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4세 달랑송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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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샤를 4세 달랑송 공작은 1492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알랑송 공작, 페르슈 백작, 아르마냐크 백작 등을 계승했다. 1509년 앙굴렘 백작 프랑수아의 누이 마르그리트 드 나바르와 결혼했으나 자녀는 없었다. 노르망디 총독으로 임명되어 마리냐노 전투, 샹파뉴 방어전에 참여했으며, 파비아 전투에서 프랑수아 1세를 따라 이탈리아로 출정했다가 귀국 후 사망했다. 샤를 4세의 사후, 부인 마르그리트 당굴렘은 남편의 여동생을 제쳐두고 대부분의 칭호를 상속받았으며, 후사를 남기지 못해 알랑송 가문은 단절되었다. 이후 미망인의 딸 잔 다르브레와 프랑수아즈의 아들 앙투안 드 부르봉의 결혼으로 부르봉 왕조의 앙리 4세가 태어났다.
| 이름 | 샤를 4세 달랑송 공작 |
|---|
| 원어 이름 | Charles IV d'Alençon |
|---|
| 출생일 | 1489년 9월 2일 |
|---|
| 출생지 | 프랑스, 알랑송 |
|---|
| 사망일 | 1525년 4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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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지 | 프랑스, 리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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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장지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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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자 | 마르그리트 당굴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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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문 | 발루아-알랑송 가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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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 르네 달랑송 공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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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 마르그리트 드 로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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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1492년 아버지 르네, 알랑송 공작이 사망하면서 어린 나이에 알랑송 공작, 페르슈 백작, 아르마냐크 백작 등을 계승했다.
1509년, 샤를 4세는 앙굴렘 백작 프랑수아 (프랑수아 1세)의 누이인 마르그리트 드 앙굴렘과 결혼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 자녀는 없었다.
샤를 4세는 노르망디 총독으로 임명되었고, 1515년 마리냐노 전투에서 싸웠으며, 1521년에는 제국의 침략으로부터 샹파뉴를 지켰다. 1525년 파비아 전투에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겸 스페인 왕 카를 5세에게 포로로 잡힌 의붓 동생 프랑수아 1세를 따라 이탈리아로 출정했지만, 프랑수아 1세는 포로가 되었다. 샤를 4세는 귀국했지만, 왕을 포로로 만든 책임으로 질책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 class="wikitable"
|+ 샤를 4세 달랑송 공작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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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가문 및 상속
샤를 4세는 1492년 아버지 르네, 알랑송 공작이 사망하면서 어린 나이에 알랑송 공작, 페르슈 백작, 아르마냐크 백작 등을 계승했다.
1509년, 샤를 4세는 앙굴렘 백작 프랑수아 (프랑수아 1세)의 누이인 마르그리트 드 앙굴렘과 결혼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 자녀는 없었다.
샤를 4세는 노르망디 총독으로 임명되었고, 1515년 마리냐노 전투에서 싸웠으며, 1521년에는 제국의 침략으로부터 샹파뉴를 지켰다. 1525년 파비아 전투에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겸 스페인 왕 카를 5세에게 포로로 잡힌 의붓 동생 프랑수아 1세를 따라 이탈리아로 출정했지만, 프랑수아 1세는 포로가 되었다. 샤를 4세는 귀국했지만, 왕을 포로로 만든 책임으로 질책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 class="wikitable"
|+ 샤를 4세 달랑송 공작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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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결혼
1509년, 앙굴렘 백작 프랑수아(훗날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의 누이 마르그리트 드 앙굴렘과 결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다.
2.3. 군사 경력
샤를 4세는 1492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어린 나이에 아랑송 공작, 페르슈 백작, 아르마냐크 백작 등을 계승했다. 1509년에는 앙굴렘 백작 프랑수아(훗날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의 누이 마르그리트 드 앙굴렘과 결혼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다.
샤를 4세는 노르망디 총독으로 임명되었고, 1515년 마리냐노 전투에서 싸웠으며, 1521년에는 제국의 침략으로부터 샹파뉴를 지켰다. 1525년, 샤를 4세는 의붓 동생 프랑수아 1세를 따라 이탈리아로 출정했지만, 프랑수아 1세는 파비아 전투에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겸 스페인 왕 카를 5세에게 포로로 잡혔다. 샤를 4세는 귀국했지만, 왕을 포로로 만든 책임으로 질책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2.4. 사망
샤를 4세는 노르망디 총독으로 임명되었고, 1515년 마리냐노에서 싸웠으며, 1521년에는 제국의 침략으로부터 샹파뉴를 지켰다. 1525년, 샤를 4세는 의붓 동생 프랑수아 1세를 따라 이탈리아로 출정했지만, 파비아 전투에서 프랑수아 1세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겸 스페인 왕 카를 5세의 포로가 되었다. 샤를 4세는 귀국했지만, 왕을 포로로 만든 책임으로 질책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3. 사후
샤를 4세가 죽은 후, 부인 마르그리트 당굴렘은 남편의 여동생인 프랑수아즈 달랑송을 제쳐두고 망부의 칭호 대부분을 상속했다.
샤를 4세는 발루아 가문의 분가인 발루아-알랑송 가문의 당주였으며, 프랑수아 1세의 가계인 발루아-앙굴렘 가문에 남자가 끊기면 살리카 법에 따라 프랑스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샤를 4세가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요절했으며, 다른 남자 후손이 없었기 때문에 알랑송 가문이 먼저 단절되었다. 대신 여동생 프랑수아즈의 시가인 부르봉-방돔 가문이 발루아-앙굴렘 가문에 이어 왕위 계승권을 가진 가문이 되었다.
이후 미망인 마르그리트가 재혼하여 낳은 딸 잔 달브레와 프랑수아즈의 아들 방돔 공작 앙투안이 결혼하여, 부르봉 왕조 초대 왕이 되는 앙리 4세가 태어났다.
4. 가계
샤를 4세는 발루아 가문의 분가인 발루아-알랑송 가문의 당주였다. 르네, 알랑송 공작과 로렌의 마르그리트의 아들로, 장 2세, 알랑송 공작과 아르마냐크의 마리의 손자이다.
프랑수아 1세의 가계인 발루아-앙굴렘 가문에 남자가 끊기면 살리카 법에 따라 프랑스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샤를 4세가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요절했으며, 다른 남자 후손이 없었기 때문에 알랑송 가문이 먼저 단절되었다.
대신 여동생 프랑수아즈의 시가인 부르봉-방돔 가문이 발루아-앙굴렘 가문에 이어 왕위 계승권을 가진 가문이 되었다.
이후 미망인 마르그리트가 재혼하여 낳은 딸 잔 다르브레와 프랑수아즈의 아들 방돔 공작 앙투안이 결혼하여, 부르봉 왕조 초대 왕이 되는 앙리 4세가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