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반왕
1. 개요
사반왕은 234년 구수왕의 사후 백제의 제7대 왕으로 즉위했으나, 고이왕에게 폐위된 인물이다. 고이왕 즉위 과정에서 왕실 방계의 강제력이 작용했고, 사반왕은 폐위 직후 살해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반왕의 폐위는 궁정 내 권력 투쟁과 진씨 세력의 해씨 세력에 대한 우위 확보로 해석된다. 일본 역사서에는 야마토 시대 특정 씨족의 시조로 기록되어 있어, 생애 후반을 일본에서 보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사반왕
기본 정보
| 이름 | 사반 |
|---|---|
| 칭호 | 어라하 |
| 재위 | 234년 – 234년 (2개월) |
| 즉위 | 234년 |
| 전임자 | 구수왕 |
| 섭정 | 고이왕 |
| 후임자 | 고이왕 |
| 본명 | 부여사반 |
| 출생일 | 미상 |
| 출생지 | 위례성 |
| 사망일 | 234년 |
| 사망지 | 위례성 |
| 배우자 | 미상 |
| 자녀 | 미상 |
| 시호 | 사반 어라하, 사비 어라하, 사이 어라하 |
| 부왕 | 구수왕 |
| 직업 | 왕 |
| 왕가 | 부여 |
| 왕조 | 백제 |
| 로마자 표기 | Saban-wang, Sabi-wang, Sai-wang |
| 한자 표기 | 沙伴王, 沙沸王, 沙伊王 |
| 한글 표기 | 사반왕, 사비왕, 사이왕 |
백제 군주 목록
| 백제 역대 국왕 | 온조 18 BCE–28 CE 다루 28–77 기루 77–128 개루 128–166 초고 166–214 구수 214–234 사반 234 고이 234–286 책계 286–298 분서 298–304 비류 304–344 계 344–346 근초고 346–375 근구수 375–384 침류 384–385 진사 385–392 아신 392–405 전지 405–420 구이신 420–427 비유 427–455 개로 455–475 문주 475–477 삼근 477–479 동성 479–501 무령 501–523 성 523–554 위덕 554–598 혜 598–599 법 599–600 무 600–641 의자 641–6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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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구수왕이 234년에 사망하자, 장남인 사반왕이 제7대 임금이 되었다. 그러나 초고왕의 동생 또는 동생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는 고이왕에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폐위되었다. 삼국유사에는 사이비왕(沙伊沸王) 또는 사이왕(沙伊王)으로 나온다. 학계에서는 사반왕이 왕위에 오른 직후 고이왕에게 왕위를 빼앗긴 것으로 보아, 폐위 직후 살해당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삼국사기에는 사반왕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는데, 너무 어려서 통치할 수 없었고, 곧 초고왕의 동생인 고이왕에게 왕위를 계승했다는 내용만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구수왕이 21년 만에 죽으니 장자 사반이 이어 왕이 되었으나 나이가 어려서 정사를 돌볼 수 없었다. 초고왕의 동모(同母) 아우가 왕이 되었다.
2.1. 폐위 배경
구수왕이 234년에 사망한 후, 장남인 사반왕이 왕위에 올랐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고이왕에게 폐위되었다. 학자들은 사반왕의 폐위를 궁정 내 권력 투쟁과 전라도의 진씨 세력이 충청도의 해씨 세력에 대해 우위를 확보한 사건으로 해석한다. 삼국유사에는 사반왕이 폐위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