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곤
1. 개요
서곤은 삼국시대 오(吳)나라의 장수로, 젊어서 지방관으로 일하다가 손견을 따라 동탁 토벌에 참여하여 편장군이 되었다. 손견 사후에는 손책을 섬기며 횡강진과 당리구 전투에서 활약했으며, 특히 어머니의 제안으로 뗏목을 만들어 강을 건너 장영을 격파하는 데 기여했다. 손책은 서곤을 단양 태수로 임명했으나, 오경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서곤은 독군중랑장이 되었다. 이후 이술 토벌에 참여하여 평로장군까지 승진했지만, 황조 토벌 중 전사했다.
2. 생애
서곤은 젊어서 지방관으로 출사했다가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관직을 떠나 손견을 따라 공을 세워 편장군이 되었다. 손견 사후, 손책을 따라 번능, 우미를 격파하고, 장영을 공격할 때 배가 부족하자, 서곤의 어머니가 갈대로 뗏목을 만들어 진군하는 계책을 내놓았다. 손책은 이를 받아들여 장영을 무찌르고 착융과 유요를 격파했다.
손책은 서곤을 단양태수로 임명했으나, 원술에게서 광릉태수를 지내던 오경이 손책에게 귀순하자 오경을 단양태수로 삼고, 서곤은 독군중랑장이 되었다. 이후 여강태수 이술을 토벌하여 광덕후, 평로장군으로 승진했다. 황조 토벌 중 유시에 맞아 전사했다.
서곤 사후, 아들 서교(서부인의 오빠)가 광덕후를 이었으나 요절했다. 서조가 뒤를 이어 무호독·평위장군이 되었다.
2.1. 초기 생애와 손견과의 관계
서곤은 젊어서 지방관으로 출사했다가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관직을 떠나 손견을 따라 공을 세워 편장군이 되었다. 서씨 가문은 오군(吳郡)의 호족으로, 손씨 가문과 교류가 있었기에 손견의 의향에 따라 서진은 손견의 여동생을 아내로 맞아 서곤을 낳았다. 서곤은 젊은 시절부터 군의 관청에서 일했으며, 초평 원년(190년)에 손견이 동탁 토벌에 병사를 일으키자 부곡을 이끌고 손씨 가문을 따랐으며, 공을 세워 한(漢)으로부터 편장군이 되었다. 손견의 가신 중에서는 최고의 관위를 얻었다고 한다.
2.2. 손책을 도와 강동을 평정하다
젊어서 지방관으로 출사했다가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관직을 떠나 손견(孫堅)을 좇아 공을 세워 편장군이 되었다. 손견 사후에는 손책(孫策)을 좇아, 횡강진에 주둔한 번능(樊能), 우미(于糜)를 치고, 당리구의 장영(張英)을 치는데, 배가 부족했으므로 군대를 머무르기를 구했다. 군중에 있던 서곤의 어머니가 갈대로 뗏목을 만들고 그것과 배로 강을 건너는 방책을 말해주자, 서곤은 이를 손책에게 말하고, 손책은 그대로 시행하여 강을 건너 마침내 장영을 무찌르고 착융(笮融)과 유요(劉繇)마저 달아나게 했다. 손책은 표를 올려 서곤을 단양태수로 삼았는데, 마침 원술(袁術)을 섬겨 광릉태수를 지내던 오경(吳景)이 황제를 자칭한 원술을 버리고 손책에게 오자 손책은 오경으로 단양태수를 삼고 서곤은 독군중랑장으로 병사를 거느리게 했다.
2.3. 이술 토벌과 최후
젊어서 지방관으로 출사했다가 세상이 어지러워 관직을 떠나고, 손견을 좇아 공을 세워 편장군이 되었다. 손견 사후에는 손책을 좇아, 횡강진에 주둔한 번능, 우미를 치고, 당리구의 장영을 쳤다. 이때 배가 부족했으므로 군대를 머무르려 했는데, 서곤의 어머니가 갈대로 떼를 만들어 강을 건너는 방책을 제시했고, 손책은 이를 받아들여 장영을 무찌르고 착융과 유요마저 달아나게 했다.
손책은 서곤을 단양태수로 삼았으나, 원술을 섬겨 광릉태수를 지내던 오경이 원술을 버리고 손책에게 오자 오경을 단양태수로 삼고, 서곤은 독군중랑장으로 병사를 거느리게 했다. 이후 여강태수 이술을 무찌르는 데 종군하여 광덕후가 되고 평로장군으로 옮겼다. 황조 토벌 중 유시에 맞아 죽었다.
3.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
|---|---|
| 아버지 | 서진(徐眞) |
| 어머니 | 손씨(孫氏) |
| 배우자 | 서부인(徐夫人) |
| 장남 | 서교(徐矯) |
| 차남 | 서조(徐祚)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