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프로스
1. 개요
키프로스는 지중해 동부에 위치한 섬나라로, 아프로디테 신화의 배경이자 고대부터 여러 문명의 교차지였다. 기원전 10,000년경부터 인류가 거주했으며, 청동기 시대를 거쳐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등의 지배를 받았다. 395년 비잔티움 제국에 편입되었고, 중세를 거치며 잉글랜드, 베네치아 등의 지배를 받다가 1570년 오스만 제국에 정복되었다. 1878년 영국에 사실상 통치되었고, 1960년 독립했으나, 1974년 터키의 침공으로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현재 키프로스 공화국은 유럽 연합 회원국이며, 터키가 승인하지 않은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과의 분단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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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식 명칭 | 키프로스 공화국 |
|---|---|
| 현지 이름 | Κυπριακή Δημοκρατία그리스어 (그리스어) Kıbrıs Cumhuriyeti튀르키예어 (튀르키예어) |
| 수도 | 니코시아 |
| 최대 도시 | 수도 |
| 공용어 | 그리스어 튀르키예어 |
| 소수 언어 | 아르메니아어 키프로스 아랍어 |
| 토착어 | 키프로스 그리스어 키프로스 튀르키예어 |
| 민족 구성 | 그리스계 키프로스인 튀르키예계 키프로스인 아르메니아계 키프로스인 마론파 키프로스인 |
| 종교 | 기독교 72.3% 이슬람교 25.0% 무종교 1.9% 기타 0.8% |
| 국가 모토 | 없음 |
| 국가 | 자유를 향한 찬가 |
| 면적 | 9,251 제곱킬로미터 |
|---|---|
| 인구 (2021년) | 923,272명 |
| 인구 밀도 | 123.4명/제곱킬로미터 |
| 정부 형태 | 대통령 중심제 공화국 |
|---|---|
| 대통령 | 니코스 흐리스토둘리디스 |
| 부통령 | 공석 |
| 의회 의장 | 아니타 데메트리우 |
| 입법부 | 키프로스 하원 |
| 독립 | 영국으로부터 독립 |
|---|---|
| 런던-취리히 협정 | 1959년 2월 19일 |
| 독립 선언 | 1960년 8월 16일 |
| 독립 기념일 | 1960년 10월 1일 |
| GDP (PPP) | 551억 4천만 달러 (2024년) |
|---|---|
| 1인당 GDP (PPP) | 59,858 달러 (2024년) |
| 명목 GDP | 347억 9천만 달러 (2024년) |
| 1인당 명목 GDP | 37,767 달러 (2024년) |
| 지니 계수 | 29.4 (2022년) |
| 통화 | 유로 (€) |
| 시간대 | 동유럽 시간대 (EET) |
|---|---|
| UTC 오프셋 | +02:00 |
| 일광 절약 시간 | 동유럽 서머타임 (EEST) |
| UTC 오프셋 (DST) | +03:00 |
| 통행 방향 | 좌측 통행 |
| 국제 전화 코드 | +357 |
| 국가 도메인 | .c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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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권 -
동트라키아
동트라키아는 터키 북서부에 위치하여 그리스, 불가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다르다넬스 해협 등을 통해 아시아와 유럽을 구분하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현재는 다양한 민족이 거주하고 지중해성 기후를 보이며, 박물관, 모스크 등 관광 명소가 있고, 공화 인민당이 지배적인 지역이다. -
키프로스 -
북키프로스
북키프로스는 키프로스 섬 북부에 위치하며 1974년 터키 군사 개입 후 사실상 독립 상태이나 터키만이 국가로 인정하고 있고, 그리스계와 터키계 키프로스인 간 갈등으로 분쟁이 지속되고 있으며 독자적인 정부와 의회를 운영하면서 관광업과 터키 지원에 경제를 의존하고 있다. -
키프로스 -
키프로스 왕국
키프로스 왕국은 1192년부터 1489년까지 키프로스 섬에 존재했던 왕국으로, 뤼지냥 가문의 통치 아래 동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로 번성했으나 베네치아 공화국에 합병되며 멸망했다. -
튀르키예어권 -
불가리아
불가리아는 동남유럽에 위치한 공화국으로, 7세기에 건국되어 오스만 제국 지배, 왕국 독립, 공산주의 체제 등을 거쳐 2007년 유럽 연합에 가입했으며, 슬라브족 등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광업, 화학 등 산업과 관광 산업이 발달했다. -
튀르키예어권 -
북마케도니아
북마케도니아 공화국은 발칸 반도에 위치한 내륙국으로, 다양한 역사를 거쳐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 후 그리스와의 국명 분쟁을 겪다가 2019년 국명을 변경하고 NATO에 가입했으며 유럽 연합 가입을 추진 중인 국가이다.
2. 역사
키프로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가 태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키뉘라스 왕, 테우크로스, 퓌그말리온의 고향이기도 하다. 최초의 인간 활동 흔적은 남부 해안의 아이토크렘노스(Aetokremnos)에서 발견되었는데, 기원전 10,000년경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이곳에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8200년경에는 마을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초기 인류의 등장은 키프로스 난쟁이 하마와 난쟁이 코끼리의 멸종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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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400년경 아나톨리아(소아시아) 사람들이 키프로스에 오면서 청동기 시대가 시작되었다. 미케네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1600년경에 처음으로 키프로스에 왔으며, 이 시기 정착지는 섬 전체에 흩어져 있었다. 기원전 1100년 ~ 1050년경에는 또 다른 그리스인 집단이 이주해 오면서 키프로스는 그리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게 되었다. 기원전 8세기에는 오늘날 라르나카와 살라미스 근처에 '콰르트-하다쉬트'("새 도시") 등 일부 페니키아 식민도시가 건설되었다.
키프로스는 잠시 이집트의 지배를 받다가 기원전 709년에 아시리아에 정복되었으며, 기원전 545년에는 페르시아 영토가 되었다. 기원전 499년 오네실로스가 이끄는 키프로스인들은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에 대항한 이오니아 반란에 동참했지만 실패하였다. 이후 키프로스섬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거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 키프로스는 완전히 헬레니즘화되었으며, 기원전 58년 로마에 병합되었다.
45년 사도 파울로스와 바르나바가 키프로스에 건너와 기독교를 전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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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년 키프로스는 비잔티움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가, 649년 아랍인에게 섬을 내주었고 966년에야 다시 섬을 요구하게 된다. 제3차 십자군 당시 1191년에 리처드 1세가 키프로스를 점령하여 사라센인에게서 비교적 안전한 주요 보급 기지로 이용하였다. 자신의 왕국을 잃었던 뤼지냥의 기가 성전 기사단에게서 섬을 매입하였다.
1489년 카트린 코르나로 여왕이 퇴위하여 베네치아 공화국이 키프로스를 장악하였다. 여왕은 자크 2세의 미망인으로, 키프로스 왕국의 마지막 임금이었다. 베네치아는 키프로스를 상업 중개지로 이용하였으며, 오늘날 키프로스의 수도인 니코시아를 베네치아 성벽으로 요새화하였다.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키프로스는 오스만 제국의 침략을 자주 받았다. 1539년 오스만 제국은 레메소스를 파괴하고 악명을 떨쳤는데, 베네치아는 암모호스토스와 니코시아, 키레니아를 요새화하였다.
1570년 오스만 제국은 니코시아와 암모호스토스 주민들의 격렬한 저항을 물리치고 키프로스를 정복하였다. 오스만 제국은 키프로스섬에 밀레트 제도를 시행하여 종교 기관이 非무슬림 소수집단을 다스리도록 하였다. 터키-러시아 전쟁(1877–1878) 이후 1878년 이 섬의 행정권은 대영제국에 양도되었다. 1923년 로잔 조약으로 신생 터키 공화국은 키프로스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고, 1925년 키프로스는 영국의 왕령식민지(Crown colony)로 선언되었다.
1950년 동방 정교회는 터키계 키프로스인 집단이 참가를 거부하는 가운데 주민투표를 실시하여 90%가 넘는 지지로 그리스와의 '통합(Ένωσις)'에 찬성하였다. 1955년 키프로스 전사 민족단(Εθνική Οργάνωσις Κυπρίων Αγωνιστών, EOKA)이 창설되어 무장 투쟁으로 독립하여 그리스와 통합하고자 하였다. 같은 시기에 이에 맞서 터키계 키프로스인들이 터키 저항단(Türk Mukavemet Teşkilatı, TMT)을 조직하여 국가 분할을 요구하였다.
1960년 8월, 키프로스는 영국, 그리스, 터키가 맺은 취리히 및 런던 협정으로 독립하였다. 정부 직책과 공직은 민족별 할당제에 따라 배정되었고, 소수 민족인 튀르크계 키프로스인들에게는 상원과 행정부에서 30%의 영구적 거부권이 부여되었다.
그러나 헌법에 명시된 권력 분담은 곧 양측의 법적 교착 상태와 불만으로 이어졌고, 1963년 내부 분쟁이 발생하였다. 그리스계 키프로스인 지도부는 1960년 헌법 개정을 시도했다. 키프로스 대통령 마카리오스 3세가 헌법 개정을 요구하면서 긴장이 고조되었는데, 이는 터키에서 거부되었고 튀르크계 키프로스인들의 반대에 직면했다.
1963년 12월 21일, 종파 간 폭력이 발생하여 튀르크계 키프로스인 364명과 그리스계 키프로스인 174명이 사망했고, 튀르크계 키프로스인 또는 혼혈 마을 109개가 파괴되었으며 2만 5천~3만 명의 튀르크계 키프로스인이 난민이 되었다. 결국 유엔이 개입하여 유엔 키프로스 평화유지군(UNICYP)이 파견되었다.
1974년 7월 15일, 그리스 군사 정권은 에노시스 운동파 군인들을 조종해 키프로스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다. 터키는 쿠데타 5일 후인 7월 20일, 1960년의 취리히 및 런던 협정에 따른 키프로스의 헌법 질서를 회복시킨다는 명목으로 키프로스를 침공하여 사태에 개입하였다.
1983년, 터키계 키프로스인들은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였으나, 터키 외에는 국제 사회의 승인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 분쟁으로 인해 키프로스 공화국은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당시 키프로스 국토의 약 36%가 터키의 점령지가 되면서 북쪽에 있던 17만여 명의 그리스계 키프로스인들과 남쪽에 있던 5만여 명의 터키계 키프로스인들이 각각 터전을 잃었다.
키프로스는 현재 남북으로 대립 중인 분단국가이다. 키프로스 분쟁 해결을 위한 가장 최근의 노력이었던 아난 계획은 터키계의 지지를 받았지만, 그리스계가 거부하였다.
2006년 7월, 키프로스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사이의 분쟁으로 피신한 레바논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2008년 3월, 니코시아 중심부의 레드라 거리(Ledra Street) 한가운데를 가로막아 32년간 키프로스 분단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던 장벽이 철거되었고, 2008년 4월 3일에 개방되었다. 2016년 3월 29일, 이집트 항공의 국내선 A320 여객기가 공중에서 납치되어 키프로스에 착륙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974년 그리스 군사 정권의 지원을 받은 그리스계 강경파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그리스와의 합병을 시도하자, 터키는 터키계 주민 보호를 명목으로 키프로스를 침공했다. 이로 인해 키프로스는 사실상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1970년대 이후, 남북 대통령의 직접 협상을 포함한 재통합 모색이 계속되고 있지만, 분할 이전 체제로 복귀를 바라는 그리스계 키프로스 공화국과 연방제를 주장하는 터키계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의 입장 차이로 인해 재통합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004년 5월 1일, 키프로스 공화국은 EU에 가입했다. 그러나 북키프로스는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2008년 2월 키프로스 대통령 선거에서 재통합 추진파인 디미트리스 크리스토피아스가 당선되어, 남북 정상 회담이 성사되고 레드라 거리 봉쇄가 해제되는 등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2008년 9월 3일에는 포괄적인 재통합 협상이 시작되었지만, 2009년 4월 21일 북키프로스 의회 선거에서 재통합 협상에 소극적인 야당이 승리하면서 협상에 난항을 겪었다.
2010년 4월 북키프로스 대통령 선거에서는 통합 소극파인 데르비시 에롤이 당선되었으나, 터키의 압력으로 협상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2012년 1월 회담에서도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협상은 중단되었다.
2013년 2월 재통합에 적극적인 니코스 아나스타시아디스가 키프로스 대통령에 취임하고, 2014년 2월 협상이 재개되었으나, 터키의 키프로스 EEZ 내 조사 활동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2015년 4월 재통합에 적극적인 무스타파 아킨쥐가 북키프로스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2016년 내 합의를 목표로 협상이 재개되었다. 2016년 11월 7일 남북 정상은 스위스에서 재통합 후 연방제 채택에 합의하고 연내 포괄적 합의를 목표로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2017년 1월에는 영국, 그리스, 터키 외무장관도 협의에 참가했으나, 결국 협의는 결렬되었다.
2023년 2월 12일 키프로스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니코스 크리스토두리디스는 협의 재개를 요구하고 있지만, 유엔의 중재 틀 재협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2.1. 고대
키프로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가 태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키뉘라스 왕, 테우크로스, 퓌그말리온의 고향이기도 하다. 최초의 인간 활동 흔적은 남부 해안의 아이토크렘노스(Aetokremnos)에서 발견되었는데, 기원전 10,000년경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이곳에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8200년경에는 마을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초기 인류의 등장은 키프로스 난쟁이 하마와 난쟁이 코끼리의 멸종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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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400년경 아나톨리아(소아시아) 사람들이 키프로스에 오면서 청동기 시대가 시작되었다. 미케네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1600년경에 처음으로 키프로스에 왔으며, 이 시기 정착지는 섬 전체에 흩어져 있었다. 기원전 1100년 ~ 1050년경에는 또 다른 그리스인 집단이 이주해 오면서 키프로스는 그리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게 되었다. 기원전 8세기에는 오늘날 라르나카와 살라미스 근처에 '콰르트-하다쉬트'("새 도시") 등 일부 페니키아 식민도시가 건설되었다.
키프로스는 잠시 이집트의 지배를 받다가 기원전 709년에 아시리아에 정복되었으며, 기원전 545년에는 페르시아 영토가 되었다. 기원전 499년 오네실로스가 이끄는 키프로스인들은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에 대항한 이오니아 반란에 동참했지만 실패하였다. 이후 키프로스섬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거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 키프로스는 완전히 헬레니즘화되었으며, 기원전 58년 로마에 병합되었다.
45년 사도 파울로스와 바르나바가 키프로스에 건너와 기독교를 전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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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중세
395년 키프로스는 비잔티움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가, 649년 아랍인에게 섬을 내주었고 966년에야 다시 섬을 요구하게 된다. 제3차 십자군 당시 1191년에 리처드 1세가 키프로스를 점령하여 사라센인에게서 비교적 안전한 주요 보급 기지로 이용하였다. 자신의 왕국을 잃었던 뤼지냥의 기가 성전 기사단에게서 섬을 매입하였다.
1489년 카트린 코르나로 여왕이 퇴위하여 베네치아 공화국이 키프로스를 장악하였다. 여왕은 자크 2세의 미망인으로, 키프로스 왕국의 마지막 임금이었다. 베네치아는 키프로스를 상업 중개지로 이용하였으며, 오늘날 키프로스의 수도인 니코시아를 베네치아 성벽으로 요새화하였다.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키프로스는 오스만 제국의 침략을 자주 받았다. 1539년 오스만 제국은 레메소스를 파괴하고 악명을 떨쳤는데, 베네치아는 암모호스토스와 니코시아, 키레니아를 요새화하였다.
2.3. 오스만 제국과 대영 제국의 지배
1570년 오스만 제국은 니코시아와 암모호스토스 주민들의 격렬한 저항을 물리치고 키프로스를 정복하였다. 오스만 제국은 키프로스섬에 밀레트 제도를 시행하여 종교 기관이 非무슬림 소수집단을 다스리도록 하였다. 터키-러시아 전쟁(1877–1878) 이후 1878년 이 섬의 행정권은 대영제국에 양도되었다. 1923년 로잔 조약으로 신생 터키 공화국은 키프로스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고, 1925년 키프로스는 영국의 왕령식민지(Crown colony)로 선언되었다.
1950년 동방 정교회는 터키계 키프로스인 집단이 참가를 거부하는 가운데 주민투표를 실시하여 90%가 넘는 지지로 그리스와의 '통합(Ένωσις)'에 찬성하였다. 1955년 키프로스 전사 민족단(Εθνική Οργάνωσις Κυπρίων Αγωνιστών, EOKA)이 창설되어 무장 투쟁으로 독립하여 그리스와 통합하고자 하였다. 같은 시기에 이에 맞서 터키계 키프로스인들이 터키 저항단(Türk Mukavemet Teşkilatı, TMT)을 조직하여 국가 분할을 요구하였다.
2.4. 독립
1960년 8월, 키프로스는 영국, 그리스, 터키가 맺은 취리히 및 런던 협정으로 독립하였다. 이 협정에 따라 키프로스는 1960년 8월 16일 공식적으로 독립했으며, 아크로티리와 데켈리아의 두 주권 기지 지역은 영국이 유지했다. 정부 직책과 공직은 민족별 할당제에 따라 배정되었고, 소수 민족인 튀르크계 키프로스인들에게는 상원과 행정부에서 30%의 영구적 거부권이 부여되었다. 세 모국(영국, 그리스, 터키)에는 보장국의 권리가 주어졌다.
그러나 헌법에 명시된 권력 분담은 곧 양측의 법적 교착 상태와 불만으로 이어졌고, 민족주의 무장 세력들은 각각 그리스와 터키의 군사적 지원을 받으며 다시 훈련을 시작했다. 1963년 내부 분쟁이 발생하여, 두 "모국"(그리스와 터키)이 배후에서 부분적으로 관여하였다. 그리스계 키프로스인 지도부는 1960년 헌법에 따라 튀르크계 키프로스인에게 주어진 권리가 너무 광범위하다고 믿었고, 아크리타스 계획을 통해 헌법 개정을 시도했다.
키프로스 대통령이자 대주교인 마카리오스 3세가 헌법 개정을 요구하면서 긴장이 고조되었는데, 이는 터키에서 거부되었고 튀르크계 키프로스인들의 반대에 직면했다.
1963년 12월 21일, 종파 간 폭력이 발생하여 튀르크계 키프로스인 364명과 그리스계 키프로스인 174명이 사망했고, 튀르크계 키프로스인 또는 혼혈 마을 109개가 파괴되었으며 2만 5천~3만 명의 튀르크계 키프로스인이 난민이 되었다. 이 사태로 튀르크계 키프로스인들의 행정 참여가 종식되었고, 그들은 행정부의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유엔이 개입하여 유엔 키프로스 평화유지군(UNICYP)이 파견되었다.
2.5. 분단
1974년 7월 15일, 그리스 군사 정권은 에노시스 운동파 군인들을 조종해 키프로스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다. 터키는 쿠데타 5일 후인 7월 20일, 1960년의 취리히 및 런던 협정에 따른 키프로스의 헌법 질서를 회복시킨다는 명목으로 키프로스를 침공하여 사태에 개입하였다.
1983년, 터키계 키프로스인들은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였으나, 터키 외에는 국제 사회의 승인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 분쟁으로 인해 키프로스 공화국은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당시 키프로스 국토의 약 36%가 터키의 점령지가 되면서 북쪽에 있던 17만여 명의 그리스계 키프로스인들과 남쪽에 있던 5만여 명의 터키계 키프로스인들이 각각 터전을 잃었다. 터키 군대가 북부 영토를 장악한 이후, 키프로스 공화국은 북부 지역의 모든 통관항을 봉쇄한다고 발표하였다.
2.6. 최근
키프로스는 현재 남북으로 대립 중인 분단국가이다. 키프로스 분쟁 해결을 위한 가장 최근의 노력이었던 아난 계획은 터키계의 지지를 받았지만, 그리스계가 거부하였다.
2006년 7월, 키프로스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사이의 분쟁으로 피신한 레바논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2008년 3월, 니코시아 중심부의 레드라 거리(Ledra Street) 한가운데를 가로막아 32년간 키프로스 분단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던 장벽이 철거되었다. 레드라 거리는 2008년 4월 3일에 그리스계와 터키계 공무원이 각각 주재하는 가운데 개방되었다.
2016년 3월 29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출발해 카이로로 향하던 이집트 항공의 국내선 A320 여객기가 공중에서 납치되었다. 납치범들은 항공기를 키프로스에 착륙시킬 것을 요구했으며, 승객 81명 중 한 명이 폭탄을 차고 있다고 협박했다. 키프로스 당국은 비행기에 폭탄이 장착된 것으로 추정했다.
1974년 그리스 군사 정권의 지원을 받은 그리스계 강경파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그리스와의 합병을 시도하자, 터키는 터키계 주민 보호를 명목으로 키프로스를 침공했다. 이로 인해 키프로스는 사실상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1970년대 이후, 남북 대통령의 직접 협상을 포함한 재통합 모색이 계속되고 있지만, 분할 이전 체제로 복귀를 바라는 그리스계 키프로스 공화국과 연방제를 주장하는 터키계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의 입장 차이로 인해 재통합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004년 5월 1일, 키프로스 공화국은 EU에 가입했다. 그러나 북키프로스는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2008년 2월 키프로스 대통령 선거에서 재통합 추진파인 디미트리스 크리스토피아스가 당선되어, 남북 정상 회담이 성사되고 레드라 거리 봉쇄가 해제되는 등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2008년 9월 3일에는 포괄적인 재통합 협상이 시작되었지만, 2009년 4월 21일 북키프로스 의회 선거에서 재통합 협상에 소극적인 야당이 승리하면서 협상에 난항을 겪었다.
2010년 4월 북키프로스 대통령 선거에서는 통합 소극파인 데르비시 에롤이 당선되었으나, 터키의 압력으로 협상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2012년 1월 회담에서도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협상은 중단되었다.
2013년 2월 재통합에 적극적인 니코스 아나스타시아디스가 키프로스 대통령에 취임하고, 2014년 2월 협상이 재개되었으나, 터키의 키프로스 EEZ 내 조사 활동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2015년 4월 재통합에 적극적인 무스타파 아킨쥐가 북키프로스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2016년 내 합의를 목표로 협상이 재개되었다. 2016년 11월 7일 남북 정상은 스위스에서 재통합 후 연방제 채택에 합의하고 연내 포괄적 합의를 목표로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2017년 1월에는 영국, 그리스, 터키 외무장관도 협의에 참가했으나, 결국 협의는 결렬되었다.
2023년 2월 12일 키프로스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니코스 크리스토두리디스는 협의 재개를 요구하고 있지만, 유엔의 중재 틀 재협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3. 지리
키프로스는 지중해 동부에 있는 섬나라이다. 키프로스섬은 시칠리아섬, 사르데냐 다음으로 지중해에서 3번째로 큰 섬이며, 세계에서 81번째로 큰 섬이다. 서아시아, 남부 유럽, 북아프리카가 만나는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섬의 지형은 트로오도스 산맥과 더 작은 키레니아 산맥이라는 두 개의 산맥과 이들이 둘러싸고 있는 중앙 평야인 메사오리아가 지배하고 있다. 메사오리아 평야는 섬에서 가장 긴 강인 페디오스 강에 의해 배수된다. 트로도스산맥은 섬의 남부와 서부 대부분을 차지하며 섬 면적의 약 절반을 차지한다. 키프로스에서 가장 높은 지점은 트로도스 산맥 중앙에 있는 올림푸스 산으로 1952m이다. 북부 해안선을 따라 뻗어 있는 좁은 키레니아 협곡은 면적이 훨씬 작고 고도도 낮으며 최대 1024m에 달한다.
큰 하천이 없어 물이 부족한 편이나 최근 터키와 북키프로스를 잇는 해저 수도관이 건설되었다. 터키 측은 키프로스와 북키프로스 간의 협상이 진행되면 키프로스 공화국에도 이 수도관을 통해 물을 공급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4. 행정 구역
수도는 니코시아이며, 영국의 해외 기지인 아크로티리 데켈리아가 있다. 키프로스는 니코시아, 암모호스토스, 키레니아, 라르나카, 레메소스, 파포스 등 6개의 구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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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프로스에는 4개의 외딴 영토가 있는데, 모두 영국 주권기지구역 데켈리아에 속한 영토에 위치해 있다. 첫 두 곳은 오르미디아와 크실로팀부 마을이다. 세 번째는 데켈리아 발전소로, 영국 도로에 의해 두 부분으로 나뉜다. 북쪽 부분은 키프로스 전력청(EAC) 난민 정착지이다. 남쪽 부분은 바다 근처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 해역이기 때문에 자체적인 영해가 없어 외딴 영토이다.
유엔 완충지대는 데켈리아에 닿아 있으며, 동쪽의 아요스 니콜라오스에서 다시 시작되어 좁은 육로로 데켈리아의 나머지 지역과 연결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완충지대는 섬의 남동쪽 모퉁이에 있는 파랄림니 지역을 사실상(de facto), 비록 법적으로(de jure)는 아니지만, 외딴 영토로 만든다.
5. 기후
지중해성 기후대에 속한다. 키프로스는 아열대 기후, 즉 지중해성 기후와 (섬의 북동부) 반건조 기후를 가지고 있으며, 쾨펜의 기후 구분으로는 Csa와 BSh에 속한다. 겨울은 매우 온화하고(해안 지역), 여름은 따뜻하거나 덥다. 눈은 섬 중앙부의 트로오도스 산맥에서만 내린다. 비는 주로 겨울에 내리고 여름은 일반적으로 건조하다.
키프로스는 유럽 연합 지중해 지역에서 가장 따뜻한 기후 중 하나이다. 해안 지역의 연평균 기온은 낮에는 24°C, 밤에는 14°C이다. 일반적으로 여름은 4월부터 시작하여 11월까지 약 8개월간 지속되며, 낮 기온은 21°C~23°C, 밤 기온은 11°C~13°C이다. 11월의 낮 기온은 22°C~23°C, 밤 기온은 12°C~14°C이다. 하지만 나머지 4개월 동안에도 기온이 20°C을 넘는 경우가 있다.
해안 지역의 연간 일조 시간은 약 3,200시간이며, 12월의 하루 평균 일조 시간은 5~6시간, 7월에는 12~13시간이다. 이는 유럽 북부 도시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강수량은 주로 11월부터 3월까지이며, 이로 인해 농업에 적합한 측면을 지닌다. 고산 지대는 섬의 다른 지역보다 시원하고 습한 것이 특징이다.
6. 정치
키프로스는 대통령제 공화국으로, 국가 원수와 정부 수반은 모두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보통 선거를 통해 선출되며 임기는 5년이다. 1960년 키프로스 헌법은 행정, 입법, 사법의 삼권 분립과 대통령제를 규정하고, 터키계 키프로스인의 이익 보호를 위해 권력 분점 비율을 정하여 복잡한 견제와 균형 체제를 갖추었다. 행정부는 그리스계 대통령과 터키계 부통령이 각각 5년 임기로 선출되어 이끌며, 이들은 특정 법률 및 행정 결정에 대해 거부권을 가졌다. 입법권은 의회가 가지며, 의원 역시 선거로 선출되었다.
1974년 키프로스는 남부의 그리스계와 북부의 터키계로 사실상 분단되었다. 1983년 터키계 주민들은 북키프로스 튀르크 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했으나 터키 외에는 국제적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다. 1985년 북키프로스는 헌법을 채택하고 첫 선거를 치렀다.
현재 키프로스 의회는 59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5년이다. 56명은 비례대표제로 선출되고, 3명은 마론파, 라틴계, 아르메니아인 소수집단을 대표하는 참관 의원이다. 터키계 키프로스인에게 할당된 24석은 1964년 이래 공석이다. 주요 정당으로는 공산주의 노동자 진보당(AKEL), 자유 보수주의 민주 연대, 중도 민주당, 사회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운동(EDEK) 등이 있다.
2008년 디미트리스 흐리스토피아스가 키프로스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유럽 연합 가입국 중 유일하게 공산당이 집권한 나라가 되었다. 2013년에는 민주 연대의 니코스 아나스타시아데스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2018년 재선에 성공했다. 2023년에는 니코스 크리스토둘리데스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6.1. 인권
키프로스는 분단 문제로 인해 인권 문제에 관심이 소홀한 편이다. 그리스계와 터키계 지역 모두 섬 전체에 성매매가 만연하며, 동유럽에서 이어지는 인신매매 경로의 주요 성매매 지점으로 비판받고 있다. 북키프로스 정권은 신문 편집에 심하게 개입하여 언론의 자유 문제로 비판받기도 한다.
가정폭력에 대한 법규는 거의 시행되지 않으며, 북키프로스에는 가정폭력 관련 입법 자체가 없는 실정이다.
7. 인구와 주민
1974년 분단 이전에는 그리스계와 터키계 주민 모두 키프로스섬 전역에 섞여 살았으나, 분단 이후 북부에 살던 그리스계 주민 대부분은 남부로, 남부에 살던 터키계 주민 대부분은 북부로 이주하였다. 현재는 그리스계 주민의 99.5%가 남키프로스에, 터키계 주민의 98.7%가 북키프로스에 거주하고 있다. 그 밖에도 소수의 미국인, 아르메니아인, 러시아인(두호보르파), 아랍인 등이 거주하고 있으며, 북키프로스에는 중국, 북한 계통 외국인들도 대거 거주하고 있다.
2021년 인구 조사에서 키프로스 공화국 정부 통제 지역의 인구는 918,100명이었다.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은 니코시아(38%)였고, 그 다음으로 리마솔(28%)이었다. 1960년 12월, 독립 후 처음으로 실시된 인구 조사에서는 키프로스 전체 인구는 573,566명이었으며, 그중 그리스계가 442,138명(77.1%), 터키계가 104,320명(18.2%), 기타가 27,108명(4.7%)이었다. 키프로스 공화국에는 110,200명의 외국인 영주권자와 약 10,000~30,000명의 무허가 불법 이민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2010년 국제 위기 그룹은 섬의 총 인구를 110만 명으로 추산했는데, 그중 북부에는 약 30만 명의 거주자가 있었으며, 그중 절반은 터키에서 태어났거나 그러한 정착민의 자녀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리조카르파소(키프로스 북부), 포타미아(니코시아 지역), 필라(라르나카 지역) 마을은 그리스계 키프로스인과 터키계 키프로스인이 혼합되어 거주하는 유일한 정착지이다. 유럽 평의회에 따르면, 키프로스에는 약 1,250명의 로마인이 거주하고 있다.
민족의 귀속 의식은 대체로 신봉하는 종교와 일치하며, 정교도인 그리스계가 78%, 무슬림(이슬람교도)인 튀르크계가 18%를 차지한다고 여겨진다. 나머지 4%에는 마론파와 아르메니아 교회파 기독교도가 있다.
8. 언어
그리스어와 튀르키예어가 키프로스의 공용어이다. 아르메니아어와 키프로스 마로니트 아랍어는 소수 언어로 인정받고 있다. 공식 지위는 없지만 영어는 널리 사용되며 도로 표지판과 공공 게시물 및 광고에 널리 사용된다. 영어는 영국 식민지 시대의 유일한 공용어였으며 1960년까지 공용어(lingua franca) 역할을 했고, 1989년까지 법원에서, 1996년까지 법률에서 (사실상) 계속 사용되었다. 2010년 기준으로 키프로스인의 80.4%가 제2언어로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러시아어는 키프로스의 소수 민족, 옛 소련 국가 출신 거주자 및 시민, 그리고 폰토스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된다. 영어와 그리스어 다음으로 러시아어는 특히 리마솔과 파포스에서 많은 상점과 식당의 간판에 사용되는 세 번째 언어이다. 2006년에는 인구의 12%가 프랑스어를, 5%가 독일어를 사용했다.
그리스계 키프로스인들의 일상 언어는 키프로스 그리스어이고, 튀르키예계 키프로스인들의 일상 언어는 키프로스 튀르키예어이다. 이러한 방언들은 그들의 표준어와 상당히 다르다.
9. 종교
사도 바울이 선교활동을 한 곳이 키프로스인데, 파마구스타는 사도 바울과 동역자 성 바나바가 선교활동을 한 살라미스의 현재 지명이다.(사도행전 13:5) 키프로스는 정교회 그리스계가 78%, 이슬람교 터키계가 18%이다. 그 외 4%에는 단성신학을 지지하는 마론파 교회와 아르메니아 정교회의 그리스도인, 약간의 두호보르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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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그리스계 키프로스인들은 그리스 정교회 신자이고, 터키계 키프로스인들은 수니파 이슬람 신자이다. 초대 키프로스 대통령 마카리오스 3세는 대주교였다.
라르나카 염호 근처에 위치한 할라 술탄 테케는 무슬림들의 순례 장소이다.
200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인구의 94.8%가 동방 정교회 신자였고, 0.9%가 아르메니아 및 마로니파 신자였으며, 1.5%가 로마 가톨릭 신자, 1.0%가 잉글랜드 교회 신자, 0.6%가 무슬림이었다. 키프로스 유대인 공동체도 존재한다. 나머지 1.3%는 다른 종교를 믿거나 종교를 밝히지 않았다.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마론파, 라틴 가톨릭은 헌법적으로 인정되는 종파이며 세금이 면제된다.
민족의 귀속 의식은 대체로 신봉하는 종교와 일치하며, 정교도인 그리스계가 78%, 무슬림(이슬람교도)인 튀르크계가 18%를 차지한다고 여겨진다. 나머지 4%에는 마론파와 아르메니아 교회파 기독교도가 있다.
10. 대한 관계
대한민국은 1960년 키프로스 공화국만을 승인하였으며, 1995년 12월 28일에 공식 수교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1991년 12월에 수교하였다. 키프로스는 과거 분단되기 이전 그리스계에서 주로 한국 전쟁에 대한민국 측으로 참전한 경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