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러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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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셜러몬은 1053년 헝가리의 언드라시 1세와 키예프 대공국의 야로슬라프 1세의 딸 아나스타시야 사이에서 태어났다. 1057년 또는 1058년 헝가리의 왕세자로 임명되었으며, 신성 로마 제국의 하인리히 4세와의 평화 조약에 따라 하인리히 3세의 딸 유디트와 약혼했다. 셜러몬은 숙부 벨러 1세의 반대와 왕위 계승 분쟁을 겪었으며, 1063년 신성 로마 제국의 지원을 받아 왕위에 올랐다. 이후 사촌들과의 협력과 갈등 속에서 통치했으며, 1074년 모조로드 전투에서 패배한 후 왕위를 잃고 1087년 비잔티움 제국과의 전투에서 사망했다. 일각에서는 그가 풀라에서 생을 마감했다고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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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러몬 |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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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호 | 헝가리 국왕 |
재위 기간 | 1063년 9월 11일 – 1074년 3월 14일 |
대관식 | 1057년 (부왕) 1063년 9월, 세케슈페헤르바르 |
대관식 유형 | 헝가리 |
이전 국왕 | 벨러 1세 |
다음 국왕 | 게저 1세 |
배우자 | 슈바벤의 유디트 |
왕가 | 아르파드 왕조 |
왕조 유형 | 왕조 |
아버지 | 안드라시 1세 |
어머니 | 키예프의 아나스타시야 |
출생일 | 1053년 |
사망일 | 1087년 |
사망 장소 | 동로마 제국, 불가리아 테마 |
종교 | 로마 가톨릭교회 |
헝가리어 | |
이름 | Salamon |
2. 생애
셜러몬은 언드라시 1세와 키예프 대공국 야로슬라프 1세 대공의 딸 아나스타시야 사이에서 태어났다. 1057년 또는 1058년에 언드라시 1세는 셜러몬을 헝가리의 왕세자로 임명했다.[1]
1058년, 헝가리는 신성 로마 제국 하인리히 4세 황제와 평화 조약을 체결하여 10년 넘게 계속된 무력 분쟁을 종식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셜러몬은 하인리히 4세의 누나인 유디트와 약혼했다.[1] 그러나 언드라시 1세의 동생 벨러 1세는 셜러몬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왕위 계승에 반대했고, 폴란드로 망명했다.[1]
1060년, 벨러 1세는 폴란드의 볼레스와프 2세의 지원을 받아 헝가리로 돌아왔다.[2] 1063년 세케슈페헤르바르에서 셜러몬의 대관식이 거행되고 유디트와 결혼했다.[2] 1071년, 셜러몬은 게저 1세, 라슬로 1세 형제와 함께 비잔티움 제국 원정에 나섰으나, 1073년 이후 이들과의 관계가 틀어졌다.[2]
1074년 3월 14일, 모조로드 전투에서 셜러몬의 군대는 게저, 라슬로 형제의 군대에 패배했다. 셜러몬의 영지는 포조니 인근으로 축소되었고, 1079년에는 포로로 잡혀 비셰그라드에 수감되었다.[2] 1083년 8월 17일, 이슈트반 1세의 시성식을 계기로 석방되었다.[2] 이후 1087년 불가리아에서 전사했다.[1]
2. 1. 초기 생애
언드라시 1세와 그의 아내인 아나스타시야 (키예프 대공국의 야로슬라프 1세 대공의 딸)의 아들로 태어났다. 1053년에 태어났으며 부모의 둘째 아이이자 장남이었다.[1]1057년 또는 1058년에 그의 아버지 언드라시 1세는 셜러몬을 왕으로 즉위시켰다.[1][2] 셜러몬의 대관식은 유디트와의 약혼의 근본적인 조건이었으며, 유디트는 독일의 하인리히 4세의 여동생이었다.[1][3] 그들의 약혼은 헝가리와 신성 로마 제국 사이의 10년 이상 지속된 무력 분쟁을 종식시켰다.[1][4][5] 그러나 셜러몬의 대관식은 그의 삼촌인 벨라를 자극했는데, 벨라는 그전까지 그의 형인 언드라시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할 강력한 주장을 전통적인 선순위 원칙에 따라 유지하고 있었다.[2][3][5] 벨라는 1048년경부터 왕국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이른바 ''공작령''을 통치했다.[6]


14세기의 연대기인 ''헝가리 삽화 연대기''에 따르면, 셜러몬의 왕위 계승을 확보하기 위해 그의 아버지는 티사바르코니의 왕실 영지에서 벨라 공작과의 만남을 주선했다.[6][4] 국왕은 그의 형제에게 왕관과 칼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제안했지만 (각각 왕실 권력과 공작의 권력을 상징), 벨라가 왕관을 고르면 그의 부하들에게 공작을 죽이라고 미리 명령했다.[6][4]
궁정 신하로부터 국왕의 계획에 대한 정보를 얻은 벨라 공작은 칼을 선택한 후 만남 이후 헝가리를 떠났다.[6][4] 그는 폴란드의 볼레스와프 2세 공작의 도움을 요청하여 폴란드 증원군과 함께 돌아왔다.[2][5] 벨라는 그 후 벌어진 내전에서 승리했는데, 그 내전 동안 셜러몬의 아버지는 전투에서 치명상을 입었다.[5] 셜러몬과 그의 어머니는 신성 로마 제국으로 도망쳐 오스트리아의 멜크에 정착했다.[1][5][7]
2. 2. 즉위와 통치
1060년 폴란드의 군주였던 볼레스와프 2세의 지원을 받으면서 헝가리로 귀환하였다.[2] 1063년에는 세케슈페헤르바르에서 대관식을 치르면서 슈바벤의 유디트와 결혼했다.[2]
셜러몬의 세 사촌(게저와 그의 형제들)은 독일 군대가 헝가리에서 철수한 후 돌아왔다. 그들은 폴란드 지원군과 함께 도착했고 셜러몬은 왕국의 서쪽 국경에 있는 모숀 요새로 피신했다. 헝가리 성직자들은 새로운 내전을 피하기 위해 그들 사이를 중재하기 시작했다.
셜러몬과 그의 사촌들은 결국 1064년 1월 20일 죄르에서 서명된 합의에 도달했다. 게저와 그의 형제들은 셜러몬을 합법적인 왕으로 인정했고, 셜러몬은 그들에게 아버지의 옛 ''공작령''을 부여했다. 화해의 표시로 게저 공작은 부활절 일요일에 페치 대성당에서 셜러몬의 머리에 왕관을 씌웠다.
왕과 그의 사촌들은 1064년에서 1071년 사이에 긴밀히 협력했다. 1071년에는 사촌형들인 게저, 라슬로와 함께 비잔티움 제국 원정에 나섰다.
2. 3. 왕위 계승 분쟁
1073년 이후, 셜러몬은 게저, 라슬로 형제와 관계가 악화되었다. 1074년 3월 14일 모조로드 전투에서 셜러몬이 이끄는 군대는 게저, 라슬로 형제가 이끄는 군대에 패배하여 셜러몬이 소유한 영지는 포조니(Pozsony, 현재의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인근 지대로 축소되었다.[2]1079년 셜러몬이 거주하고 있던 요새가 함락되면서 포로로 잡혔고, 비셰그라드에 수감되었다.[2] 1083년 8월 17일 이슈트반 1세에 대한 시성식이 거행되면서 석방되었다.[2]
2. 4. 퇴위 이후
Salamon magyar király|셜로몬 머저르 키라이hu는 1087년 불가리아에서 전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 일부 기록에는 셜러몬이 살아남아 풀라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전해진다.[1]1083년 8월, 이슈트반 1세의 성인식이 거행되자, 셜러몬은 사면되어 석방되었다.[1] 그는 레겐스부르크로 도망쳐 의붓 형 하인리히 4세의 군사 지원을 요청했지만 실패했다.[1] 이후 몰다비아 지방에 정착한 페체네그족의 수장 쿠테슈크와 동맹을 맺고 그의 딸과 결혼했다.[1] 이때 첫 번째 왕비 유디트와 결혼한 상태였다.[1] 셜러몬은 장인의 군사 원조를 대가로 자신의 왕국 영토를 주기로 약속했다.[1] 그는 페체네그족을 이끌고 헝가리와 싸웠고, 1085년에는 라슬로 1세에게 패배했다.[1]
1087년, 셜러몬은 페체네그족의 동로마 제국 원정에 참가하여 아드리아노폴 근처의 전투에서 전사했다.[1] 다른 설에 따르면, 셜러몬은 전장에서 도망쳐 달마티아의 풀라에서 여생을 수도승으로 보냈다고 한다.[1]
3. 헝가리에 끼친 영향
셜러몬의 통치 기간은 왕위 계승 분쟁으로 점철되었는데, 이는 헝가리 왕국의 정치적 불안정을 야기했다.[1] 1057년 또는 1058년에 셜러몬은 헝가리의 왕세자로 임명되었지만, 숙부인 벨러 1세는 셜러몬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왕위 계승에 반대했다.[1] 벨러 1세는 폴란드의 지원을 받아 헝가리로 귀환하여 셜러몬의 아버지 언드라시 1세를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1]
1063년 벨러 1세가 사망한 후, 셜러몬은 신성 로마 제국의 지원을 받아 헝가리를 침공하여 왕위에 올랐다.[1] 그러나 벨러 1세의 아들들인 게저 1세, 라슬로 1세 형제와의 권력 투쟁이 계속되었다.[1] 1074년 모조로드 전투에서 셜러몬은 게저, 라슬로 형제에게 패배하고 영토가 축소되었다.[1] 1079년에는 셜러몬이 거주하던 요새가 함락되면서 포로로 잡혔다가, 1083년 이슈트반 1세에 대한 시성식 때 석방되었다.[1]
신성 로마 제국과의 관계는 셜러몬의 통치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1] 1058년 셜러몬은 신성 로마 제국의 하인리히 4세 황제의 누나인 슈바벤의 유디트와 약혼하면서 양국 간의 평화 조약이 체결되었다.[1] 이 결혼은 헝가리의 외교 정책에 영향을 주었으며, 셜러몬은 하인리히 4세의 지원을 받아 왕위를 유지하려 했다.[1]
셜러몬의 퇴위 이후, 헝가리는 아르파드 왕조의 다른 분파인 게저와 라슬로 형제에 의해 통치되었다.[1] 1077년 게저 1세가 사망하자 라슬로 1세가 왕위에 올랐고, 1079년 셜러몬의 요새를 함락시키면서 셜러몬의 통치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1]
4. 유산
셜러몬은 헝가리 역사에서 왕위 계승 분쟁의 중심에 있던 인물로 평가된다. 그의 생애는 중세 헝가리의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로 간주된다.
셜러몬은 언드라시 1세와 아나스타시야 왕비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탄생 이전에는 숙부인 벨러가 왕위 계승자로 유력했지만, 셜러몬의 탄생으로 상황이 급변했다. 1057년 또는 1058년에 셜러몬은 왕세자로 임명되었지만, 벨러는 이에 반발하여 폴란드로 망명했다.[1] 1060년 벨러는 폴란드의 지원군을 이끌고 헝가리를 침공하여 언드라시 1세를 패배시키고 왕위에 올랐다.
1063년 셜러몬은 신성 로마 제국의 지원을 받아 헝가리로 돌아와 세케슈페헤르바르에서 대관식을 거행하고 유디트와 결혼했다.[1] 그러나 벨러 1세의 아들들인 게저, 라슬로 형제와의 갈등은 계속되었다. 1074년 모조로드 전투에서 패배한 셜러몬은 포조니(현재의 브라티슬라바) 인근으로 영지가 축소되었고, 1079년에는 포로로 잡혀 비셰그라드에 수감되었다.[1]
1083년 이슈트반 1세의 시성식을 계기로 석방된 셜러몬은 왕위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1087년 불가리아에서 전사했다는 기록과 풀라에서 수도승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1]
셜러몬과 관련된 다양한 전설과 이야기는 헝가리 문화에 영향을 미쳤다.
5. 같이 보기
- 언드라시 1세
- 벨러 1세
- 게저 1세
- 라슬로 1세
- 아르파드 왕조
참조
[1]
서적
The Hungarian Illuminated Chronicle
[2]
서적
The Hungarian Illuminated Chronicle
[3]
서적
The Hungarian Illuminated Chronicle
[4]
서적
The Hungarian Illuminated Chronicle
[5]
서적
The Hungarian Illuminated Chronicle
[6]
서적
The Hungarian Illuminated Chronicle
[7]
서적
The Hungarian Illuminated Chronicle
[8]
서적
The Hungarian Illuminated Chronicle
[9]
서적
The Hungarian Illuminated Chronicle
[10]
서적
Chronicle
[11]
간행물
Pope Gregory VII's letter to King Solomon of Hungary, claiming suzerainty over that kingdom
[12]
서적
The Hungarian Illuminated Chronicle
[13]
서적
The Hungarian Illuminated Chronicle
[14]
서적
Chronicle
[15]
서적
The Alexiad
[16]
서적
Chronicle
[17]
서적
The Hungarian Illuminated Chronicle
[18]
서적
The Deeds of the Hungarians
[19]
서적
Chronicle
[20]
서적
The Deeds of the Hungari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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