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교회
1. 개요
성도교회는 1947년 6월 21일 이인식 목사, 김양선 목사, 선우훈 장로 등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1949년 황은균 목사를 담임목사로 모시고 당회를 구성했으며, 1950년 6.25 전쟁 발발로 피난을 거쳐 1953년 서울로 돌아와 예배를 재개했다. 1959년 본당을 준공하고 장로 임직식을 거행했으며, 옥한흠 목사의 제자훈련을 통해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주요 출신 인물로는 옥한흠 목사, 김강태 교수 등이 있으며, 1970년대 옥한흠 목사의 제자화 훈련을 통해 대학생 200명 이상이 출석하는 대학부를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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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의 장로교 교회당 -
삼일교회
삼일교회는 1954년 서울특별시 용산구에서 창립되어 선교, 구제 활동을 펼치며, 전병욱 목사 재임 시절 교세가 성장했으나 여러 논란이 있었다. -
서울특별시의 장로교 교회당 -
승동교회
1894년 곤당골교회에서 시작된 승동교회는 독립협회 계열 교인들이 세웠으며, 3·1 운동의 지침 논의 및 독립선언문 인쇄 등 일제강점기 민족 운동의 중심지이자 YWCA 창립의 산실이며, 현재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 건물은 곽안련 목사가 설계 및 시공했다. -
장로교 -
대한민국에서의 칼뱅 연구
대한민국에서의 칼뱅 연구는 1884년 서양 선교사들을 통해 칼뱅이 소개된 후 평양신학교를 중심으로 전파되었으며, 1960년대 이후 한국 교회의 관심 증가와 더불어 활발한 연구와 저작 번역이 이루어져 1980년대 이후 전문 연구자 등장과 원저 번역을 통해 깊이를 더하며 한국 신학 발전에 기여하고 원전 연구, 서구 신학 평가, 칼뱅의 해석학 연구 등을 과제로 지속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
장로교 -
언약신학
언약신학은 창조, 타락, 구원, 종말에 걸쳐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언약(계약)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는 신학 체계로, 행위 언약, 속죄 언약, 은혜 언약 등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설명하며 개혁파 신학의 핵심 요소로 간주된다. -
대한민국의 개신교 교회당 -
삼일교회
삼일교회는 1954년 서울특별시 용산구에서 창립되어 선교, 구제 활동을 펼치며, 전병욱 목사 재임 시절 교세가 성장했으나 여러 논란이 있었다. -
대한민국의 개신교 교회당 -
여의도순복음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조용기 목사와 최자실 목사에 의해 1958년 시작되어 교세 확장을 거쳐 대한민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교회로 성장했으며, 세계 최대 교회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2. 교회 연혁
1947년 6월 21일, 피어선 성경학교에서 이인식 목사, 김양선 목사, 선우훈 장로, 김영서 장로를 비롯한 교인 60여 명이 배민수 목사를 모시고 성도교회를 시작하였다. 1949년 4월 24일에는 황은균 목사를 담임목사로 모시고 성도교회 당회를 구성하였다. 당시 당회원은 김영서, 김약내, 김병섭, 고찬영, 박희몽, 선우훈, 양재순, 우호익이었다. 같은 해 5월 29일, 황은균 목사의 위임식을 거행하였다.
1950년 4월, 중구 회현동1가 181번지의 대지 743평을 매수하고 예배당 건축을 시작하여 5월에 정초식을 거행하였다.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6.25 전쟁 발발로 남쪽으로 피난하게 되었다. 1951년 9월 28일, 일시 수복했으나 1.4 후퇴로 다시 남하하여 부산 부평동 건국중학교에서 "피난 성도 교회"라는 간판을 걸고 예배를 드렸다. 1952년 9월에는 부산 아미동 170번지에 부산 성도교회를 신축하였다.
1953년 7월 26일, 서울로 돌아와 황은균 목사를 모시고 천막을 치고 첫 예배를 드렸다. 당시 참석 교인은 남자 19명, 여자 20명으로 총 39명이었다. 같은 해 11월 15일, 배민수 목사를 공로목사로, 임옥 목사를 동사 목사로 추대하였다. 임옥 목사는 1955년 5월에 사임하였다.
1959년 6월 27일, 건평 168평의 본당 건축을 준공하고, 11월 1일에 본당 헌당식과 함께 장로 장립 및 취임 임직식을 거행하였다. 이때 박하성, 서병찬, 전시렵이 장로로 장립되었고, 김취성, 우호익, 이연희가 장로로 취임하였다. 1959년 12월 28일, 황은균 목사가 별세하였다.
2.1. 설립과 초기 연혁 (1947~1959)
1947년 6월 21일, 피어선 성경학교에서 이인식 목사, 김양선 목사, 선우훈 장로, 김영서 장로를 비롯한 교인 60여 명이 배민수 목사를 모시고 성도교회를 시작하였다. 1949년 4월 24일에는 황은균 목사를 담임목사로 모시고 성도교회 당회를 구성하였다. 당시 당회원은 김영서, 김약내, 김병섭, 고찬영, 박희몽, 선우훈, 양재순, 우호익이었다. 같은 해 5월 29일, 황은균 목사의 위임식을 거행하였다.
1950년 4월, 중구 회현동1가 181번지의 대지 743평을 매수하고 예배당 건축을 시작하여 5월에 정초식을 거행하였다.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6.25 전쟁 발발로 남쪽으로 피난하게 되었다. 1951년 9월 28일, 일시 수복했으나 1.4 후퇴로 다시 남하하여 부산 부평동 건국중학교에서 "피난 성도 교회"라는 간판을 걸고 예배를 드렸다. 1952년 9월에는 부산 아미동 170번지에 부산 성도교회를 신축하였다.
1953년 7월 26일, 서울로 돌아와 황은균 목사를 모시고 천막을 치고 첫 예배를 드렸다. 당시 참석 교인은 남자 19명, 여자 20명으로 총 39명이었다. 같은 해 11월 15일, 배민수 목사를 공로목사로, 임옥 목사를 동사 목사로 추대하였다. 임옥 목사는 1955년 5월에 사임하였다.
1959년 6월 27일, 건평 168평의 본당 건축을 준공하고, 11월 1일에 본당 헌당식과 함께 장로 장립 및 취임 임직식을 거행하였다. 이때 박하성, 서병찬, 전시렵이 장로로 장립되었고, 김취성, 우호익, 이연희가 장로로 취임하였다. 1959년 12월 28일, 황은균 목사가 별세하였다.
2.2. 6.25 전쟁과 피난 (1950~1953)
1950년 6월 25일 6.25 전쟁이 발발하자 성도교회는 남쪽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1951년 9월 28일 일시 수복되었으나, 1.4 후퇴로 다시 남하하여 부산 부평동 건국중학교에서 "피난 성도 교회"라는 간판을 걸고 예배를 드렸다. 1952년 9월에는 부산 아미동 170번지에 부산 성도교회를 신축하였다.
2.3. 환도와 본당 건축 (1953~1959)
서울 환도 후 1953년 7월 26일, 황은균 목사를 모시고 천막을 치고 첫 예배를 드렸다.(참석 교인 남19, 여20, 계39명) 1959년 6월 27일, 건평 168평의 본당 건축을 준공하였다. 같은 해 11월 1일에는 본당 헌당식과 함께 장로 장립 및 취임 임직식을 거행하였다. (장로장립: 박하성, 서병찬, 전시렵 / 장로취임: 김취성, 우호익, 이연희) 1959년 12월 28일, 황은균 목사가 별세하였다.
3. 대학부와 제자화
성도교회의 대학부는 옥한흠 목사의 새로운 성경공부로 제자화 훈련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당시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성경공부 방식과 대학생 선교회(C.C.C.)의 전도모델을 병합한 방식이었다. 성경공부의 주교재로 네비게이토에서 나온 성경공부 교재를 사용했고 신앙적 실천으로 전도사역은 대학생선교회 방식이었다. 신앙의 방식은 성경읽기, 암송,그리고 묵상(Q.T.)과 실천, 전도와 양육 그리고 리더훈련 등이었다. 이 방식은 이론과 실재가 잘 조화된 당시로서는 최고의 제자화 훈련이었다. 옥한흠 목사는 38세의 나이에 미국 유학시절에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네비게이토 본부에 머물면서 각종 자료를 수집하는 한편 제자훈련 사역을 펼치고 있는 교회들을 찾아다니며 현장을 체험했다. 후에 사랑의 교회에서 완성도를 높혀 제자훈련을 이어갔다.
3.1. 옥한흠 목사의 제자훈련
옥한흠 목사는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성경공부 방식과 대학생 선교회(C.C.C.)의 전도모델을 결합하여 성도교회 대학부에서 제자훈련을 시작했다. 성경공부 교재는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교재를 사용했고, 전도 방식은 대학생 선교회 방식을 따랐다. 주요 내용은 성경 읽기, 암송, 묵상(Q.T.), 실천, 전도, 양육, 리더 훈련 등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훈련이었다. 옥한흠 목사는 38세에 미국 유학 시절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네비게이토 본부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제자훈련 현장을 체험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훗날 사랑의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더욱 발전시켰다.
3.2. 제자훈련의 영향
옥한흠 목사는 미국 유학 시절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네비게이토 본부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제자훈련 사역 현장을 체험했다. 성도교회 대학부에서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성경공부 방식과 대학생 선교회(C.C.C.)의 전도 모델을 결합한 제자훈련을 실시했다. 이 훈련은 성경 읽기, 암송, 묵상(Q.T.), 실천, 전도, 양육, 리더 훈련 등으로 구성되어 이론과 실제가 조화된 프로그램이었다.
4. 성도교회 출신 인물
성도교회의 사역자와 출신자로는 총신대학교의 김득룡 박사, 옥한흠 목사, 황성철(총신대학교) 교수, 국동출 목사, 박영선 목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방선기 목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를 비롯한 박성수, 한정국(한국세계선교협의회), 박성남, 김광일, 노현숙, 이성옥, 한인권, 이인호, 황태연, 정세열, 한병혁(태화기독국제학교 전 교장), 정문렬(서강대학교), 세계적인 수학학자인 김강태(포항공과대학교), 김신, 손인문, 김복만, 안명준(평택대학교), 고문규(건양대학교), 장경(단국대학교), 홍원표(한밭대학교), 권영식(동국대학교), 안덕수, 백상조, 권상철등 수많은 인물들이 있다. 1970년에 옥한흠 목사의 성경공부와 제자화훈련을 통하여 대한민국의 교회가운데 대학생만 200명이 넘는 대학부를 가진 교회였다. 또한 당시 대학부 출신들의 백여명이 박사, 교수, 목사, 그리고 선교사들이 있다.
4.1. 주요 목회자 및 신학자
성도교회 출신 주요 목회자 및 신학자로는 총신대학교의 김득룡 박사, 옥한흠 목사, 황성철 교수, 국동출 목사, 박영선 목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방선기 목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등이 있다. 그 외에도 박성수, 한정국(한국세계선교협의회), 박성남, 김광일, 노현숙, 이성옥, 한인권, 이인호, 황태연, 정세열, 한병혁(태화기독국제학교 전 교장), 정문렬(서강대학교), 김강태(포항공과대학교), 김신, 손인문, 김복만, 안명준(평택대학교), 고문규(건양대학교), 장경(단국대학교), 홍원표(한밭대학교), 권영식(동국대학교), 안덕수, 백상조, 권상철 등 수많은 인물들이 있다.
1970년에 옥한흠 목사의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을 통하여 대한민국의 교회 가운데 대학생만 200명이 넘는 대학부를 가진 교회였다. 당시 대학부 출신들 중 백여 명이 박사, 교수, 목사, 그리고 선교사가 되었다.
4.2. 학계 및 기타 분야
총신대학교의 김득룡 박사, 옥한흠 목사, 황성철 교수, 국동출 목사, 박영선 목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방선기 목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를 비롯하여 여러 인물들이 성도교회에서 사역하거나 출신이다. 박성수, 한정국(한국세계선교협의회), 박성남, 김광일, 노현숙, 이성옥, 한인권, 이인호, 황태연, 정세열, 한병혁(태화기독국제학교 전 교장), 정문렬(서강대학교), 세계적인 수학학자인 김강태(포항공과대학교), 김신, 손인문, 김복만, 안명준(평택대학교), 고문규(건양대학교), 장경(단국대학교), 홍원표(한밭대학교), 권영식(동국대학교), 안덕수, 백상조, 권상철 등 수많은 인물들이 있다. 1970년에 옥한흠 목사의 성경공부와 제자화훈련을 통하여 대한민국의 교회가운데 대학생만 200명이 넘는 대학부를 가진 교회였다. 또한 당시 대학부 출신들의 백여명이 박사, 교수, 목사, 그리고 선교사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