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몽 (후한)
1. 개요
이몽은 후한 말기의 인물로, 동탁을 섬겼다. 190년 반동탁 연합군이 궐기하자 서영과 함께 출전하여 손견을 격파했다. 동탁 사후, 이각, 곽사 등과 함께 장안을 공격하여 함락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무군중랑장의 직위에 있었으나 195년에 이각에게 살해당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각 세력의 장안 진입을 돕고 교위에 임명되나, 마초와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참수당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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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년 사망 -
번조
번조는 후한 말 동탁의 부하로 시작하여 이각, 곽사와 함께 조정을 장악했으나, 이각의 시기로 암살당한 무장이며, 삼국지연의에도 등장한다. -
195년 사망 -
사손서
후한 말기의 관료 사손서는 학문이 뛰어났으며 왕윤의 동탁 제거 계획에 가담하여 동탁 암살 조서 위조에 기여했고, 대사농에 임명되었으나 이각에게 살해당한 후 헌제가 그의 공을 기려 아들을 제후에 봉했다. -
동탁과 주변 인물 -
왕윤
왕윤은 후한 말 관료로서 동탁 암살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황건적의 난 진압에도 공을 세웠으나, 동탁 제거 후 잔당의 반란으로 헌제를 지키다 가족과 함께 죽임을 당한, 뛰어난 능력과 충절에도 불구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인물이다. -
동탁과 주변 인물 -
여포
여포는 후한 말, 뛰어난 무용을 지녔으나 변덕과 배신으로 부정적 평가를 받은 무장으로, 정원과 동탁을 배신하고 여러 군벌을 전전했으며 조조에게 패배해 처형당했고,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맹장으로, 초선과의 로맨스와 함께 다양한 모습으로 재해석된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이몽은 동탁을 섬겼다. 190년(초평 원년) 반동탁 연합군이 궐기하자 서영과 함께 출전하였다. 192년 동탁이 왕윤, 여포에게 주살되고, 이각, 곽사, 장제 등이 장안으로 진격할 때 합류하였다. 195년(흥평 2년) 무군중랑장(撫軍中郞將) 직위에 있었는데 이각에게 살해당했다.
2.1. 동탁 휘하에서의 활동
동탁을 섬겼다. 190년(초평 원년) 반동탁 연합군이 궐기하자 서영과 함께 출전하였다. 손견이 동탁 토벌의 병사를 일으켰을 때, 동탁은 이 요격을 앞두고 서영과 이몽을 사방에 파견하여 노략질을 행하게 했다. 이때 서영이 손견과 조우하여 이를 격파했다.
192년, 동탁이 왕윤과 여포 일당에게 주살당하였다. 사면도 거부당한 이각, 곽사, 장제 등은 홍농군 섬현(陝縣)에서부터 장안으로 진격해왔다. 도중에 번조·왕방 등 많은 사람들이 합류하였고, 이몽 역시 그중에 하나였다. 수천 명이었던 군세는 장안에 다다랐을 때 10여만 명으로 불어났다. 포위한 지 8일 만에 여포군의 수병(叟兵) 내지 촉병(蜀兵)들이 내응해와 장안을 함락시키고 왕윤 정권을 무너트렸다.
2.2. 동탁 사후 장안 공략
192년, 동탁이 왕윤과 여포에게 살해당했다. 사면도 거부당한 이각, 곽사, 장제 등은 홍농군 섬현(陝縣)에서부터 장안으로 진격해왔다. 도중에 번조·왕방 등 많은 사람들이 합류하였고, 이몽 역시 그중 하나였다. 수천 명이었던 군세는 장안에 다다랐을 때 10여만 명으로 불어났다. 포위한 지 8일 만에 여포군의 수병(叟兵) 내지 촉병(蜀兵)들이 내응해와 장안을 함락시키고 왕윤 정권을 무너트렸다.
2.3. 이각에게 살해당하다
192년 동탁이 왕윤과 여포 일당에게 주살당했다. 사면도 거부당한 이각, 곽사, 장제 등은 홍농군 섬현(陝縣)에서부터 장안으로 진격해왔다. 도중에 번조·왕방 등 많은 사람들이 합류하였고, 이몽 역시 그중 하나였다. 수천 명이었던 군세는 장안에 다다랐을 때 10여만 명으로 불어났다. 포위한 지 8일 만에 여포군의 수병(叟兵) 내지 촉병(蜀兵)들이 내응해와 장안을 함락시키고 왕윤 정권을 무너트렸다. 195년(흥평 2년) 무군중랑장(撫軍中郞將)의 직위에 있었는데 이각에게 살해당했다.
3.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이몽은 왕방과 함께 장안 내부에서 성문을 열어주는 역할로 등장한다. 이후 서량태수 마등과 병주자사 한수가 쳐들어오자, 가후는 이각 등에게 버티기만 하면 이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몽과 왕방은 이것이 좋은 계책이 아니라며 자신들이 나가 싸우겠다고 한다. 15,000명을 받아 출격한 왕방은 마등의 17세 아들 마초와 싸우다 죽는다. 이몽은 진영으로 돌아가는 마초의 뒤를 찌르려다가 오히려 사로잡혀 마등·한수에게 끌려가 참수당한다.
이각 등의 정권이 수립된 후, 이몽은 교위에 임명된다. 마등·한수의 군대가 장안으로 쳐들어오자, 가후는 방어를 주장하지만, 이몽과 왕방은 이에 반대하며 15,000명의 병사를 받아 마등 등을 요격한다. 그러나 왕방은 마초와의 일기토에서 패배하고, 이몽은 퇴각하는 마초를 추격하지만 창을 찌르려다 몸을 피하는 바람에 생포된 후 참수형에 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