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1. 개요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는 신라 진흥왕이 영토 확장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순수비이다. 비의 건립 시기는 555년 또는 568년 이후로 추정되며, 높이 1.54m, 너비 0.69m, 두께 0.16m이다. 조선 시대에는 무학대사의 비로 알려졌으나, 김정희에 의해 진흥왕 순수비임이 밝혀졌다.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많은 부분이 손상되고 총탄 흔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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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 순수비 -
마운령 진흥왕 순수비
마운령 진흥왕 순수비는 진흥왕이 568년 8월 마운령 순행을 기념하여 세운 화강암 비석으로, 비문에는 진흥왕의 업적과 순행 목적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현재 북한 함흥본궁에 보관되어 있다. -
진흥왕 순수비 -
황초령 진흥왕 순수비
신라 진흥왕이 동북 지역 순행을 기념하여 568년에 세운 황초령 진흥왕 순수비는 건립 배경, 진흥왕 업적, 순행 목적 등이 기록되어 있어 신라의 북방 영토 확장과 관직 체계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승리기념비 -
북관대첩비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 당시 함경도 의병들의 활약을 기록한 비석으로, 1709년 건립되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2005년 한국으로, 2006년 북한으로 반환되었다. -
승리기념비 -
해남 명량대첩비
해남 명량대첩비는 1688년 박신주가 이순신 장군의 명량 해전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비석으로, 명량대첩의 상황과 이순신 장군의 충의를 기리는 내용이 담겨 있으며, 국난 시 눈물을 흘린다는 전설이 있다. -
서울특별시의 국보 -
훈민정음
훈민정음은 1443년에 세종에 의해 창제된 한국의 고유 문자로, 한글의 창제목적, 원리, 사용법 등을 담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통해 1446년에 반포되었으며,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문자로 평가받는다. -
서울특별시의 국보 -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은 김대성이 발원하여 조성된 불상으로, 이상적인 비례와 사실적인 옷 주름, 아미타정인 중 상품하생인의 수인, 주형 광배와 연화대좌를 갖추고 있으며, 명문을 통해 8세기 신라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2.1. 건립 시기 논쟁
학자들에 따라 신라 진흥왕 16년(555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비에 남천주란 지명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568년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2.2. 진흥왕의 영토 확장
진흥왕은 백제의 영토인 한강 중류 지대를 차지하고, 고구려 땅인 함주(咸州)·이원(利原) 근방까지 정복하여 신라 최대의 영토 확장에 힘썼다. 이를 기념하고자 순시(또는 순수)한 곳마다 기념비를 세웠다. 현재까지 알려진 순수비로는 창녕비·북한산비·황초령비·마운령비 등 4개가 있다.
2.3. 순수비 건립의 의미
진흥왕은 백제의 영토인 한강 중류지대를 차지하고, 고구려 땅인 함주, 이원 근방까지 정복하여 신라 최대의 영토 확장에 힘썼다. 이를 기념하고자 새로 공략한 국경지대를 순시한 다음 순수비를 세웠다. 현재까지 알려진 순수비로는 창녕비, 북한산비, 황초령비, 마운령비 등 4개가 있다.
2.4. 현존하는 순수비
진흥왕은 백제의 영토인 한강 중류지대를 차지하고, 고구려 땅인 함주(咸州)·이원(利原) 근방까지 정복하여 신라 최대의 영토 확장에 힘썼다. 이를 기념하고자 새로 공략한 국경지대를 순시(또는 순수)한 곳마다 기념비를 세웠다. 현재까지 알려진 순수비로는 창녕비(昌寧碑)·북한산비(北漢山碑)·황초령비(黃草嶺碑)·마운령비(摩雲嶺碑) 등 4개가 있다.
2.5. 조선시대의 인식과 김정희의 재발견
조선 시대에는 무학대사의 비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1816년에 김정희는 김경연과 함께 비문을 탁본하고, 이듬해에 조인영과 다시 북한산 비봉에 올라가 조사한 뒤, 진흥왕의 순수를 기념한 것임을 확인했다. 비의 옆면에는 김정희와 조인영이 답사하여 판독한 사실이 새겨져 있다.
2.6. 비문의 손상과 보존
비 옆면에는 김정희와 조인영이 답사하여 판독한 사실이 새겨져 있다. 원래 북한산 비봉에 있었으나 보존을 위해 경복궁으로 옮겨졌다가 1970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비는 많은 부분이 절단 또는 손상되었고, 비신 뒤쪽에는 무수한 총탄 흔적이 남아 있다.
3.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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