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티움 공성전 (기원전 478년)
1. 개요
비잔티움 공성전 (기원전 478년)은 스파르타 장군 파우사니아스가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델로스 동맹의 함대를 이끌고 키프로스를 공격한 후 비잔티움을 함락시킨 사건이다. 파우사니아스는 이후 난폭한 행동과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 1세와의 내통 시도로 인해 동맹국들의 불만을 샀으며, 스파르타에서 재판을 받았으나 무죄를 선고받고 사령관에서 해임되었다. 이 사건은 델로스 동맹의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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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전투 -
살라미스 해전
살라미스 해전은 기원전 480년 그리스 도시 국가 연합군이 페르시아 제국 해군에 맞서 싸워 승리하며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전환점이 된 해전이다. -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전투 -
마라톤 전투
기원전 490년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중 마라톤 평원에서 벌어진 마라톤 전투는 밀티아데스 지휘 하의 아테네가 다리우스 1세의 페르시아군을 격파하여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공을 저지하고 아테네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마라톤 경기의 기원이 된 중요한 전투이다. -
아테네의 전투 -
만티네이아 전투 (기원전 362년)
기원전 362년 만티네이아에서 테베와 스파르타-아테네 연합군 간에 벌어진 만티네이아 전투는 테베의 전술적 승리에도 불구하고 에파메이논다스의 전사로 테베 패권 쇠퇴를 가속화하며 그리스 세계의 혼란을 심화시킨 전투이다. -
아테네의 전투 -
살라미스 해전
살라미스 해전은 기원전 480년 그리스 도시 국가 연합군이 페르시아 제국 해군에 맞서 싸워 승리하며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전환점이 된 해전이다. -
기원전 5세기 분쟁 -
펠로폰네소스 전쟁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기원전 5세기 아테네와 스파르타 중심의 그리스 도시 국가 간 장기간 전쟁으로, 아테네의 팽창주의가 스파르타의 불만을 촉발하여 발발,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나 아테네 제국 몰락과 그리스 세계 쇠퇴를 가져왔으며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가 주요 기록이다. -
기원전 5세기 분쟁 -
살라미스 해전
살라미스 해전은 기원전 480년 그리스 도시 국가 연합군이 페르시아 제국 해군에 맞서 싸워 승리하며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전환점이 된 해전이다.
2. 파우사니아스의 지휘와 전투
스파르타의 장군 파우사니아스는 펠로폰네소스 동맹 소속 20척과 델로스 동맹 소속 30척의 함대를 이끌고 키프로스를 거쳐 비잔티움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그러나 비잔티움 점령 이후 그의 오만한 행동과 페르시아와의 내통 의혹은 동맹국들의 반발을 샀고, 결국 그는 지휘권을 박탈당하고 스파르타로 소환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은 향후 델로스 동맹이 아테네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2.2. 비잔티움 점령
스파르타의 장군 파우사니아스는 펠로폰네소스 동맹 소속 20척과 델로스 동맹 소속 30척의 함대를 지휘하여 먼저 키프로스를 공격했다. 이후 함대를 이끌고 비잔티움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그러나 비잔티움을 점령한 파우사니아스는 점차 오만하고 난폭하게 행동하여 동맹국들의 불만을 샀고, 이는 동맹국들이 아테네를 중심으로 결집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파우사니아스는 전투 중 포로로 잡은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 1세의 친족들을 탈옥한 것처럼 꾸며 비밀리에 돌려보냈다. 그는 크세르크세스 1세에게 편지를 보내, 그의 딸과 혼인하여 그리스 전체를 페르시아 지배하에 두겠다는 밀약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러한 반역 행위가 발각되자 파우사니아스는 스파르타로 소환되어 재판을 받았다. 비록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총사령관 직위에서는 해임되었다.
3. 파우사니아스의 몰락
스파르타의 장군 파우사니아스는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델로스 동맹의 연합 함대를 이끌고 키프로스와 비잔티움을 함락시켰다. 그러나 비잔티움 점령 후 그의 난폭한 행동으로 인해 동맹국들은 아테네 편으로 돌아섰다. 또한, 그는 포로로 잡았던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 1세의 친족을 비밀리에 풀어주고, 크세르크세스 1세의 딸과 혼인하여 그리스를 페르시아에 넘기려 했다는 내통 의혹까지 받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행적들로 인해 파우사니아스는 스파르타로 소환되어 재판을 받았고, 비록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사령관직에서는 해임되었다.
3.1. 동맹국들의 불만
스파르타의 장군 파우사니아스는 비잔티움을 함락시킨 후 난폭한 행동을 보였다. 이 때문에 동맹국들은 아테네로 전향하였다. 파우사니아스는 전투 끝에 포로로 잡은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 1세의 친족을 탈옥을 가장하여 비밀리에 돌려보냈다. 동시에 크세르크세스 1세에게 편지를 보내 그의 딸을 아내로 맞아 혼인 관계를 맺고 싶다고 밝혔고, 그렇게 하면 그리스를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두겠다는 내용을 전했다. 이러한 사정이 발각되어 파우사니아스는 스파르타에서 재판을 받았다. 그는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사령관에서는 해임되었다.
3.2. 페르시아와의 내통 의혹
스파르타의 장군 파우사니아스는 비잔티움을 함락시킨 후 난폭한 행동으로 동맹국들의 신뢰를 잃었다. 이로 인해 동맹국들은 아테네로 돌아서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파우사니아스는 전투 중 포로로 잡았던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 1세의 친족 몇 명을 탈옥한 것처럼 꾸며 비밀리에 페르시아로 돌려보냈다. 이와 함께 크세르크세스 1세에게 편지를 보내, 그의 딸과 결혼하여 그리스 전체를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두는 데 협력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이러한 내통 의혹이 드러나자 파우사니아스는 스파르타로 소환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재판 결과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결국 사령관직에서는 해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