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 (전한)
1. 개요
서인(西寅)은 전한 시대의 관료이다. 교서태수를 거쳐 소부까지 올랐으나, 죄수 후사오를 사면하려다 시어사의 탄핵을 받아 하옥되었다. 승상 전천추의 사위였으나, 태복 두연년의 중재로 전천추에게는 죄가 미치지 않았고, 서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왕평은 요참형에 처해졌다. 그의 행적은 반고의 《한서》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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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78년 사망 -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으로 유구르타 전쟁과 동맹시 전쟁에서 공훈을 세워 기원전 88년 집정관에 선출되었고, 미트라다테스 6세와의 전쟁 지휘권을 두고 마리우스와 대립하며 로마를 장악, 숙청을 단행하고 독재관으로 공화정 개혁을 시도하여 로마 공화정 쇠퇴와 제정 이행에 큰 영향을 미친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이자 장군이다. -
기원전 78년 사망 -
가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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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의 정치인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한나라의 정치인 -
석편
석편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기원전 138년에 내사에 임명되어 석경의 뒤를 이어 내사를 지냈으며, 정당시가 그의 후임자이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2. 행적
시원 3년(기원전 84년), 교서태수에서 소부로 승진하였다.
원봉 3년(기원전 78년), 죄수 후사오(侯史吳)가 탈옥하였다. 후사오는 본래 상홍양·상천(桑遷) 부자의 옛 관리로, 상홍양 등이 이전에 연날왕의 모반에 가담한 죄로 주살된 후 자신 또한 연좌되어 옥에 갇힌 것이었다. 서인과 정위 왕평은 후사오가 상홍양 등을 숨겨주지 않은 덕분에 그들을 잡을 수 있었다고 여겨 후사오를 사면하려 하였는데, 이에 반대한 시어사(侍御史)의 탄핵을 받아 하옥되었다.
서인은 승상 전천추의 사위였는데, 사람들은 전천추 또한 연좌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였다. 그러나 태복 두연년의 중재로 전천추에게까지 죄가 미치지는 않았고, 서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왕평은 함께 연루된 좌풍익 가승호와 함께 요참에 처하였다.
2.1. 초기 관직 생활
2.2. 후사오 사건과 죽음
시원 3년(기원전 84년), 교서태수에서 소부로 승진하였다.
원봉 3년(기원전 78년), 죄수 후사오(侯史吳)가 탈옥하였다. 후사오는 본래 상홍양·상천(桑遷) 부자의 옛 관리로, 상홍양 등이 이전에 연날왕의 모반에 가담한 죄로 주살된 후 자신 또한 연좌되어 옥에 갇힌 것이었다. 서인과 정위 왕평은 후사오가 상홍양 등을 숨겨주지 않은 덕분에 그들을 잡을 수 있었다고 여겨 후사오를 사면하려 하였는데, 이에 반대한 시어사(侍御史)의 탄핵을 받아 하옥되었다.
서인은 승상 전천추의 사위였는데, 사람들은 전천추 또한 연좌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였다. 그러나 태복 두연년의 중재로 전천추에게까지 죄가 미치지는 않았고, 서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왕평은 함께 연루된 좌풍익 가승호와 함께 요참에 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