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 (전한)
1. 개요
서인(西寅)은 전한 시대의 관료이다. 교서태수를 거쳐 소부까지 올랐으나, 죄수 후사오를 사면하려다 시어사의 탄핵을 받아 하옥되었다. 승상 전천추의 사위였으나, 태복 두연년의 중재로 전천추에게는 죄가 미치지 않았고, 서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왕평은 요참형에 처해졌다. 그의 행적은 반고의 《한서》에 기록되어 있다.
-
기원전 78년 사망 -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으로 유구르타 전쟁과 동맹시 전쟁에서 공훈을 세워 기원전 88년 집정관에 선출되었고, 미트라다테스 6세와의 전쟁 지휘권을 두고 마리우스와 대립하며 로마를 장악, 숙청을 단행하고 독재관으로 공화정 개혁을 시도하여 로마 공화정 쇠퇴와 제정 이행에 큰 영향을 미친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이자 장군이다. -
기원전 78년 사망 -
가승호
죄송합니다. '가승호'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아 위키백과 도입부를 작성할 수 없습니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나라의 정치인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한나라의 정치인 -
석편
석편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기원전 138년에 내사에 임명되어 석경의 뒤를 이어 내사를 지냈으며, 정당시가 그의 후임자이다.
2. 행적
시원 3년(기원전 84년), 교서태수에서 소부로 승진하였다.
원봉 3년(기원전 78년), 죄수 후사오(侯史吳)가 탈옥하였다. 후사오는 본래 상홍양·상천(桑遷) 부자의 옛 관리로, 상홍양 등이 이전에 연날왕의 모반에 가담한 죄로 주살된 후 자신 또한 연좌되어 옥에 갇힌 것이었다. 서인과 정위 왕평은 후사오가 상홍양 등을 숨겨주지 않은 덕분에 그들을 잡을 수 있었다고 여겨 후사오를 사면하려 하였는데, 이에 반대한 시어사(侍御史)의 탄핵을 받아 하옥되었다.
서인은 승상 전천추의 사위였는데, 사람들은 전천추 또한 연좌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였다. 그러나 태복 두연년의 중재로 전천추에게까지 죄가 미치지는 않았고, 서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왕평은 함께 연루된 좌풍익 가승호와 함께 요참에 처하였다.
2.1. 초기 관직 생활
2.2. 후사오 사건과 죽음
시원 3년(기원전 84년), 교서태수에서 소부로 승진하였다.
원봉 3년(기원전 78년), 죄수 후사오(侯史吳)가 탈옥하였다. 후사오는 본래 상홍양·상천(桑遷) 부자의 옛 관리로, 상홍양 등이 이전에 연날왕의 모반에 가담한 죄로 주살된 후 자신 또한 연좌되어 옥에 갇힌 것이었다. 서인과 정위 왕평은 후사오가 상홍양 등을 숨겨주지 않은 덕분에 그들을 잡을 수 있었다고 여겨 후사오를 사면하려 하였는데, 이에 반대한 시어사(侍御史)의 탄핵을 받아 하옥되었다.
서인은 승상 전천추의 사위였는데, 사람들은 전천추 또한 연좌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였다. 그러나 태복 두연년의 중재로 전천추에게까지 죄가 미치지는 않았고, 서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왕평은 함께 연루된 좌풍익 가승호와 함께 요참에 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