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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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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소는 후한 시대의 인물로, 형 서백응의 친구를 대신하여 복수하고, 이후 형제 간의 의로운 행동으로 사면받아 명성을 얻었다. 원술 밑에서 부릉현장과 패국상을 지냈으며, 기근으로 굶주린 백성을 위해 원술의 군량을 나눠주어 처형 위기에 놓였으나, 그의 용기와 백성을 위한 마음으로 원술을 감탄시켰다. 그의 아들 서섭은 죄를 지었으나, 서소의 명성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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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
기본 정보
성, 휘舒 (Shū), 邵 (Shào)
仲膺 (Zhòngyīng)
생몰몰년 미상
출생지광릉군 해릉현 (廣陵郡 海陵縣)
사인병사
관직 및 경력
관직효렴 (孝廉)
상서랑 (尙書郞)
유주자사 (幽州刺史)
주요 활동조위의 유주를 다스림
가족 관계
아버지서옹 (舒邕)
아들서건 (舒建)

2. 생애

후한 시대의 인물로, 원술의 부하. 연주 진류군 출신이다. 자세한 생몰년은 전해지지 않는다.

형 서백응의 친구가 살해당하자 복수를 하고, 형과 함께 서로 사형을 자처하며 의로움을 세상에 알렸다. 이 일로 형제는 사면받고 천하에 명성을 떨쳤다. 원술 밑에서 부릉현장과 패국상을 지냈으며, 가뭄으로 백성들이 굶주릴 때 원술의 허락 없이 군량미를 풀어 백성들을 구휼하였다. 원술은 분노하였으나 서소의 해명에 예를 표하며 푸념하였다고 한다. 이후 서소가 사면되었는지, 처형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아들 서섭은 오나라에서 현장을 지냈으며, 반준에게 처형당할 뻔했으나 손린이 서소와 서백응 형제의 일을 언급하며 말려 목숨을 건졌다.

항목내용
성명서소(舒邵)
시대후한
생몰년불명
자 / 별호중응(仲膺) 또는 중응(仲應)
출신지연주 진류군
직관부릉현장 → 패국상
소속원술
가족형: 서백응, 아들: 서섭


2. 1. 일화

서소는 형 서백응의 친구가 살해당하자 대신 복수하였다. 이후 형제는 서로가 사형을 받겠다며 다투었고 그 의로움이 온 세상에 회자되었다. 이에 형제는 사면을 받을 수 있었다.[1]

한편 원술 밑에서 부릉현장(阜陵縣長)과 패국상을 지냈다. 마침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장강회수 사이에는 먹을 것이 없어 서로를 잡아먹을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원술은 군량미 10만 곡(斛)을 비축하였다. 서소는 허락도 받지 않고 이를 주린 백성들에게 몽땅 나누어 주었다. 원술이 노하여 참하려 하기에 “당연히 죽을 것을 알았습니다. 한 사람의 목숨으로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게 되어 다행입니다.”라고 하였다. 원술이 에서 내려 예를 표하며 “족하는 혼자만 천하의 명예를 누리려 하오? 나와 같이 누릴 수는 없었소?”라 푸념하였다.[1]

훗날 아들 서섭이 죄를 지어 태상 반준에게 죽을 뻔했는데 손린이 “천하가 통일된 후에 중원의 선비들이 중응의 후사에 대해 물으면 어찌시렵니까?”라며 말렸을 정도로 서소의 명성은 높았다.[1]

3. 가계

형은 서백응(舒伯膺)이며, 아들은 서섭(舒燮)이다.[1]

이름서소(舒邵)
가족


4. 평가

서소는 백성을 위하는 애민 정신과 용기, 결단력을 보여준 인물로 평가받는다. 서소는 형 서백응의 친구가 살해당하자 대신 복수하였고, 형제가 서로 사형을 받겠다며 다투는 의로움으로 온 세상에 회자되며 사면을 받았다.[1] 또한, 극심한 가뭄으로 백성들이 굶주릴 때 원술의 허락 없이 군량미 10만 곡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원술이 노하여 참하려 하자, 서소는 "한 사람의 목숨으로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게 되어 다행입니다."라고 말하여 원술이 예를 표하며 푸념할 정도였다.[1]

이러한 서소의 명성은 훗날 아들 서섭이 죄를 지어 태상 반준에게 죽을 뻔했을 때, 손린이 "천하가 통일된 후에 중원의 선비들이 중응의 후사에 대해 물으면 어찌시렵니까?"라며 말렸을 정도로 높았다.[1] 소설 《삼국지연의》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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