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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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설례는 후한 시대의 인물로, 팽성 제후상이었다. 도겸의 압박으로 유요를 맹주로 받들었고, 손책의 공격을 받아 말릉성에서 달아났다. 이후 번능, 우미와 함께 우저를 탈환했으나 손책에게 패배하여 유요를 따라 예장으로 도주하던 중 착융에게 살해당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유요의 부장으로 등장하며, 손책과의 전투에서 전사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설례는 후한 시대의 인물로, 자세한 생몰년은 알려져 있지 않다.[1] 팽성상이었으나, 흥평 원년(194년) 서주목 도겸의 압박을 받아 하비상 착융과 함께 양주자사 유요를 맹주로 받들었다. 이후 손책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유요를 따라갔으나, 유요에게 반기를 든 착융에게 살해당했다.
《삼국지연의》에서 설례는 유요의 부장으로 등장한다. 곡아 전투 당시 우저(牛渚) 요새에서 손책에게 패배하여 유요에게 처형될 위기에 처한 장영을 착융과 함께 변호하여 목숨을 구했다. 손책에게 대패한 유요가 유표에게 달아나자, 설례는 장영, 진횡과 함께 말릉에 남았다.
[1]
서적
資治通鑑
2. 생애
2. 1. 초기 생애와 유요 휘하 활동
설례는 팽성상이었으나, 흥평 원년(194년) 서주목 도겸의 압박을 받아 하비상 착융과 함께 양주자사 유요를 맹주로 받들었다.
흥평 2년(195년) 서주 목 도겸의 압박을 받아 양주 자사 유요를 맹주로 추대하고 말릉성에 군대를 주둔시켰다.[2] 말릉성(秣陵城)을 수비하였는데, 손책의 공격에 굴복하여 포위를 뚫고 달아났다. 이후 번능, 우미와 합류하여 우저를 급습하고 탈환하였으나, 손책의 공격을 받아 남녀 1만 명이 사로잡혔다.
유요 또한 손책에게 패하여 예장으로 달아났고, 설례는 유요를 따라갔으나 도중에 유요에게 반기를 든 착융에게 죽었다.[3]
2. 2. 유요와의 갈등 및 최후
설례는 팽성상이었으나, 서주목 도겸의 압박을 받아 흥평 원년(194년) 하비상(下邳相) 착융과 함께 양주자사 유요를 맹주로 받들었다.
설례는 말릉성(秣陵城)을 수비하였는데, 손책의 공격에 굴복하여 포위를 뚫고 달아났다. 이후 번능·우미와 합류하여 우저를 급습하고 탈환하였으나, 손책의 공격을 받아 남녀 1만 명이 사로잡혔다.
유요 또한 손책에게 패하여 예장으로 달아났고, 설례는 유요를 따라갔으나 도중에 유요에게 반기를 든 착융에게 죽었다.[3]
3. 《삼국지연의》 속 설례
그러나 손책의 계략에 빠져 성 밖으로 나갔고, 복병을 만나 난전 중에 전사한다.
참조
[2]
서적
삼국지
[3]
서적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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