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프란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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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프란 혁명은 2007년 미얀마에서 발생한 반정부 시위로, 군부의 연료 가격 인상에 대한 반발과 정체된 경제 상황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배경이 되었다. 승려들이 시위에 참여하면서 사프란색 옷을 입은 모습에서 '사프란 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1988년 민주화 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로 번졌다. 군부는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국제 사회는 미얀마 군부에 대한 비난과 제재를 가했다. 시위 이후에도 군부의 통제는 지속되었으며, 2008년 헌법 개정을 통해 아웅 산 수치 여사의 대통령 선거 출마를 제한하는 등 군부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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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프란 혁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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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명칭 | 샤프란 혁명 |
현지 명칭 (버마어) | ရွှေဝါရောင်တော်လှန်ရေး (Shwaywarraung Tawlhaanrayy) |
로마자 표기 | Shweiwa Yaung Daw Hlan Ye |
분쟁 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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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07년 8월 15일 – 2008년 9월 26일 |
장소 | 미얀마 |
원인 | 군사 독재 정치적 탄압 정치 부패 인권 침해 연료 보조금 폐지 국가 테러 |
목표 | 민주주의 자유 선거 인권 소수자 권리 정치범 석방 정치에 대한 군사 개입 종식 |
방법 | 시민 저항 시위 비폭력 저항 |
결과 | 봉기 진압, 정치 개혁 및 새 정부 선출 |
교전 세력 | |
측 1 | 국민 민주 연맹 학생 시위대 테라바다 승려 |
측 2 | SPDC 타트마도 미얀마 경찰 USDA |
지원 세력 | 중국 (주장) |
관련 정보 | |
관련 링크 | 휴먼 라이츠 컨선 BBC 뉴스 알자지라 더 타임스 노비니테 |
2. 배경
2007년 여름 시위 이전, 미얀마 국민들은 정체된 경제 성장과 유엔에 따른 세계 최빈국 20개국에 포함된다는 사실로 인해 경제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었다.[9] 유엔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군부의 지도력과 국민소득 중 무장 세력에 지출되는 비율을 경제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했다.[9][10] 2006년 말, 미얀마에서는 쌀, 계란, 식용유 등 기본 생필품 가격이 30~40% 급등하기 시작했다. 유엔에 따르면, 미얀마 어린이 3명 중 1명이 만성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으며, 보건 및 교육에 대한 정부 지출은 세계 최저 수준이며, 평균 소득은 연간 300달러 미만이었다. 특권층의 병행적 삶을 살고 있는 미얀마 군부는 국가 내 국가와 같은 존재로 보이며, 나라의 다른 지역을 괴롭히는 경제적 불안감으로부터 자유로웠다. 많은 고위급 장군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탄 슈웨(Than Shwe) 장군의 딸 결혼식 영상에서 수백만 달러 상당의 다이아몬드를 착용한 모습이 목격된 것이 이를 증명한다.[11][12][13]
BBC에 따르면, 2007년 2월 22일 소규모 시민들이 현재의 소비자 물가 상황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는 규모가 작았고 군부를 겨냥한 것으로 비춰지지 않도록 주의했지만, 당국은 시위자 9명을 투옥했다. 이는 적어도 10년 만에 양곤에서 목격된 최초의 거리 시위였다.[12] 제프 킹스턴은 그의 기사 "미얀마의 절망"에서 "절망과 공포는 더 나은 삶을 갈망하고 더 나은 정부를 위해 많은 위험을 무릅썼지만 헛수고였던 사람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2007년 미얀마 사람들이 행동을 취하는 것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를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킹스턴은 "1988년의 이전 잔혹한 진압 – 적어도 3천 명의 시위대가 사망하고 수천 명이 투옥되고 고문을 당했을 때 – 은 집단 기억 속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도 말했다.[14]
2. 1. 경제난
2007년 여름 시위 이전, 미얀마 국민들은 경제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었다. 미얀마는 정체된 경제 성장과 유엔에 따른 세계 최빈국 20개국 중 하나라는 사실에 직면해 있었다.[9] 많은 사람들은 군부의 지도력과 국민소득 중 무장 세력에 지출되는 비율을 경제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했다.[9][10] 2006년 말, 미얀마에서는 쌀, 계란, 식용유 등 기본 생필품 가격이 30~40% 급등하기 시작했다.[11][12][13] 유엔에 따르면, 미얀마 어린이 3명 중 1명이 만성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으며, 보건 및 교육에 대한 정부 지출은 세계 최저 수준이며, 평균 소득은 연간 300달러 미만이었다.특권층의 병행적 삶을 살고 있는 미얀마 군부는 국가 내 국가와 같은 존재로 보이며, 나라의 다른 지역을 괴롭히는 경제적 불안감으로부터 자유로웠다.[11][12][13]
2007년 2월 22일, 소규모 시민들이 현재의 소비자 물가 상황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지만, 당국은 시위자 9명을 투옥했다.[12] 제프 킹스턴은 "절망과 공포는 더 나은 삶을 갈망하고 더 나은 정부를 위해 많은 위험을 무릅썼지만 헛수고였던 사람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말하며, 1988년의 잔혹한 진압 – 적어도 3천 명의 시위대가 사망하고 수천 명이 투옥되고 고문을 당했을 때 – 은 집단 기억 속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14]
2. 2. 연료 가격 급등
2007년 8월 15일, 미얀마 정부는 연료 보조금을 폐지하여 가격을 급격하고 예고 없이 인상했다.[12] 연료 판매 독점권을 가진 정부는 갤런당 약 1.40달러에서 2.80달러로 가격을 인상했고, 천연가스 가격은 약 500% 인상했다.[9] 연료 가격 인상은 식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졌다. 곧이어 시위대가 거리로 나서 현 상황에 항의했다.[12]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과 세계은행(World Bank)은 오랫동안 연료 가격을 자유 시장이 결정하도록 보조금을 폐지할 것을 권고해 왔지만,[17][18] 이 기구들은 모든 보조금을 예고 없이 폐지할 것을 권고하지는 않았다.[12] 연료는 미얀마석유가스기업(Myanma Oil and Gas Enterprise), 국영 연료 회사에 의해 판매된다.
2. 3. 1988년 민주화 운동
미얀마 국민들은 정체된 경제 성장과 유엔에 따른 세계 최빈국 20개국에 포함된다는 사실로 인해 경제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었다.[9] 유엔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군부의 지도력과 국민소득 중 무장 세력에 지출되는 비율을 경제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했다.[9][10] 2006년 말, 미얀마에서는 쌀, 계란, 식용유 등 기본 생필품 가격이 30~40% 급등하기 시작했다. 유엔에 따르면, 미얀마 어린이 3명 중 1명이 만성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으며, 보건 및 교육에 대한 정부 지출은 세계 최저 수준이며, 평균 소득은 연간 300달러 미만이다. 특권층의 병행적 삶을 살고 있는 미얀마 군부는 국가 내 국가와 같은 존재로 보이며, 나라의 다른 지역을 괴롭히는 경제적 불안감으로부터 자유롭다. 많은 고위급 장군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탄 슈웨(Than Shwe) 장군의 딸 결혼식 영상에서 수백만 달러 상당의 다이아몬드를 착용한 모습이 목격된 것이 이를 증명한다.[11][12][13]BBC에 따르면, 2007년 2월 22일 소규모 시민들이 현재의 소비자 물가 상황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는 규모가 작았고 군부를 겨냥한 것으로 비춰지지 않도록 주의했지만, 당국은 시위자 9명을 투옥했다. 이는 적어도 10년 만에 양곤에서 목격된 최초의 거리 시위였다.[12] 제프 킹스턴(Jeff Kingston)은 그의 기사 "미얀마의 절망"에서 "절망과 공포는 더 나은 삶을 갈망하고 더 나은 정부를 위해 많은 위험을 무릅썼지만 헛수고였던 사람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2007년 미얀마 사람들이 행동을 취하는 것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를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킹스턴은 "1988년의 이전 잔혹한 진압 – 적어도 3천 명의 시위대가 사망하고 수천 명이 투옥되고 고문을 당했을 때 – 은 집단 기억 속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도 말했다.[14]
이러한 사건들에 중요하거나 상징적으로 등장한 인물들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 탄 슈웨(Than Shwe) 장군, 미얀마군 사령관
- 아웅산 수치(Aung San Suu Kyi), 미얀마 야당 인사이자 1991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
- 나가이 겐지(Kenji Nagai), 시위 중 사망한 일본 사진 기자
- 자르가나르(Zarganar), 미얀마 코미디언이자 시위 참가자
- 우 감비라(U Gambira), 반대파 불교 승려 지도자
3. 시위 진행 과정
버마 국민들의 반정부 시위는 평화적으로 진행됐으나 군인과 경찰은 경고 사격과 함께 최루탄, 공포탄을 동원하고 곤봉으로 시민을 때리며 시위대를 해산시켰다.[257] 군부는 승려들이 정치 참여로 사회 평화와 불교 교리를 위반하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불교 사원에 들어가 총과 수류탄을 쏘며 연행하고,[257] 승려들의 외출도 통제했다.[258] 야간통행엄금과 집회엄금령에도 불구하고 승려들이 주도한 반정부 시위에서 군인과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승려와 시민들이 총에 맞거나 경찰봉에 구타당해 기절하거나 부상당하고 연행당했다.
이번 시위는 군부가 8월 15일 예고 없이 천연가스 가격을 기존보다 약 5배, 휘발유/경유의 경우는 1.66~2배 인상한 조치에 반발하면서 일어났다.[246] 초기에는 일반 주민, 학생들과 반정부 행동주의자들에 의해 일어났다.
9월 5일 북부 파코쿠에서 승려와 군인들 간 무력 충돌이 벌어져 승려 4명이 체포됐다.[247] 미얀마군은 파곡쿠에서 평화적인 시위를 강제로 해산시키고 승려 3명을 부상 입혔으며, 한 승려가 사망했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확인되지 않았다.[20] 다음 날, 파곡쿠의 젊은 승려들은 보복으로 정부 관리 여러 명을 잠시 감금했다.[21] 승려들은 9월 17일까지 공식 사과와 이들의 석방을 요구했지만 군부는 거부했고, 9월 18일부터 불교 승려들도 시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247]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승려들은 군인들의 사원 출입과 시주를 금하고 시민들과 함께 비폭력적으로 거리에서 행진을 벌이는 방식으로 시위하고 있다.[248] 승려들이 시위에 참여하자 일부 언론과 단체에서는 승려들이 사프란색 옷을 입는다 하여 '''사프란 혁명'''(Saffron Revolution)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249][250] 전 국민의 대다수가 불교 신자인 미얀마에서 승려들은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다. 그리고 승려들은 사회적 영향력이 상당히 강력하다. 시민들에게 존경받는 승려들의 시위 참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이러한 사건 이후, 시위는 양곤(또는 '''랑군''') 싯웨, 파곡쿠, 만달레이를 포함한 미얀마 전역으로 확산되었다.[22]
군부는 9월 6일 0시를 기해 옛 수도인 양곤과 만달레이에 60일간 오후 9시부터 이튿날 오전 5시까지 야간 통행 엄금을 발령했고 5명 이상의 집회도 엄금했다.[251]
9월 22일, 약 2,000명의 승려들이 양곤을 행진했고, 1만 명이 만달레이를 행진했으며, 미얀마 전역의 5개 타운십에서 다른 시위가 벌어졌다. 수도를 행진하는 사람들은 "메타 토테"(자비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를 염송했고, 노벨 평화상 수상자 아웅산 수치 앞 거리의 바리케이드를 통과했다.[23] 가택 연금 중이었던 수치는 자신의 거주지 문 앞에서 잠시 모습을 드러내 불교 승려들의 축복을 받았다.[24] 약 200개의 사찰이 있는 만달레이에서는 승려들이 사람들에게 시위에 참여하지 말라고 말했고, 시위는 평화적으로 끝났다고 한다.[25] 9월 22일에는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승려와 시위대 2000여명이 아웅 산 수 치의 자택을 방문하자 수 치가 현관에 나와 이들을 환영했다. 수 치는 약 15분간 모습을 보였으며 시위대에게 손을 흔들고 눈물까지 훔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6일에도 시위대가 수 치의 자택을 방문하려 했지만 군경은 바리케이드로 길목을 차단했다. 인세인 교도소로 이감되었다는 투옥설도 있으나 당국에서는 아직 가택 연금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아웅 산 수 치가 이끌고 있는 민족민주동맹 인사가 경찰에 연행됐다.[252]
2007년 9월 22일 현재, 불교 승려들은 미얀마 군인들에게 종교 의식을 제공하지 않기로 했는데, 이는 매우 종교적인 국가인 미얀마에서 매우 강력한 상징적인 행동으로 여겨졌다. 군부 지도자들은 승려들의 시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하는 듯 보였다. 승려들에게 폭력을 사용하면 미얀마 국민들의 분노를 더욱 자극하여 대규모의 사회적 불안과 폭력을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9월 23일, 150명의 여승이 양곤에서 시위에 합류했다. 그날, 약 1만 5천 명의 불교 승려와 평신도들이 미얀마 군부 정권에 대한 6일째 평화 시위에 참여하여 양곤 거리를 행진했다.[26] 모든 미얀마 불교 승려 연합은 미얀마 군부가 축출될 때까지 시위를 계속할 것을 서약했다.[27]
9월 24일 목격자들은 양곤에서 3만 명에서 1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시위를 벌였다고 보고했으며, 이는 20년 만에 가장 큰 규모의 미얀마 반정부 시위였다.[22][28] BBC는 두 명의 유명 배우, 코미디언 자르가나(Zargana)와 영화배우 꺄우 투(Kyaw Thu)가 월요일 이른 아침 양곤의 황금빛 쉐다곤 파고다에 가서 행진을 시작하기 전 승려들에게 음식과 물을 제공했다고 보도했다. 행진은 미얀마 전역 최소 25개 도시에서 동시에 발생했으며, 승려들의 행렬은 최대 1 킬로미터에 달했다.[29] 행진이 끝날 무렵 약 1,000명의 승려들이 아웅산 수치의 집으로 갔지만 경찰에 의해 접근이 거부되었다. 그들은 평화롭게 떠나기 전 기도를 했다. 같은 날, 군부 정권의 종교부 장관인 투라 민 마웅(Thura Myint Maung) 준장은 시위를 주도하는 불교 승려들에게 "규칙과 규정"을 넘어서지 말라고 경고했다.[30]
한편,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미얀마 지도자들에 대한 일방적인 국제 제재를 발표하고 다른 국가들도 이를 따를 것을 촉구했다.[31] 달라이 라마 또한 더 큰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승려들의 노력에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32]
9월 25일, 군부는 시위대에게 무력 진압을 경고하고, 시위를 이끄는 승려들의 집결지인 쉐다곤 파고다에 군용 트럭을 배치했습니다. 목격자들은 5,000명의 승려와 일반 시민들이 쉐다곤 파고다로 행진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시민들은 승려들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 방패를 형성했습니다. 로이터는 한 목격자의 말을 인용하여 "승려들이 가운데 있고 일반 시민들이 양쪽에 서서 인간 사슬을 만들어 승려들을 보호하며 거리를 행진하고 있습니다."라고 보도했습니다.[33] 확성기가 장착된 차량들이 양곤 중심부를 순찰하며 군사 작전 경고 방송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행진을 따라가거나, 부추기거나, 참여해서는 안 됩니다. 이 명령을 위반하는 자는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라고 방송하며 불법 시위를 해산하기 위해 무력 사용을 허용하는 법률을 언급했습니다.[34]
9월 26일부터 미얀마 군부는 양곤과 만달레이 두 대도시에 야간 통행 금지령을 시행했습니다. 또한, 5명 이상의 집회를 금지했습니다. 한편, 무장 군인과 진압 경찰이 실린 트럭들이 양곤으로 향했습니다.[36]
9월 26일 새벽, 민주화 운동 인사인 윈 나잉(Win Naing)이 양곤 자택에서 체포되었다가 하룻밤 만에 석방되었다. 유명 미얀마 코미디언 자르가나(Zargana)도 이날 밤 체포되었다.[38] 군대는 쉐다곤 파고다(Shwedagon Pagoda)를 봉쇄하고 700명의 시위대를 곤봉과 최루탄으로 공격했다. 그 후 군대는 파고다 주변 지역을 봉쇄하여 승려들의 추가 시위를 막으려 했다.[39][40] 그러나 이는 시위를 막지 못했고, 최대 5,000명의 승려들이 양곤을 행진했으며, 일부는 최루탄 사용에 대비하여 마스크를 착용했다.
같은 날, 불교 승려 3명 이상과 여성 1명이 양곤에서 보안군의 발포로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41] 스웨덴 국영 라디오 양곤 특파원은 300명 이상, 그중 많은 수가 승려인 사람들이 구금되었다고 보도했다. 그는 또한 양곤에 새로운 정서가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사람들이 아주 자발적으로 다가와 전에는 결코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합니다. ... 사람들은 용감한 승려들에게 큰 감탄을 느낍니다."[43] 미얀마 캠페인 UK(Burma Campaign UK)는 정보원을 통해 군부가 다량의 갈색 승려복을 주문하고 군인들에게 머리를 깎도록 지시하여 승려들 사이에 잠입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44]
9월 27일, 군부 안보군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사찰을 급습하기 시작하여 양곤에서 최소 200명, 북동부에서 500명 이상의 승려들을 체포했습니다.[45] 익명의 외교관은 또한 군부가 군인들이 승려들을 "통제하에 두었다"고 주장하며 "이제 민간인 시위대에게 주의를 돌릴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49]
최대 5만 명의 시위대가 양곤 거리로 나섰다. 여러 뉴스 매체에 따르면, 무장군은 시위대에게 해산할 시간을 10분 주고 그렇지 않을 경우 극단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52][53] 미얀마 민주주의의 목소리(Democratic Voice of Burma) 라디오 방송은 일본 사진기자 나가이 겐지(Kenji Nagai)를 포함한 9명의 민간인이 무장군에 의해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나가이는 도쿄에 본사를 둔 미디어 회사인 APF 통신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미얀마 주재 일본 대사관은 나중에 나가이의 사망을 확인했습니다.[54][55][56] 나가이가 고의로 총에 맞는 것으로 보이는 아마추어 영상이 일본 TV에서 방영되었습니다.[57] 이후 영상에는 미얀마 군인이 나가이의 비디오 카메라를 빼앗는 모습도 나왔습니다.[58]
군인들은 양곤 타무웨 타운십의 고등학교로 행진하는 학생들에게 공중으로 총격을 가하고 직접 사격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목격자 보고에 따르면 100명이 총에 맞았다고 합니다.[59]
약 5만 명의 시위대가 아카브에서 평화적으로 시위를 벌인 것으로 보고되었으며, 정부 건물, 라우카나다 사원, 아키 통콩 사원을 포함한 7곳의 주요 장소에 군인들이 주둔했습니다.[61]
저녁에 미얀마 국영방송은 양곤에서 친민주주의 시위대에 대한 강경 진압으로 9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또한 11명의 시위대와 31명의 군인이 부상을 입었다고 덧붙였습니다.[62]
그날이 끝날 무렵, 군부가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새로운 연대를 편성했다는 보고가 나왔다. 군부 관계자에 따르면, 여러 사령관이 시위대 진압에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거부하자 탄 슈웨(Than Shwe) 수석 장군이 직접 지휘를 맡았습니다.[63] ''가디언(The Guardian)'' 신문은 태국에 거주하는 미얀마 망명자들이 받은 편지에 대한 기사를 게재했습니다.[64] 불만을 가진 군 장교들이 쓴 것으로 알려진 이 편지에는 시위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무장 세력을 대표하여 우리는 불교 승려와 일반 시민들의 비폭력 행동과 평화적인 표현을 지지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64][65]
미얀마 주재 유엔 특사인 이브라힘 감바리(Ibrahim Gambari)는 미얀마 당국이 국제적 압력에 굴복한 후 입국 허가를 받았습니다.[68][69]
9월 28일, 양곤은 이전 날들보다 더욱 한산했다. 군부의 폭력적인 보복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승려들을 죽이는 악당들"이나 "아웅산 장군이 가르친 군사학은 국민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즉, 군대는 국민을 죽여서는 안 된다)와 같은 구호를 외쳤다. 필리핀 대통령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는 미얀마에 민주주의를 향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 특사들은 중국에 미얀마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요청했다.
미얀마 정부는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여 시위와 관련된 대중의 인식과 통신을 억제하려 했다.[70] 군대는 특히 카메라를 소지한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아 구타했다.[71] 9월 28일, 군부에 의해 일본 사진기자 나가이 겐지가 사망한 후, 일본 총리 후쿠다 야스오는 그의 사망을 애도하고 사망 원인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요구했다.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은 미얀마에 대한 유엔 파견을 촉구하는 움직임에 동참할 것을 촉구받았고,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정부의 자제를 촉구했다.
중부 미얀마에서 온 버마군이 양곤으로 진군하기 시작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 군대는 타웅구에 있는 중부 사령부와 동남부 사령부 소속이었다. 이 군대가 양곤의 군대를 증원하기 위해 진군하는 것인지, 불교 승려들을 사살한 양곤의 군대에 도전하기 위해 진군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했다.[72]
마웅 아예 부수석 장군(Than Shwe의 2인자이자 육군 사령관)은 "시위대에 대한 폭력적인 접근 방식에 반대했다"고 알려졌으며, 양곤 외곽의 예몬 군사 캠프로 이송된 것으로 알려진 아웅산 수치 여사와 회담할 예정이었다.[73]
2007년 9월 29일 사태 보고
한 보고서에 따르면 군부는 추종자들에게 사전에 계획된 시위(진정한 시위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도록 지시하여 UN 특사들을 속이려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SPDC(미얀마 국가평화개발위원회) 추종자들이 민간인들을 강제로 참여시키는 것이었다. 같은 정보원은 마을 일부 지역에서는 가구당 한 명의 참석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인터넷 차단으로 인해, '88세대 활동가' 그룹은 UN과 미국, 영국 양곤 대사관에 일반 대중이 뉴스 사진을 제출할 수 있도록 Wi-Fi 접속을 통해 단일 페이지 웹 서비스를 개설해 줄 것을 촉구했다. 블로그 사이트는 여러 정보원을 통해 군인과 경찰이 공식적으로 군중에게 발포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UN 특사들이 쿠데타 지도부의 2인자 몽 아예(Maung Aye) 중장을 만날 것이라고 보도되었다.[76] BBC는 수백 명이 양곤에 모였고 목격자들은 시위대가 보안군과 친정부 자경단에 둘러싸였다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유엔 특사 이브라힘 감바리(Ibrahim Gambari)는 양곤에 도착하여 곧바로 네피도(Naypyidaw)로 가서 쿠데타 지도부와 대화할 예정이었다. 목격자들은 BBC에 1,000명 이상이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전했다. 새로운 폭력 사태에 대한 새로운 보고가 있었다. 프랑스 통신사 AFP는 보안군이 양곤 중심부 판소에단(Pansoedan) 다리에서 약 100명의 시위대를 향해 돌격했다고 밝혔다.[77]
만달레이에서는 약 5,000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군부는 대부분의 사찰을 경비하에 두어 출입을 막았다고 전해진다. 사람들은 80번가, 84번가, 35번가, 33번가에 모였다가 합류했고, 군용 트럭 3대가 그들을 따라다니며 시위대를 해산하려고 시도했고, 도로를 건너려던 학생 한 명을 체포했다. 군부는 만달레이 외곽의 승려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냈고, NLD 당 지도자들의 집은 경비하에 있었다. 만달레이에서는 평화적인 시위가 있었다고 보고되었다. 며칠 전 급습을 당했던 남쪽 오칼라파(Okkalarpa)의 응웨 캬얀(Ngwe Kyar Yan) 사찰은 수리 중이었고, 일부는 증거를 없애려는 노력이라고 제안했다. 아웅 타웅(Aung Thaung) 장관과 흐테 우(Htay Oo) 장군의 감독하에 틴 한(Thein Han) 대령이 이끄는 제77여단 내에 전담 진압 부대가 편성되었다고 보고되었다.[76] 농업부 장관 마웅 우(Maung Oo) 장군과 정보부 장관 꺄우 산(Kyaw Hsan) 준장은 밤에 승려들을 체포하는 임무를 맡았다고 한다.[76]
양곤 예정 도착 1시간 후, UN 사무총장의 미얀마 특별 고문인 이브라힘 감바리(Ibrahim Gambari)가 쿠데타 지도부와 대화하기 위해 네피도에 도착했다고 보도되었다.[78]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United States National Security Council) 대변인 고든 존드로(Gordon Johndroe)는 "감바리가 양곤(Rangoon)에서 내륙의 새로운 수도로 신속하게 이동한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인구 밀집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말하며, 감바리가 국민, 종교 지도자, 아웅산 수치(Aung San Suu Kyi)와 광범위하게 접촉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쿠데타 정권에 촉구했다.
초기 보고서는 쿠데타 정권이 감바리의 아웅산 수치 여사와의 면담을 거부했다고 전했다.[80] 게다가, 군대는 늦은 밤 그녀의 집 밖에 기관총 진지를 설치했다.[81]
미얀마 내부의 음성 메시지는 양곤 외곽 야웨이(YaeWay) 화장장에서 부상당한 시위대와 민간인들을 군인들이 강제로 화장시켰다는 울먹이는 화장장 직원들의 주장을 담고 있었다.[82] 타임즈 온라인(Times Online)은 나중에 "화장은 9월 28일 금요일 밤에 시작되었다는 것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사람들이 산 채로 불에 타 죽었다는 보고는 독립적인 관찰자들에 의해 매우 신중하게 다루어지고 있으며 확인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83] 양곤에서 군인들은 사람들을 술레 파고다(Sule pagoda)에서 멀리 떨어뜨리려고 술레 버스 정류장을 타마다 시네마(Thamada Cinema)로 우회시켰다. 일부 버스 운전사들은 이러한 변경 사항을 알리지 못했고, 기존 정류장에서 내린 승객들은 내리자마자 구타당했다.[84] 만달레이에서는 승려가 아닌 수감자들을 들판으로 데려가 이발사에게 머리를 깎게 한 다음 승려로 위장시켜 진짜 승려들에 대한 혼란과 불신을 조장하게 했다.[84]
승려와 시민들이 외교관들에게 전화를 걸어 세 개의 사찰에 군대가 도착했지만, 외부에 모인 주민들에 의해 진입이 막혔다고 알렸다. 군인들은 더 많은 병력으로 돌아오겠다고 위협한 후 떠났다.[85]
미즈마(Mizzima) 뉴스는 만달레이에서 NLD 지부 조직 위원회 위원 윈 미아 미아(Win Mya Mya)가 어젯밤 11시에 툰 린 나웅(Tun Lwin Naung) 경찰 부감찰관에 의해 자택에서 체포되었다고 보도했다. "그녀는 체포가 임박했음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녀는 준비가 되어 있었고 옷을 가지고 갔다"고 그녀의 여동생 틴 윈 예(Tin Win Yee)가 기자들에게 말했다.[86]
미얀마 북부 미키티나(Myitkyina)와 다른 마을의 시민들은 전국 협약에 대한 지지 시위를 조장하기 위해 정부 지지 집회에 강제로 참여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설은 쿠데타 지도부가 봉기 사태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가구당 두 명이 참석해야 했다. "집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받았다. 그래서 두려워서 참석했다"고 한 주민이 말했다.[87]
이틀 전 새벽에 약 200명의 승려들이 구금되었던 양곤의 응웨 캬얀 사찰은 군인들에게 약탈당했다고 보고되었다. 가치 있는 모든 것이 제거되었는데, 40개 이상의 불상과 귀중한 보석이 박힌 가장 큰 불상의 머리도 포함되었다고 한다.[88]
카우크파다웅(Kyaukpadaung), 만달레이 지방(Mandalay Division)에서 가장 큰 시위는 약 30,000명이었고 약 1,000명의 승려들이 주도했다. 시위대는 보안군과 군대의 집중적인 경비에도 불구하고 평화적으로 행진했다.[88]
라카인 주 남부 타웅구프(Taungup) 북쪽 30마일 떨어진 Wra Ma의 농민 약 10,000명이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여했다고 보고되었다. 시위대는 양곤의 승려들에 대한 정부의 행동에 분노했다고 한다. 보고서는 당국이 시위 소식을 받은 직후 타웅구프에서 경찰 한 소대를 마을로 파견했다고 밝혔다.[89]
목격자들이 로이터(Reuters)에 전한 바에 따르면, 쉐다곤 파고다 주변의 바리케이드는 철거되었지만, 군인들은 여전히 네 개의 입구에 주둔해 있었다. 승려들은 최소 다섯 명의 승려가 보안군과의 충돌 중 사망했다고 말했다. 목격자들은 군인과 경찰이 여전히 양곤 주변의 많은 길모퉁이와 주요 지점에 배치되어 시위대가 모이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전했다.[97]
영국 대사인 마크 캐닝은 중국이 감바리 특사의 임무가 가능한 한 길고 광범위하게 진행되도록 강력하게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98]
양곤 거리에는 무장한 군인 수천 명이 순찰하고 있다고 보도되었으며, 군부에 대한 시위의 징후는 없었다. 군인들은 보행자와 자동차 운전자를 세워 카메라를 수색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 네트워크는 여전히 대부분 두절되었다.[99]
지난주 군부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약 4,000명의 승려들을 체포했다고 한다. 그들은 사용하지 않는 경마장에 수감되어 있었다. BBC 보도에 따르면 정부가 지원하는 민병대의 소식통은 그들이 곧 양곤에서 멀리 옮겨질 것이며, 승려들은 승복을 벗겨지고 족쇄를 채워졌다고 밝혔다. 금지된 야당 방송국인 미얀마 민주주의의 목소리(Democratic Voice of Burma)는 양곤 강 하구 근처에서 승려의 시신이 떠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고 밝혔다.[100]
아침에 라카인 주(Rakhine State) 만 아웅(Man Aung) 마을에 5,000명의 시위대가 모였다고 보도되었다. 그들은 모든 정치범 석방, 상품 가격 인하, 그리고 국가 화해를 요구하는 두 개의 현수막을 들고 행진했다.[101]
'''이라와디(The Irrawaddy)'''의 보도에 따르면, 양곤 산차웅 타운십(Sanchaung Township)의 시위에서 세 명이 체포되었다.[102]
반대파는 아웅산 수치와의 협상에 대한 군부의 조건부 제안을 거부했다.[115] 미얀마 주재 미국 최고 외교관인 샤리 빌라로사는 군 지도자들과 회담하도록 초청받았다. 미국 대변인은 특사가 "지난주 유혈 진압에 대한 워싱턴의 비난을 분명히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초청은 지난주 거의 2,100명이 체포되고 약 700명이 석방되었다는 국영 방송 보도에 따른 것이다.[116]
로이터 통신은 시위에 박수를 친 시위자들은 2년에서 5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고, 지도자들은 20년형에 처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미얀마 민주주의의 목소리(Democratic Voice of Burma)는 만달레이에서 시위를 벌인 약 50명의 학생들이 5년의 강제 노역형을 선고받았다는 보고서를 전달했다.[117]
아카브에 주둔한 대대 소속 병력 약 60명이 10월 2일 종료된 3일간의 시위를 처리하기 위해 만 아웅 섬의 만 아웅 마을로 파견된 것으로 알려졌다.[118]
이브라힘 감바리는 여러 당사자들과 회담한 후 뉴욕으로 돌아와 안전 보장 이사회에 방문 결과를 보고했다.[119] 미얀마 대사는 자국에 대해 "실제로 어려운 도전을 경험했다. 그러나 우리는 안정을 회복할 수 있었다. 상황은 이제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120]
양곤 주민들은 군인들에게 돌을 던지는 등 "저항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전해졌다. 이에 보안군은 돌을 던진 일부 시민들을 체포했다.[121] 은퇴한 장군인 아웅 끼(U Aung Kyi)는 노동부 차관으로 재직 중이었으며, 2007년 10월 8일 아웅산 수치와 군부 사이의 회담을 위한 공식 중재자로 임명되었다.[122]3. 1. 초기 시위 (2007년 8월)
이번 시위는 2007년 8월 15일 군부가 예고 없이 천연가스 가격을 기존보다 약 5배, 휘발유/경유의 경우는 1.66~2배 인상한 조치에 반발하면서 일어났다.[246] 초기에는 일반 주민, 학생들과 반정부 행동주의자들에 의해 일어났다. 2007년 4월 22일, 군부는 양곤 교외에서 열린 드문 시위에 참여한 8명을 체포했는데, 이는 시위대에 대한 군부의 단속이 강화되는 가운데 발생한 일이다. 약 10명의 시위대는 양곤의 딩간균 타운십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슬로건을 외치며 가격 인하와 보건, 교육 개선, 공공 서비스 향상을 요구했다.[15] 군부 정부는 2007년 4월 23일 국영 언론 보도를 통해 인권 운동가들에 대한 단속 의지를 밝혔다.[16]
2007년 8월 15일, 정부는 연료 보조금을 폐지하여 가격을 급격하고 예고 없이 인상했다.[12]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과 세계은행(World Bank)은 오랫동안 연료 가격을 자유 시장이 결정하도록 보조금을 폐지할 것을 권고해 왔지만, 이 기구들은 모든 보조금을 예고 없이 폐지할 것을 권고하지는 않았다.[12][17][18] 2007년 8월 19일, 연료 가격 인상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시작되었고,[9] 정부는 시위에 대응하여 시위대를 체포하고 구타하기 시작했다.[9] 민꼬나잉(Min Ko Naing), 꼬꼬기(Ko Ko Gyi), 민제야(Min Zeya), 꼬지미(Ko Jimmy), 뿅초(Pyone Cho), 아른브웨꺄우(Arnt Bwe Kyaw) 그리고 꼬묘아이(Ko Mya Aye) 등 저명한 미얀마 반체제 인사 13명이 정부에 체포되었다.[19] 2007년 8월 21일~22일, 8월 19일 시위 참가자들이 지역 당국에 의해 구금되었고, 그들의 집은 영장 없이 수색당했다.[1]
9월 5일에는 파코쿠에서 승려와 군인들 간 무력 충돌이 벌어져 승려 4명이 체포됐다. 승려들은 9월 17일까지 공식 사과를 요구했지만 군부는 거부했고, 9월 18일부터는 불교 승려들도 시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247] 이후 항의는 양곤(ရန်ကုန်), 시트웨(စစ်တွေ), 파코크(ပခုက္ကူ)와 만달레이(မန္တလေး)를 포함한 미얀마 전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213]
9월 22일, 시위는 미얀마 5개 지역으로 확산되었고, 약 2000명의 승려가 양곤으로 행진했으며, 1만 명이 만달레이로 행진했다.[214] 민주화 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치(အောင်ဆန်းစုကြည်)는 여전히 가택 연금 중이었지만, 승려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자신의 거주지 입구에서 짧은 시간 동안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215][216]
9월 23일, 150명의 여승이 양곤에서 항의에 참여했다. 이날 약 1만 5000명의 승려와 일반 시민들은 미얀마 군부에 대한 항의가 확대된 6일째에 양곤 거리를 행진했다.[217]
9월 24일, 양곤의 시위는 3만 명에서 10만 명으로 급증했다. BBC는 유명 배우이자 코미디언인 Zargana(ဇာဂနာ)와 영화 배우 Kyaw Thu(ကျော်သူ)가 일찍부터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로 가서 승려들에게 음식과 물을 제공했다고 보도했다.[213][221] 시위 행진 후, 약 1000명의 승려가 아웅산 수치를 만나러 그녀의 집으로 향했지만, 경찰에 의해 진입이 거부되었다. 이후 군부의 종교 장관인 Thura Myint Maung 준장은 항의를 주도하는 승려들에게 "규정"을 넘지 말라고 경고했다.[222]
3. 2. 승려들의 참여 (2007년 9월)
2007년 미얀마 반정부 시위는 8월 15일 군부의 급격한 유가 인상 조치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었다.[246] 초기에는 일반 주민, 학생, 반정부 운동가들이 주도했지만, 9월 5일 파코쿠에서 승려와 군인 간 무력 충돌이 발생하고 승려 4명이 체포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247] 승려들은 군부에 공식 사과와 체포된 승려들의 석방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했고, 9월 18일부터 승려들이 시위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247][248]
미얀마 국민 대다수가 불교 신자이기에, 승려들은 국민들로부터 존경받으며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248] 승려들은 군인들의 사원 출입 및 시주를 금지하고, 시민들과 함께 비폭력 거리 행진을 벌였다.[248] 일부 언론과 단체는 승려들의 사프란색 옷을 따 '사프란 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했다.[249][250]
9월 22일, 시위를 주도하던 승려와 시위대 2000여 명은 아웅 산 수 치 자택을 방문했고, 수 치는 현관에 나와 이들을 환영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252] 하지만 26일 시위대의 재방문은 군경의 바리케이드로 저지되었다.[252] 대학생들도 시험을 거부하고 시위에 참여했으며, 군의 사원 점거에 맞서 창과 칼을 든 승려들도 있었다.[253]
9월 23일, 150명의 여승이 양곤 시위에 합류했고, 약 1만 5천 명의 승려와 평신도들이 양곤 거리를 행진했다.[26] 모든 미얀마 불교 승려 연합은 군부 축출까지 시위를 계속할 것을 서약했다.[27] 9월 24일에는 양곤에서 3만 명에서 10만 명이 시위에 참여했으며, 이는 20년 만에 최대 규모였다.[22][28] 코미디언 자르가나와 영화배우 꺄우 투는 승려들에게 음식과 물을 제공했다.[28] 같은 날, 군부 정권 종교부 장관은 승려들에게 "규칙과 규정"을 넘지 말라고 경고했다.[30] 한편,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유엔총회에서 미얀마 지도자들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고, 달라이 라마도 승려들의 노력을 지지했다.[31][32]
군부의 강경 진압으로 9월 29일부터 시위가 잠잠해졌지만,[254] 10월 1일부터 주민들은 오후 8시부터 15분간 TV를 끄고 소등하는 '침묵 시위'를 벌였다.[256]
3. 3. 시위 확산과 군부의 대응
이번 시위는 군부가 8월 15일 예고 없이 천연가스 가격을 기존보다 약 5배, 휘발유/경유의 경우는 1.66~2배 인상한 조치에 반발하면서 일어났다.[246] 초기에는 일반 주민, 학생들과 반정부 행동주의자들에 의해 일어났다.
9월 5일 북부 파코쿠에서 승려와 군인들 간 무력 충돌이 벌어져 승려 4명이 체포됐다.[247] 미얀마군은 파곡쿠에서 평화적인 시위를 강제로 해산시키고 승려 3명을 부상 입혔으며, 한 승려가 사망했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확인되지 않았다.[20] 다음 날, 파곡쿠의 젊은 승려들은 보복으로 정부 관리 여러 명을 잠시 감금했다.[21] 승려들은 9월 17일까지 공식 사과와 이들의 석방을 요구했지만 군부는 거부했고, 9월 18일부터 불교 승려들도 시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247]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승려들은 군인들의 사원 출입과 시주를 금하고 시민들과 함께 비폭력적으로 거리에서 행진을 벌이는 방식으로 시위하고 있다.[248] 승려들이 시위에 참여하자 일부 언론과 단체에서는 승려들이 사프란색 옷을 입는다 하여 '''사프란 혁명'''(Saffron Revolution)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249][250] 전 국민의 대다수가 불교 신자인 미얀마에서 승려들은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다. 그리고 승려들은 사회적 영향력이 상당히 강력하다. 시민들에게 존경받는 승려들의 시위 참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이러한 사건 이후, 시위는 양곤(또는 '''랑군''') 싯웨, 파곡쿠, 만달레이를 포함한 미얀마 전역으로 확산되었다.[22]
군부는 9월 6일 0시를 기해 옛 수도인 양곤과 만달레이에 60일간 오후 9시부터 이튿날 오전 5시까지 야간 통행 엄금을 발령했고 5명 이상의 집회도 엄금했다.[251]
9월 22일, 약 2,000명의 승려들이 양곤을 행진했고, 1만 명이 만달레이를 행진했으며, 미얀마 전역의 5개 타운십에서 다른 시위가 벌어졌다. 수도를 행진하는 사람들은 "메타 토테"(자비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를 염송했고, 노벨 평화상 수상자 아웅산 수치 앞 거리의 바리케이드를 통과했다.[23] 가택 연금 중이었던 수치는 자신의 거주지 문 앞에서 잠시 모습을 드러내 불교 승려들의 축복을 받았다.[24] 약 200개의 사찰이 있는 만달레이에서는 승려들이 사람들에게 시위에 참여하지 말라고 말했고, 시위는 평화적으로 끝났다고 한다.[25] 9월 22일에는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승려와 시위대 2000여명이 아웅 산 수 치의 자택을 방문하자 수 치가 현관에 나와 이들을 환영했다. 수 치는 약 15분간 모습을 보였으며 시위대에게 손을 흔들고 눈물까지 훔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6일에도 시위대가 수 치의 자택을 방문하려 했지만 군경은 바리케이드로 길목을 차단했다. 인세인 교도소로 이감되었다는 투옥설도 있으나 당국에서는 아직 가택 연금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아웅 산 수 치가 이끌고 있는 민족민주동맹 인사가 경찰에 연행됐다.[252]
2007년 9월 22일 현재, 불교 승려들은 미얀마 군인들에게 종교 의식을 제공하지 않기로 했는데, 이는 매우 종교적인 국가인 미얀마에서 매우 강력한 상징적인 행동으로 여겨졌다. 군부 지도자들은 승려들의 시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하는 듯 보였다. 승려들에게 폭력을 사용하면 미얀마 국민들의 분노를 더욱 자극하여 대규모의 사회적 불안과 폭력을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부가 시위가 계속되도록 허용할수록 정권은 더욱 약해질 수 있다. 결국 군부 정권이 성급하게 행동하게 되어 시민들을 더욱 자극할 위험이 있다. 일부 국제 뉴스 기관은 이러한 봉기를 '샤프론 혁명'이라고 부르고 있다.
9월 23일, 150명의 여승이 양곤에서 시위에 합류했다. 그날, 약 1만 5천 명의 불교 승려와 평신도들이 미얀마 군부 정권에 대한 6일째 평화 시위에 참여하여 양곤 거리를 행진했다.[26] 모든 미얀마 불교 승려 연합은 미얀마 군부가 축출될 때까지 시위를 계속할 것을 서약했다.[27]
9월 24일 목격자들은 양곤에서 3만 명에서 1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시위를 벌였다고 보고했으며, 이는 20년 만에 가장 큰 규모의 미얀마 반정부 시위였다.[22][28] BBC는 두 명의 유명 배우, 코미디언 자르가나(Zargana)와 영화배우 꺄우 투(Kyaw Thu)가 월요일 이른 아침 양곤의 황금빛 쉐다곤 파고다에 가서 행진을 시작하기 전 승려들에게 음식과 물을 제공했다고 보도했다. 행진은 미얀마 전역 최소 25개 도시에서 동시에 발생했으며, 승려들의 행렬은 최대 1 킬로미터에 달했다.[29] 행진이 끝날 무렵 약 1,000명의 승려들이 아웅산 수치의 집으로 갔지만 경찰에 의해 접근이 거부되었다. 그들은 평화롭게 떠나기 전 기도를 했다. 같은 날, 군부 정권의 종교부 장관인 투라 민 마웅(Thura Myint Maung) 준장은 시위를 주도하는 불교 승려들에게 "규칙과 규정"을 넘어서지 말라고 경고했다.[30]
한편,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미얀마 지도자들에 대한 일방적인 국제 제재를 발표하고 다른 국가들도 이를 따를 것을 촉구했다.[31] 달라이 라마 또한 더 큰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승려들의 노력에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32]
9월 25일, 군부는 시위대에게 무력 진압을 경고하고, 시위를 이끄는 승려들의 집결지인 쉐다곤 파고다에 군용 트럭을 배치했습니다. 목격자들은 5,000명의 승려와 일반 시민들이 쉐다곤 파고다로 행진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시민들은 승려들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 방패를 형성했습니다. 로이터는 한 목격자의 말을 인용하여 "승려들이 가운데 있고 일반 시민들이 양쪽에 서서 인간 사슬을 만들어 승려들을 보호하며 거리를 행진하고 있습니다."라고 보도했습니다.[33] 확성기가 장착된 차량들이 양곤 중심부를 순찰하며 군사 작전 경고 방송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행진을 따라가거나, 부추기거나, 참여해서는 안 됩니다. 이 명령을 위반하는 자는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라고 방송하며 불법 시위를 해산하기 위해 무력 사용을 허용하는 법률을 언급했습니다.[34] 로이터는 구금된 민주주의 지도자 아웅산 수치가 승려들의 행진을 맞이하기 위해 집 앞에 나타난 다음 날인 일요일에 인세인 교도소로 이감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35]
9월 26일부터 미얀마 군부는 양곤과 만달레이 두 대도시에 야간 통행 금지령을 시행했습니다. 또한, 5명 이상의 집회를 금지했습니다. 한편, 무장 군인과 진압 경찰이 실린 트럭들이 양곤으로 향했습니다.[36]
9월 26일 새벽 2시 30분경, 민주화 운동 인사인 윈 나잉(Win Naing)이 양곤 자택에서 체포되었다. 익명의 친구와 서방 외교관에 따르면, 그는 시위 중인 승려들에게 음식과 물을 제공하는 모습이 목격된 후 체포되었으나 하룻밤 만에 석방되었다. 그는 국가 경제적 어려움에 항의하는 미얀마 시위대와 함께 기자회견을 개최한 혐의로 3월 8일에도 체포된 바 있다.[37] 유명 미얀마 코미디언 자르가나(Zargana)도 이날 밤 체포되었다.[38] 군대는 쉐다곤 파고다(Shwedagon Pagoda)를 봉쇄하고 700명의 시위대를 곤봉과 최루탄으로 공격했다. 경찰은 방패를 곤봉으로 치며 일부 승려와 약 200명의 지지자들을 쫓았고, 다른 이들은 파고다 단지 동쪽 문 근처에 남으려 했다. 그 후 군대는 파고다 주변 지역을 봉쇄하여 승려들의 추가 시위를 막으려 했다.[39][40] 그러나 이는 시위를 막지 못했고, 최대 5,000명의 승려들이 양곤을 행진했으며, 일부는 최루탄 사용에 대비하여 마스크를 착용했다.
같은 날, 불교 승려 3명 이상과 여성 1명이 양곤에서 보안군의 발포로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불교 승려들의 주도로 군부 쿠데타에 항의하는 시위를 계속했던 상황이었다.[41] 양곤 종합병원의 한 의사는 쉐다곤 파고다에서 진압 경찰에게 심하게 구타당한 부상당한 승려 3명이 병원에 입원했다고 확인했다.[42] 스웨덴 국영 라디오 양곤 특파원은 300명 이상, 그중 많은 수가 승려인 사람들이 구금되었다고 보도했다. 그는 또한 양곤에 새로운 정서가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사람들이 아주 자발적으로 다가와 전에는 결코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합니다. ... 사람들은 용감한 승려들에게 큰 감탄을 느낍니다."[43] 미얀마 캠페인 UK(Burma Campaign UK)는 정보원을 통해 군부가 다량의 갈색 승려복을 주문하고 군인들에게 머리를 깎도록 지시하여 승려들 사이에 잠입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44]
9월 27일, 군부 안보군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사찰을 급습하기 시작하여 양곤에서 최소 200명, 북동부에서 500명 이상의 승려들을 체포했습니다. 동시에 군은 양곤 지역의 다른 네 개의 사찰을 급습하여 여러 명의 승려들을 체포했습니다. 소식통은 군이 차욱타지 파고다의 6층짜리 종교과학 사찰, 얀킨 타운십의 모에 카웅 사찰, 띵안균 타운십의 매긴 사찰, 띤프유 지역의 띤프유 사찰을 급습하여 여러 명의 승려들을 체포했다고 확인했습니다.[45][46][47][48] 익명의 외교관은 또한 군부가 군인들이 승려들을 "통제하에 두었다"고 주장하며 "이제 민간인 시위대에게 주의를 돌릴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49]
최대 5만 명의 시위대가 양곤 거리로 나섰습니다. 수레 지역에서는 안보군의 구타로 피를 흘리는 시위대가 흩어져 도망치는 모습이 목격되었습니다. 안보군은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살충제를 사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목격자들은 양곤 시내 띵이 시장 근처에서 소방차와 살충제 운반 트럭이 목격되었다고 말했습니다.[50] BBC는 소방대가 살충제로 차량을 채우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확인되지 않은 보고를 받았습니다.[51]
여러 뉴스 매체에 따르면, 무장군은 시위대에게 해산할 시간을 10분 주고 그렇지 않을 경우 극단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52][53] 미얀마 민주주의의 목소리(Democratic Voice of Burma) 라디오 방송은 일본 사진기자 나가이 겐지(Kenji Nagai)를 포함한 9명의 민간인이 무장군에 의해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나가이는 도쿄에 본사를 둔 미디어 회사인 APF 통신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미얀마 주재 일본 대사관은 나중에 나가이의 사망을 확인했습니다.[54][55][56] 나가이가 고의로 총에 맞는 것으로 보이는 아마추어 영상이 일본 TV에서 방영되었습니다.[57] 이후 영상에는 미얀마 군인이 나가이의 비디오 카메라를 빼앗는 모습도 나왔습니다.[58]
군인들은 양곤 타무웨 타운십의 고등학교로 행진하는 학생들에게 공중으로 총격을 가하고 직접 사격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목격자 보고에 따르면 100명이 총에 맞았다고 합니다.[59] 군용 트럭이 군중 속으로 돌진한 후 최대 300명의 학생들이 체포되었습니다.[60]
약 5만 명의 시위대가 아카브에서 평화적으로 시위를 벌인 것으로 보고되었으며, 정부 건물, 라우카나다 사원, 아키 통콩 사원을 포함한 7곳의 주요 장소에 군인들이 주둔했습니다.[61]
저녁에 미얀마 국영방송은 양곤에서 친민주주의 시위대에 대한 강경 진압으로 9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또한 11명의 시위대와 31명의 군인이 부상을 입었다고 덧붙였습니다.[62]
그날이 끝날 무렵, 군부가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새로운 연대를 편성했다는 보고가 나왔습니다. 군부 관계자에 따르면, 여러 사령관이 시위대 진압에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거부하자 탄 슈웨(Than Shwe) 수석 장군이 직접 지휘를 맡았습니다.[63] ''가디언(The Guardian)'' 신문은 태국에 거주하는 미얀마 망명자들이 받은 편지에 대한 기사를 게재했습니다.[64] 불만을 가진 군 장교들이 쓴 것으로 알려진 이 편지에는 시위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무장 세력을 대표하여 우리는 불교 승려와 일반 시민들의 비폭력 행동과 평화적인 표현을 지지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64][65] 이 편지는 또한 공공 애국자 육군 협회라는 단체의 결성을 발표했습니다. 가디언은 기사가 게재되기 전에 편지 자체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66]
탄 슈웨의 가족이 출국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보고가 있었습니다. 8명의 승객을 태운 전세 에어 바간(Air Bagan) 항공편이 오후 6시(현지 시간) 라오스 비엔티안(Vientiane)에 도착했습니다. 에어 바간은 탄 슈웨의 동맹인 타이 자가 소유하고 있습니다.[67]
미얀마 주재 유엔 특사인 이브라힘 감바리(Ibrahim Gambari)는 미얀마 당국이 국제적 압력에 굴복한 후 입국 허가를 받았습니다. 그는 뉴욕에서 위기를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안전보장이사회(Security Council)가 자제를 촉구한 후 미얀마에 파견되었습니다.[68][69]
9월 28일, 양곤은 이전 날들보다 더욱 한산했다. 군부의 폭력적인 보복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승려들을 죽이는 악당들"이나 "아웅산 장군이 가르친 군사학은 국민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즉, 군대는 국민을 죽여서는 안 된다)와 같은 구호를 외쳤다. 필리핀 대통령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는 미얀마에 민주주의를 향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필리핀 대통령은 야당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가 석방되지 않으면 필리핀은 미얀마에 대한 재정 지원을 중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특사들은 중국에 미얀마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요청했다.
미얀마 정부는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여 시위와 관련된 대중의 인식과 통신을 억제하려 했다.[70] 군대는 특히 카메라를 소지한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아 구타했다.[71] 9월 28일, 군부에 의해 일본 사진기자 나가이 겐지가 사망한 후, 일본 총리 후쿠다 야스오는 그의 사망을 애도하고 사망 원인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요구했다.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은 미얀마에 대한 유엔 파견을 촉구하는 움직임에 동참할 것을 촉구받았고,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정부의 자제를 촉구했다.
중부 미얀마에서 온 버마군이 양곤으로 진군하기 시작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 군대는 타웅구에 있는 중부 사령부와 동남부 사령부 소속이었다. 이 군대가 양곤의 군대를 증원하기 위해 진군하는 것인지, 불교 승려들을 사살한 양곤의 군대에 도전하기 위해 진군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했다.[72]
마웅 아예 부수석 장군(Than Shwe의 2인자이자 육군 사령관)은 "시위대에 대한 폭력적인 접근 방식에 반대했다"고 알려졌으며, 양곤 외곽의 예몬 군사 캠프로 이송된 것으로 알려진 아웅산 수치 여사와 회담할 예정이었다.[73] 또 다른 보도에 따르면 마웅 아예가 탄 슈웨에 대한 쿠데타를 일으켰고, 그의 군대가 아웅산 수치 여사의 집을 지키고 있으며, 외교 소식통은 아웅산 수치 여사가 양곤 외곽의 경찰학교 구내로 이동했다고 말했지만, 이 보고서에 대한 독립적인 확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74]
헬펜 오네 그렌젠(Help without Frontiers)은 양곤 북부 오칼라파 타운십에서 66 경보병 사단(LID)의 병사들이 다른 정부군과 경찰을 공격하고 시위대를 방어했다고 보고했다. 만달레이의 33 LID 병사들도 시위대에 대한 작전 명령을 거부했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다른 보고서에는 많은 병사들이 병영에 남아 있었다고 한다. 후속 보도에 따르면 99 LID의 병사들이 그들과 대치하기 위해 파견되고 있다고 한다.[75]
2007년 9월 29일 사태 보고
한 보고서에 따르면 군부는 추종자들에게 사전에 계획된 시위(진정한 시위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도록 지시하여 UN 특사들을 속이려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SPDC(미얀마 국가평화개발위원회) 추종자들이 민간인들을 강제로 참여시키는 것이었다. 같은 정보원은 마을 일부 지역에서는 가구당 한 명의 참석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인터넷 차단으로 인해, '88세대 활동가' 그룹은 UN과 미국, 영국 양곤 대사관에 일반 대중이 뉴스 사진을 제출할 수 있도록 Wi-Fi 접속을 통해 단일 페이지 웹 서비스를 개설해 줄 것을 촉구했다. 블로그 사이트는 여러 정보원을 통해 군인과 경찰이 공식적으로 군중에게 발포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UN 특사들이 쿠데타 지도부의 2인자 몽 아예(Maung Aye) 중장을 만날 것이라고 보도되었다.[76] BBC는 수백 명이 양곤에 모였고 목격자들은 시위대가 보안군과 친정부 자경단에 둘러싸였다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유엔 특사 이브라힘 감바리(Ibrahim Gambari)는 양곤에 도착하여 곧바로 네피도(Naypyidaw)로 가서 쿠데타 지도부와 대화할 예정이었다. 목격자들은 BBC에 1,000명 이상이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전했다. 새로운 폭력 사태에 대한 새로운 보고가 있었다. 프랑스 통신사 AFP는 보안군이 양곤 중심부 판소에단(Pansoedan) 다리에서 약 100명의 시위대를 향해 돌격했다고 밝혔다.[77]
만달레이에서는 약 5,000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군부는 대부분의 사찰을 경비하에 두어 출입을 막았다고 전해진다. 사람들은 80번가, 84번가, 35번가, 33번가에 모였다가 합류했고, 군용 트럭 3대가 그들을 따라다니며 시위대를 해산하려고 시도했고, 도로를 건너려던 학생 한 명을 체포했다. 군부는 만달레이 외곽의 승려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냈고, NLD 당 지도자들의 집은 경비하에 있었다. 만달레이에서는 평화적인 시위가 있었다고 보고되었다. 며칠 전 급습을 당했던 남쪽 오칼라파(Okkalarpa)의 응웨 캬얀(Ngwe Kyar Yan) 사찰은 수리 중이었고, 일부는 증거를 없애려는 노력이라고 제안했다. 아웅 타웅(Aung Thaung) 장관과 흐테 우(Htay Oo) 장군의 감독하에 틴 한(Thein Han) 대령이 이끄는 제77여단 내에 전담 진압 부대가 편성되었다고 보고되었다.[76] 농업부 장관 마웅 우(Maung Oo) 장군과 정보부 장관 꺄우 산(Kyaw Hsan) 준장은 밤에 승려들을 체포하는 임무를 맡았다고 한다.[76]
양곤 예정 도착 1시간 후, UN 사무총장의 미얀마 특별 고문인 이브라힘 감바리(Ibrahim Gambari)가 쿠데타 지도부와 대화하기 위해 네피도에 도착했다고 보도되었다.[78]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United States National Security Council) 대변인 고든 존드로(Gordon Johndroe)는 "감바리가 양곤(Rangoon)에서 내륙의 새로운 수도로 신속하게 이동한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인구 밀집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말하며, 감바리가 국민, 종교 지도자, 아웅산 수치(Aung San Suu Kyi)와 광범위하게 접촉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쿠데타 정권에 촉구했다. 수치 여사와의 만남을 기대하느냐는 질문에 감바리는 "만나야 할 모든 사람들을 만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79]
초기 보고서는 쿠데타 정권이 감바리의 아웅산 수치 여사와의 면담을 거부했다고 전했다.[80] 게다가, 군대는 늦은 밤 그녀의 집 밖에 기관총 진지를 설치했다.[81]
미얀마 내부의 음성 메시지는 양곤 외곽 야웨이(YaeWay) 화장장에서 부상당한 시위대와 민간인들을 군인들이 강제로 화장시켰다는 울먹이는 화장장 직원들의 주장을 담고 있었다.[82] 타임즈 온라인(Times Online)은 나중에 "화장은 9월 28일 금요일 밤에 시작되었다는 것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사람들이 산 채로 불에 타 죽었다는 보고는 독립적인 관찰자들에 의해 매우 신중하게 다루어지고 있으며 확인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83] 양곤에서 군인들은 사람들을 술레 파고다(Sule pagoda)에서 멀리 떨어뜨리려고 술레 버스 정류장을 타마다 시네마(Thamada Cinema)로 우회시켰다. 일부 버스 운전사들은 이러한 변경 사항을 알리지 못했고, 기존 정류장에서 내린 승객들은 내리자마자 구타당했다.[84] 만달레이에서는 승려가 아닌 수감자들을 들판으로 데려가 이발사에게 머리를 깎게 한 다음 승려로 위장시켜 진짜 승려들에 대한 혼란과 불신을 조장하게 했다.[84]
승려와 시민들이 외교관들에게 전화를 걸어 세 개의 사찰에 군대가 도착했지만, 외부에 모인 주민들에 의해 진입이 막혔다고 알렸다고 한다. 군인들은 더 많은 병력으로 돌아오겠다고 위협한 후 떠났다.[85]
미즈마(Mizzima) 뉴스는 만달레이에서 NLD 지부 조직 위원회 위원 윈 미아 미아(Win Mya Mya)가 어젯밤 11시에 툰 린 나웅(Tun Lwin Naung) 경찰 부감찰관에 의해 자택에서 체포되었다고 보도했다. "그녀는 체포가 임박했음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녀는 준비가 되어 있었고 옷을 가지고 갔다"고 그녀의 여동생 틴 윈 예(Tin Win Yee)가 기자들에게 말했다. "나는 그녀가 걱정된다. 이번 달은 라마단 기간이고, 그녀는 데파인(Depayin) 사건에서 입은 부상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86]
미얀마 북부 미키티나(Myitkyina)와 다른 마을의 시민들은 전국 협약에 대한 지지 시위를 조장하기 위해 정부 지지 집회에 강제로 참여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설은 쿠데타 지도부가 봉기 사태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가구당 두 명이 참석해야 했다. "집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받았다. 그래서 두려워서 참석했다"고 한 주민이 말했다.[87]
이틀 전 새벽에 약 200명의 승려들이 구금되었던 양곤의 응웨 캬얀 사찰은 군인들에게 약탈당했다고 보고되었다. 가치 있는 모든 것이 제거되었는데, 40개 이상의 불상과 귀중한 보석이 박힌 가장 큰 불상의 머리도 포함되었다고 한다.[88]
카우크파다웅(Kyaukpadaung), 만달레이 지방(Mandalay Division)에서 가장 큰 시위는 약 30,000명이었고 약 1,000명의 승려들이 주도했다. 시위대는 보안군과 군대의 집중적인 경비에도 불구하고 평화적으로 행진했다.[88]
라카인 주 남부 타웅구프(Taungup) 북쪽 30마일 떨어진 Wra Ma의 농민 약 10,000명이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여했다고 보고되었다. 시위대는 양곤의 승려들에 대한 정부의 행동에 분노했다고 한다. 보고서는 당국이 시위 소식을 받은 직후 타웅구프에서 경찰 한 소대를 마을로 파견했다고 밝혔다.[89]
목격자들이 로이터(Reuters)에 전한 바에 따르면, 쉐다곤 파고다 주변의 바리케이드는 철거되었지만, 군인들은 여전히 네 개의 입구에 주둔해 있었다. 승려들은 최소 다섯 명의 승려가 보안군과의 충돌 중 사망했다고 말했다. 목격자들은 군인과 경찰이 여전히 양곤 주변의 많은 길모퉁이와 주요 지점에 배치되어 시위대가 모이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전했다.[97]
영국 대사인 마크 캐닝은 중국이 감바리 특사의 임무가 가능한 한 길고 광범위하게 진행되도록 강력하게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98]
양곤 거리에는 무장한 군인 수천 명이 순찰하고 있다고 보도되었으며, 군부에 대한 시위의 징후는 없었다. 군인들은 보행자와 자동차 운전자를 세워 카메라를 수색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 네트워크는 여전히 대부분 두절되었다.[99]
지난주 군부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약 4,000명의 승려들을 체포했다고 한다. 그들은 사용하지 않는 경마장에 수감되어 있었다. BBC 보도에 따르면 정부가 지원하는 민병대의 소식통은 그들이 곧 양곤에서 멀리 옮겨질 것이며, 승려들은 승복을 벗겨지고 족쇄를 채워졌다고 밝혔다. 금지된 야당 방송국인 미얀마 민주주의의 목소리(Democratic Voice of Burma)는 양곤 강 하구 근처에서 승려의 시신이 떠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고 밝혔다.[100]
아침에 라카인 주(Rakhine State) 만 아웅(Man Aung) 마을에 5,000명의 시위대가 모였다고 보도되었다. 그들은 모든 정치범 석방, 상품 가격 인하, 그리고 국가 화해를 요구하는 두 개의 현수막을 들고 행진했다.[101]
'''이라와디(The Irrawaddy)'''의 보도에 따르면, 양곤 산차웅 타운십(Sanchaung Township)의 시위에서 세 명이 체포되었다.[102]
반대파는 아웅산 수치와의 협상에 대한 군부의 조건부 제안을 거부했다.[115] 미얀마 주재 미국 최고 외교관인 샤리 빌라로사는 군 지도자들과 회담하도록 초청받았다. 미국 대변인은 특사가 "지난주 유혈 진압에 대한 워싱턴의 비난을 분명히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초청은 지난주 거의 2,100명이 체포되고 약 700명이 석방되었다는 국영 방송 보도에 따른 것이다.[116]
로이터 통신은 시위에 박수를 친 시위자들은 2년에서 5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고, 지도자들은 20년형에 처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미얀마 민주주의의 목소리(Democratic Voice of Burma)는 만달레이에서 시위를 벌인 약 50명의 학생들이 5년의 강제 노역형을 선고받았다는 보고서를 전달했다.[117]
아카브에 주둔한 대대 소속 병력 약 60명이 10월 2일 종료된 3일간의 시위를 처리하기 위해 만 아웅 섬의 만 아웅 마을로 파견된 것으로 알려졌다.[118]
이브라힘 감바리는 여러 당사자들과 회담한 후 뉴욕으로 돌아와 안전 보장 이사회에 방문 결과를 보고했다.[119] 미얀마 대사는 자국에 대해 "실제로 어려운 도전을 경험했다. 그러나 우리는 안정을 회복할 수 있었다. 상황은 이제 정상으로 돌아왔다. 현재 전국 각지에서 새로운 헌법의 기본 원칙을 세운 전국 협약의 성공적인 결론을 환영하고 최근의 도발적인 시위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기 위해 법의 범위 내에서 평화적인 집회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120]
양곤 주민들은 군인들에게 돌을 던지는 등 "저항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전해졌다. 이에 보안군은 돌을 던진 일부 시민들을 체포했다.[121] 은퇴한 장군인 아웅 끼(U Aung Kyi)는 노동부 차관으로 재직 중이었으며, 2007년 10월 8일 아웅산 수치와 군부 사이의 회담을 위한 공식 중재자로 임명되었다.[122]
4. 군부의 탄압
9월 27일 새벽, 군은 불교 사원 두 곳에 실탄을 발사하며 급습해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승려 100여 명을 체포했다.[259] 체포된 일부 승려들은 양곤 시내의 한 기술대학 및 사용하지 않는 경마시설에 구금되었다.[260] 같은 날, AFP 통신의 계약 사진기자인 일본인 나가이 겐지(長井健司일본어) 기자가 취재 중 사망했다.[261]
미얀마 정부는 공공 인터넷 연결을 차단했다.[234] 이 외에도 시위 참가자 측에 군부 정권 측이 스파이를 침투시킨 사실이 드러났다.[235] 또한, 1988년 당시 시위 참가자 특정에 시간이 걸렸던 점을 감안하여, 시위대를 비디오 촬영하여 신원을 확인한 후 시위에 참여한 승려들을 체포하는 등 단기간에 해결하려 했다고 알려져 있다.[236]
이번 양곤 시위 진압에 투입된 군대에는 1988년과 마찬가지로 정예 부대인 제77경보병사단이 포함되어 있다. 이 사단은 역사적으로 미얀마 민족에게 억압받아 복잡한 민족 감정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친족이나, 부모 없이 자란 사람들 또는 어린 시절부터 군사 교육을 받은 고아들을 중심으로 편성되었기 때문에, 시민에게 총을 겨누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며,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237]
4. 1. 무력 진압
버마 국민들의 반정부 시위는 평화적으로 진행됐으나 군인과 경찰은 경고 사격과 함께 최루탄, 공포탄을 동원하고 곤봉으로 시민을 때리며 시위대를 해산시켰다.[257] 군부는 승려들이 정치 참여로 사회 평화와 불교 교리를 위반하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불교 사원에 들어가 총과 수류탄을 쏘며 연행하고,[257] 승려들의 외출도 통제했다.[258] 야간통행엄금과 집회엄금령에도 불구하고 승려들이 주도한 반정부 시위에서 군인과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승려와 시민들이 총에 맞거나 경찰봉에 구타당해 기절하거나 부상당하고 연행당했다.
9월 27일 새벽, 군은 불교 사원 두 곳에 실탄을 발사하며 급습해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승려 100여 명을 체포했다.[259] 체포된 일부 승려들은 양곤 시내의 한 기술대학 및 사용하지 않는 경마시설에 구금되었다.[260] 같은 날, AFP 통신의 계약 사진기자인 일본인 나가이 겐지(長井健司일본어) 기자가 취재 중 사망했다.[261] 그는 최후까지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261] 얀 윈 미얀마 외무장관은 뉴욕 유엔 본부에서 고무라 마사히코 일본 외상과 가진 회담에서 "나가이 겐지의 사망은 미안하게 됐다"고 사과했다.[263] 한편, 9월 26일에는 야당 당원이 조사를 받다 숨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264]
9월 26일 새벽, 민주화 운동 인사 윈 나잉(Win Naing)이 양곤 자택에서 체포되었다가 하룻밤 만에 석방되었다.[37] 유명 미얀마 코미디언 자르가나(Zargana)도 체포되었다.[38] 군대는 쉐다곤 파고다(Shwedagon Pagoda)를 봉쇄하고 700명의 시위대를 곤봉과 최루탄으로 공격했다.[39][40] 같은 날, 불교 승려 3명 이상과 여성 1명이 양곤에서 보안군의 발포로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41] 스웨덴 국영 라디오 양곤 특파원은 300명 이상이 구금되었다고 보도했다.[43] 미얀마 캠페인 UK(Burma Campaign UK)는 군부가 다량의 갈색 승려복을 주문하고 군인들에게 머리를 깎도록 지시하여 승려들 사이에 잠입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44]
9월 27일, 군부는 전국적으로 사찰을 급습하여 양곤에서 최소 200명, 북동부에서 500명 이상의 승려들을 체포했다.[45] 군인들은 양곤 타무웨 타운십의 고등학교로 행진하는 학생들에게 총격을 가했고,[59] 군용 트럭이 군중 속으로 돌진한 후 최대 300명의 학생들이 체포되었다.[60] 약 5만 명의 시위대가 아카브에서 평화적으로 시위를 벌였다.[61] 미얀마 국영방송은 양곤에서 친민주주의 시위대에 대한 강경 진압으로 9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62] 탄 슈웨(Than Shwe) 수석 장군이 직접 시위대 진압 지휘를 맡았다는 보고가 나왔다.[63] ''가디언(The Guardian)'' 신문은 불만을 가진 군 장교들이 시위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편지를 썼다고 보도했다.[64][65]
9월 28일, 양곤은 군부의 폭력적인 보복을 두려워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지않아 한산했다. 필리핀 대통령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는 미얀마에 민주주의를 향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며, 아웅산 수치 여사가 석방되지 않으면 재정 지원을 중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얀마 정부는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고,[70] 카메라를 소지한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아 구타했다.[71]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은 미얀마에 대한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파견을 촉구했다.
마웅 아예 부수석 장군(Than Shwe의 2인자이자 육군 사령관)은 시위대에 대한 폭력적인 접근 방식에 반대했다고 알려졌다.[73] 헬펜 오네 그렌젠(Help without Frontiers)은 양곤 북부 오칼라파 타운십에서 66 경보병 사단(LID)의 병사들이 시위대를 방어했다고 보고했다.[75]
9월 29일, 군부는 UN 특사들을 속이기 위해 사전에 계획된 시위를 벌이도록 지시했다.[76] 인터넷 차단으로 인해, '88세대 활동가' 그룹은 UN과 미국, 영국 양곤 대사관에 Wi-Fi 접속을 통해 단일 페이지 웹 서비스를 개설해 줄 것을 촉구했다. UN 특사 이브라힘 감바리(Ibrahim Gambari)는 양곤에 도착하여 쿠데타 지도부와 대화할 예정이었다.[78] 초기 보고서는 쿠데타 정권이 감바리의 아웅산 수치 여사와의 면담을 거부했다고 전했다.[80]
미얀마 내부의 음성 메시지는 양곤 외곽 야웨이(YaeWay) 화장장에서 부상당한 시위대와 민간인들을 군인들이 강제로 화장시켰다는 주장을 담고 있었다.[82]
카우크파다웅(Kyaukpadaung), 만달레이 지방(Mandalay Division)에서 약 30,000명이 시위에 참여했다.[88] 라카인 주 남부 타웅구프(Taungup) 북쪽 30마일 떨어진 Wra Ma의 농민 약 10,000명이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여했다.[89]
감바리는 싱가포르에서 이헌룡(Lee Hsien Loong) 총리와 회담을 가졌다.[109] 양곤에서는 약 25명의 승려들이 야간에 사찰을 급습한 보안군에 체포되었다. 군용 차량들이 양곤 거리를 순찰하며 사진을 가지고 체포할 것이라고 방송했다.[110]
일본인 기자 나가이 겐지(Kenji Nagai)의 시신이 일본으로 송환되었다.[113] 또 다른 보도에 따르면, 최대 1만 명의 사람들이 "조사를 위해 체포되었다"고 한다.[114] 미얀마 정부는 공공 인터넷 연결을 차단했다.[234] 시위 참가자 측에 군부 정권 측이 스파이를 침투시킨 사실이 드러났다.[235] 1988년과 마찬가지로 정예 부대인 제77경보병사단이 양곤 시위 진압에 투입되었다.[237]
4. 2. 희생자
버마 국민들의 반정부 시위는 평화적으로 진행됐으나 군인과 경찰이 총으로 경고 사격과 함께 최루탄과 공포탄을 동원하고, 곤봉으로 시민을 때리며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군부는 또한 승려들이 정치 참여로 사회 평화와 불교 교리를 위반하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불교 사원에 들어가 불교 승려들에게 총과 수류탄을 쏘며 연행하였으며[257] 승려들의 외출도 통제한 것으로 알려졌다.[258]
야간통행엄금과 집회엄금령을 무릅쓰고 승려들이 주도한 반정부 시위에서 군인과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승려와 시민들이 총에 맞거나 경찰봉에 구타당해 기절하거나 부상당하고 연행당했다. 9월 27일 새벽에는 군이 불교 사원 두 곳에 실탄을 발사하며 급습해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승려 100여 명을 체포한 것으로 알려졌다.[259] 또한 체포된 일부 승려들은 양곤 시내의 한 기술대학 및 사용하지 않는 경마시설에 구금된 것으로 알려졌다.[260]
같은 날 일본인 사진기자인 나가이 겐지(長井健司일본어) 기자가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나가이 겐지 기자는 AFP 통신의 계약 사진기자로, 그는 최후까지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261] 한편, 일본인 사진기자에게 의도적으로 총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262] 그러자 얀 윈 미얀마 외무장관이 뉴욕 유엔 본부에서 고무라 마사히코 일본 외상과 가진 회담에서 "나가이 겐지의 사망은 미안하게 됐다"고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263]
9월 26일 야당 당원이 조사를 받다 숨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264]
아직까지 사상자 수는 각 언론사들이 낸 통계와 미얀마 군부가 발표한 통계가 모두 제각각 달라 정확한 사상자 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 미얀마 군부의 발표에 따르면 모두 13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고 밝혔다.[265] 하지만 군부가 발표한 사망자 수보다 실제 사망자가 더 많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266]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 지는 미얀마 언론인의 주장을 인용, 군과 경찰이 달아나는 시위대를 향해 조준사격을 가했으며 최소한 4명의 젊은이가 등에 총격을 받아 즉사했다고 보도하였다.[267] 또한 미국의 반(反) 군부독재단체인 '버마를 위한 미국운동'은 미얀마 군부의 사흘간의 유혈 민주화운동 진압으로 시위 참가자 약 200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근거가 제시되지는 못했다.[267]
4. 2. 1. 나가이 겐지 사망 사건
일본인 기자 나가이 겐지/長井 健司일본어의 시신이 일본으로 송환되었다. 부검이 실시될 예정이며, 일본 당국은 미얀마 당국의 주장과 달리 나가이 겐지가 우발적으로 총에 맞은 것이 아니라 근거리에서 사살된 것이라고 밝혔다. 나가이 겐지가 속해 있던 APF통신의 야마지 토루 사장은 "현재 가장 중요한 과제는 그의 카메라에 담긴 내용과 그가 마지막 날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확인하고 보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113]
2007년 9월 27일, 양곤에서 APF통신의 계약 비디오 저널리스트 나가이 겐지가 시위대 진압 현장을 촬영 중 미얀마 군인에게 근거리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같은 날 일본 대사관 직원에 의해 사망이 확인되었다. 경시청 발표 검시 결과에 따르면, 총탄이 왼쪽 허리 뒤쪽에서 오른쪽 위쪽 배 부분으로 관통하여 간장을 손상시켜 대량 출혈로 사망에 이르렀다고 한다. 미얀마 정부는 상공에서의 위협 사격의 빗나간 총알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총격 당시를 포착한 영상에서는 근접한 거리에 있던 군인이 돌격소총(미얀마에서 BA 시리즈로 라이선스 생산되는 H&K G3)으로 쏜 것처럼 보인다.[238]
이 사건에 대해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유감을 표명했고, 마치무라 노부타카 관방장관은 유감과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다카무라 마사히코 외무대신은 유엔 본부에서 미얀마의 냥 윈 외무장관과 회담하여 항의했고, 냥 윈 외무장관은 다카무라 마사히코 외무대신에게 사과했다고 한다.[239] 30일, 야부나카 미토지 외무심의관이 특사로 미얀마에 파견되었다.
4. 3. 언론 통제
미얀마 군사 정권은 시위 상황을 중계한 인터넷 웹사이트와 블로그를 차단하고, 시위를 이끈 승려, 야당 정치인, 대학생 지도부, 국내외 기자들의 전화선을 두절시키는 등 언론을 통제했다.[253][257]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튜브와 현지 네티즌들이 개설한 블로그에는 휴대전화, 디지털 카메라 등으로 촬영한 시위 관련 동영상과 사진들이 꾸준히 올라왔다.[253][257]
코글로뉴스의 정범래 기자는 미얀마 시위 취재 중 군부에 적발되어 수배령이 내려졌으나, 9월 26일 항공기를 통해 타이로 피신했다.[268] 9월 29일에는 미얀마 경찰 당국 대표라고 밝힌 한 남성이 반정부 시위를 취재 중인 스웨덴과 덴마크 기자들에게 신변 안전을 위해 철수하라는 전화를 걸기도 했다.[269]
정부는 미얀마 관련 뉴스나 정보를 전달하는 웹사이트와 서비스를 차단하고 웹 기반 이메일 접속도 금지했다.[182] 그러나 시위대는 인터넷을 통해 시위 상황을 국제 사회에 알렸고, 이는 전례 없는 수준의 국제 뉴스 보도로 이어졌다.[182] 양곤의 블로거들은 검열을 우회하여 시위 초기부터 사진과 비디오를 블로그에 게시했고, 이 중 많은 이미지가 주요 뉴스 기관에 보도되었다.[182] 아웅산 수치가 자택 밖으로 나와 행진하는 승려와 지지자들을 맞이했을 때의 사진 역시 블로그를 통해 공개되었다.[184] 미즈마 뉴스(Mizzima News)는 아웅산 수치의 사진을 보도하며 당일 5만 명 이상이 웹사이트에 접속했다고 밝혔다.[183][184]
일부 미얀마 인터넷 사용자들은 인터넷 포럼을 통해 정부 통제를 받지 않는 외부 정보를 얻으려 노력했다.[185] 9월 28일, 정부는 인터넷 접속을 완전히 차단했다는 보도가 나왔으며, 스카이 뉴스(Sky News)는 모든 인터넷 카페도 폐쇄되었다고 보도했다.[186][187]
2007년 10월 13일, 양곤 시내의 야간 통금 완화와 함께 인터넷도 재개통됐다.[270]
5. 국제 사회의 반응
- 대한민국 외교통상부는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우려를 표하며 더 이상 상황이 악화하지 않도록 정부에게 자제를 요구했다.[271] 10월 1일에는 국회의원 42명이 탄압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272]
- 미국: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8월 30일 군부의 반체제 민주인사 검거를 비판하고 이들의 석방을 요구했으며,[273] 9월 25일 유엔 총회에서 "버마의 군사독재정권이 19년에 걸쳐 공포의 통치를 해오는 데 미국인들은 분노한다."라고 밝혔다.[274] 9월 27일, 데이너 페리노 백악관 대변인은 "전 세계가 자유를 요구하기 위해 거리로 뛰쳐나온 미얀마 국민들을 주시하고 있다"며 "미국은 이들 용감한 국민들과 연대할 것"이라고 말했다.[275]
- 러시아: 러시아 외교부는 유감을 표명했지만 "위기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는 필요하다"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제재 논의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276]
- 영국: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버마의 불법적이고 억압적인 정권은 전 세계가 버마를 주시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274]
- 중국과 인도 정부는 사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277] 또한 중국 정부는 폭력 진압과 관련한 유엔의 규탄 성명 발표 등에 즉각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278]
- 일본: 일본 정부는 자국민이 숨진 것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고[261] 특사를 파견했다.[263] 10월 1일에는 나가이 겐지가 최후까지 들고 있던 비디오 카메라를 돌려 달라고 요구했다.[279]
- 유럽 연합: 유럽 연합은 미얀마의 임시공사를 소환해 유혈사태가 계속될 경우 미얀마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280]
- 유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은 9월 26일 비상 회의를 소집, 군부의 강제 진압에 대해 우려하며 자제해줄 것을 요청하는 공동 성명서를 채택했다.[281] 유엔 인권이사회의 경우 이번 민주화 시위와 관련해 특별회의 개최에 필요한 47개 이사국의 3분의 1이 넘는 17개 이사국을 포함한 53개국의 서명을 받은 소집요구서를 받았다. 10월 2일, 유엔인권이사회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특별 회의를 개최해, 시위에 대한 군부의 무력 진압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260]
- G8 외무장관들도 평화로운 시위대에 대한 모든 폭력을 비난하며, 민주화 운동 지도자들과 대화를 시작하라는 성명을 채택했다.[281]
-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 10개국 외무장관들은 자동 소총이 사용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경악했다면서 군정에 무력 사용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282]
- 아시아 협력 대화(ACD) 회원국들은 현지 시각으로 9월 28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외교장관 회의에서 우려와 함께, 미얀마 정부에 자제를 촉구했다.[283]
- 국제의회연맹(IPU)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총회에서 미얀마 군부에 대해 구금 중인 모든 정치인, 승려 등을 조건없이 즉각 석방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284]
- 대한민국 참여연대에서는 9월 27일 군정을 강력히 규탄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285]
- 대한민국 5·18기념재단에서도 "군정은 평화적인 민주화 요구 시위에 대한 무력사용을 즉각 중지하라"는 성명서를 9월 28일 발표했다.[286]
- 또한, 9월 27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주한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민족민주동맹 한국지부 회원들과 '한국버마행동' 회원들이 시위를 하기도 했다.[287] 이외에도 세계 각국에 주재하고 있는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시위가 일어났다.[288] 9월 30일에는 영국 런던에서[289], 10월 2일에도 대한민국에서는 시민 단체들이 군부의 시위대 탄압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290]
5. 1. 대한민국
5. 2. 미국
미국은 미얀마 군부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139]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미얀마 군부에 대한 추가 제재를 발표하고, 수출 통제를 강화하고 군부가 보유한 더 많은 금융 자산을 동결했으며, 중국과 인도에 더 많은 압력을 가할 것을 촉구했다.[147] 그는 "승려들이 구타당하고 살해당했습니다. 수천 명의 민주주의 지지 시위대가 체포되었습니다."라고 말하며 미얀마 지도자들의 행동을 비판했다.[147]미국 재무부는 탄 슈웨 최고 사령관과 마웅 아예 부사령관을 포함한 미얀마 고위 관리 14명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191] 이 조치는 미국 관할권 하에 있는 미국 은행이나 기타 금융 기관에 제재 대상 개인이 보유한 자산을 동결하고, 미국 시민이 지정된 개인과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192]
미국, 유럽 연합, 캐나다는 은행 계좌 동결 및 보석과 목재 수입 제한 등 군부에 대한 다수의 제재를 가했다.[190]
5. 3. 유럽 연합
9월 27일 유럽 연합은 군부에 대한 "표적 강화 제재"를 검토하기 시작했으며, 현재 제재에는 무기 금수 조치, 자산 동결, 비자 및 무역 금지가 포함되어 있었다.[193] 그들의 목표는 국민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제재를 뒷받침하는 것이었다.[193] 미국, 유럽 연합, 캐나다는 은행 계좌 동결 및 보석과 목재 수입 제한 등 군부에 대한 다수의 제재를 가했다.[190]5. 4. 유엔
유엔은 이브라힘 감바리 특사를 미얀마에 파견했다.[280] 감바리 특사는 9월 29일 미얀마 군부 지도자들을 만나고 아웅 산 수 치와 면담했다.[280][90] 10월 2일에는 군부 최고 권력자인 탄 슈웨 장군을 만나고, 아웅 산 수 치와 2차 면담을 가졌다.[291][103]유엔 인권이사회는 특별회의를 통해 미얀마의 평화 시위에 대한 폭력적 탄압을 비난하고 체포된 모든 사람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107][108]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성명을 통해 이브라힘 감바리 특사의 중재 노력을 지지하고, 미얀마 군부에 아웅산 수치 여사와의 "진정한 대화"를 촉구했다.[131][132]
감바리 특사는 태국에서 유엔과 미얀마 간의 협력 정신에 역행하는 체포 사건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는 성명을 발표했다.[137] 유엔 미얀마 인권 특별 보고관 파울로 세르지우 피네이루의 미얀마 방문이 허가되었으며,[149] 미얀마 정부는 유엔 미얀마 대표 찰스 페트리를 추방했다.[158]
2007년 12월 7일, 유엔 인권이사회의 피네이로 특별보고관은 9월 반정부 시위 무력 진압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보고서에는 31명이 사망하고 74명이 실종되었다고 명시되어 있다.
5. 5. 중국과 인도
많은 국가들이 시위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군부에 광범위한 개혁을 촉구했지만, 중화인민공화국과 인도와 같은 일부 주요 국가들은 비간섭주의 개념에 대한 헌신을 유지했다.[188][189]6. 시위 이후
2007년 11월 통행금지가 해제되면서 평온을 되찾고 있으며, 지난 10월까지 차단됐던 전화도 허용되고 있다.[292] 미얀마 에어웨이즈 인터내셔널은 시위로 중단된 국제노선 운항을 2008년 1월 4일부터 재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293]
미얀마 군사정권은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2008년 5월 12일과 24일(사이클론으로 큰 피해를 입은 지역에 한해 24일로 연기) 두 차례에 걸쳐 실시했다. 이 헌법 개정안에는 외국인과 결혼했거나, 군 출신이 아닌 사람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아웅 산 수 치 여사의 대통령 선거 출마가 불가능해진다. 이는 군사 정권의 지속적인 유지를 위한 헌법 개정으로 보인다.
시위가 시작된 지 1년 후에도 소규모 저항 행위는 계속되었다. 손바닥을 둥글게 친 '정지 표시'가 지폐와 다른 곳에 찍혀 시위를 상기시켰다.[160] 양곤에서는 여러 차례 폭탄 테러가 발생했는데, 군부는 이를 NLD의 소행이라고 비난했다.[161]
2008년 10월 19일, 양곤의 쉐삐다타 지역 탄차욱핀 지역에서 군부 후원 연대연합발전협회 사무실 근처에서 폭탄이 터져 1명이 사망했다.[162] 희생자는 핏 우 윈으로 확인되었으며, 과거 승려였고, 사프란 혁명에 참여했고, 자신의 집에서 폭탄을 제조하다 사망했다고 한다.[163] 군부는 해당 폭탄을 민족민주연맹이 설치했다고 비난했지만, 당시 전문가들은 엄격하게 통제되는 보안 환경 속에서 야당이 그러한 행위를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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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外務報道官談話
https://www.mofa.go.[...]
外務省
2007-09-25
[243]
뉴스
直ちに制裁考えず=長井さん遺族に「お悔やみ」-福田首相
http://news.goo.ne.j[...]
2007-09-28
[244]
뉴스
日本政府、ミャンマーの人材センター建設への資金援助を中止
https://www.afpbb.co[...]
2007-10-16
[245]
뉴스
Bush Urges U.N. to Spread Freedom
https://www.nytimes.[...]
2007-09-25
[246]
뉴스
미얀마 반정부 가두시위 계속
http://news.mk.co.kr[...]
매일경제
2007-09-22
[247]
뉴스
미얀마 사태 고조…스님들, 마침내 시위 대열 가담
http://www.pressian.[...]
프레시안
2007-09-18
[248]
뉴스
미얀마 유혈사태, '맨손 vs 자동소총'의 싸움
http://news.sbs.co.k[...]
SBS 뉴스
2007-09-30
[249]
뉴스
Nuns join monks in Burma's Saffron Revolution
http://www.timesonli[...]
타임즈 온라인
2007-09-24
[250]
뉴스
Burma: Inside the saffron revolution
http://news.independ[...]
더 인디펜던트
2007-09-27
[251]
뉴스
미얀마 시위대 강제진압…끝내 '유혈 충돌'
http://news.sbs.co.k[...]
SBS 뉴스
2007-09-27
[252]
뉴스
미얀마 민주화 시위 ‘태풍의 눈’ 아웅산 수치 여사
http://www.kukinews.[...]
쿠키뉴스
2007-09-27
[253]
뉴스
승려들 창·칼 들고 사원 지켜… 정부, 인터넷 폐쇄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2007-09-29
[254]
뉴스
미얀마 민중시위 이대로 꺾이나
http://www.cbs.co.kr[...]
노컷뉴스
2007-09-29
[255]
뉴스
미얀마, 유엔특사 방문 맞춰 대규모 관제집회
http://news.kbs.co.k[...]
KBS 뉴스
2007-09-30
[256]
뉴스
미얀마 주민 소등. TV 끄기로 ‘침묵 시위’
http://www.donga.com[...]
동아일보
2007-10-03
[257]
뉴스
'미얀마유혈사태' 45년 군사정권에 맞선 `몽크 + IT 파워`
https://archive.toda[...]
중앙일보
2007-09-29
[258]
뉴스
양곤에 군병력 추가 배치, 승려들 외출 봉쇄…미얀마 시위 소강상태
http://article.joins[...]
중앙일보
2007-10-01
[259]
뉴스
보안군 사원 급습…승려 100명 체포!
http://www.ytn.co.kr[...]
YTN
2007-09-27
[260]
뉴스
유럽·EU 폭력중단 촉구 잇따라
http://www.hani.co.k[...]
한겨레
2007-10-03
[261]
뉴스
‘미얀마 시위’ 취재 일본인 기자 숨져
http://news.kbs.co.k[...]
KBS 뉴스
2007-09-28
[262]
뉴스
"日기자 의도된 총격에 피살" 의혹 제기
http://www.munhwa.co[...]
문화일보
2007-09-29
[263]
뉴스
미얀마 "일본 기자 사망 사과"…일, 특사 급파
http://news.sbs.co.k[...]
SBS 뉴스
2007-09-29
[264]
뉴스
미얀마 야당원 조사받다 숨져…민주인사 군정 탄압 지속
http://news.kbs.co.k[...]
KBS 뉴스
2007-10-11
[265]
뉴스
미얀마 양곤 시내 무시무시한 정적
http://news.kbs.co.k[...]
KBS 뉴스
2007-09-29
[266]
뉴스
“유혈 진압 희생자 수십명이나 된다”
http://www.hani.co.k[...]
한겨레
2007-09-28
[267]
뉴스
美 소재 반정부단체 "미얀마 사태 희생자 200명선"
http://news.media.da[...]
연합뉴스 (추정)
2007-09-30
[268]
블로그
'미얀마 민주화시위' 한국인 특파원 미얀마 사태 취재로 수배령 떨어져 피신 중
http://story.koglo.c[...]
We are Koglian!
2007-09-27
[269]
뉴스
미얀마, 스웨덴ㆍ덴마크 언론에 철수 요구
http://news.mk.co.kr[...]
매일경제
2007-10-02
[270]
뉴스
미얀마, 양곤 통금 완화…인터넷 재개통
http://news.kbs.co.k[...]
KBS 뉴스
2007-10-14
[271]
보도자료
미얀마 관련 외교부 대변인 성명
http://sub.mofat.go.[...]
외교통상부
2007-09-27
[272]
뉴스
의원 42명 “미얀마군부 민중탄압 중단촉구”
http://news.kbs.co.k[...]
KBS 뉴스
2007-10-01
[273]
뉴스
부시, 미얀마 반체제 민주인사 검거 비판
http://article.joins[...]
중앙일보
2007-08-31
[274]
뉴스
19년 만에 최대 시위… 2개사단 양곤 배치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2007-09-27
[275]
뉴스
백악관 `미국은 용감한 미얀마 국민 편`
http://article.joins[...]
중앙일보
2007-09-29
[276]
뉴스
푸틴 “미얀마 제재 논의는 시기상조”
http://news.kbs.co.k[...]
KBS 뉴스
2007-09-29
[277]
뉴스
中ㆍ인도 "미얀마 사태 개입않겠다"
http://news.mk.co.kr[...]
매일경제
2007-09-27
[278]
뉴스
유엔 미얀마 제재 촉각
http://economy.hanko[...]
서울경제
2007-09-27
[279]
뉴스
日, 미얀마에 “피살된 기자 캠코더 돌려달라”
http://news.kbs.co.k[...]
KBS 뉴스
2007-10-01
[280]
뉴스
유엔특사 도착 “탄슈웨 만날 것”
http://www.hani.co.k[...]
한겨레
2007-09-30
[281]
뉴스
국제사회 ‘탄압 중단-대화’촉구
http://www.munhwa.co[...]
문화일보
2007-09-27
[282]
뉴스
아세안도 미얀마 군정에 폭력 사용 중단 촉구
http://news.kbs.co.k[...]
KBS 뉴스
2007-09-28
[283]
뉴스
ACD, 미얀마 사태 우려 표시..자제촉구
http://news.mk.co.kr[...]
매일경제
2007-09-29
[284]
뉴스
IPU 총회, 미얀마 사태 결의안 채택
http://news.kbs.co.k[...]
KBS 뉴스
2007-10-11
[285]
간행물
평화적인 민주화 요구 시위를 무력으로 탄압하는 버마군정을 강력히 규탄한다
http://www.peoplepow[...]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2007-09-27
[286]
보도자료
버마민주화운동 지지 성명서 발표
http://www.518.org/m[...]
5·18기념재단
2007-09-28
[287]
뉴스
“군사독재 경험 한국민, 버마 민주화 지지를”
http://www.hani.co.k[...]
한겨레
2007-09-28
[288]
뉴스
지구촌 곳곳서 미얀마 민주화운동 지지시위
http://www.yonhapnew[...]
연합뉴스
2007-09-28
[289]
뉴스
미얀마 망명 인사들, 런던에서 동조 시위
http://news.kbs.co.k[...]
KBS 뉴스
2007-10-01
[290]
뉴스
미얀마 민중 학살 규탄 집회 잇따라
http://news.kbs.co.k[...]
KBS 뉴스
2007-10-02
[291]
뉴스
유엔특사, 탄 슈웨 장군 만나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2007-10-03
[292]
뉴스
일상은 평온을 찾았지만… ‘정치’ 얘기만 나오면 입닫는 그들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2007-12-29
[293]
뉴스
미얀마 국적기, 국제노선 운항재개 예정
http://www.yonhapnew[...]
연합뉴스
2007-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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