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바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슈바벤은 유럽의 역사적 지역으로, 오늘날에는 독일 남서부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중동부 및 남동부, 바이에른 주 남서부 등을 포함하는 지역을 지칭한다. 고대에는 수에비족에서 유래되었으며, 중세에는 슈바벤 공국으로 존재했고, 호엔슈타우펜 왕가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를 배출하기도 했다. 1803년 제국 영토 재편 이후 뷔르템베르크 왕국, 바덴 대공국, 호엔촐레른-지그마린겐 공국 등으로 분할되었다. 슈바벤인은 알레만어 방언을 사용하며, 검소하고 근면한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슈바벤 - 슈바벤 관구
슈바벤 관구는 신성 로마 제국의 행정 구역으로, 다양한 영주령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콘스탄츠 주교가 책임자를 맡았고, 1803년 독일의 병합화 이후 바덴의 변경백으로 대체되었다. - 슈바벤 - 호엔슈방가우성
호엔슈방가우성은 12세기 요새에서 유래하여 19세기 막시밀리안 2세에 의해 재건축된 독일 바이에른주 소재의 신고딕 양식 성으로, 루트비히 2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예술적 영감의 장소이자 현재는 노이슈반슈타인 성과 함께 인기 있는 관광 명소이다. -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지리 - 슈티펠회헤산
-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지리 - 프라이부르크현
프라이부르크현은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남서부에 위치한 현으로, 여러 군과 프라이부르크임브라이스가우시를 포함하며, 높은 경제 생산량과 1인당 GDP를 가진다. - 바이에른주의 지리 - 슈바벤현
슈바벤현은 독일 바이에른주 남서부에 위치한 행정 구역으로, 아우크스부르크를 주도로 하며, 슈바벤 공국의 일부였고, 독일의 교회 영토 세속화를 거쳐 바이에른에 편입되었으며, 뇌르틀링거 리스와 알프스 산맥, 역사적 건축물, 슈바벤 요리, 슈바벤어 등 고유한 문화를 특징으로 한다. - 바이에른주의 지리 - 니더바이에른현
니더바이에른현은 독일 바이에른주에 위치한 행정 구역으로, 니더바이에른 공국에서 시작하여 여러 행정 구역 개편을 거쳐 현재 3개의 시와 9개의 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바이에른 숲과 니더바이에른 고지대의 다양한 지형과 도나우강을 끼고 농업, 중소기업, 관광 산업이 발달하였다.
슈바벤 | |
---|---|
지리 | |
![]() | |
일반 정보 | |
국가 | 독일 |
위치 | 독일 남서부 |
면적 | 약 35,751 km² |
인구 | 약 1050만 명 (2017년) |
인구 밀도 | 293명/km² |
행정 구역 | |
주 |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대부분) 바이에른주 (일부) |
주요 도시 | 슈투트가르트 아우크스부르크 울름 하일브론 로이틀링겐 튀빙겐 |
역사 | |
기원 | 알레만니족 |
주요 사건 | 슈바벤 공국 형성 신성 로마 제국의 일부 뷔르템베르크 왕국 바덴 왕국 |
현대 | 바덴뷔르템베르크주와 바이에른주의 일부 |
문화 | |
언어 | 슈바벤 독일어 |
종교 | 로마 가톨릭교 개신교 |
전통 | 파스넷 (사순절 축제) 마울타셴 (슈바벤식 만두) 브레첼 (프레첼) |
경제 | |
주요 산업 | 제조업 (자동차, 기계) 서비스업 관광업 |
유명 기업 | 다임러 포르쉐 보쉬 |
기타 | |
슈바벤인의 특징 | 근면, 절약, 전통 고수 |
2. 지리
유럽의 많은 문화 지역과 마찬가지로 슈바벤의 경계는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다.[1] 중세 시대에는 슈바벤이라는 용어가 더 넓은 지역을 가리켰으며, 프랑크족의 알레만니아 부족 공국과 관련된 모든 땅을 포함하여 서쪽의 보주 산맥에서 동쪽의 넓은 레흐 강까지 뻗어 있었다.[1] 현재 행정 구역에서는 아우크스부르크를 중심으로 한 바이에른 주 남서부의 행정 지구에 "슈바벤"이라는 이름이 남아 있으며, "바이에른의 슈바벤"(Bayerisch-Schwaben)이라고 불린다.[1]
2. 1. 자연 환경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중동부·남동부를 중심(슈투트가르트, 울름 등)으로, 바이에른 주 남서부 등을 포함하는 일대는 현재 다소 막연한 역사적인 지방 명칭으로 남아 있다.[1]지리적으로 이탈리아(북부 이탈리아)와도 가깝기 때문에, 바이에른, 케른텐과 마찬가지로 다른 독일 지역과 달리 파스타, 피자 등의 향토 요리도 많다.[1]
뷔르템베르크(프랑켄 지방 남서부)나, 슈바벤과 같은 알레만인의 거주 지역에 속하는 남중부의 보덴 호에서 서부의 슈바르츠발트의 숲을 포함하는 알자스와 인접하는 바덴 지방 (광의적으로는 오스트리아 서부의 포어아를베르크 주, 리히텐슈타인 공국, 스위스(독일어권)도 포함)과는 약간 다르게, 동부의 슈바벤 지방의 방언은 독일어 중에서도 "억양이 강하다"라고 하며, 문화적으로도 독특한 풍토를 가지고 있어 일반적으로 독일 내에서도 특이하다고 인식되고 있다.[1]
2. 2. 인접 지역
슈바벤은 그 경계가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지만,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옛 슈바벤 관구, 옛 뷔르템베르크 (프로이센의 호엔촐레른 현) 혹은 현대의 튀빙겐 (보덴제군의 옛 바덴 지역 제외), 슈투트가르트, 바이에른 슈바벤 행정 구역을 포함하는 것으로 여겨진다.[1]북쪽으로는 뷔르템베르크(프랑켄 지방 남서부)와 접하고, 남중부 보덴 호에서 서부 슈바르츠발트 숲을 포함하는 알자스와 인접하는 바덴 지방과도 인접한다.[1] (광의적으로는 오스트리아 서부 포어아를베르크 주, 리히텐슈타인 공국, 스위스(독일어권)도 포함)[1]
3. 역사
수에비에서 유래한 "Suebia"라는 이름은 이미 1세기에 타키투스에 의해 사용되었지만, 당시에는 지리적인 의미가 달랐다.[2] 3세기 중반, 수에비 부족들은 알레마니라는 새로운 부족 연합의 핵심 구성원이 되었고, 이들의 정착지는 수에비아로 알려지게 되었다. 민족 이동 시대에 수에비(알레마니)는 라인강을 건너 수에비 왕국을 세우기도 했다.[3]
알레마니는 4세기부터 5세기까지 독립적으로 통치되었으나, 6세기에는 프랑크족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3] 9세기부터 "수에비아"는 "알레마니아"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지만, "알레마니아"는 점차 알자스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 12세기에는 슈바벤 공국 영토를 지칭할 때 "알레마니아" 대신 "수에비아"가 주로 사용되었다.[4]
동프랑크 왕국의 간선 공국 중 하나였던 슈바벤은 장크트갈렌과 라이헤나우 등 주요 수도원을 중심으로 고대 고지 독일어 문학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후기 카롤링거 왕조 시대에는 사실상 독립 상태였으며, 훈프리딩 가문과 아할롤핑 가문이 주요 세력이었다. 빈터투어 전투 (919년)에서 부르차르트 2세가 승리하면서 훈프리딩 가문이 주도권을 잡았고,[5] 오토 1세 치하에서 신성 로마 제국에 통합되었다.
12세기와 13세기 신성 로마 제국을 통치했던 호엔슈타우펜 왕가는 슈바벤 출신이었으나, 콘라딘이 처형된 후 공국은 해체되었다. 루돌프 1세는 공국 재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옛 공국은 여러 작은 단위로 분열되었다. 농촌 지역은 제국 치안 판사 관할로 통합되어 전 오스트리아 영토에 편입되었다.
1331년, 옛 슈바벤 공국의 자유 제국 도시들은 슈바벤 도시 동맹을 결성하여 루트비히 4세 황제를 지지했다. 1376년에는 뷔르템베르크 백작 에버하르트 2세에 대항하여 새로운 동맹이 결성되었으나, 제국 전쟁 끝에 해산되었다.
중세 슈바벤에는 합스부르크 가문, 호엔촐레른 가문, 뷔르템베르크 공국, 바덴 변경백국, 벨프 가문 등 여러 왕조가 존재했다. 이 지역은 수많은 자유 제국 도시, 교회 영토, 소규모 봉토 등으로 인해 제국 내에서 가장 분열된 지역 중 하나였다.
1488년 결성된 새로운 슈바벤 동맹은 비텔스바흐 가문과 구 스위스 연방에 대항했다.[1] 1519년 뷔르템베르크를 정복하고 독일 농민 전쟁을 진압하는 등 활약했으나, 종교 개혁으로 인해 1534년 해체되었다.[1]
근세 초, 1512년 설립된 슈바벤 원형도는 현재의 슈바벤 영토와 거의 일치한다. 구 스위스 연방은 1499년 슈바벤 전쟁 결과 독립했고, 바덴 변경백령은 12세기부터 분리되었다. 15세기 슈바벤의 도시와 소규모 통치자들은 슈바벤 동맹을 결성하여 제후들의 권력에 맞섰으나, 종교 개혁으로 인한 분열로 해체되었다. 종교 개혁 이후 슈바벤 지역은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교회 세력으로 나뉘어 분열되었다.
1803년 제국대표단 의결 이후 슈바벤은 크게 변화했다. 교회 재산은 세속화되고, 대부분의 소규모 국가와 자유 도시는 중세화되었다. 뷔르템베르크 왕국, 바덴 대공국, 호엔촐레른-지그마린겐 공국만이 주권 국가로 남았고, 동부 슈바벤은 바이에른에 편입되어 현재의 슈바벤 행정구역이 되었다.,[1]
오늘날 "슈바벤"은 바이에른 슈바벤만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뷔르템베르크 지역을 포함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뷔르템베르크 주민들은 스스로를 슈바벤인이라 부르지만, 바덴 주민들은 알레만니라고 부른다.,[1]
3. 1. 고대
현재 슈바벤으로 알려진 지역은 남부 독일과 마찬가지로 라텐 문화의 일부였으며, 켈트족 (골족)의 기층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로마 시대에는 라에티아 속주의 일부였다."Suebia"라는 이름은 "수에비"에서 유래되었다. 이 이름은 이미 1세기에 타키투스에 의해 사용되었지만, 지리적인 의미는 달랐다. 그는 발트해를 수이오네스의 이름을 따서 ''Mare Suevicum''("수에비해")라고 불렀고, 수이오네스와 시토네스에 대한 설명을 "여기서 수에비아가 끝난다"(''Hic Suebiae finis'')로 마무리했다.[2] 3세기 중반에 수에비 부족들은 라인강 동쪽과 마인강 남쪽에 있는 로마 국경으로 확장한 새로운 부족 연합인 알레마니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알레마니는 이 시기에도 종종 수에비라고 불렸으며, 그들의 새로운 정착 지역은 수에비아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동 시대에 수에비(알레마니)는 406년에 라인강 도하를 했고, 그들 중 일부는 갈리시아에 수에비 왕국을 세웠다. 또 다른 그룹은 454년에 훈족이 네다오 전투에서 패배한 후 파노니아 일부 지역에 정착했다.
알레마니는 4세기부터 5세기까지 독립적인 왕에 의해 통치되었지만, 6세기에는 프랑크족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톨비악 전투 496).[3] 5세기 말까지 알레마니가 정착한 지역은 알자스와 스위스 고원까지 확장되었으며, 동쪽으로는 바바리아족, 북쪽으로는 프랑크족, 서쪽으로는 로마 갈리아의 잔재, 남쪽으로는 롬바르드족과 고트족이 오도아케르 왕국으로 연합하여 국경을 이루었다.
"알레마니아"라는 이름은 8세기에 사용되었으며, 9세기부터 "수에비아"는 때때로 "알레마니아"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고, "알레마니아"는 점점 더 알자스를 구체적으로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12세기까지는 슈바벤 공국의 영토를 일관되게 지칭하는 데 "알레마니아"보다는 "수에비아"가 사용되었다.[4]
3. 2. 중세
슈바벤은 9세기와 10세기에 발전한 초기 간선 공국 중 하나였으며, 이후 동프랑크 왕국의 신성 로마 제국이 되었다. 장크트갈렌과 라이헤나우와 같은 중요한 수도원이 세워지면서, 슈바벤은 이 시기에 고대 고지 독일어 문학 문화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었다.
후기 카롤링거 왕조 시대에 슈바벤은 다시 사실상 독립하게 되었으며, 10세기 초에는 주로 라에티아 쿠리엔시스의 훈프리딩 백작과 상부 네카어 강과 도나우 강 주변의 바르 영지를 다스린 아할롤핑 가문, 이렇게 두 왕조에 의해 통치되었다. 두 왕조 간의 갈등은 빈터투어 전투 (919년)에서 훈프리딩의 부르차르트 2세의 승리로 결정되었다.[5] 부르차르트의 공작 통치는 새로 선출된 왕 사냥꾼 하인리히에 의해 인정되었고, 960년대에는 부르차르트 3세 치하의 공국이 오토 1세 치하의 신성 로마 제국에 통합되었다.
12세기와 13세기에 신성 로마 제국을 통치한 호엔슈타우펜 왕가는 슈바벤에서 일어났지만, 마지막 호엔슈타우펜인 콘라딘이 1268년 10월 29일에 처형된 후, 공위 시대 동안 공국은 재지정되지 않았다. 그 후 몇 년 동안 원래의 공국은 점차 많은 작은 단위로 분열되었다.
1273년 황제로 선출된 합스부르크의 루돌프 1세는 공국을 복원하려 했지만 황제의 권력을 제한하려는 상위 귀족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대신 그는 호엔슈타우펜의 옛 영지를 신성 로마 제국의 황실 재산으로 몰수하고, 이전 호엔슈타우펜에 속했던 대부분의 도시를 자유 제국 도시로 선포했으며, 이전 공국 내의 더 강력한 수도원을 제국 수도원으로 선포했다.
농촌 지역은 슈바벤의 제국 치안 판사 (''Reichslandvogtei'')로 병합되었으며, 1379년에는 오스트리아 공작 오스트리아의 레오폴트 3세에게, 1473/1486년에는 오스트리아 대공 지기스문트에게 제국 담보로 주어졌다. 그는 "슈바벤 공작"이라는 칭호를 얻었고 슈바벤 치안 판사를 전 오스트리아의 영토에 통합했다.
슈바벤 도시 동맹은 1331년 11월 20일에 처음 결성되었는데, 이때 옛 슈바벤 공국의 22개 자유 제국 도시가 루트비히 4세 황제를 지지하기 위해 뭉쳤다. 황제는 그 대가로 도시들을 제국 봉신에게 저당 잡히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창립 도시들로는 아우크스부르크, 하일브론, 로이틀링겐, 울름 등이 있었다. 뷔르템베르크 백국의 백작, 외팅겐, 호엔베르크 가문은 1340년에 참여하도록 설득되었다.
1372년 뷔르템베르크 백작 에버하르트 2세가 도시 연맹을 물리친 후, 1376년 7월 4일에 14개의 슈바벤 도시가 새로운 동맹을 결성하게 되었다. 황제는 새롭게 부활한 슈바벤 연맹을 반란으로 간주하고 인정하지 않았으며, 이는 동맹에 대한 "제국 전쟁"으로 이어졌다. 새롭게 결성된 동맹은 1377년 5월 14일 로이틀링겐 전투에서 제국군을 격파했다. 호엔촐레른의 부르크라프 프리드리히 5세는 1388년 되핑겐에서 결국 동맹을 물리쳤다. 이듬해 에거에서 열린 제국 회의 (신성 로마 제국)의 결의에 따라 도시 연맹은 해산되었다.
중세 슈바벤에서 일어난 주요 왕조로는 북독일에서 두각을 나타낸 합스부르크 가문과 호엔촐레른 가문이 있다. 또한, 슈바벤에서 유래한 것으로는 뷔르템베르크 공국의 공작들과 바덴 변경백국의 변경백 가문의 지역 왕조가 있다. 벨프 가문은 바이에른 왕국과 하노버 왕국을 통치하게 되었으며, 1714년부터 통치해 온 영국 왕실의 조상이 되었다. 더 작은 봉건 왕조들은 결국 사라졌지만, 예를 들어, 포어알베르크의 몬트포르트 가문과 호에넴스 가문의 분파는 현대까지 존속했으며, 퓌르스텐베르크 (공작 가문)는 여전히 살아남았다. 이 지역은 이러한 공국들 외에도 수많은 자유 제국 도시, 교회 영토, 그리고 작은 백작과 기사들의 봉토가 포함되어 제국에서 가장 분열된 지역 중 하나임을 증명했다.
3. 3. 근세
1488년, 새로운 슈바벤 동맹(''Schwäbischer Bund'')이 결성되어 비텔스바흐 가문 출신의 팽창주의적인 바이에른 공국(House of Wittelsbach)과 남부에서 일어난 구 스위스 연방(Old Swiss Confederacy)의 혁명적 위협에 대항했다.[1] 1519년, 동맹은 뷔르템베르크를 정복했고, 울리히 공작이 막시밀리안 1세 사후 공위 시대에 자유 제국 도시 로이틀링겐을 점령하자 카를 5세에게 매각했다. 동맹은 1524-26년 농민 반란을 진압하고 프랑코니아 전쟁에서 강도 귀족(robber baron)들의 동맹을 격퇴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종교 개혁으로 인해 동맹은 1534년에 해체되었다.[1]오늘날 이해되는 슈바벤의 영토는 근세 초, 1512년에 설립된 슈바벤 원형도에 해당한다. 구 스위스 연방은 슈바벤 전쟁 결과 1499년부터 슈바벤으로부터 사실상 독립했으며, 바덴 변경백령(Margraviate of Baden)은 12세기부터 분리되었다.
15세기에 슈바벤의 도시와 소규모 세속 통치자들은 더 큰 제후들의 권력을 두려워하여 슈바벤 동맹을 결성했다. 동맹은 상당히 성공적이었으며, 특히 1519년에 뷔르템베르크 공작을 추방하고 합스부르크 총독을 그 자리에 앉혔다. 하지만 종교 개혁에서 영감을 얻은 종교적 차이로 인해 몇 년 후 해체되었고, 뷔르템베르크 공작은 곧 복위되었다.
이 지역은 종교 개혁으로 인해 상당히 분열되었다. 뷔르템베르크 공작 및 바덴-두를라흐 변경백과 같은 세속 군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자유 도시가 개신교가 되었지만, 아우크스부르크(Prince-Bishopric of Augsburg), 콘스탄츠 주교구 및 수많은 제국 수도원 목록을 포함한 교회 영토는 로마 가톨릭교회를 유지했고, 합스부르크(Further Austria), 호엔촐레른 가문#슈바벤 분가(Sigmaringen)의 호엔촐레른 가문, 바덴-바덴 변경백의 영토도 마찬가지였다.
3. 4. 근대
1803년 제국대표단 의결에 따른 제국의 영토 재편 이후 슈바벤의 모습은 완전히 바뀌었다. 모든 교회 재산은 세속화되었고, 대부분의 소규모 세속 국가와 거의 모든 자유 도시가 중세화되어 뷔르템베르크 왕국, 바덴 대공국, 호엔촐레른-지그마린겐 공국만이 주권 국가로 남게 되었다. 동부 슈바벤의 상당 부분은 바이에른에 편입되어 현재의 바이에른 슈바벤 행정구역을 형성했다. 바이에른 왕은 "슈바벤 공작"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는데, 여기서 "in"은 그들이 슈바벤 영토의 일부만을 통치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는 프랑켄 전체가 그들의 왕국에 편입되었음을 분명히 한 다른 칭호인 "프랑켄 공작"과는 대조적이다.오늘날에는 때때로 "슈바벤"이 바이에른 슈바벤만을 지칭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정확하게는 슈바벤의 더 큰 뷔르템베르크 지역을 포함한다. 그곳의 주민들은 스스로를 슈바벤인이라고 부르는 데 큰 중요성을 부여한다. 역사적으로 슈바벤 공작령과 슈바벤 지역에 속했던 바덴은 더 이상 일반적으로 이 용어에 포함되지 않는다. 바덴 주민들은 대부분 자신을 알레만니 (슈바벤인과 대조적으로)라고 부른다.
3. 5. 현대
1803년 제국대표단 의결에 따른 제국의 영토 재편 이후 슈바벤의 모습은 완전히 바뀌었다. 모든 교회 재산은 세속화되었고, 대부분의 소규모 세속 국가와 거의 모든 자유 도시가 중세화되어 뷔르템베르크 왕국, 바덴 대공국, 호엔촐레른-지그마린겐 공국만이 주권 국가로 남게 되었다. 동부 슈바벤의 상당 부분은 바이에른에 편입되어 현재의 바이에른 슈바벤 행정구역을 형성했다.[1] 바이에른 왕은 "슈바벤 공작"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는데, 여기서 "in"은 그들이 슈바벤 영토의 일부만을 통치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는 프랑켄 전체가 그들의 왕국에 편입되었음을 분명히 한 다른 칭호인 "프랑켄 공작"과는 대조적이다.[1]오늘날에는 때때로 "슈바벤"이 바이에른 슈바벤만을 지칭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정확하게는 슈바벤의 더 큰 뷔르템베르크 지역을 포함한다. 그곳의 주민들은 스스로를 슈바벤인이라고 부르는 데 큰 중요성을 부여한다. 역사적으로 슈바벤 공작령과 슈바벤 지역에 속했던 바덴은 더 이상 일반적으로 이 용어에 포함되지 않는다. 바덴 주민들은 대부분 자신을 알레만니 (슈바벤인과 대조적으로)라고 부른다.[1]
4. 슈바벤인
슈바벤인은 민족 언어학적으로 알레마니 독일어를 사용하는 바덴인, 알자스인, 독일어 사용 스위스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6] 많은 슈바벤 성씨는 '-le', '-(l)er', '-el', '-ehl', 그리고 '-lin'으로 끝나는 접미사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중세 고지 독일어 지소사 접미사 '-elîn'(현대 표준 독일어 '-lein')에서 유래한다. 'Schäuble', 'Egeler', 'Rommel', 'Gmelin' 등이 그 예이다. 독일 성씨 'Schwab'과 이탈리아 성씨 'Svevo'는 모두 이 지역에서 유래했으며, 문자 그대로 "슈바벤인"을 의미한다.
독일 남부에서는 전통적으로 "슈바벤인"을 "시골뜨기"의 대명사로 여겼으나, 한편으로는 분수를 아는 검소한 정신의 상징으로도 비유된다. 2008년 9월 리먼 브라더스 파산 당시, 앙겔라 메르켈 총리(당시)는 "유럽과 미국의 궁핍한 상황의 이유를 알고 싶다면, '슈바벤의 주부'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다.
4. 1. 언어
슈바벤어는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서부 상부 독일어(알레마니 방언)의 특징을 보이는 지역에서 사용되는 언어이다.
SIL 에스놀로그는 2006년 기준으로 약 819,000명의 슈바벤어 사용자가 있다고 추정한다. 이는 슈바벤 지역 전체 인구의 약 10%, 또는 독일 전체 인구의 약 1%에 해당한다.[6]
슈바벤어를 사용하는 슈바벤인은 민족 언어학적으로 알레마니 독일어를 사용하는 바덴인, 알자스인, 독일어 사용 스위스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6]
슈바벤어는 전통적으로 상부 네카어 분지(하일브론 상류), 투틀링겐과 도나우뵈르트 사이의 상부 도나우 강, 오버슈바벤, 그리고 레흐 강의 왼쪽 강둑, 슈바벤 알프스를 중심으로 슈투트가르트에서 아우크스부르크까지 대략적으로 뻗어 있는 지역에서 사용된다.
많은 슈바벤 성씨는 '-le', '-(l)er', '-el', '-ehl', 그리고 '-lin'으로 끝나는 접미사를 가지고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중세 고지 독일어 지소사 접미사 '-elîn'(현대 표준 독일어 '-lein')에서 유래한다. 예를 들어 'Schäuble', 'Egeler', 'Rommel', 그리고 'Gmelin'이 있다. 인기 있는 독일 성씨 'Schwab'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Svevo'는 이 지역에서 유래되었으며, 둘 다 문자 그대로 "슈바벤인"을 의미한다.
4. 2. 문화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중동부·남동부를 중심(슈투트가르트, 울름 등)으로, 바이에른주 남서부 등을 포함하는 일대를 가리키는 현재는 다소 막연한, 역사적인 지방 명칭으로 남아 있다. 지리적으로 이탈리아(북부 이탈리아)와도 가깝기 때문에, 바이에른, 케른텐과 마찬가지로 다른 독일 지역과 달리 파스타, 피자 등의 향토 요리도 많다.북부의 뷔르템베르크(프랑켄 지방 남서부)나, 슈바벤과 같은 알레만인의 거주 지역에 속하는 남중부의 보덴호에서 서부의 슈바르츠발트의 숲을 포함하는 알자스와 인접하는 바덴 지방 (광의적으로는 오스트리아 서부의 포어아를베르크주, 리히텐슈타인 공국, 스위스(독일어권)도 포함)과는 약간 다르게, 동부의 슈바벤 지방의 방언은 독일어 중에서도 "억양이 강하다"라고 하며, 문화적으로도 품고 있는 독특한 풍토는, 일반적으로 독일 내에서도 특이하다고 인식되고 있다.
그 때문에, 독일 남부에서는 전통적으로 "슈바벤인"이라고 하면 "시골뜨기"의 대명사로 하는 관습도 있다. 한편, 분수를 아는 검소한 정신의 상징으로도 비유된다. 2008년 9월의 리먼 브라더스(독일계 유대인) 파산 당시, 메르켈 총리(당시)는 "유럽과 미국의 궁핍한 상황의 이유를 알고 싶다면, '슈바벤의 주부'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다.
참조
[1]
기타
IPAc-en
[2]
서적
Germania
https://www.perseus.[...]
[3]
기타
[4]
기타
[5]
서적
Die Welfen. Herrschaft und Erinnerung (819–1252).
Kohlhammer Verlag
2000
[6]
기타
Minahan
[7]
뉴스
最悪の事態に備える倹しいドイツ人~深刻な景気後退と奇妙な安定感
http://jbpress.ismed[...]
JBpress
2009-05-20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