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질
1. 개요
서질은 위나라의 장수로, 촉한의 강유와 대립하며 활동했다. 253년, 강유가 국산에 두 성을 쌓자 등애와 함께 토촉호군으로 국산을 포위했다. 249년에는 진태의 지휘 하에 두 성을 포위하여 항복을 유도했다. 254년, 강유의 북벌을 맞아 장억을 죽였으나, 강유에게 패하여 전사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사마소의 명을 받아 촉군과 싸우다 강유의 계략에 빠져 하후패에게 사로잡혀 죽는 인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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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년 사망 -
오리게네스
3세기 중반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초기 그리스도교 신학자이자 성서학자인 오리게네스는 헬라어 문학과 철학을 가르치며 생계를 유지하고 알렉산드리아 교리학교에서 교리학자로 활동하며 방대한 저술을 남겼으나, 일부 논란적인 주장으로 사후 이단으로 정죄받았음에도 그의 성경 해석학과 신학적 업적은 후대 교회와 성서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254년 사망 -
하후현
하후현은 조위의 문신으로, 조예에게 미움을 받기도 했지만 조상의 정권 장악 후 승진했으며, 사마의에게 구품관인법을 비판하고 촉한을 공격했으나 실패하여 사마사의 암살을 시도하다 처형당했다. -
인물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인물에 관한 -
찰리 채플린
찰리 채플린은 런던 빈민가 출신으로 뛰어난 코미디 연기와 영화 연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작은 방랑자" 캐릭터, 슬랩스틱 코미디, 판토마임 연기, 사회 비판적 메시지, 매카시즘 시대의 탄압, 아카데미 명예상 수상 등으로 대표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영국의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다. -
전사한 사람 -
정지용
정지용은 충청북도 옥천 출생으로 모더니즘 문학을 선도했으며, 시문학 동인과 구인회 활동을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했으나 한국 전쟁 중 행방불명되었다. -
전사한 사람 -
정기원 (1559년)
정기원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1585년 문과 급제 후 임진왜란 때 사은사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정유재란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하여 예조판서에 추증되고 충렬사에 배향, 시호는 충의이며 저서로 《현산집》, 《현산실기》가 있다.
2. 생애
서질은 위나라의 장수로, 촉한의 강유가 일으킨 북벌에 맞서 싸웠다.
253년, 촉한의 대장군 강유가 국산에 두 성을 쌓자, 곽회의 명령과 진태의 지휘를 받아 등애와 함께 국산을 포위했다. 가평 원년(249년), 강유가 곡산에 두 성을 쌓자, 진태의 지휘 하에 두 성을 포위하고 수송로와 수원지를 끊어 항복을 받아냈다.
254년, 강유가 적도장 이간의 항복을 받고 쳐들어오자, 서질은 샹우에서 방어 태세를 갖추고 맞서 싸웠다. 촉한의 탕구장군 장억을 죽였으나, 아군도 장억의 군대에 비해 배가 넘는 피해를 입었고, 결국 서질은 강유에게 패하여 전사하였다. 이 전투에서 촉나라 선봉대를 이끌던 장억은 많은 적을 죽이거나 부상을 입혔지만, 결국 전사했다. 위나라 군대는 후퇴했고, 승리한 촉나라 군대는 디다오, 허관(현재 간쑤성 딩시 인근) 및 린타오 세 현을 점령하고 주민들을 촉나라로 이주시켰다.
『삼국지』 위서 문제기에는 "이성태수 서질"이라는 기록이 있지만, 황초 6년(225년)에 살해되었기 때문에, 동명이인으로 추정된다.
2.1. 초기 활동
가평 5년(253년), 촉한의 대장군 강유가 쳐들어와 국산을 의지하여 두 성을 쌓았을 때, 옹주자사 진태의 계책을 받아들인 정서장군 곽회의 명령으로 진태의 지휘를 받아 남안태수 등애와 함께 토촉호군으로써 국산을 포위했다.
정원 원년(254년), 강유가 적도장 이간의 항복을 받아들이고 쳐들어오자, 맞서 싸워 촉한의 탕구장군 장억을 죽였으나 장억에 비해 배가 넘는 피해를 입었고, 결국 강유에게 패사하였다. 같은 해, 위나라에서 디다오현(Didao County)을 담당하던 관리가 촉나라로 투항하여 항복했다. 이후, 강유가 지휘하는 촉나라 군대는 위나라 영토로 진입했으나, 샹우에 도착할 때까지 저항을 받지 않았다. 그곳에서 서질은 촉나라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지역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벌어진 전투에서 촉나라 선봉대를 이끌던 장니는 많은 적을 죽이거나 부상을 입혔지만, 결국 전사했다. 서지 또한 강유에게 패배하여 죽었고, 나머지 위나라 군대는 후퇴했다. 승리한 촉나라 군대는 디다오, 허관(河關, 현재 간쑤성 딩시 인근) 및 린타오 세 현을 점령하고, 주민들을 강제로 촉나라 통치 지역으로 이주시켰다.
가평 원년(249년), 촉한의 강유는 위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곡산에 두 개의 성을 쌓고 아문장 구안 등으로 하여금 지키게 했다. 토촉호군 관직에 있던 서질은 진태의 지휘 하에 두 성을 포위하고, 그들의 수송로와 수원지를 끊어 항복하도록 몰아넣었다.
가평 6년(254년), 강유의 북벌을 맞이하여 격퇴(적도의 전투)하였다. 이 전투에서 촉한의 명장 장억도 전사했지만, 장억의 군대가 자군에 배가 넘는 손해를 입혔고, 위군이 패배하여 서질도 전사했다.
덧붙여, 『삼국지』 위서 문제기에는 "이성태수 서질"이라는 기술도 있지만, 황초 6년(225년) 시점에서 살해되었기 때문에, 동명의 다른 인물로 여겨진다.
2.2. 적도의 전투와 죽음
254년, 촉한의 탕구장군 장억을 죽였으나 장억에 비해 배가 넘는 피해를 입었고, 결국 강유에게 패하여 전사하였다.
같은 해, 촉한의 장수 강유가 적도장 이간의 항복을 받아들이고 쳐들어오자, 서질은 샹우(襄武)에서 지역 방어 태세를 갖추고 맞서 싸웠다. 이 전투에서 촉나라 선봉대를 이끌던 장억은 많은 적을 죽이거나 부상을 입혔지만, 결국 전사했다. 서질 또한 강유에게 패배하여 죽었고, 나머지 위나라 군대는 후퇴했다. 승리한 촉나라 군대는 디다오, 허관(河關; 현재 간쑤성 딩시 인근) 및 린타오 세 현을 점령하고, 주민들을 강제로 촉나라 통치 지역으로 이주시켰다.
2.3. 기타 기록
253년 촉한의 대장군 강유가 쳐들어와 국산을 의지하여 두 성을 쌓았을 때, 옹주자사 진태의 계책을 받아들인 정서장군 곽회의 명령으로 진태의 지휘를 받아 남안태수 등애와 함께 토촉호군으로써 국산을 포위했다.
정원 원년(254년), 강유가 적도장 이간의 항복을 받아들이고 쳐들어오자, 맞서 싸워 촉한의 탕구장군 장억을 죽였으나 장억에 비해 배가 넘는 피해를 입었고, 결국 강유에게 패사하였다. 같은 해, 위나라에서 디다오현(Didao County)을 담당하던 관리가 촉나라로 투항하여 항복했고, 이후 강유가 지휘하는 촉나라 군대는 위나라 영토로 진입했으나, 샹우(襄武)에 도착할 때까지 저항을 받지 않았다. 그곳에서 서질은 촉나라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지역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벌어진 전투에서 촉나라 선봉대를 이끌던 장니는 많은 적을 죽이거나 부상을 입혔지만, 결국 전사했다. 서지 또한 강유에게 패배하여 죽었고, 나머지 위나라 군대는 후퇴했다. 승리한 촉나라 군대는 디다오, 허관(河關, 현재 간쑤성 딩시 인근) 및 린타오 세 현을 점령하고, 주민들을 강제로 촉나라 통치 지역으로 이주 시켰다.
가평 원년(249년), 촉한의 강유는 위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곡산에 두 개의 성을 쌓고 아문장 구안 등으로 하여금 지키게 했다. 토촉호군 관직에 있던 서질은 진태의 지휘 하에 두 성을 포위하고, 그들의 수송로와 수원지를 끊어 항복하도록 몰아넣었다.
가평 6년(254년), 강유의 북벌을 맞이하여 격퇴(적도의 전투). 이 전투에서 촉한의 명장 장억도 전사했지만, 장억의 군대가 자군에 배가 넘는 손해를 입혔고, 위군이 패배하여 서질도 전사했다.
덧붙여, 『삼국지』 위서 문제기에는 "이성태수 서질"이라는 기술도 있지만, 황초 6년(225년) 시점에서 살해되었기 때문에, 동명의 다른 인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