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류왕
1. 개요
비류왕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의 제12대 왕으로, 구수왕의 아들이자 사반왕의 동생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구수왕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 304년 분서왕이 암살된 후 왕위에 올랐으며, 재위 기간 동안 백성들의 고통을 살피고 구휼하는 등 자비로운 정치를 펼쳤다. 327년에는 이복 동생 부여우복의 반란을 진압했으며, 337년 신라에서 사신을 파견해 교류가 있었다. 41년간의 통치 끝에 344년에 사망했으며, 그의 아들 부여구가 근초고왕으로 즉위하여 백제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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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년 사망 -
동진 강제
동진 강제는 진나라 명제의 아들이자 유문군의 아들로, 342년부터 344년까지 동진의 황제였으며, 유빙과 유익 형제에게 실권을 빼앗긴 채 2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
3세기 한국 사람 -
창조리
창조리는 고구려 국상으로서 봉상왕을 폐위하고 미천왕을 옹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모용외의 침략에 대비하고 미천왕의 치세를 보좌하는 등 국정 운영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 -
3세기 한국 사람 -
석우로
석우로는 신라의 이찬이자 대장군으로, 우루상팔국과의 전투와 감문국 토벌 등 군사적 활약을 펼쳤으나, 왜의 사신에게 실언하여 왜인에 의해 화형당해 신라와 왜의 관계를 악화시킨 인물이다. -
백제 국왕 -
기루왕
기루왕은 백제의 제5대 국왕으로, 다루왕 사후 즉위하여 신라를 공격했으나 패배하고 신라와 평화 조약을 맺었으며 말갈의 침입 시 신라의 지원을 받았고 자연재해가 빈번했다. -
백제 국왕 -
법왕
법왕은 백제의 제29대 왕으로, 혜왕 또는 위덕왕의 아들이며, 재위 기간 동안 불교를 숭상하고 미륵사 건립을 추진했으며 백성들에게 고기잡이와 사냥을 금지하는 정책을 펼쳤다.
2. 생애
비류왕은 백제 제6대 근구수왕의 둘째 아들이자 제7대 사반왕의 동생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비류왕이 최소 110세까지 통치해야 한다는 연대기적 모순 때문에, 현대 역사가들은 비류왕이 실제로는 사반왕의 동생의 아들이나 손자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분서왕이 304년에 암살당하고, 분서왕의 아들들이 너무 어려 통치할 수 없었기 때문에 비류왕이 왕위에 올랐다. 이는 백제 왕실 내 초고왕계(비류왕의 조상)와 고이왕계 간의 권력 투쟁의 일환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에는 비류왕에 대해 "관대하고 자비로운 성품으로 활쏘기에 능했으며, 오랫동안 백성들 사이에 머물러 명성이 높았다. 분서왕 사후, 그의 자식들이 어려 왕위를 이을 수 없게 되자 신하와 백성들의 추천으로 왕위에 올랐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312년에 해구를 병관좌평에 임명하고, 327년에는 이복형제 부여우복의 반란을 진압했으며, 337년에는 신라로부터 사신을 받았다.
비류왕 재위 기간 동안 발생한 주요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 연도 | 사건 |
|---|---|
| 308년 | 정월 초하루, 일식이 있었다. |
| 312년 | 백성들의 고충을 살피고, 스스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이들에게 쌀 3석을 지급하였다. 동명왕릉을 참배하고, 해구를 병관좌평에 임명하였다. |
| 313년 | 도성 남쪽에서 천지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
| 316년 | 가뭄과 자연재해가 발생했다. |
| 320년 | 궁궐 서쪽에 사격 연습장을 만들었다. |
| 321년 | 우복이 내신좌평에 임명되었으나, 이후 메뚜기떼 피해가 발생했다. |
| 325년 | 특이한 천문 현상이 관측되었다. |
| 327년 | 우복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다. |
| 331년 | 가뭄과 기근으로 백성들이 고통받았다. |
| 333년 | 왕궁에 화재가 발생하고, 궁궐을 수리했다. 진이(Jin Yi)가 내신좌평에 임명되었다. |
| 335년 | 일식이 있었다. |
| 336년 | 혜성이 관측되었다. |
| 337년 | 신라에서 사신이 방문했다. |
| 344년 | 비류왕이 사망했다. |
2.1. 가계 배경 및 즉위 과정
삼국사기에 따르면 비류왕은 구수왕의 아들이자 사반왕의 동생이다. 그러나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다른 기록에는 평민으로 살면서 명성을 얻었다고도 한다. 비류왕과 사반왕 사이에는 70년 이상의 연대 차이가 있어 형제 관계에 대한 이견이 있다. 《삼국사기》는 구수왕을 아버지로, 사반왕을 형으로 지목했지만, 이들이 죽은 뒤 70년 만에 비류왕이 즉위하여 40년을 통치했다는 것은 연대상 맞지 않는다.
현대 역사가들은 비류왕이 실제로는 사반왕의 동생의 아들이거나 손자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는 비류왕이 최소 110세까지 통치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분서왕이 즉위 7년째인 304년에 중국인 요원에 의해 암살당하고, 분서왕의 아들들이 너무 어려 왕위를 이을 수 없게 되자 비류가 왕위에 올랐다. 이는 백제 왕실의 두 계파, 즉 제5대 초고왕(비류의 조상)의 후손들과 제8대 고이왕의 후손들 사이의 권력 투쟁의 일부였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는 비류왕에 대해 "성품은 관대하고 자비로웠으며, 활쏘기에 능하고 강했다. 오랫동안 백성들 사이에 머물렀고, 그 덕에 명성이 널리 퍼졌다. 분서왕이 죽자, 그의 자식들은 모두 어려서 왕위를 이을 수 없었다. 그래서 신하와 백성들의 추천으로 왕위에 올랐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사반왕은 구수왕의 첫째 아들로 234년에 즉위했고, 비류왕은 304년에 즉위했다고 전해진다. 형제가 70년의 차이를 두고 즉위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K.J.H. GARDINER영어는 비류왕을 백제의 초대 왕인 온조왕의 형인 비류와 동일인물로 보고, 비류왕 이전의 10명의 백제 왕은 허구로 보았다.
2.2. 치세
312년 음력 2월, 비류왕은 신하를 보내 백성들의 질병과 고통을 살폈으며, 홀아비, 과부, 고아, 그리고 자식 없이 외롭게 지내는 노인들을 도왔다. 스스로 생활할 수 없는 자에게는 곡식 3섬씩을 나누어주었다. 鰥寡孤獨중국어에게 곡식을 지급한 것은 당시 사회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한편, 백성을 위하는 비류왕의 마음을 보여준다.
321년 정월, 왕의 서제(庶弟) 우복을 내신좌평으로 삼았으나, 327년 북한산성을 근거지로 반란을 일으켰다. 비류왕은 군사를 보내 이를 토벌하였다.
337년 봄 음력 2월, 신라에서 사신을 보내왔으며, 비류왕은 이들을 극진히 대접하였다.
344년 겨울 음력 10월, 비류왕이 붕어하였다.
비류왕의 치세 동안 있었던 사건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연도 | 사건 |
|---|---|
| 308년 | 봄, 정월 초하루. 일식이 있었다. |
| 312년 | 봄, 2월. 왕이 신하들을 파견하여 백성들의 고충을 살폈다. 과부와 고아 등 스스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이들에게 쌀 3석을 지급하였다. |
| 여름, 4월. 왕은 동명왕릉을 참배했다. 해구가 병관좌평에 임명되었다. | |
| 313년 | 봄, 정월. 도성 남쪽에서 천지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왕이 직접 제물을 잡았다. |
| 316년 | 봄. 가뭄이 들었다. 서쪽 하늘에 큰 별이 떨어졌다. |
| 여름, 4월. 도성의 우물이 넘쳤다. 그 안에서 검은 용이 나타났다. | |
| 320년 | 가을, 8월. 궁궐 서쪽에 사격 연습장을 만들었다. 매달 초하루마다 사격 연습을 했다. |
| 321년 | 봄, 정월. 왕의 이복형제 우복이 내신좌평에 임명되었다. |
| 가을, 7월. 낮에 금성이 보였다. 남쪽 지방에서 메뚜기떼가 곡식을 해쳤다. | |
| 325년 | 겨울, 10월. 하늘에서 바람 소리와 파도가 부딪히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
| 11월. 왕은 구원(Guwon) 북쪽에서 사냥을 하여 사슴을 쏘았다. | |
| 327년 | 가을, 7월. 붉은 까마귀 같은 구름이 해를 향해 날아왔다. |
| 9월. 내신좌평 우복이 한강 북쪽의 성채를 장악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왕은 군사를 파견하여 토벌했다. | |
| 331년 | 봄과 여름, 큰 가뭄이 들었다. 풀과 나무가 말라 죽었고 강물은 말랐다가 가을 7월에 비가 내렸다. 그 해 기근이 들었고,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일도 발생했다. |
| 333년 | 여름, 5월. 별이 떨어졌다. 왕궁에 불이 나서 백성들의 집으로 번졌다. |
| 가을, 7월. 궁궐을 수리했다. 배진씨(Jin clan) 진이(Jin Yi)가 내신좌평에 임명되었다. | |
| 겨울, 12월. 천둥이 쳤다. | |
| 335년 | 겨울, 초하루. 일식이 있었다. |
| 336년 | 봄, 정월. 辛巳일에 혜성이 28수 중 귀수(Kui)에 나타났다. |
| 337년 | 봄, 2월. 신라에서 사신을 보내 조정에 예물을 바쳤다. |
| 344년 | 겨울, 10월. 왕이 죽었다. |
3. 가계
삼국사기에 의하면 비류왕은 구수왕의 아들이자 사반왕의 동생이라고 한다. 그러나 비류왕과 사반왕 사이에는 70년 이상의 연대 차이가 있어, 형제 여부에 대한 이견이 있다. 《삼국사기》는 비류왕의 아버지로 구수왕을, 형으로 사반왕을 지목하지만, 이들이 죽은 뒤 70년 만에 비류왕이 즉위하여 40년을 통치했다는 기록은 연대상 맞지 않는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연대 불일치로 인해 비류왕이 구수왕의 아들이 아니라 후손이라고 추정한다. 그는 백제의 13대 국왕이자 백제를 최고의 전성기로 이끈 근초고왕의 아버지였다.
| 왕비 | 자녀 |
|---|---|
| 해씨(解氏) | |
| 진씨(眞氏) |
K.J.H. GARDINER영어는 비류왕을 백제의 초대 왕인 온조왕의 형인 비류와 동일인물로 보고, 비류왕 이전의 10명의 백제 왕은 허구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