 의해 추증됨) |
| 생년 | 573년 |
| 몰년 | 581년 |
| 장지 | 공릉(恭陵) |
| 정치 체제 | 황제 |
|---|---|
| 재위 기간 | 579년 4월 1일 - 581년 3월 4일 |
| 연호 | 대상(大象): 579년-581년 대정(大定): 581년 |
| 섭정 | 선제 (579년 4월 1일 – 580년 6월 22일) 양견 (580년 6월 23일 – 581년) |
| 계승 순서 | 선제의 뒤를 이음 |
| 폐위 후 작위 | 개국공(介國公) (581년 3월 4일 ~ 581년 7월 9일) |
| 아버지 | 선제 |
|---|---|
| 어머니 | 주만월 |
| 배우자 | 사마영희 (하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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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3년 출생 -
두건덕
두건덕은 수나라 말기 농민 반란 지도자로서 고사달의 휘하에서 세력을 키워 하왕을 칭하며 하북 지방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했으나 당나라 이세민에게 패배하여 처형되었고, 그의 세력은 유흑달에 의해 계승되었다. -
573년 출생 -
아부 바크르 알시디크
아부 바크르 알시디크는 메카 출신의 아랍인으로, 무함마드의 측근이자 초대 정통 칼리파로서 이슬람 세력 확장에 기여했으며, 순니파에서는 존경받지만 시아파에서는 부정적으로 평가받는다. -
북주의 황제 -
북주 무제
북주 무제 우문옹은 권신 우문호를 제거하고 친정을 통해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하고 폐불 정책을 통해 재정을 확보하였으며, 북제를 멸망시키고 화북을 통일했으나 진나라 공격을 앞두고 병사한 북주의 제3대 황제이다. -
북주의 황제 -
북주 선제
북주 선제는 북주 무제의 아들로 황태자를 거쳐 즉위했으나 사치와 폭정, 외척에게 정치를 맡기는 등 실정을 거듭하다 아들에게 양위하고 주색에 빠져 북주 멸망의 원인을 제공하고 22세에 사망했다. -
수나라 사람 -
문덕황후 (당나라)
문덕황후는 수나라 장군 장손성의 딸이자 당 태종 이세민의 황후로, 뛰어난 지혜와 덕망으로 태종의 치세에 큰 영향을 미치고 검소함과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태종을 보좌하여 현명한 황후의 표본으로 평가받는다. -
수나라 사람 -
장손무기
2. 생애
579년 여름, 정제가 황제가 되면서 선제는 정제의 어머니 주씨(朱氏)에게 "천원제후"(天元帝后)라는 특별한 칭호를 내렸는데, 이는 선제의 부인 양황후의 칭호보다 약간 아래였다.
579년 가을, 정제는 장군 사마소난의 딸 사마령지를 아내이자 황후로 정식으로 맞이했고, 그녀는 선제의 황후들과 구별하기 위해 "정양황후"라는 반 공식적인 칭호를 받았다.
선제 시대에 이미 약해지고 있던 북주였으나, 정제의 시대에는 신주자사 이혜(申州刺史 李慧)와 황족 소국공 우문주(邵國公 宇文冑) 등이 군사를 일으켜 국내에 혼란을 가져왔다.
580년 여름, 선제가 사망하자 양견은 재빨리 권력을 장악하여 섭정을 맡았다. 장군 울지경은 양견이 황위를 찬탈하려 한다고 믿고 반란을 일으켰으며, 사마소난과 왕겸(王謙)이 그에게 합류했다. 양견의 명령을 받은 장군 위효관이 지휘하는 중앙 정부군은 신속하게 울지를 격파했고, 울지는 자결했다. 왕겸 또한 패배하여 살해되었으며, 사마소난은 경쟁 국가인 진나라로 도망쳤다. 사마소난이 양견에게 저항한 탓에 정제의 아내 사마황후는 폐위되었다.
울지의 반란 전, 양견은 선제가 자신의 봉토로 보낸 정제의 숙부들인 우문조(趙王), 우문순(陳王), 우문성(越王), 우문달(代王), 우문유(滕王)가 자신에게 저항할까 두려워 그들을 수도 장안으로 소환했다. 곧, 양견은 이 왕자들이 자신에게 대항할 것이라고 믿고 먼저 선제의 사촌인 우문현(畢王)을 처형했다. 우문조가 이후 양견 암살을 시도하자 양견은 우문조와 우문성 및 그들의 가문을 죽였다. 울지가 패배한 후, 양견은 왕자들을 본격적으로 처형하기 시작했다.
2.1. 즉위 전
573년 2월, 장안(長安)의 동궁에서 태어났다. 579년 1월, 노왕(魯王)으로 봉해졌고, 얼마 후 황태자가 되었다. 같은 해 2월, 불과 7세의 나이로 아버지 선제에게서 양위받았다. 선제가 천원황제(天元皇帝)를 칭했기 때문에, 정제는 정양궁(正陽宮)을 칭했다. 어렸기 때문에, 양황후의 아버지인 승상 · 수국공 양견(楊堅)이 보필했다. 즉위 후 이름을 천(闡)으로 바꿨다.
건덕 2년(573년) 6월, 장안 동궁에서 황태자였던 선제 우문윤의 장남으로, 황후 중 한 명인 주만월을 어머니로 태어났다. 대성 2년(579년) 1월, 노왕에 봉해진 지 얼마 안 되어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같은 해 2월, 불과 7세의 나이로 선제로부터 선위를 받았다. 선제가 천원황제를 칭했기 때문에, 정제는 정양궁을 칭했다. 어린 나이였으므로 적모인 천원황태후의 아버지인 승상 수국공 양견이 보좌했다.
2.2. 즉위와 퇴위
579년 1월, 노왕(魯王)으로 봉해졌다가 황태자가 되었다. 2월, 불과 7세의 나이로 아버지 선제에게서 황위를 물려받았다. 선제가 천원황제(天元皇帝)를 칭했기 때문에, 정제는 정양궁(正陽宮)을 칭했다. 어렸기 때문에, 양황후의 아버지인 승상 · 수국공 양견(楊堅)이 보필했다. 즉위 후 이름을 천(闡)으로 바꿨다.
선제 시대에 이미 약해지고 있던 북주이지만, 정제의 시대에는 신주자사 이혜(申州刺史 李慧)와 황족 소국공 우문주(邵國公 宇文冑) 등이 군사를 일으켜서, 국내에 혼란을 가져왔다.
580년 여름, 선제가 사망하자 양견은 재빨리 권력을 장악하여 섭정이 되었다. 장군 울지경은 양견이 황위를 찬탈하려 한다고 믿고 반란을 일으켰으며, 사마소난과 왕겸(王謙)이 그에게 합류했다. 양견의 명령을 받은 장군 위효관이 지휘하는 중앙 정부군은 신속하게 울지를 격파했고, 울지는 자결했다. 왕겸 또한 패배하여 살해되었으며, 사마소난은 경쟁 국가인 진나라로 도망쳤다.
사태를 수습할 수 없는 정제는, 581년 2월에 수왕(隋王) 양견에게 제위를 선양하면서 북주는 멸망하였고 퇴위 후의 정제는 개국공(介國公)에 봉해졌지만, 결국 5월에 양견에게 처형당했다.
2.3. 퇴위 후 죽음
건덕 2년(573년) 장안 동궁에서 황태자였던 선제 우문윤의 장남으로, 황후 중 한 명인 주만월을 어머니로 하여 태어났다. 대성 2년(579년) 1월, 노왕에 봉해진 지 얼마 안 되어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같은 해 2월, 불과 7세의 나이로 선제로부터 선위를 받았다. 선제가 천원황제를 칭했기 때문에, 정제는 정양궁을 칭했다. 어린 나이였으므로 적모인 천원황태후의 아버지인 승상 수국공 양견이 보좌했다.
선제의 시대에 이미 약화되었던 북주였으나, 정제의 시대에는 신주자사 이혜와 황족 소국공 우문주 등이 거병하여 국내에 혼란이 일어났다. 사태를 수습하지 못한 정제는 대정 원년(581년) 2월에 수왕 양견에게 제위를 선양하여 북주는 멸망했다. 퇴위 후 우문천은 개국공에 봉해졌으나, 같은 해 5월에 문제 양견에 의해 살해되었다。 향년 9세.
3.1. 조부모와 부모
* 조부 : 고조(高祖) 무황제(武皇帝) 우문 옹
* 조모 : 제태후(帝太后) 이아자(李娥姿)
* 부친 : 선황제(宣皇帝) 우문 윤
* 모친 : 천대황후(天大皇后) 주만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