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 홀지
1. 개요
브래드 홀지는 미국의 야구 선수로, 투수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에서 에이스로 활동하며 2002년 칼리지 월드 시리즈 우승을 경험했으며, 2002년 뉴욕 양키스에 지명되어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등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며, 2006년 배리 본즈에게 홈런을 허용하기도 했다. 이후 마이너 리그와 독립 리그를 거쳐 2011년 은퇴했으며, 2014년 등산 중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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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브래드 알렉산더 홀지 |
|---|---|
| 원어 이름 | Bradford Alexander Halsey |
| 포지션 | 투수 |
| 투구/타석 | 좌투/좌타 |
| 출생일 | 1981년 2월 14일 |
| 출생지 |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
| 사망일 | 2014년 10월 31일 |
| 사망지 | 미국 텍사스주 뉴브라운펠즈 |
| 데뷔 리그 | MLB |
|---|---|
| 데뷔 | 2004년 6월 19일 |
| 마지막 리그 | MLB |
| 마지막 경기 | 2006년 10월 1일 |
| 드래프트 | 2002년 드래프트 8라운드 (전체 246위), 뉴욕 양키스 지명 |
| 소속팀 | 뉴욕 양키스 (2004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05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2006년) 롱아일랜드 덕스 (2009년) 게리-사우스쇼어 레일캐츠 (2010년) |
| 키 | 185 cm |
|---|---|
| 몸무게 | 84 kg |
| 승패 | 14승 19패 |
|---|---|
| 평균자책점 | 4.84 |
| 탈삼진 | 160 |
| 고등학교 | 웨스트필드 고등학교 |
|---|---|
| 대학교 |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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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출생 -
김정철 (1981년)
김정철은 김정일의 차남이자 김정은의 친형으로, 스위스 유학 경험이 있으며 에릭 클랩튼의 팬으로 알려졌고, 김정은 체제 하에서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요직에 있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
1981년 출생 -
호세 카페얀
호세 카페얀은 미국과 한국 프로 야구에서 활동했으며, 메이저 리그와 KBO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가 2015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
뉴욕 양키스 선수 -
데이비드 저스티스
데이비드 저스티스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뛰어난 타격 능력으로 활약하며 신인왕, 실버 슬러거 상, 챔피언십 시리즈 MVP 등을 수상하고 두 차례 월드 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야구 선수이자, 은퇴 후 야구 해설가로도 활동했으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나 미첼 보고서에 언급되어 명예의 전당 입성에는 실패했다. -
뉴욕 양키스 선수 -
박찬호
박찬호는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여 아시아 출신 투수 최다승 기록을 세운 전직 야구 선수로, 메이저 리그와 KBO 리그에서 활약했으며 국가대표로도 금메달을 획득했다. -
2014년 사망 -
모리스 뒤베르제
모리스 뒤베르제는 프랑스의 정치학자이자 법학자로, 정당론 연구에 기여했으며 소선거구제가 양당제를 유도한다는 '뒤베르제의 법칙'을 정립했다. -
2014년 사망 -
이맹희
이맹희는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의 장남이자 CJ그룹 명예회장으로, 삼성그룹 후계자 수업을 받았으나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후 제일비료 회장을 지냈고, 이건희와 상속 재산 관련 법정 다툼을 벌이다 폐암으로 별세했다.
2. 선수 경력
텍사스주 휴스턴에 위치한 웨스트필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산하 야구단인 텍사스 롱혼스에서 에이스로 활동했다. 2002년에는 칼리지 월드 시리즈에 참가하여 우승을 경험했다. 2002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 8라운드에서 뉴욕 양키스에 지명되면서 입단했고 2004년 6월 19일에 열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의 경기에서 데뷔했다.
2005년 1월 11일에는 랜디 존슨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이적했다. 2006년 3월 26일에는 후안 크루즈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이적했지만 2006년 5월 20일에는 배리 본즈로부터 베이브 루스와 타이 기록에 해당하는 714번째 홈런을 얻어맞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2006년 8월 10일에는 마이너 리그 베이스볼 소속 야구단인 새크라맨토 리버 캐츠로 방출되었지만 주전 경쟁에서 밀려 부진을 면치 못했다. 2007년 7월 12일에는 어깨 수술을 받았고 2008년 3월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방출되었다. 2009년 1월에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체결했지만 봄 훈련이 끝나면서 방출되었고 독립 애틀랜틱 리그 소속 야구단인 롱아일랜드 덕스로 이적했다. 롱아일랜드 덕스 소속으로 활약하던 동안에는 11경기에 출전했다.
2010년에는 노던 리그 소속 독립 야구단인 게리 사우스쇼어 레일캐츠로 이적했고 2011년 5월 2일에는 뉴욕 양키스 산하 마이너 리그 야구단인 트렌턴 선더로 이적했다. 2011년 이스턴 리그 시즌이 끝난 이후에 방출되면서 야구계를 떠나게 된다. 2014년 10월 31일에 텍사스주 뉴브라운펠즈에서 등산 도중에 일어난 추락 사고로 인해 사망했다.
2.1. 아마추어 시절
텍사스주 휴스턴에 위치한 웨스트필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힐 칼리지(Hill College)에서 SS 더스틴 머피(Dustin Murphy)를 비롯한 많은 선수들과 함께 11승을 기록하였다. 이후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산하 야구단인 텍사스 롱혼스에서 에이스 선발 투수로 활동했다. 2001년 시즌 이후에는 케이프 코드 야구 리그의 채텀 A's에서 대학 여름 야구를 했다. 2002년 대학 월드 시리즈에서 롱혼스가 우승을 차지하는데 기여했다.
2.2. 프로 경력
텍사스주 휴스턴에 위치한 웨스트필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산하 야구단인 텍사스 롱혼스에서 에이스로 활동했다. 2002년에는 칼리지 월드 시리즈에 참가하여 우승을 경험했다. 2002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 8라운드에서 뉴욕 양키스에 지명되면서 입단했고 2004년 6월 19일에 열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의 경기에서 데뷔했다.
2005년 1월 11일에는 랜디 존슨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이적했다. 2006년 3월 26일에는 후안 크루즈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이적했지만 2006년 5월 20일에는 배리 본즈로부터 베이브 루스와 타이 기록에 해당하는 714번째 홈런을 얻어맞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2006년 8월 10일에는 마이너 리그 베이스볼 소속 야구단인 새크라맨토 리버 캐츠로 방출되었지만 주전 경쟁에서 밀려 부진을 면치 못했다. 2007년 7월 12일에는 어깨 수술을 받았고 2008년 3월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방출되었다. 2009년 1월에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체결했지만 봄 훈련이 끝나면서 방출되었고 독립 애틀랜틱 리그 소속 야구단인 롱아일랜드 덕스로 이적했다. 롱아일랜드 덕스 소속으로 활약하던 동안에는 11경기에 출전했다.
2010년에는 노던 리그 소속 독립 야구단인 게리 사우스쇼어 레일캐츠로 이적했고 2011년 5월 2일에는 뉴욕 양키스 산하 마이너 리그 야구단인 트렌턴 선더로 이적했다. 2011년 이스턴 리그 시즌이 끝난 이후에 방출되면서 야구계를 떠나게 된다. 2014년 10월 31일에 텍사스주 뉴브라운펠즈에서 등산 도중에 일어난 추락 사고로 인해 사망했다.
2.2.1. 뉴욕 양키스 (2002–2004)
텍사스주 휴스턴에 위치한 웨스트필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산하 야구단인 텍사스 롱혼스에서 에이스로 활동했다. 2002년에는 칼리지 월드 시리즈에 참가하여 우승을 경험했다. 2002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 8라운드에서 뉴욕 양키스에 지명되면서 입단했고 2004년 6월 19일에 열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의 경기에서 데뷔했다.
2002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에서 뉴욕 양키스로부터 8라운드(전체 246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그는 양키스와 계약하여 13만 달러의 계약 보너스를 받았다.
에는 산하 AAA급 콜럼버스 클리퍼스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144 이닝에서 11–4 승-패 기록과 2.63 평균 자책점(ERA)을 기록했다. 그는 2.95 삼진/볼넷 비율(109-37)을 기록했고, 상대 타자들은 그를 상대로 .237 타율을 기록했으며 8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6월 19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전에서 메이저 리그 데뷔를 했다. 7번의 선발 등판과 1번의 구원 투수 등판에서 홀지는 1–3의 기록, 25 탈삼진, 32이닝에서 6.47의 ERA로 시즌을 마쳤다.
2.2.2.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05)
2005년 1월 11일 랜디 존슨 등을 포함한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이적했다. 애리조나는 할지, 투수 하비에르 바스케스와 포수 디오너 나바로를 뉴욕으로부터 받았고, 이후 나바로와 세 명의 마이너 리그 유망주를 외야수 숀 그린을 받는 조건으로 다저스로 보냈다. 할지는 2005년 다이아몬드백스에서 8승 10패의 기록을 세웠다. 같은 해, 거의 연간 선발 로테이션의 일원으로서 던졌다.
2.2.3.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2006–2008)
2006년 3월 26일 후안 크루즈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이적했으며, 처음으로 개막 로스터에 등록되었다. 에스테반 로아이자와 리치 하든이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선발 투수를 맡게 되었다. 5월 20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전에서 배리 본즈에게 통산 714호 홈런을 허용했는데, 이는 베이브 루스의 기록을 깬 순간이었다. 이후 로아이자가 복귀하면서 다시 구원 투수로 보직을 변경했지만 성적이 부진했다. 8월 10일 산하 AAA급 새크라멘토 리버 캣츠로 강등되었다. 그 해 팀은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귀중한 좌완 투수였기 때문에 승격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이미 팀에는 조 케네디가 있었기 때문에 승격하지 못했다.
2007년에는 AAA급 새크라멘토에서 뛰었다. 7월 12일 어깨 수술을 받아 DL에 들어갔다.
2008년 시즌 도중 해고되었다.
2.2.4. 이후 경력
2005년 1월 11일에는 랜디 존슨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이적했다. 2006년 3월 26일에는 후안 크루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이적했지만 2006년 5월 20일에는 배리 본즈로부터 베이브 루스와 타이 기록에 해당하는 714번째 홈런을 얻어맞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2006년 8월 10일에는 마이너 리그 베이스볼 소속 야구단인 새크라맨토 리버 캐츠로 방출되었지만 주전 경쟁에서 밀려 부진을 면치 못했다. 2007년 7월 12일에는 어깨 수술을 받았고 2008년 3월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방출되었다.
2009년 1월에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체결했지만 봄 훈련이 끝나면서 방출되었고 독립 애틀랜틱 리그 소속 야구단인 롱아일랜드 덕스로 이적했다. 롱아일랜드 덕스 소속으로 활약하던 동안에는 11경기에 출전했다.
2010년에는 노던 리그 소속 독립 야구단인 게리 사우스쇼어 레일캐츠로 이적했고 2011년 5월 2일에는 뉴욕 양키스 산하 마이너 리그 야구단인 트렌턴 선더로 이적했다. 2011년 이스턴 리그 시즌이 끝난 이후에 방출되면서 야구계를 떠나게 된다. 2014년 10월 31일에 텍사스주 뉴브라운펠즈에서 등산 도중에 일어난 추락 사고로 인해 사망했다.
4. 선수 생활 이후
브래드 홀지는 2011년 이스턴 리그 시즌이 끝난 이후에 방출되면서 야구계를 떠나게 되었다. 2011년 5월 2일에는 옛 소속팀인 뉴욕 양키스 산하 마이너 리그 야구단인 트렌턴 선더로 이적했다.
2014년 여름, 경찰은 한 남자가 사람들에게 돌을 던진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그들은 홀지가 코말 강에서 가슴 깊이 물 속에 들어가 자신을 루시퍼라고 칭하며 "미치"라는 사람과 싸우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발견했다. 경찰은 홀지를 제지했으며, 경찰 보고서에는 약물 남용과 관련된 정신 건강 문제가 언급되었다.
2014년 10월 31일에 텍사스주 뉴브라운펠스에서 등산 도중에 일어난 추락 사고로 인해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절벽으로 올라가는 작은 길 아래에서 발견되었다. 부검 결과 사망 원인은 추락으로 인한 둔력 손상이었다. 텍사스주 코말 카운티 보안관 사무실은 이 추락이 사고였다고 믿었지만, 독성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조사를 계속했다. 이후 독성 보고서에 따르면 사망 당시 그의 체내에서 마약이나 알코올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5. 사망
브래드 홀지는 2014년 10월 31일에 텍사스주 뉴브라운펠즈에서 등산 도중에 일어난 추락 사고로 인해 사망했다. 2014년 여름, 경찰은 한 남자가 사람들에게 돌을 던진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경찰은 홀지가 코말 강에서 가슴 깊이 물 속에 들어가 자신을 루시퍼라고 칭하며 "미치"라는 사람과 싸우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발견했다. 경찰은 홀지를 제지했으며, 경찰 보고서에는 약물 남용과 관련된 정신 건강 문제가 언급되었다.
홀지는 2014년 10월 31일, 텍사스주 뉴브라운펠스에 있는 그의 집 근처에서 3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부검을 명령한 지역 판사에 따르면, 홀지의 치명적인 부상은 사유지 내 100 피트 절벽에서 뛰어내리거나 떨어져 발생했다. 그의 시신은 절벽으로 올라가는 작은 길 아래에서 발견되었다. 부검 결과 사망 원인은 추락으로 인한 둔력 손상이었다. 텍사스주 코말 카운티 보안관 사무실은 이 추락이 사고였다고 믿었지만, 독성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조사를 계속했다. 이후 독성 보고서에 따르면 사망 당시 그의 체내에서 마약이나 알코올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